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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wind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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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Healwind
작품등록일 :
2019.04.01 15:08
최근연재일 :
2019.04.28 05:48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9,815
추천수 :
165
글자수 :
125,971

작성
19.04.14 22:15
조회
271
추천
6
글자
10쪽

018. 수습(5) - 1부 完

DUMMY

"저는 부산 사태때 도망갔었습니다."


정적. 웅성거리던 소리들이 내 말에 불씨가 되어 끊긴다.

돌연 이상해진 분위기가 대강당을 에워쌌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현서 양과 해운대에서 같이 싸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위급한 상황에서의 저급한 영웅심에 나갔을 뿐입니다. 실제로 저는 옆에서 거의 구경만 할 뿐 큰 도움은 주지 못했습니다."


홱. 갑자기 이현서의 넋이 나간듯한 얼굴이 나를 쳐다본다.

추궁하는 듯한 표정.

하지만 내가 '이재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게 사실이어야 한다.


"이현서 양이 트롤에게 당해 쓰러지던 순간에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쓰러진 이현서 양을 두고 최대한 도망쳤을 뿐입니다. 저는 '적능(赤能)'이 괴수들과 싸운다는 사실도 모른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생도 '이재혁'은 붉은 마나가 등장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고는 다음날 새벽 첫기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이 모든게 납득할 수 있는 각본으로 짜여져야 한다.


"비현실적인 광경. 끔찍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 힘껏 달렸습니다. 가쁜 숨을 허덕이면서도 살고자 하는 마음에 온몸을 겨우 움직였습니다. 더이상 달릴수도, 걸을수도 없을 때 발견한 어느 폐건물에 들어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그날 밤이었고 사태는 종결되어있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이재혁'은 괴수와 맞서 싸우고 희생을 자처한 '영웅'이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 자리를 빌려서 이현서 양. 그리고 [검심]의 회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재혁'은 현실에 겁을먹어 도망가고 친우들을 저버린 '배신자'여야만 하는 것이다.


"저는 비겁자였고 겁쟁이었고 도망자였을 뿐입니다. 이런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꾸벅. 전교생을 향해 크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금 모두를 바라보았을 때 아까의 시선은 온데간데 없었다.

놀라움. 경멸. 천시. 온갖 종류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열수가 없었다.

교장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대로 마이크를 교장에게 건네주었다.


단상을 내려와 강당을 빠져나갔다.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여기에 있는 이들과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누구도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애써 수습하려는 교장의 말소리와 카메라의 플래시 소리만 있었을 뿐이다.


사실 내가 한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이것 하나 만큼은 맞다.

나는 비겁자이고 겁쟁이이고 도망자일 뿐이다...


<...............>


나는 강당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정도는 없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나로써는 집에 가 그냥 생각없이 죽도록 검을 휘두르고 싶을 뿐이었다.


세르비아도 나도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은 채 교정을 걸었다.

신이 난 아침 새소리만이 시끄럽게 지저귈 뿐이었다.


---------------------------


"잠깐!"


교문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오른쪽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는지 왼쪽 다리만 편 채 서있는 이현서가 있었다.

내가 그녀를 쳐다보며 가만히 있자 이현서는 나를 향해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다가왔다.


"하아... 하아...."


이현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고 내 앞에 섰다.

가쁜 숨을 몰아쉰다는 것은 그녀가 마나의 이능을 거의 쓰지 않고 오로지 육체의 힘으로만 달려왔다는 것을 뜻했다.


아무래도 아직 마나의 이능을 쓰지 못하는 거겠지...

그러면서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온게 함부로 자리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윽고 숨이 진정되자 이현서는 말을 꺼냈다.


"뭐하자는거야."


"..........."


분기에 가득찬, 평소의 무표정보다 훨씬 싸늘한 말투였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거짓말을 하는거야?"


"거짓말이라니.. 딱히 말한거에 거짓말은....."


"도망간 거. 그거 거짓말이잖아."


"....... 왜 거짓말이라는건데."


정신을 잃은 그녀가 내가 뭘 했는지 알 도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그녀의 확신한다는 듯한 어투는 결코 무시하고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가.. 어제 급식실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 그게 거짓말이었어. 아니. 사실 어제부터 조금씩 기억이 떠올라서 이제야 전부 기억났어. 말한 그대로야. 나는 결국 도망친 겁쟁이었던거야.."


"............"


이현서의 올곧은 시선이 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이리저리 돌아간다.

애초에 거짓말은 나의 적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 그렇다 쳐.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쳐. 근데.. 굳이 그렇게 말했어야 했어? 같이 싸우고 큰 힘이 되어준건 사실이잖아. 왜 숨기려는건데..?"


"숨기다니.."


"항상 그랬잖아. 287등 서포터? 웃기는 소리 말라고 해. 그런 검술 실력으로. 그런 권능으로. 그런 실력으로. 287등이라고 하면 적어도 그 위의 수백명은 뭐가 되는거야. 너는 밑에서 보며 조롱이라도 하고 싶은거야?"


"..............."


"말해봐. 그렇게까지 힘을 감추고 우리를.. 세상을 기만해야 하는건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부산 사태때 힘을 써서는 안되었다.

무심결에 주머니에 넣어버린 실처럼 엉키고 또 꼬여버렸다.


힘을 숨길 생각은 없다.

다만 진정한 힘을 드러낼 수도 없다.

세상은 생각보다 적당히라는 것이 없고 나는 숨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오늘이 지나가면 내일이 오고 그 사이에 내가 없으면 그만이다.


나는 결국 엉켜버린 실을 버리는 것을 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사람은.. 세상은 생각보다 모든 걸 쉽게 잊어버리는 편이다.


"너는 도대체 뭘.. 뭘 두려워하는거야."


뭘 두려워하냐니..

나는 모든 것이 두렵다.

진실을 알게 된 세상도.

그 뒤에 벌어질 일도.


세상에 반(反)하는 나의 존재도.

세상에 속하고자 하는 나의 자아도.

모든 것을 지켜보는 세르비아도.

그 뒤에 놓여진 거대한 운명도.


밝혀지고 파헤쳐지는 과거도.

그 위에 딛고 서보고자 하는 나도.

하지만 결국 끝나버리면 주저앉을 나도.


결국 나는 숨기고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는 나의 모습에 이현서는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고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고는 혼잣말이지만 나에게 닿을 정도의 말을 중얼거렸다.


"거짓말을 똑바로 할거면 칼이라도 놓고갔어야지. 누굴 바보로 아는거야.."


이현서의 모습이 멀어지고 시야에서 조그만 점이 될때까지 나는 멍하니 서있었다.

조금씩 낮이되어가는 햇살은 따갑고 불쾌하기 그지 없었다.


이제는 눈부신 햇살을 증오하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


"적당히 깝쳐야지..."


대강당 안. 이재혁이 뛰쳐나가고 그 뒤로 이현서가 나간 뒤의 웅성거림 속에서 말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중급 2반. 다리를 꼰 채 독기에 가득 찬 표정으로 단상을 바라보던 윤선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맞아. 이건 진짜 선 넘었는데."


"아니 진짜 적당히 해야지. 저딴 새끼랑 같은 학교라는게 말이 돼?"


"난 저 새끼가 단상에 올라갈때부터 알아봤다."


주위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윤선호의 혼잣말에 열심히 맞장구를 쳐준다.

하지만 윤선호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저 정도면 애초에 저런 놈이랑 대화를 해보았다는 것 자체가 윤선호에게는 역겨운 일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재혁한테 얼마나 큰 수모를 당했던가.


그때부터 이재혁은 분수를 몰랐다.

자신의 급을.. 위치를 모른 채 호기롭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자신과 그의 위치의 차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자신은 방심했기에 당했던 것 뿐이다.

애초에 자신과 이재혁은 급이 맞지 않는다.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작년의 '그 일'이 떠오르고 온몸이 수치심에 떨렸다.

이제는 살인 욕구까지 들 정도로 증오하게 된 그를 한동안 보지 못해서 얼마나 편했던가.

하지만 오늘 아침. 안그래도 집안의 일로 기분이 안좋았던 그에게 결정타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안되겠다. 이제는 그와 같은 학교에 있는 것만으로도 버티기 힘들었다.

이 영웅사관학교에서 그를 치워버려야 한다.

가능하면 영원히 지워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퍼뜩. 윤선호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곧 있으면 4월. 체육대회가 시작되게 된다.

외부인들과 생도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이기도 하지만 외부인에 의한 여러 사고가 벌어지기 쉬워지는 때이기도 하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불행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다만 윤선호는 인위적인 불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뿐이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떠올랐다.

실행하기에는 많은 돈과 힘이 필요하지만 그로서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위험부담도 적은. 오로지 이재혁을 위한 방법이었다.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란 거의 없다.

자신의 태생과 급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진작에 실행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새 악의에 물든 표정이 윤선호의 얼굴을 뒤덮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강당 안의 어느 누구도 그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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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27. 해결(1) +1 19.04.28 207 5 9쪽
26 026. 윤선호(3) +1 19.04.26 241 3 10쪽
25 025. 윤선호(2) 19.04.25 206 3 10쪽
24 024. 윤선호(1) +1 19.04.23 223 6 10쪽
23 023. 체육대회(5) +3 19.04.22 223 5 10쪽
22 022. 체육대회(4) 19.04.21 219 5 10쪽
21 021. 체육대회(3) +2 19.04.19 223 3 10쪽
20 020. 체육대회(2) 19.04.18 228 5 10쪽
19 019. 체육대회(1) +1 19.04.17 274 6 11쪽
» 018. 수습(5) - 1부 完 +2 19.04.14 272 6 10쪽
17 017. 수습(4) +3 19.04.13 274 3 10쪽
16 016. 수습(3) +1 19.04.12 277 3 11쪽
15 015. 수습(2) 19.04.11 293 5 11쪽
14 014. 수습(1) 19.04.10 307 7 11쪽
13 013. 부산 사태(5) +1 19.04.09 303 7 11쪽
12 012. 부산 사태(4) 19.04.09 337 7 11쪽
11 011. 부산 사태(3) +1 19.04.08 330 7 10쪽
10 010. 부산 사태(2) +1 19.04.07 357 8 10쪽
9 009. 부산 사태(1) +1 19.04.06 369 6 11쪽
8 008. 동아리(2) 19.04.05 380 9 11쪽
7 007. 동아리(1) +1 19.04.04 368 9 11쪽
6 006. 실기시험(2) +1 19.04.03 397 8 11쪽
5 005. 실기시험(1) +1 19.04.02 469 7 12쪽
4 004. 서포터(2) +2 19.04.01 551 9 12쪽
3 003. 서포터(1) 19.04.01 617 7 11쪽
2 002. 시작 19.04.01 812 9 11쪽
1 001. Prologue +3 19.04.01 1,057 7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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