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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월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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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배
작품등록일 :
2022.12.01 19:17
최근연재일 :
2024.06.2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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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8,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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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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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66. 학습

DUMMY

딱딱한 붉은 눈들보다 더욱 살기가 넘치는 붉은 눈이 화려하게 빛난다.

“ 호잇! “

-붕. 붕.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낫이 휘둘러져 다가오는 붉은 눈 세 기체의 머리만을 정확히 부순다.

사실 이 정도의 공격은 붉은 눈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춘향은 거대한 낫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고,

춘향의 등 뒤에서 검은 춘향의 상체가 튀어나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휘두른 공격이었기에 붉은 눈의 입장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상상도 못 한 공격이었다.

그렇게 여덟 기체를 부숴버리는 순간 춘향은 급하게 고개를 틀어 뒤에서 머리를 노리고 찔러진 장봉을 회피한다.

“ 흐음.. 이런 무기로 기습이라니.. 안 어울리는 거 알고는 있는 거지? “

“ 흥. “

디엔은 그대로 봉을 뒤로 빼지 않고 손을 교차해가며 춘향을 공격한다.

태양 에너지를 변환하여 만든 장봉이다 보니 굳이 휘두르는 타격뿐만이 아닌 닿기만 해도 살이 타들어 가는 이점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공격이다.

화려하게 휘둘러지는 장봉이 가장 막기 힘든 곳만을 파고들어 공격해오지만, 춘향에게 이 정도는 간단하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유도하고 피할 수도 있는 수준이다.

“ 아하하! 정말 착실한 녀석이었나 봐? “

아주 ‘ 정석 ‘ 그대로 마치 교본처럼 완벽한 동작만을 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실전은 그런 게 아닌데 말이지.

“ 시끄럽다. 외계인...! “

“ 킥킥.. 외계인이라기엔 너도 외계인인데 말이지..! “

언제나 변칙적인 수를 두는 춘향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피할 수 있었지만

정석이 괜히 정석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듯이 빈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순수 노력으로 쌓아 올린 실력은 아니라는 듯이 반 박자 더 빠르게 휘두른 한 손 낫을 막아내고 반격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은하의 인도자라 불리는 건 아닌 모양이다.

까다롭다.

하지만 그것을 표정으로,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춘향이다.

“ 랄랄라~ 우직한 남자는 좋지만, 점점 지루한데? 색다른 게 없나? 호잇! “

“ 그렇게 말하면서 반격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지 않나? “

“ 뭐. 그렇게 보이면 그런 거겠지? 아하하! “

춘향이 허리를 젖혀 봉을 피하자 검은 머리카락이 조금은 타들어 가버린다.

머리카락이야 뭐 어차피 검은 마나니까 다시 만들어내면 된다지만...

아주아주 미세하게 점점 상대가 춘향의 움직임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 나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

“ 아주 여유롭군그래. “

춘향의 여유가 불만스러운 듯이 반 박자 빠르게 공격하려는 춘향의 움직임에 맞춰 엇박자로 장봉을 휘둘러 낫에 걸고 비틀어서 춘향의 손을 꺾는다.

춘향은 검은 낫을 지울까 싶다가도 손이 꺾이는 방향대로 몸을 돌려서 디엔의 장봉과 엮인 채로 그대로 얼굴을 마주 본다.

“ 그러지 말고 답해주면 안 돼? “

” 적의 질문에 답해줄 이유는 없지..! “

디엔은 장봉에서 왼손을 떼고 왼손에서 새로운 봉을 뽑아내 크게 휘두른다.

“ 내 손도 두 개인데! “

물론 춘향이 다른 손으로 낫을 만들어내 막아낸다.

서로의 양손이 서로의 양손을 막아내고 있는 동안에 춘향은 몸을 들어 디엔의 복부를 발로 차기 위해 다리를 들었다.

그러나 디엔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리를 들어 발로 차는 바람에 서로의 발바닥을 걷어차는 형태가 되었으며, 그대로 거리가 벌어진 채로 치열했던 근접교전은 잠시 휴식으로 들어간다.

“ 참 신기하단 말이지? 물렁물렁했던 케이지의 피부가 지금은 고철처럼 딱딱해. 마치 평범한 인간이 신의 언어를 받아들여서 붉은 눈이 된 것처럼 말이야. “

디엔은 역시나 춘향의 말에 답할 이유도,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춘향을 향해 달려나가며 휴식할 틈을 주지 않으려 한다.

순식간에 다가와 장봉을 화려하게 흔들어 어디서 공격할지 모르게끔 심리전을 걸고

한순간 다리를 가속해 춘향의 뒤에서 목덜미를 향해 장봉을 찌른다.

춘향은 가볍게 회피하며, 낫을 다시 장봉에 걸고 얼굴을 마주한다.

“ 그런데 어째서 네 눈은 붉게 빛나지 않는 거야? 어째서 너는 기쁨. 슬픔. 분노. 같은 이상한 붉은 눈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거야? 왜 평범한 인간인 척해? 너는 누구야? “

분명.

춘향이 마주한 첫 번째 붉은 눈인 제이엘도 평범한 언어를 구사했다.

그러다 신의 언어에 육체를 빼앗기고 온몸이 기계처럼 딱딱해진 뒤로는 눈을 붉게 빛내며 붉은 눈들이 하는 특유의 말을 사용했었다.

분명 그랬는데 지금 눈앞의 디엔은, 케이지는 전혀 그렇지도 않은 채 오직 육체만 기계화가 되어있었다.

붉은 눈과 이 녀석의 차이...

그 차이만큼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르겠다.

아니.. 그나마 짐작 가는 거라면..

“ 그 모습이 인류 진화의 최종단계라거나? “

“ 큭... 크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재밌는 소릴 하는군그래... 인류의 최종단계... 하하하하하! “

그렇게 진지하게 전투만 하던 디엔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봉을 내려놓고 이마에 손을 짚으면서 미친 듯이 웃어댄다.

왤까.

왜 저렇게 웃는 걸까.

왜 조금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드는 걸까.

“ 별로 웃긴 이야기는 아닌데? “

“ 크크크크.. 아하하하하!! 웃기지 않은가! 고작 이따위가 인류의 최종 진화라니...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말 자체가 나왔다는 것부터가 어이가 없지 않나! 하하하하하하!! “

“ 뭐가 웃긴지 몰라서 난 좀 기분 나쁜데. 혼자 웃지만 말고 같이 웃지 그래? “

디엔이 억지로 웃음을 참듯이 고개를 떨군다.

이마를 짚고 있던 손도 치우고

눈을 뜬다.

“ ..뭐야. “

춘향은 순간 자세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평범한 눈이었는데

고작 웃기만 했을 뿐인데 붉은 눈이 되어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

“ 그래... 진화 형태는 맞지. 하지만.. 최종 진화는 아니야... 나는.. 실패작이다. “

“ ..실패작? “

“ 당연한 것 아닌가? 인간은 끝이 있지만, 기술에는 끝이 없다. 아무리 최고의 완성작을 내놔도 결국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하면 최고의 완성작은 어느새 뒤처진 것이 되는 거다. 그 누구도 완성된 인류에 다가갈 수 없어. “

춘향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서는 검은 춘향을 부른다.

서로 아무 말도 없었지만 검은 춘향은 이미 춘향의 뜻을 알고 있다는 듯이 곧바로 검은 낫을 뽑아내 춘향에게 접근하는 붉은 눈들의 머리만을 노려 한 번에 부순다.

혹여나 검은 마나를 학습해버릴 가능성이 존재했지만..

춘향은 그것보다 지금 디엔과의 대화를 방해받는 것이 더욱 짜증 날 것 같았다.

“ 그래서? 너는 다가가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투정 부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하고픈 말이 뭐야? “

“ 인류는 아무리 죽어가더라도 결국 이상의 이상을 향해 진화해 나가야 한다. 그 이상으로 향하는 길에 밑거름이 될 하나의 표본이 바로 나. 디엔이다. 안타깝지.. 인간은 이런 식으로 진화하는 것이 최선이니 말이야. “

자신 스스로가 실패하고 버려질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연구의 실패작이 되기 위해 기꺼이 기계가. 붉은 눈이 되었다는 건가.

설마 모든 붉은 눈이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정말..

“ 큭큭.. 재밌는 이야기네! 궁금한 게 너어어어무 많아! 그렇게 발전해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그러는 건지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인간을 희생할 만큼의 일인지도 말이야. 억울하지 않아? 너 스스로가 실패작이 된다는 게? “

“ 후후후... 너희는. 아니.. 인류는 아직 전혀 모르고 있는 거다. 모두가 알 필요도 없지. 오직 ‘ 선택받은 자 ’ 만이 알면 충분하다. “

저건 또 뭐람.

“ 선택받은 자? 그건 또 뭔데? “

“ 그건 나도 모른다. 오직. 은하의 중심부에 도달한 자만이 알 수 있지. “

진화를 위한 실패

은하의 중심부

선택받은 자

춘향의 머리로도 아직 이해하기에는 재료가 부족하기에 지금 디엔이 하는 말을 하나씩 하나씩 곱씹어가며 외운다.

“ 나는 표본이다. 마지막까지 너희 외계인들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모품이다. 얼른 나를 제거하고 은하의 중심부로 향해라. 그곳에 도달해 은하의 진실을 깨닫고, 너희도 레이브 인도자님의 뜻에 따라 합류하라. “

디엔은 말을 끝마치자마자 춘향을 향해 달려나간다.

그러다 정면에서부터 사라져 후방에서 나타나 장봉을 휘두른다.

-까드드드드득...!!!!

“ 참.. 웃겨. “

검은 낫과 장봉이 부딪치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검은 불꽃과 노란 불꽃이 격렬하게 튄다.

그 격렬한 불꽃 사이에서도

서로의 붉은 눈은 살벌하게 빛난다.

“ 전력을 파악한다는 거짓말이 통할 것 같냐 이 멍청아? “

-팍!!!

디엔이 아랑곳하지 않고 장봉을 돌려 반대쪽 끝으로 춘향을 공격하자

춘향의 머리를 정확히 부숴버리고 검은 마나가 마치 검은 물감처럼 퍼져버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간단하게 디엔이 춘향의 머리를 날린 것처럼 보이지만..

고작 이 정도 공격에 죽을 녀석이 아니다.

디엔은 급하게 머리를 숙여 앞으로 한 바퀴 구르자 디엔의 목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낫이 지나간다.

“ 그렇게 정면으로 달려나가다 뒤를 잡고 공격하는 건 내 특기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거든? “

춘향은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 디엔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고

마치 공격할 것처럼 하다가 사라져서 뒤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낫을 휘둘렀지만 당연하게도 막힌다.

막히자마자 바로 한 손을 놓고 짧은 한 손 낫을 만들어내 반대편에서 공격해보지만 당연하게도 막힌다.

막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이렇게 막혔다고 생각했을 때 허를 찔러서 반대편을 노리는 공격도 가장 좋아하는 수 중 하나지! “

“ ..그게 뭐 어쨌단 거지? “

춘향은 가볍게 뒤로 물러나 낫을 손에서 지우고 허리에 손을 얹은 채로 웃으며 디엔을 바라본다.

“ 너는 내 전력을 파악한 게 아니야. 내 움직임을 ‘ 학습 ‘ 한 거지. “

“ ..웃기지 마라. 나와 케이지는 학습하지 않는다. 단지 붉은 눈의 특징만을 받아온 인간이야. “

“ 그게 네 녀석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인 것을 모르고 있다니 쯧쯧쯧~ “

이제서야 춘향은 어딘가 눈이 뜨인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인간은 신의 언어라는 것을 받아들여서 붉은 눈처럼 기계화되어버린다고 생각했다.

제이엘도 그랬고, 케이지의 몸을 찔러봤을 때도 평범한 인간의 육체였기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을 뒤집는다면...

기계로 만든 몸에 신의 언어를 넣어 인간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형태로 다니던 제이엘에게 신의 언어가 들어가며 본모습을 되찾은 것이라고 한다면..

“ 너도 레이브라는 녀석에게 속고 있던 거였네. “

전력으로 부딪친다.

그렇게 어떻게든 외계인들의 정보를 학습한다.

그렇게 학습한 정보는 레이브에게 전달되어 다른 붉은 눈들이 학습하고, 발전해서 대응하게끔 진화해 나간다.

그렇게 우리 은하와 충돌했을 때 붉은 눈을 우리 은하에 퍼뜨려 미리 학습한 정보를 토대로 은하를 지배한다.

모든 것을 학습한 새로운 인류.

죽지 않고 영원히 쌓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인류.

그런 새로운 인종을 만들고 있다니..

레이브.

생각보다 더 미친 녀석이다.

-탁.

춘향이 발로 바닥을 차자 주위에 수많은 붉은 눈이 떠오른다.

그 붉은 눈은 기계가 아니다.

검은 마나로 만들어진 검은 토끼들이다.

“ 좋아! 네 덕분에 정말 많은 걸 알았으니.. 나도 선물을 해줘야겠지? “

그리고 거대한 낫을 만들고, 검은 마나를 강렬하게 내쏟으며 주위를 검게 물들인다.

“ 진심으로 해달라고 했으니. 진심으로 간다. 어디 학습할 수 있으면 해봐. 그럴 틈도 안 주고 부숴버릴 테니까. 레이브. “

“ 나.. 나는.. 레이브 인도자님이 아닌... “

디엔이 한걸음 물러나면서 당황했다.

아니 자신이 당황한 것에 더욱 당황했다.

이 감정은...

“ ...공포..? “

-촤르르르르륵!

한순간 땅에서부터 검은 사슬이 튀어나와 디엔을 묶고

검은 토끼들이 물어뜯으며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붉은 눈 한줄기가 광선처럼 띠를 그리며 지나간다.

그렇게 디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루처럼 흩날려버린다.


작가의말

진심모드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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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382. 과부하 23.12.09 241 0 15쪽
390 381. 절대 풀리지 않을 오해 23.12.08 241 0 12쪽
389 380. 푸른 밤 23.12.08 239 0 13쪽
388 379. 허물없는 사람 23.12.07 242 0 13쪽
387 378. 증거 있습니까 23.12.06 243 0 13쪽
386 377. 왜 살아있지 23.12.06 243 0 13쪽
385 376. 가벼운 토론 23.12.05 241 0 17쪽
384 375. 끝이 아닌 끝 23.12.04 241 0 12쪽
383 374. 감정을 지배하라 23.12.04 241 0 15쪽
382 373. 에너지원 23.12.03 244 0 14쪽
381 372. 한번만 기회를 23.12.02 241 0 14쪽
380 371. 뚫리지 않는 보호막 23.12.01 245 0 14쪽
379 370. 극한의 연계 23.11.30 241 0 15쪽
378 369. 무모한 도전 23.11.29 242 0 13쪽
377 368. 실패와 성공 그 결과는 23.11.28 243 0 14쪽
376 367. 초록 나무 황금 나무 검은 나무 23.11.27 242 0 12쪽
» 366. 학습 23.11.26 242 0 13쪽
374 365. 새로운 연계 23.11.25 242 0 13쪽
373 364. 전투의 흥분 23.11.24 243 0 12쪽
372 363. 계산하지 못한 수 23.11.23 241 0 13쪽
371 362. 살려줄 사람을 찾습니다 23.11.22 242 0 13쪽
370 361. 모든 것에 옳고 그름은 없다 23.11.21 242 0 14쪽
369 360. 다른 은하의 괴물 23.11.20 242 0 13쪽
368 359. 인류와 문명의 속도 23.11.19 242 0 12쪽
367 358. 너무 대놓고 함정인데 23.11.18 242 0 13쪽
366 357. 수상한 지인 23.11.17 242 0 12쪽
365 356. 순진한 남자 23.11.16 243 0 13쪽
364 355. 진화의 중추 23.11.15 243 0 13쪽
363 354. 아이씨 진짜...! 23.11.14 242 0 16쪽
362 353. 함께하고싶은 마음 23.11.13 24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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