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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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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최근연재일 :
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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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11.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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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
12쪽

3화 남한산성에 오다.

DUMMY

3화 남한산성에 오다.


‘으응?’


불빛이 덜 비치는 곳에서 주상이 자신을 신경 쓰지 못하게 눈치 보고 있던 사관 김조경은 한순간 믿지 못할 것을 보고 두 눈을 비볐다.


‘방금 주상 전하께서?’


흐려진 듯 보였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비빈 두 눈은 여전히 멀쩡한 주상을 보고 있었다.


그에 김조경은 쓰게 웃으며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헛것을 보다니,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군.’


동료들이나 다른 신료들에게 말하면 아마도 무리하는 거 같으니 적당히 쉬는 게 어떻겠냐는, 구태의연한 걱정만 들을 뿐이었다.


심지어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금세 무안해질 것이 뻔한 일이었기에 김조경은 이 일을 머리에서 지웠다.


“어엇!?”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중 어느새 다가온 내관과 시위들을 대동하고 성벽을 내려가는 상을 보고 김조경은 급히 걸음을 놀렸다.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인가.’


채신머리없게 달음질하며 김조경은 내심 안도했다.


자신이 있는 걸 분명히 상께서 아실 텐데, 구태여 말하지 않고 갔다는 것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골탕이었으리라.


골탕 먹으며 안도라니, 누가 들으면 별 이상한 취향을 가진 양반이라고 웃을지도 모르나 김조경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이렇게 한번 골리는 짓을 했으니 이번 일로 더는 책잡힐 일이 없을 거라는 심산에서였다.


간장 종지만도 못한 관용을 가진 이라면 모를까, 설마하니 반정을 일으켜 대의를 세우려고 한 주상이 그러겠는가.



***



“물러가라. 홀로 생각하고 싶다.”


성벽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누구 하나 만류하지 않았다. 이미 안쪽 거처로 돌아온 이상 그럴 필요가 없는 데다가 행여 괜히 나섰다가 불똥이라도 튀면 실로 큰일이었다.


이런 시국에 함부로 행하는 일은 바보 같은 일이고, 적어도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런 눈치와 생각을 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다만 사관으로서 책무가 있는 김조경은 곁방으로 물러났으니 조금 애매하게 명을 따른 셈이 되었다.


혹여 이도 책잡힐 일인가 싶어서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으나 곁방으로 물러가는 자신을 상은 그저 한번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휴우.’


언제나 그렇듯, 이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만 있으면 별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한 그는 조심스럽게 소리 없이 먹을 갈았다.



***



‘인조에 남한산성. 나보고 어쩌라고?’


인조, 이종의 기억에 따라 어렵지 않게 사람들을 부린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근데 보통 이렇게 보내줄 거면 가망성이 있는 장소에서 시작하는 게 정석이 아니던가?


반정 첫날이라던가, 태어난 시기라던가, 하다못해 이괄 자식이 난을 일으키기 전이라던가 말이다.


그런데 남한산성인 것도 모자라 이미 강화도까지 함락된 후고, 지금 날짜는 1월 말에 가깝다.


까놓고 말해 이제 남은 일은 나가서 머리 박고 항복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다시 뭘 어쩌라고?


무슨 쾌락 없는 책임이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고종이 낫다는 결론이 싫어서 인조의 편을 들어서 좋게 말한 게 그렇게 큰 죄였어?


아 물론 겸사겸사 고종도 좀 까긴 했어. 하지만 보통은 그러면 고종으로 가는 게 정석이잖아?


아니면 뭔데, 여기서 내가 대포 쏘면 청 황제가 맞고 죽나? 아니면 임경업 같은 사람이 바로 여기까지 와?


-잘해보게. 그대는 이종의 남은 여생을 받았으니 그동안은 죽지 않고, 여생이 다해 죽으면 그대로 돌아올 거야. 남긴 업적에 따라서는 좋은 일들이 있을 걸세. 재운을, 아니 알기 쉽게 말해주지. 아주 못해도 복권 1등 한 번 정도는 하게 해줄 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위안도 되지 않을 말을 지껄인 노인, 신선이라고 자칭했던 그자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니가 어떻게 되든 좋으니 알아서 잘해보라는 듯한 그 얼굴.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는다.


그리고 그 얼굴을 떠올린 순간 그런 요행을 바라는 건 말 그대로 요행에 불과하다는 걸 절절하게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은 죽지 않는다.”


그가 한 말, 요행은 없다 여겼지만 어쩌면 한 가지는 내게 허용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인조의 여생, 그동안을 살면 돌아가나 그동안은 죽지 않는다고.


그러면 그거,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목숨은 온전하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동안 왕으로 남지 않아도 되고?


머릿속에서 예전부터 만약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고 생각했던 일들이 속속히 떠오른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인조로서 보장된 여생은 이 시점에서 그리 길지 않다. 기껏해야 십여 년, 그 정도 기간이라면 한 번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재운이라고? 그래, 돈 좀 아끼려고 기프티콘으로 카페에서 시간 때우다 이 꼴을 보고 있으니 어디 그 재운 어디까지 늘려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솔직히 이 시점에서는 어떻게 일이 굴러도 인조 말년에 저지른 짓들을 하지만 않아도, 대놓고 말해 병풍처럼 굴어도 본래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아.”


마음을 정한 나는 고개를 들고 목을 가다듬었다.


“밖에 게 누구 없느냐!”


소리 지르니 왕이 좋기는 한지 물러나라고 한지 시간이 좀 흐른 듯하건만 한달음에 내관으로 보이는 이가 하나 달려왔다.


“전하, 하명하시지요.”

“지금 당장-.”


머릿속에서 누구를 먼저 부를지 고민이 들었다. 이 시기 내가 지금 지르려는 미친 짓거리, 위험한 짓거리를 하려면 반드시 이야기를 통해두어야 하는 이가 몇 명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이야기할 자가 누구인지 고민하던 나는 그나마 이 사람이 말이 좀 통하겠다 싶었다.


“이판을 불러라.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



“이판.”

“전하,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긴 했으나 이판, 이조판서 최명길은 지금 머릿속이 매우 복잡했다.


‘주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거늘, 또 무슨 쓸데없는 요구를 덧붙이실 생각이신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이미 대세가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다. 내주는 것 없이-사실 내어줄 것도 없다- 무언가를 저들과 논하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은 상황에 무슨 어리광이나 다름이 없는 말을 꺼낼까 싶어서 긴장감이 절로 온몸을 저몄다.


“이판.”

“예, 전하.”

“기한을 늘릴 수 있겠소이까?”

“예?”


최명길은 들려온 말에 순간 당황하며 고개를 들고 되물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무례하게 굴었다 생각하며 도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고 편히 대답해도 좋소. 항복하러 나가는 날을 뒤로 미룰 수 있겠소?”

“저, 전하.”


의도를 알 길이 없는 말에 최명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묻는 내용도 그랬으나 남들은 입에 올리기 꺼리는 항복이라는 말을 쉬이 주상이 입에 올렸다는 것도 그를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이내에 최명길은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을 보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턱도 없이 항전을 주장하실 생각은 아니시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여기는 그로서는 그나마 항복하겠다는 걸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주상의 심경 변화를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고 해도 지금 물은 말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교섭은 해볼 수 있겠지만 저들은 쉬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에둘러 말했으나 최명길은 자신이 한 말조차 상냥한 표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말 저런 말로 달래보아도 어서 나와서 항복하길 강요하던 저들이 이제 와서 말미를 달라고 해도 줄 리가 없었다.


말미를 달라는 말에 화를 내며 공격을 재개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만일 그리되면 항복이 문제가 아니라 싸우다 진 패군으로 저들 앞에 서게 될 수도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험한 일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산성 내부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당장 싸우자고 하는 대신들을 묶어서 성벽에 세우라고, 어떤 이들은 더 과격하게 매달아버리자고 이야기가 오감을 그는 알고 있었다.


‘괴로운 일을 피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거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이 일은 그렇게 한다고 풀리고 나아질 일이 아니었기에 최명길은 마음을 굳게 잡고 간언을 올리고자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주상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냥 하겠다는 게 아니야. 한 달, 30일의 말미를 주면 반드시 항복하고 저들을 상국으로 섬기겠다고 하시오.”

“저, 전하?”

“그것만으로 부족하면 저항의 뜻을 버린다는 의미로 최고 군사 기구인 비변사의 해체와 군영을 하나만 남기고 모두 해체한다고 약조해도 좋소이다.”

“!”

상상을 초월하는 말에 최명길은 지금 자신이 꿈을, 그것도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나 싶었다.


그러나 상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한 마디 덧붙였다.


“저항이 의심스럽다면 이곳에 백여 명만 남기고 모두 내보낸다 하시오. 설마 이런 말을 듣고도 고작 한 달, 30일의 말미도 주지 않는 건 아니겠지?”

“그, 그게......”


가능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저항을 포기하고 배를 드러내는 꼴이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항복할 정도면 진즉에 하는 게 낫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까지 하면 대체 위신이고 뭐고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거란 걱정이 들었다.


상의 말에 당황한 건 자신만이 아니었는지, 작게 헙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곁방에 있는 사관이 놀람을 감추지 못한 음성에 자신의 귀와 머리가 제대로 임에 안도한 최명길이었으니 상은 그러든 말든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대신 그 한 달, 우리에게 저들은 상국을 위한 거짓 항전을 허락해주어야 하오.”


이 말에 최명길은 상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이런 극단적인 짓을 벌이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게 대단히 위험하고, 극단적이며, 허망한 짓거리라는 걸 이해했다.


“전하, 그런 일을 벌인다 한들 알아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재조지은을 갚을 마지막 방도기도 하지. 그리고 더는 전쟁으로 백성들이 죽거나 다치지도 않을 거고.”


덤덤하게 그리 말하는 상을 보니 이게 강화도가 함락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와 같은 사람인가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상은 그가 알던 상이었다.


“정말 그리하시겠습니까?”

“그리할 거요. 오늘 그대가 나간 후 영의정, 예조판서, 이조참판을 불러서 내 뜻을 알릴 생각이오. 그치들이 진정한 사대부라면 거절하지 않겠지.”


상이 입에 담은 이름들에 최명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의정 김류는 몰라도 예조판서 김상헌이나 이조참판 정온은 진성 척화파다.


김류는 지금까지와 달리 주화에 힘을 주고 있으나 지금까지 대세에 몸을 맡겨서 척화를 주장했던 이다.


그런 이들에게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국 명나라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보아도 될 일을 주장하는데 반대할 리가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주시오. 그리고 하나 더, 그 기간은 거짓 항전이니 저들은 우리 백성을 약탈하지 말아야 하오.”

“예, 전하.”


당연한 말이지만 어쩐지 마지막에 덧붙여진 이 말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이 든 최명길은 고개를 숙이고 쓴웃음을 지었다.


문득 한 사람은 이걸 매우 반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최명길은 어려움을 느껴 힘든 맘을 달래려는 듯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으시겠소, 청음 대감. 이제 원하시던 대로 싸우다 죽으시면 되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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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자는 실제로 있다 +1 22.11.14 2,020 60 15쪽
31 30화 청으로 가는 사람들 +3 22.11.13 2,106 55 15쪽
30 29화 왕이 품어야 하는 마음 +1 22.11.13 2,143 58 15쪽
29 28화 끝은 시작이다 +1 22.11.12 2,102 59 12쪽
28 27화 상사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1 22.11.12 2,108 54 12쪽
27 26화 신상필벌은 중요하다 +1 22.11.11 2,235 57 12쪽
26 25화 사람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22.11.11 2,247 58 15쪽
25 24화 보낼 일을 논하다 +1 22.11.10 2,259 59 14쪽
24 23화 어려운 요구를 받다 +1 22.11.10 2,357 58 13쪽
23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2 22.11.09 2,365 59 11쪽
22 21화 그날이 오다 +1 22.11.09 2,389 60 13쪽
21 20화 도의는 모두에게 통용되어야 한다 +4 22.11.08 2,402 63 13쪽
20 19화 사실과 보여지는 건 다를 수 있다 +5 22.11.08 2,432 65 12쪽
19 18화 바깥을 알다 +2 22.11.07 2,525 62 13쪽
18 17화 말의 가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22.11.07 2,617 64 13쪽
17 16화 여럿보다 하나가 나을 때도 있다 +2 22.11.06 2,720 77 15쪽
16 15화 믿음을 보내다 22.11.06 2,758 78 13쪽
15 14화 부끄러워하다 +2 22.11.05 2,805 79 13쪽
14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1 22.11.05 2,828 75 12쪽
13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1 22.11.04 2,945 70 12쪽
12 11화 탐욕은 재앙의 친구다 +1 22.11.04 3,075 81 13쪽
11 10화 화두를 던지다 +4 22.11.03 3,232 81 13쪽
10 9화 보상을 논하다 +2 22.11.03 3,411 86 12쪽
9 8화 사방에 소식을 보내다 +5 22.11.03 3,542 85 15쪽
8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2 22.11.02 3,592 87 12쪽
7 6화 소현세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4 22.11.02 3,816 88 14쪽
6 5화 고민을 안겨주다 +2 22.11.01 3,901 101 13쪽
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4,131 94 12쪽
»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489 98 12쪽
3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11 22.11.01 4,679 10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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