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Healwind 님의 서재입니다.

서포터로 랭킹 1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Healwind
작품등록일 :
2019.04.01 15:08
최근연재일 :
2019.04.28 05:48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9,820
추천수 :
165
글자수 :
125,971

작성
19.04.12 22:15
조회
277
추천
3
글자
11쪽

016. 수습(3)

DUMMY

"야. 또 병신이라고 해봐. 병신이라고 해보라니까."


".............."


공연히 큰소리로 시선을 끌어모은다.

밥을 먹던 아이들이 고개를 올려 이쪽을 쳐다본다.

나는 애써 무시하며 뒤돌아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야. 어디가냐. 시발. 말좀 해보라니까?"


내 앞에서 길을 막고 서서 자꾸만 욕을 하는 이 사람들은 같은 2학년이자 같은 동아리 소속인 [검심]의 회원들이다.

그 중 가장 격렬하게 쏘아붙이는 사람은 MT때 괜히 내 옆에 있다가 병신이라고 직격으로 들은 남자애였다.


"아니. 그렇게 존나 호기롭게 욕박고 나갔으면 뭘 좀 하던가. 막상 나가보니까 무서워서 튀었냐? 엉? 대답좀 해보라니까?"


이 친구들은 아무래도 내가 도망간걸로 알고 있는듯 하다.

하긴 상황이 종료될 당시 쓰러져 있는 사람은 이현서 뿐이었고 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나는 개가 짓는가 보다 생각하며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건 아니지 않는가.


퍼억.


"어머..."


하지만 식판을 든 나를 등뒤에서 세게 밀쳐 음식물이 쏟아지자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만은 없었다.


"존나 빼네. 그때처럼 지랄해보라니까?"


"참고있으려니까.. 니가 뭘 알아. 내가 이현서랑 같이 싸웠다고 하면 어쩔건데."


"니가?"


입가에 비웃음이 번진다. 그의 조소에 갑자기 화가 끌어올랐다.


생각해보니 얘들은 괴수를 목전에 두고 도망친 애들이 아닌가.

해운대를 구하고 사람들을 살린 사람이 누군데..

이게 아니더라도 굳이 이들의 명예를 생각해 입을 다물고 있더니 하는 짓이 고작 이런거라니.


나는 문득 피를 끌어올려 머리통을 식판에 쳐박게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뭐하는 짓이지?"


일촉즉발의 상황.

모두들 잠자코 구경만 하던 차에 누군가 이곳에 개입했다.

모두들 잘 아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검심의 부원이자 해운대 사태때 누구보다 활약했던... 이현서였다.


"어.. 현서야. 몸은 괜찮아? 당분간 쉬게 될거라고 하더니.."


"뭐하는 짓이냐고."


"어.. 아니 넌 모르겠지만 얘가 그 해운대 사태 때. 우리한테 욕하고 나갔는데 정작 도망쳐가지고 뭐라 하는 중이었어. 되게 웃기는 일이잖아. 겁쟁이라고 놀리고 나간 놈이 오히려 겁쟁이었다는게.."


"도망쳤다고?"


이현서는 목발을 짚어가며 절뚝거리는 발을 끌고는 우리 둘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안그래도 무표정한 얼굴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니 어디선가 쌩쌩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냉랭한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표정 그대로 이현서는 남자애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어...어? 다..당연하지.. 너.. 너가 쓰러지고 일어날때 까지 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 저.. 정말이야. 그게 도망친게 아니고서는 뭐겠어.."


죄 지은 사람이 말하는 양 목소리가 벌벌 떨린다.

이렇게 싸늘한 이현서의 표정앞에서라면 누구든지 말을 버벅거릴 것이다.


"나랑 같이 싸웠어."


"어?"


"나랑 같이 싸웠다고."


이현서의 싸늘한 표정과 말투에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 하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참는듯 정적이 흘렀다.


"그러니까 괜히 시비 걸지 말고 가지?"


"......."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있는 그를, 뒤에 있는 남자애가 끌고가 사라졌다.

이현서가 주위를 쭉 둘러보자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과연 여제라는 이명이 아깝지 않은 카리스마이다.

단숨에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어... 고마워. 몸은 괜찮... 아니 안 괜찮은 거 같네."


절뚝거리는 다리부터 살짝 힘없어 보이는 표정까지.

아무래도 평소의 이현서보다는 많이 약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살아 있는거 자체가 기적이지."


"......"


갑자기 그녀는 표정을 풀고는 그녀답지 않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고는 앞에 보이는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봐. 물어볼게 있어서 잠깐 왔어."


---------------------------------------------------


"우선.. 뭐. 고맙다는 말부터 할게. 덕분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정말로 물어볼게 있어서 왔는지 나 혼자만 식판을 두고 밥을 먹는 중이었다.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는 첫끼였는데 뱀파이어가 되었다고는 하나 밥을 먹는데 별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로써 하나가 확실히 증명되었다.

세르비아가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은 그냥 매운 음식을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다....


"물어보고 싶은 건 딱 하나야. 참고 기다려볼까 했는데 안되겠어서 찾아와봤어."


자신을 두고 없어진 일?

트롤을 멈춰세운 일?

그녀 입장에서 궁금해 할만한 일이 너무 많아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대략적으로 생각은 해 놓았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혹시 말인데.. '적능(赤能)'을 봤어?"


쿨럭쿨럭


갑작스런 말에 사레가 들렸다.

그런 내용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게 아픈 몸을 이끌고 물어보러 올 정도의 일이라고?


"나는 세상이 붉게 물드는 것까지 밖에 못보고 정신을 잃었어. 아무래도 너는 나와 달리 기억이 있을 테니 말이야."


"나도 못봤어. 애초에 그때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걸."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어.. 세상이 붉게 물든 이후의 기억이 없어. 아무래도 '적능(赤能)'의 능력이 아닐까?"


"그래서 본 건 단 하나도 없고?"


"어...."


애초에 그녀 입장에서 '적능(赤能)'을 찾는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단순히 생명의 은인이라 그런 것일 뿐인가?


"근데 중간에 잠깐 눈을 떴을 때 흐릿하게 기억나는게 있는데... 어떤 여자......."


이현서가 말하려던 것은 끝맺혀지지 못했다.

갑작스레 급식실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이현서!"


갈색 짧은 단발머리의 귀엽게 생긴 여자애였다.

이현서가 쿨해보이는 외모라고 한다면 이 여자애는 뭔가 활기찬 듯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실제로도 성큼성큼 이현서가 있는데까지 다가오기도 했고.


"너 진짜 이러기야?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환자가 급식실까지 걸어나오는게 말이나 돼? 고개 잘만 끄덕이더니 잠깐 한 눈판 사이에 어떻게 빠져나온거야? 애초에 뭐하러 급식실에 와 있고?"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잔소리들과 함께 여자애는 이현서의 양쪽 어깨를 부여잡고 일으켜세웠다.

이현서는 의외로 저항 없이 순순히 일어났다.

어쩐지.. 도망쳐 나온거였구나.


여자애는 일으켜 세우며 맞은편의 내 모습을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 남자친구?"


"뭔소리야."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이현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른사람이 보기에는 이게 그 정도로 오해받을만한 짓인건가..


"어. 얘 이재혁 아니야? 너가 뭔 일로 얘랑 얘기하고 있었어?"


음... 이쯤되면 나를 모르는 사람을 찾는게 더 힘들수도 있다.

난 이 여자애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얘는 나를 아는 걸 보면 말이다.


"아. 난 서은아라고 해. 너 아는건 필기 시험 항상 1등해서 그래. 내가 항상 2등하는 사람이거든."


"응..."


서은아는 손가락으로 v 표시를 하며 말했다.

이름을 말하니까 누군지 알겠다. 나름 유명한 애이다.

이현서와 유일하게 같이다니는 여자애이자 상당한 실력의 딜러.

아마 서은아 또한 랭킹 순위권 내에 있을 것이다.


"얘기 중에 미안한데 얘가 안정이 좀 필요하거든? 얘 좀 데려가도 되지?"


"내 의사를 물어야지. 걔한테 그걸 왜 물어."


"얘랑 얘기하고 있는거 아니었어?"


"맞는데.. 됐어. 물어볼 얘기는 다 한 것 같으니."


"얘한테 지금 물어볼 얘기가 있었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올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부산에 있었던 일로 물어볼게 있었을 뿐이야"


"부산? 얘도 부산에 있었어? 너랑 같이?"


"나보다 더 잘 싸우던데 뭐."


"뭐라고?"


정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제보니까 서은아 얘는 왠만한게 표정에 다 드러난다.


"얘가? 280 몇등이지 않아? 너보다 잘 싸운다고? 장난치는거지?"


"장난치는거 아니야. 올라가서 얘기해줄게. 면전에 대고 뭐하는거야."


"아..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무심코 그래버렸네. 그.. 재혁아 미안해?"


손을 싹싹 빌면서 말하는게 화내고 싶어도 못 화낼 정도의 붙임성이다.

나도 모른새에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현서는 의자를 집어넣고는 목발로 다리를 짚어 일어섰다.

다만 등을 돌려 가기 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다음에 더 얘기하자고. 너한테 들어야 할 것도 많고. 우리 같은 조잖아."


"나도 나도. 기회가 되면 나중에 같이 보자. 아. 식사 맛있게 하고."


서은아가 이현서를 부축하여 급식실에서 빠져나갔다.

이현서가 부축하는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걸으려 하자 막무가내로 어깨에 손을 올리게 하는게 사이좋아 보이는 모습이다.


나도 금방 식사를 마무리하고 급식실을 나왔다.

꽤나 오랜만에 정신사나운 식사였다.


--------------------------


"현서야 그 말 정말이야? 쟤가 부산에서 너보다 잘 싸웠다고?"


"나랑 같이 싸웠어. 필요할 때마다 괴수를 멈춰세우는게 거의 완벽한 서포터던데."


"이상하다... 애초에 쟤는 현장에 없었는데?"


"현장에 없었다고?"


"응. 해운대에서 쓰러진채 발견된 사람은 너밖에 없었다구. 그렇다고 쟤가 <검심>에서 같이 복구작업을 도운 것도 아니고. 구조가 오기까지 4시간.... 그 안에 혼자 가버린건가? 왜?"


".........."


그 사이에 사라질 이유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다.

알려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힘이든 공적이든. 그가 해운대에서 이현서를 도와 싸웠다는 사실을 말이다.


287등 서포터.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는 1학년 때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변하지 않은 한 그는 아직도 힘을 숨기고 싶어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가 힘을 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 뿐이었다.

실기 시험 때, 고블린이 김재민을 해하려 하자 사용했고.

대련할 때, 자신의 요구에 의해 힘을 드러냈으며.

부산 사태때, 쏟아져오는 괴수들에 맞서 온힘을 다했다.

적어도 모두의 앞에서 당당하게 힘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이현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은 힘 없는 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기회는 또다른 능력의 발현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이 모든 순환이 정당하게 일어나야 이상적인 세상이 그려지는 것이다.

세상의 꼭대기에는 철인(哲人)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이현서의 머리 속에 좋은 방법이 한가지 떠올랐다.

그에게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길 바라며 생각해낸 한 가지 방책이었다.

다만 이현서의 생각을 모르는 서은아는 이재혁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포터로 랭킹 1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027. 해결(1) +1 19.04.28 208 5 9쪽
26 026. 윤선호(3) +1 19.04.26 241 3 10쪽
25 025. 윤선호(2) 19.04.25 206 3 10쪽
24 024. 윤선호(1) +1 19.04.23 223 6 10쪽
23 023. 체육대회(5) +3 19.04.22 223 5 10쪽
22 022. 체육대회(4) 19.04.21 219 5 10쪽
21 021. 체육대회(3) +2 19.04.19 223 3 10쪽
20 020. 체육대회(2) 19.04.18 228 5 10쪽
19 019. 체육대회(1) +1 19.04.17 274 6 11쪽
18 018. 수습(5) - 1부 完 +2 19.04.14 272 6 10쪽
17 017. 수습(4) +3 19.04.13 275 3 10쪽
» 016. 수습(3) +1 19.04.12 278 3 11쪽
15 015. 수습(2) 19.04.11 293 5 11쪽
14 014. 수습(1) 19.04.10 307 7 11쪽
13 013. 부산 사태(5) +1 19.04.09 303 7 11쪽
12 012. 부산 사태(4) 19.04.09 337 7 11쪽
11 011. 부산 사태(3) +1 19.04.08 330 7 10쪽
10 010. 부산 사태(2) +1 19.04.07 357 8 10쪽
9 009. 부산 사태(1) +1 19.04.06 369 6 11쪽
8 008. 동아리(2) 19.04.05 380 9 11쪽
7 007. 동아리(1) +1 19.04.04 369 9 11쪽
6 006. 실기시험(2) +1 19.04.03 397 8 11쪽
5 005. 실기시험(1) +1 19.04.02 469 7 12쪽
4 004. 서포터(2) +2 19.04.01 551 9 12쪽
3 003. 서포터(1) 19.04.01 617 7 11쪽
2 002. 시작 19.04.01 812 9 11쪽
1 001. Prologue +3 19.04.01 1,058 7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