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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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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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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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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11.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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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DUMMY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조선왕의 요청을 수락하겠다.”


하루 내내 고민한 끝에 홍타이지가 내린 결론은 조선이 내민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향후 관계도 그렇고 당장 내세우는 명분, 황제와 제후라는 관계를 생각하면 의도적으로 홍타이지가 말한 것처럼 요청이라는 말이 옳았다.


하지만 겉으로 그리 말하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할지언정 내심으로는 이것이 요청 수락이 아니라 제안을 받았고 그에 응했다는 사실을 홍타이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홍타이지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며 결정을 수용한 도르곤과 달리 호오거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눈을 돌려서 장남의 얼굴을 살피니 그 얼굴에는 미미하게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하긴, 두렵겠지.’


호오거가 무엇을 두려워해서 저러는지 홍타이지는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제쳐놓고 보아도 만주족이라면 모두가 그렇다.


전장에서 싸우다 죽고 말을 달리다 말 위에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한 죽음이라면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이다. 용사로서 죽는 것이니 말이다.


침상에서 늙어 죽는 것도 나쁘진 않다. 본인이 이룬 것들을 보고 반추하며 가족에게 둘러싸여서 죽는 것에는 영광은 몰라도 평안과 안도가 있다.


하지만 병에 걸려서 죽는 건 어떨까? 그것도 모두가 두려워하고 걸리면 열에 네다섯은 죽는다는 역질, 천연두라면?


“도르곤.”

“말씀하시지요.”

“역질의 기미가 보인다고 했지.”


홍타이지의 물음에 도르곤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진중에는 퍼지지 않았으나 조선인 가운데 몇몇이 걸린 듯한 증상을 보았습니다.”

“전군에 경계를 내려라. 죽고 싶지 않으면 함부로 진을 벗어나지 말라고 말이다.”

“한의 명, 빠짐없이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호오거, 너도 같이 신경 좀 써라.”

“예, 한이시여.”


평소와 달리 불평이나 트집은 잡지도 않고 호오거는 공손히 대답했다.


홍타이지가 직접 결정해서 내린 명령에 거부할 의사는 없다는 뜻을 보이는 일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그만큼 역질에 신경을 쓴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용골대에게 오전 중으로 승낙을 표하는 서신을 써서 보내겠다. 용골대에게도 역질에 대한 걸 따로 잘 일러두도록.”


이 말을 마지막으로 도르곤과 호오거 두 사람은 막사에서 물러났다.


홀로 남은 홍타이지는 침중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잘하는 짓인가?”


무심코 자신이 한 일을 ‘짓’이라 평할 정도로 홍타이지는 이번 일에 확신을 품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병으로, 그것도 역질에 걸려서 죽는다?


그런 건 한은 물론이고 만주족 사내라면 누구에게도 어울리는 죽음이 아니었다.


괴로움 끝에 병상에서 홀로 쓸쓸히 죽는다니, 실로 끔찍했다.


그러니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조선을 더 압박해서 나와 무릎 꿇으라고 다그치고 싶었다.


허나 용골대의 우려처럼 그런 짓을 하면 전쟁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른다. 왕을 잡으면 끝날 일이, 그렇게 해도 끝나지 않을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여기에 하나 더, 홍타이지는 내심 이 나라가 탐이 났다.


만약 이들을 자신들의 수족으로 삼아 청의 방패이자 검으로 삼을 수 있다면 실로 든든하기 짝이 없으리라.


조선은 지긋지긋한 놈들이나, 그보다 더 지긋지긋하게 구는 한족 놈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예전 선례를 떠올리면 이 나라를 무릎 꿇리지 않고 중원을 온전히 얻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여 성공한 이들이 몽골이었고, 실패한 이들이 거란이 세운 요나라 그리고 자신들의 선조가 세웠던 금나라였다.


그 후로 수백년이 지나서 온 두 번째 기회가 그들에게 왔다. 이번 역시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불완전한 결과로 끝낼 수는 없었다.


“곧이다. 조선을 발밑에 두고, 명을 부순다. 그러면......”


천명.


그 두 글자가 만주족의 품에 들어온다.


이 원대한 꿈이 목전이라는 생각이 드니 홍타이지는 지근거리에 있는 위험에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



구구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남한산성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을 통해 조심스럽게 가장 먼저 나온 이는 소현세자였다.


‘나왔구나.’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소현세자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가 보고자 하는 이, 아비 이종은 보이지 않았다. 한순간 당황했던 소현세자는 아직 보일 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상은 오늘 성문에 서서 나가는 이들을 지켜보고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니 지금 성문 아래에 있는 그로서는 갑자기 초능력이라도 생기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나가서도 그는 아마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상의 조서를 들고 가야 하니 이제 돌아보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괜한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소현세자는 잘 알고 있었다.


“저하, 이제 가셔야 합니다.”


그를 수행하는 이로 낙점된 고관 가운데 둘, 이조판서 최명길이 말을 건넸다. 그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소현세자는 문득 영의정 김류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영의정 대감은 어디 계시오?”


소현세자의 물음에 최명길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쯧쯧.’


김류가 이곳에 없는 거야 어떤 일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는 이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해는 해도 그걸 좋다고 해줄 생각은 없었다. 본인이 맡기로 해놓고 이렇게 마지막에 뭉그적거리다니, 마치 본인의 책임을 방기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뒤에 계십니다. 곧 오실 겁니다.”

“뒤에?”


소현세자가 가장 앞인 게 정상이듯, 영의정 김류 역시 최명길과 함께 자신의 옆에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뒤에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곧 온다고 하긴 했으나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에 대해 묻고자 하여 다시 입을 열려서는 찰나, 영의정 김류가 비단에 쌓인 보함을 하나 들고 최명길 곁으로 다가왔다.


“왜 이리 늦으셨소이까?”

“송구합니다.”

“그것은 무엇이오?”

“저들에게 내어줄 공물입니다.”

“공물?”


김류의 말에 소현세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얼굴이 되었다. 김류가 맡을 정도면 귀한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자신이 아니라 영의정에 맡기다니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서 저것이 무엇인지 전혀 내용물을 모른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니 더욱 수상하게 보였다.


‘이 작자, 설마 이상한 짓이라 꾸미는 건가?’


그러나 이 생각은 곧 부정되었다.


‘사사로운 정이나 작은 의리는 있을지언정 그런 담은 없는 자다.’


김류에 대한 소현세자의 평가는 극히 낮았다. 이런 일로 굳이 뭘 더 떨어트리거나 기대를 품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둥둥둥


그때, 위협하듯 북소리가 울렸다.


이미 성문이 열렸건만 누구 하나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청군에서 독촉하는 거 같았다.


“......참담하군.”


소현세자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남한산성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어서 백관이 따랐으며, 그다음을 궁중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병졸들이 뒤따랐다.


“어서 오시오.”


청군들이 늘어서서 압박하는 길을 따라 걸은 끝에는 익히 아는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있었다.


담담하게 말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그에 소현세자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상의 조서를 내밀었다.


“한번 보겠소이다.”


대수롭지 않게 조서를 받은 그는 빠르게 내용을 읽더니 무엇을 보았는지 눈에 이채를 띠었다.


“호오? 아무래도 보내는 게 이게 다가 아닌가 보군.”


그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이던 소현세자를 대신해서 김류가 대신 나섰다. 그는 이제껏 들고 있던 보함을 용골대에게 내밀었다, 내용물이 궁금하던 것은 그도 마찬가지라, 시선을 주어서 유심히 보던 중 용골대가 보함을 연 순간 소현세자는 기겁하고 말았다.


‘대체 무엇을 저리 귀히, 허억!?’


용골대가 연 보함에는 상이 입던 곤룡포가 들어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들어있다, 그 생각이 드니 소현세자는 자리와 상황도 잊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나온 성문이 있는 곳을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저 흰옷 입은 사람 몇이 서 있는 게 다였다.


“항복의 증명이라. 훌륭하군. 한께서도 이미 받아들이셨으나, 이걸 보면 더욱 진심으로 여겨서 후대하시리라 생각하오.”


용골대가 그리 말했으나 소현세자는 정신이 나간 듯,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 큰일이었다.


이 와중에 고개를 다시 돌려서 그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라도 해야 할 정도였다.


“말해두지만, 그대들은 한양으로 돌아갈 수 없소. 아직은 다 끝난 게 아니니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이들은 오직 조선군들에게 보낼 전령들뿐이라는 거, 명심하시오.”



***



“......대감은 알고 계셨소이까?”


그 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넋이 나갔던 소현세자는 가까스로 용골대에 대답한 후 내어준 막사에 들어오자마자 최명길에게 득달같이 물었다.


“저와 영의정 대감은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


두 사람이 알고 있었다고 하니 여러 의미로 둘이 달라 보였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회의가 함께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용포를 내어 주시다니. 왜 내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셨소?”


소현의 망연한 말에 최명길은 슬그머니 주변 눈치를 보았다.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 이는 소현과 최명길 그리고 김류가 다였다.


“상께서 그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상께서 그리하셨다. 그 말에 소현세자는 이 일에 뭔가 내막이 더 있음을 알았다.


그에 귀를 기울여 말을 듣고자 하였으나, 김류가 방해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하, 소신은 이 부끄러움과 과함을 감당키 힘듭니다. 부디 제게 망을 보는 일을 허락하여주소서.”

“......”


뜬금없는 요청에 소현세자는 묵묵히 그를 살폈다. 김류의 얼굴에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게 역력히 보였고, 더 나아가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거 같았다.


“저하,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새어나가서는 곤란하니 누군가는 바깥을 지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기에 최명길이 김류에게 편드니 소현세자의 의혹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의혹과 별개로 무언가 중한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을 물리고 오지 않도록 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것을 굳이 영의정이 할 일인가 하면 또 그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말이나 당장 있는 건 김류와 최명길 둘뿐이었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소현세자는 김류의 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영의정 대감, 부탁드리겠소.”

“예, 저하.”


공손히 소현세자에게 고개 숙인 김류는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에 담긴 처연함은 지금부터 있을 일에 대한 경고와도 같았다.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소현세자의 몸을 휘감았다. 명석하다 할 머리가 좋지 못한 예상을 떠올렸다.


용포가, 임금이 입는 곤룡포가 이곳에 있다.


누군가가 직책에 맞는 옷을 벗었다는 건, 다시 말해 그 직책에서 내려올 생각이라는 말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아니, 아니겠지.’


소현은 떠오른 생각을 애써 머리에서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그렇게 불길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었다. 백의종군이라는, 죄를 씻기 위한 충군도 있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일부러 그러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그럴 거다. 괜한 생각으로 불효를 저지르지 말자.’


괜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차 거기에 매몰되는 기분에 소현은 억지로 자신을 다독이며 생각을 끊어냈다.


“후우, 말씀해주시오.”


애써 진정하며 심호흡한 소현은 이제 최명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책망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어진 낮은 속삭임과 같은 최명길의 말에 소현의 자기 보호와 같은 생각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말았다.


“저하, 상께서는......상께서는 거짓 항전이 끝나신 후 자진하실 것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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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자는 실제로 있다 +1 22.11.14 2,020 60 15쪽
31 30화 청으로 가는 사람들 +3 22.11.13 2,106 55 15쪽
30 29화 왕이 품어야 하는 마음 +1 22.11.13 2,143 58 15쪽
29 28화 끝은 시작이다 +1 22.11.12 2,102 59 12쪽
28 27화 상사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1 22.11.12 2,107 54 12쪽
27 26화 신상필벌은 중요하다 +1 22.11.11 2,235 57 12쪽
26 25화 사람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22.11.11 2,247 58 15쪽
25 24화 보낼 일을 논하다 +1 22.11.10 2,258 59 14쪽
24 23화 어려운 요구를 받다 +1 22.11.10 2,357 58 13쪽
23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2 22.11.09 2,365 59 11쪽
22 21화 그날이 오다 +1 22.11.09 2,389 60 13쪽
21 20화 도의는 모두에게 통용되어야 한다 +4 22.11.08 2,402 63 13쪽
20 19화 사실과 보여지는 건 다를 수 있다 +5 22.11.08 2,431 65 12쪽
19 18화 바깥을 알다 +2 22.11.07 2,525 62 13쪽
18 17화 말의 가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22.11.07 2,617 64 13쪽
17 16화 여럿보다 하나가 나을 때도 있다 +2 22.11.06 2,720 77 15쪽
16 15화 믿음을 보내다 22.11.06 2,758 78 13쪽
15 14화 부끄러워하다 +2 22.11.05 2,804 79 13쪽
14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1 22.11.05 2,828 75 12쪽
13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1 22.11.04 2,945 70 12쪽
12 11화 탐욕은 재앙의 친구다 +1 22.11.04 3,074 81 13쪽
11 10화 화두를 던지다 +4 22.11.03 3,232 81 13쪽
10 9화 보상을 논하다 +2 22.11.03 3,411 86 12쪽
9 8화 사방에 소식을 보내다 +5 22.11.03 3,542 85 15쪽
»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2 22.11.02 3,592 87 12쪽
7 6화 소현세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4 22.11.02 3,816 88 14쪽
6 5화 고민을 안겨주다 +2 22.11.01 3,901 101 13쪽
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4,131 94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488 98 12쪽
3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11 22.11.01 4,678 10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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