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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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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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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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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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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DUMMY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지금 뭐라고 했냐!”


경중명은 부하가 올린 보고에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함을 질렀다.


가도에서 도망쳐 청나라에 귀순한 후 홍타이지에게 대접받으며 수년, 그는 이제 명실상부 청나라의 상장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작년에는 회순왕이라는 왕작을 받고 그 지위를 공고히 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그 은을 갚고 능력이 없이 운으로 오른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저번 강화도 공략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청이 망하지 않는 한 앞길이 창창할 그가 이렇게 놀랄 일이 무엇이 있을까 싶으나, 부하가 조심스럽게 찾아와서 올린 말은 실로 대경할 말이었다.


“여, 역병이 진중에 돌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님을 확실히 하는 말, 조금 전과 같은 말에 경중명은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아직은 십수 명에 불과합니다.”


아직은.


다시 말해 앞으로 얼마든지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부하가 꼭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경중명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총병관 각하, 어찌할까요?”


충성심을 드러내는 말, 총병관 각하라는 말이 오늘따라 귀에 거슬렸다.


권위를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다.


회순왕이 되어 그가 이끌던 가도 출신 병사들도 팔기에 예속되게 되었다. 팔기에 속한 건 좋은 일이나 한편으로는 병권이라는 가장 강력한 힘을 빼앗기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조금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무리 왕이 되었다고 하나 생사고락을 함께한 이들을 어찌 잊겠냐며 부하들에게 자신을 여전히 총병관으로 부를 것을 종용했다.


그가 품은 불안을 알 리가 없는 장수나 병졸들은 이 말에 감격해서 그를 존경하는 의미로 총병관 각하로 부르곤 했다.


보통은 그런 호칭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아직도 저들에게 영향력이 큼을 느끼며 좋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일은 작은 위안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빌어먹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끙끙거리던 경중명은 결국 가장 기본적인 대처를 입에 담았다.


“병든 놈들, 일단 격리시켜.”

“곧 시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시행한 일이었으나 굳이 그걸 드러냄으로 상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처세를 익힌 부하는 공손히 대답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경중명의 입에서는 좀처럼 말이 이어지지 못했다.


‘감출 수는......없겠지.’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들었건만 발생했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책망을 피할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생각 같아서는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명나라 시절과 달리 여기서는 그런 게 힘들었다.


고작 십여 명, 쓱싹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나 분명히 보는 사람이나 시킨 것들에게서 이야기가 새어나갈 게 뻔했다.


아래에도 위에도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고, 기껏 얻은 상장 위치와 왕작도 공염불이 될 수 있었다.


차라리 여기 이곳 군영에 한정된 일로 감추고 처리할까 싶었지만 그도 어려움을 금세 깨달았다.


일이 어떻게 구르던 결국에는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젠장.’


한참 더 고민하던 경중명은 지친 음성으로 말을 덧붙였다.


“......한께 전령을 보내라. 건강한, 병든 놈들하고 접촉하지 않은 것들로.”



***



“천우병들에게 역질이 퍼졌다고!”

“정황을 보니 그런 거 같습니다. 회순왕은 그냥 대단치 않은 역병이라고 하나, 아마도 역질이 확실한 듯합니다.”


도르곤의 보고에 홍타이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주족 가운데서는 저들을 한간놈들이라며 깔보며 업신여기기도 하나 홍타이지에게 그들은 매우 중요했다.


저들이 가져온 화포며 저들을 주축으로 운용할 수군은 청이 대업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이 항복할 때 기뻐서 친히 마중 나가며 많은 특별 대우를 해주었겠는가.


이제 조선을 제압하면 그들과 함께 합을 맞추어 더 강한 화포, 더 강한 수군으로 명을 몰아칠 궁리를 하고 있었던 홍타이지에게 이 소식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내 각별히 관리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죄송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에 병에 걸린 명나라 출신 병사들은 도르곤의 관할이 아니다.


그리고 저들을 지휘하는 경중명을 홍타이지가 매우 좋게 보고 있었기에 쉬이 통제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그에게 책망이 오는 건 아쉬운 일이나, 분명 역질에 대한 걸 명 받은 건 도르곤이었기에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호오거는 어디에 있나!”

“다른 팔기들을 둘러보겠다고 나갔습니다.”

“그래, 그건 필요하지.”


홍타이지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렇게 주의를 내렸건만 조선왕이 내건 기한을 고작 보름 정도 남기고 이런 일이 터지다니, 이래서야 나중에 귀환하는 것도 큰일이 될 것이 뻔했다.


“설마 조선왕 그자가 이걸 노린 건 아니겠지?”

“고작 한인 병사 몇이 병에 걸린다고 저들이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이미 백여 명을 제하고는 다 우리의 포로입니다.”

“하긴.”


순간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으나 이성적인 도르곤의 말에 홍타이지는 자신이 터무니없는 말을 했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런 것을 노리고 항복하고 거짓 항전을 이어간다니, 대체 무슨 쓸데없는 짓거린가 싶을 정도로 의미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홍타이지의 명민한 머리는 자신이 한 말이 터무니없음에 이어서 이게 자신만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더불어서 다른 이들이 자신처럼 이성적으로 전후 관계를 파악할 리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조선의 세자와 왕자는 어디에 있지?”

“현재 세자는 호오거가, 왕자는 제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따로 두는 게 좋을 거 같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도르곤의 말에 홍타이지는 제가 한 이 따로 둠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고민했다.


분명 어떤 것들이 주제 모르고 날뛸지도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하면 저들을 한곳에 모아두는 게 옳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따로 둔 이유가 재차 떠오르며 마음에 가시가 되었다.


‘합심해서 한 놈이라도 도망치면 골치 아프다.’


조선왕은 도망갈 수 없다. 고작 백여 명, 그것도 병졸이 반절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럴 수 있다면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왕이 무슨 항우나 여포라면 모를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세자나 왕자는 진을 벗어나기만 하면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곧 항복하고 이들이 확실하게 숙이면 그럴 일은 없겠으나, 아직은 형식상으로나마 전쟁 중이다.


혹시라도 둘 중 하나라도 빠져나가 지방에서 거짓으로 왕이 죽었다고, 왕족은 그만 남았다고 하면?


“끝도 없지.”

“어인 말씀이신지요?”

“아니, 혼잣말이다.”


손을 내저어 도르곤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었음을 알린 홍타이지는 턱을 쓰다듬으며 둘을 여전히 따로 두는 게 낫다 여겼다.


감시 병력이야 넘쳐나니 수고를 들이는 게 혹시 모를 모의보다는 낫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상황이 이리 흐른 이상 한 가지 더 신경 쓸 점이 있기에 더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놈이라도 살아있어야 조선왕을 압박할 수 있다.’


차후 항복 절차가 마무리되면 인질이자 대체할 인형으로 두 왕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여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헌데 아무래도 상황이 여분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경우를 걱정해야 할 거 같았다.


“도르곤, 조선의 왕자에게 전해라.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호오거에게도 그리 전하겠습니다.”


명석한 도르곤은 홍타이지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금방 깨닫고 대답했다. 그에 홍타이지는 그 짐작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만 가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공손히 예를 갖추며 홍타이지 앞에서 물러 나온 도르곤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패자의 숙명이라고는 하나 그들도 참 불쌍하군.”



***



강화도가 함락되고 포로로 잡힌 후 편한 날이 있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후에 항복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세상이 다 무너지고 조선이 끝났다고 여겼다.


그런 와중에 아직 전쟁 중이며, 아바마마가 의기를 세우기 위해 거짓 항전을 이어가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참으로 존경스러우면서도 허망하고 부끄럽다 여겼다.


그리고 이제 역질로 인해 앙심을 품은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되도록 돌아다니지 말 것을 권유하는 말을 저 예친왕이라는 자에게 들으니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괜찮으십니까.”

“부인.”


답답함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게 부인 장씨에게 보였던 모양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봉림대군 이호는 그 답답함을 일부나마 풀듯 푸념을 입에 담았다.


“괜찮지 않습니다.”

“저들이 어떤 무도한 요구를 하였나요?”

“아니, 그게 아니요. 오늘 온 자는 오히려 지켜주려는 이였지.”


그가 있던 강화도를 공격해서 직접 포로로 잡은 자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세상사가 다 그렇다지만 그래도 얄궂다는 말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허나 동시에 지금 자신이 한 말인 사실이라는 건 봉림대군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오늘 우연찮게 그가 찾아와 경고해주기 전 잠시 바깥을 둘러보기 위해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래 보아야 거처 주변을 살짝 둘러보는 게 다였지만 가끔 그렇게라도 주변을 보며 돌아야 갑갑함을 다소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묘하게 그를 보는 시선에 적의와 비슷한 게 섞인 걸 느꼈다.


그는 좋게 말해도 포로로 잡힌, 인질로 용도가 다닌 왕자다. 그런 자에게 적의라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봉림대군은 자신이 이 상황에 피로감을 느껴서 착각했다고 여겼다.


헌데 이제 와서 보니 아무래도 적의를 향할 이유가 있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그게 정작 그 적의를 받는 처지에서 보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건 말이다.


“사람들에게 일러두시오. 당분간은 출입을 삼가고 저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묻는 부인 장씨의 말에 봉림대군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들 가운데 병이 도는데, 그 원인을 우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군.”

“무도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봉림대군의 말에 부인 장씨는 그렇게 말하며 안색을 흐렸다.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런 말이나 하는 것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기에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장 그들에게 저들이 무엇을 한들 그대로 따라야 하는 처지이지 않은가.


그걸 증명하듯 말을 끝으로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인 부인을 보며 봉림대군은 착잡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풍랑이 일면 배에 탄 선원은 선장이나 항해사가 아닌 한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기도하는 게 전부라 들은 기억이 났다.


실로 자신이 그런 선원이지 않은가 생각하며 봉림대군은 부디 이 일로 사람들이 상하지 않기를 빌었다.



***



허나 누군가는 사람의 안녕을 기원하면 또 누군가는 그 역을 원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사람이 사람을 상하게 하는 걸 바라지 않을 거라고 누군가는 주장할지 모르나 여기에 그 예시에 어울리는 이가 하나 있었다.


“버일러, 소인 굴마훈입니다.”

“들어와!”


거친 음성에 굴마훈이라 자칭한 이는 몸가짐을 조심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서 그를 기다리던 이, 버일러 요토는 성급하고 험상궂게 생긴 것이 상당히 조선인들이 생각하는 여진족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생김새에 맞는 성미를 하고 있는지 대뜸 들어온 이, 굴마훈이라 자칭한 이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조선놈들 때문에 군중에 역질이 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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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자는 실제로 있다 +1 22.11.14 2,020 60 15쪽
31 30화 청으로 가는 사람들 +3 22.11.13 2,106 55 15쪽
30 29화 왕이 품어야 하는 마음 +1 22.11.13 2,143 58 15쪽
29 28화 끝은 시작이다 +1 22.11.12 2,102 59 12쪽
28 27화 상사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1 22.11.12 2,108 54 12쪽
27 26화 신상필벌은 중요하다 +1 22.11.11 2,236 57 12쪽
26 25화 사람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22.11.11 2,248 58 15쪽
25 24화 보낼 일을 논하다 +1 22.11.10 2,259 59 14쪽
24 23화 어려운 요구를 받다 +1 22.11.10 2,358 58 13쪽
23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2 22.11.09 2,365 59 11쪽
22 21화 그날이 오다 +1 22.11.09 2,389 60 13쪽
21 20화 도의는 모두에게 통용되어야 한다 +4 22.11.08 2,403 63 13쪽
20 19화 사실과 보여지는 건 다를 수 있다 +5 22.11.08 2,432 65 12쪽
19 18화 바깥을 알다 +2 22.11.07 2,526 62 13쪽
18 17화 말의 가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22.11.07 2,617 64 13쪽
17 16화 여럿보다 하나가 나을 때도 있다 +2 22.11.06 2,720 77 15쪽
16 15화 믿음을 보내다 22.11.06 2,759 78 13쪽
15 14화 부끄러워하다 +2 22.11.05 2,805 79 13쪽
14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1 22.11.05 2,828 75 12쪽
»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1 22.11.04 2,946 70 12쪽
12 11화 탐욕은 재앙의 친구다 +1 22.11.04 3,075 81 13쪽
11 10화 화두를 던지다 +4 22.11.03 3,232 81 13쪽
10 9화 보상을 논하다 +2 22.11.03 3,412 86 12쪽
9 8화 사방에 소식을 보내다 +5 22.11.03 3,542 85 15쪽
8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2 22.11.02 3,592 87 12쪽
7 6화 소현세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4 22.11.02 3,817 88 14쪽
6 5화 고민을 안겨주다 +2 22.11.01 3,902 101 13쪽
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4,132 94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489 98 12쪽
3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11 22.11.01 4,679 10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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