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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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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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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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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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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9화 보상을 논하다

DUMMY

9화 보상을 논하다


“이 일도 녹록지 않군.”


만여 명이 넘게 있던 남한산성에 고작 백여 명만 남았다.


그러니 사람 하나 보기가 그리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건만, 남은 사람의 명부를 직접 확인하면서 작정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통신 장비나 통화 장비가 있을 리가 만무한 시대이니 결국 주어진 선택지는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눈으로 확인하고 물어보는 게 다였다.


오전부터 그리 발품을 팔았건만 명단은 아직 절반도 확인하지 못했으니 참으로 한숨이 절로 나올 일이었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이 고생을 하는 게 그 혼자가 아니라는 거였다.


“응? 벌써 식사 시간인가?”


구수한 밥 내음에 송시열은 여태껏 저는 없다는 것처럼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배가 크게 요동하는 걸 느끼며 쓰게 웃었다.


“정말 허투루 들을 말이 하나도 없군그래.”


길거리에서 오다가다 산다는 건 먹는 거라고 했을 때 내심 비웃었던 그는 제가 그런 처지가 되니 참으로 우습다 여기며 걸음을 구수한 향이 나는 곳으로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럿이 평상에 앉아서 식사하는 장소에 도착하여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그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 영보가 아닌가. 이리 앉게.”


사관 김조경의 부름에 송시열은 의외라는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까 그가 들은 말처럼 인연이라는 말에 쉬이 그의 이름을 알려준 것처럼 지금 남한산성에 남은 이들은 본래 잘 모르는 사이라 하더라도 마치 십년지기는 된 것처럼 굴곤 했는데,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장 형님이 어인 일로 이리 빠르십니까.”


사관이라는 특성상 항상 늦게 먹거나 따로 먹는 일이 많던 김조경을 보며 의외라는 듯 물으니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일렀다.


“오늘은 쉬는 날이네. 그간 교대가 제대로 되지 않았었거든.”

“아아.”


김조경의 말에 그제야 평상시와 달리 여유 넘치는 모습을 이해한 송시열은 제 앞에 시종이 식사를 내려놓는 걸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한 건 아니나 먹고 배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양에는 힘든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7첩 반상은 아니나 배부르게 먹으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지 않나?”

“맞는 말씀입니다.”


만여 명이 머물던 때에는 하루 한 끼를 제대로 먹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 남은 이들은 하루 세끼에 더해 종종 주전부리도 챙겨 먹으니 참으로 풍족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먹는 건 좋지만 이게 맞나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의기를 보이기 위해 거짓 항전을 하는 건데, 이렇게 잘 먹어도 되나?’


그러나 의구심과 별개로 손은 잘만 음식을 향했다. 이윽고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물로 입을 헹구는 송시열의 귀에 김조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은 좀 어떤가?”

“시간만 걸릴 뿐 힘들 건 없지요.”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 귀찮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을 어찌 입에 담을까 싶었던 송시열은 적당히 둘러댔다.


아닌 게 아니라, 발품 파는 귀찮음만 제하면 뭐 어려울 거 없는 일이기도 했다.


적당한 선심으로 진심 담긴 나으리 소리도 듣긴 했으니 이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하루에 반절은 상의 옆에서 없는 사람처럼 죽은 듯 있어야 하는 사관 앞에서 힘들다고 하기에는 그도 양심이라는 게 있었다.


“천천히 쉬다 가게. 난 이만 먼저 일어나겠네.”

“살펴 가십쇼.”



***



“전하, 수라를 들이겠습니다.”

“그리하라.”


내관의 말에 허하니 곧 작은 상이 하나 내 앞으로 옮겨졌다.


수라라고는 하지만 여긴 남한산성이고,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병졸들이 굶주림에 사기가 떨어지던 곳이다.


그러니 흔히 생각하는 그런 화려한 수라상은 없었다. 그렇지만 양은 부족지 않았으니 이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다.


기미가 끝난 음식을 조용히 들고 난 후, 상을 물리며 나는 내관에게 물었다.


“성내 분위기는 어떠한가?”

“다들 의기를 세워 엄중히 평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가.”


딱히 어떻게 포장하든 관심은 없었다. 남은 이들이 별 이상한 생각을 하거나 불온한 생각으로 함부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족했다.


하긴, 이미 그 대표 격이라 할 이들인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참판 정온이 내게 찬동하고 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


여기에서 무슨 다른 이름 있는 선비나 신료가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 저 두 사람의 이름값으로 어떻게 되는 이들뿐이다.


생각난 김에 김상헌하고는 다른 것도 한번 논할 필요가 있겠구나.


“예판에게 식사를 마치고 잠시 들르라고 하게.”

“알겠사옵니다, 전하.”

“아, 그리고 명단은 다 확인되었는가? 예판과 이야기하며 그에 대해 논하고 싶은데.”

“확인은 아직이나 오늘 중으로는 끝이 날 것입니다.”


내관의 말을 듣자니 어째 그게 지금 일하는 이들의 생각과 별개로 그렇게 하게 만들겠다는 듯이 들리는데, 착각이......아니겠구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의기를 세우기 위해 자원을 받은 일이 아닌가. 빠르게 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하다. 대신 예판과 논할 때 필요하니 아직 확인치 않은 것이라도 한 부 가져오라.”

“예, 전하.”


내관이 그리 말하고 눈짓하니 요령껏 상을 치우러 몇 사람이 들어섰다. 그들이 상을 내간 후 홀로 상념에 빠져있길 얼마나 있었을까, 내관의 김상헌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하, 예조판서 김상헌 대감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들라하라.”


짧은 대답에 곧 장지가 열리는 소리가 나며 김상헌이 안으로 들어섰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그러하오.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앉으시오.”


예판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니 앉으라 한 후 나는 슬쩍 그를 살피며 운을 떼었다.


“이번 일에 남아준 이들은 실로 정사에 길이 남을 충신이자 선비라고 할 수 있소.”

“말씀하신 것이 실로 옳습니다.”


김상헌 자신도 이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부정하지 않고 바로 호응했다.


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쁨에 겨울 거 같기도 하다. 아니지, 저 꼬장꼬장한 인상의 예판이니 진짜 당연하다고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의 속내가 궁금하긴 하나 당장은 중한 일이 아니니 넘기고 나는 본론을 꺼냈다.


“이번 일에 행한 자들은 선비들은 물론이고 말단 병졸에 이르기까지 다들 훌륭하여 실로 유자의 모범이라 할 만하니, 어찌 나라에서 이들을 기리지 않을 수가 있겠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허나 이미 죽기로 마음을 먹은 소신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당신들이야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지.


나를 포함해 지도층 십 인이야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챙겨줄 수 있고, 가만히 있더라도 주변에서 치켜세워주며 챙겨줄 것이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예조판서 김상헌이 차후 어떤 역사적 평가와 취급을 받았는지 생각하면 이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사정이 달랐다.



***



“제 몸뚱이 하나만으로 이곳에 남은 이들도 적지 않을 거요. 그런 이들에게는 나중에 우리가 떠난 후에라도 무언가 기릴 증명이 필요한 법. 한번 보시겠소?”


왕이 이렇게 말하며 명부를 내미니 김상헌은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는 공손히 명부를 펼쳐서 그 내역을 살폈다.


이윽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양민이되 양반이라 하기 힘든 이들이 다수임을 보고 그는 뒤늦게나마 상이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지 이해했다.


“그대를 포함한 모든 이는 칭송을 받으나, 함께한 이들도 적어도 자신들이 어떤 걸 위해 남았다고 알 수 있어야 하오. 그리고 자랑할 만하다고 여길 증거 필요하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이곳에 남은 이들 가운데 사대부가 아니라 일개 백성이라 할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런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그들의 의기는 실로 사대부에 비견될 법하였다.


허나 나중이 되면 그 의기를 과연 누가 알아줄 것인가.


그걸 생각하면 김상헌 역시 안타까웠고, 이 일에 참가했다는 증명을 그들에게 내림이 마땅하다 여겼다. 허나 그리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무언갈 베푸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무언가 내리고자 하심은 훌륭하나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김상헌은 에둘러 힘듦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상은 물끄러미 시선을 보내더니 의아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왜 마땅치 않소?”

“......재물이나 그 증빙이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담당하는 자로서 재물 같은 걸 입에 담는 것이 실로 부끄러웠으나 김상헌은 적어도 증빙이 되는 건 그만한 값어치가 있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귀물을 백여 명에게 주기에는 이곳에 있는 게 너무나도 없었다.


식량이야 그들이 한 달 먹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뿐, 여기가 무슨 구중궁궐도 아닌데 귀한 것들을 증표로 저들에게 주겠는가.


“허허, 의기를 세운다며 남은 사람이 재물을 논하다니.”

“송구합니다. 허나......”


분명 재물을 입에 담는 일은 자신도 부끄러웠기에 김상헌은 금세 그의 말을 수긍했다.


하지만 동시에 고하지 않으면 아니 될 말이 있었기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에 굳게 마음먹고 말을 이었다.


“......재물을 아까워하는 것과 재물을 내어줄 것도 없음은 다름을 고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그리고 재물이라는 건 사대부에게 그리 중요한 순위에 있지 않지.”


누군가 듣는다면, 특히 소작하는 농민이라던지가 들으면 당장에 비웃을 말이었으나 적어도 김상헌은 상의 말을 진심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진심으로 동의하며 상의 뜻을 물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허면 재물이 아닌 다른 것을 내리고자 하심입니까?”

“그들은 사대부와 같은 의기를 보였소. 그러니 사대부와 같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사대부와 같은 의기, 사대부와 같은 자리.


그제야 김상헌은 상이 무엇을 내리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실로 옳으신 말씀이로다. 허나......’


당장이야 옳은 일이라 여기나 누군가 좋아지면 그걸 좋지 않게 여기는 무리가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걸 김상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우려를 담아서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공명첩을 내리고자 하시나이까?”

“맞소.”

“허면 그 공을 상세히 적고 기록을 후에 꼭 정식으로 남기셔야 합니다. 또한 그 급은 종7품을 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다행히 상은 그의 말을 옳다고 여기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오. 너무 높은 품계는 모두를 불편하게 할 따름이지. 허나 적어도 저들에게 내리는 것이 허울뿐인 것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오.”


상은 그리 말하며 김상헌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었던 명부를 도로 달라는 뜻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챈 김상헌은 공손히 명부를 내밀었다.


“사대부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 옵니다.”

“그러면 참으로 좋겠.....허어?”


명부를 한 번 더 열어서 살피던 상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에 김상헌은 무엇을, 아니 누구를 보고 그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상은 그것을 굳이 알려줄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


“그에 대한 일은 예판에게 맡기겠소. 이만 물러가시오.”


상이 감추고자 하는 것을 별다른 이유 없이 들추고자 하는 것은 기군망상에 준하는 일로 간주될 수도 있기에 김상헌은 예를 다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저 남은 이들 가운데 눈여겨보시던 이가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말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꼭 틀린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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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자는 실제로 있다 +1 22.11.14 2,020 60 15쪽
31 30화 청으로 가는 사람들 +3 22.11.13 2,106 55 15쪽
30 29화 왕이 품어야 하는 마음 +1 22.11.13 2,143 58 15쪽
29 28화 끝은 시작이다 +1 22.11.12 2,102 59 12쪽
28 27화 상사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1 22.11.12 2,108 54 12쪽
27 26화 신상필벌은 중요하다 +1 22.11.11 2,236 57 12쪽
26 25화 사람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22.11.11 2,248 58 15쪽
25 24화 보낼 일을 논하다 +1 22.11.10 2,259 59 14쪽
24 23화 어려운 요구를 받다 +1 22.11.10 2,358 58 13쪽
23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2 22.11.09 2,365 59 11쪽
22 21화 그날이 오다 +1 22.11.09 2,389 60 13쪽
21 20화 도의는 모두에게 통용되어야 한다 +4 22.11.08 2,403 63 13쪽
20 19화 사실과 보여지는 건 다를 수 있다 +5 22.11.08 2,432 65 12쪽
19 18화 바깥을 알다 +2 22.11.07 2,526 62 13쪽
18 17화 말의 가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22.11.07 2,617 64 13쪽
17 16화 여럿보다 하나가 나을 때도 있다 +2 22.11.06 2,720 77 15쪽
16 15화 믿음을 보내다 22.11.06 2,758 78 13쪽
15 14화 부끄러워하다 +2 22.11.05 2,805 79 13쪽
14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1 22.11.05 2,828 75 12쪽
13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1 22.11.04 2,945 70 12쪽
12 11화 탐욕은 재앙의 친구다 +1 22.11.04 3,075 81 13쪽
11 10화 화두를 던지다 +4 22.11.03 3,232 81 13쪽
» 9화 보상을 논하다 +2 22.11.03 3,412 86 12쪽
9 8화 사방에 소식을 보내다 +5 22.11.03 3,542 85 15쪽
8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2 22.11.02 3,592 87 12쪽
7 6화 소현세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4 22.11.02 3,816 88 14쪽
6 5화 고민을 안겨주다 +2 22.11.01 3,902 101 13쪽
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4,131 94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489 98 12쪽
3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11 22.11.01 4,679 10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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