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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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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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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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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29. 1월의 층 (2)

안녕하세요~




DUMMY

“안전 구역 동쪽으로 쭉 가다... 으억. 이히힝”


“제발 아무나 붙잡고 헛소리 좀 하지 마. 하레이.”


빡.


중년의 뒤통수를 둔탁하게 울리는 손바닥의 맑은 소리.


“애초에 들어온 지 21개월은커녕 이제 3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순진한 애는 괜히 왜 붙잡고 있어.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으음... 우하하하! 이거 들켜버렸구만! 이봐. 어린 친구. 실례지만 술 한 병만 사주게.”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귀먹었어? 술 한 병만 사주라고. 혼 좀 나볼래?”


“왜 갑자기 목소리는 깔고 그래? 괜히 애 겁먹게.”


끼어든 사내의 질책을 듣자 소년도 대충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에이! 주정뱅이였네. 아이씨!”


어린 여행자는 투덜거리며 떠나갔다.


“뭐, 이번에도 정보나 얻어 보려고 온 건가?”


“그렇겠지.”


“대체 왜 하루에 한 번꼴로 그쪽을 대륙인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꼬이는 거야? 뭐 나 없을 때 약이라도 팔고 다녀?”


오해할까 미리 말해두는데 눈앞의 이 주정뱅이는 여행자다. 그것도 지독한 혼잣말 병에 걸린 중증 정신병자. 단말기가 달려있던 팔이 통으로 날아가서 대륙인과 구별이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


“나도 몰라~ 또 술이나 먹이고 정보나 뜯어가려고 꼬이는 거겠지.”


“하아...”


하레이. 실체를 본다면 확 깨는 친구지만 일단 초견하기에는 상당히 멋지게 생겼다. 한쪽 팔이 어깨 아래로 완전히 사라졌기에 뭔가 사연이 있을 법도 했고 대충 뒤로 묶은 장발도 지저분한 것보다는 멋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일단 그 칼 좀 버리면 안 될까?”


대체 왜 쓰지도 않는 칼을 허리에 매고 다니냐고! 단검이면 모를까. 길이는 어찌나 긴지! 그러니까 별 잡스런 여행자들이 죄다 말을 걸지.


그런데 왜 정작 있어야 할 친구는 안 보이냐고? 왜 멀쩡한 애는 냅두고 이런 허우대만 멀쩡한 미친 새끼랑 같이 있는 거냐고?


“당연히 없지. 두 달 전에 왕도로 돌아갔는데.”


마치 프리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하레이가 말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프리드는 괜스레 섬칫한 기분을 느꼈다.


“뭐가? 뭐가 돌아갔는데? 자꾸 혼자 뭐라고 하는 거야? 그쪽, 뭐 보이고 그러는 거야?”


그녀는 두 달 전, 그러니까 미궁에 진입하고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 돌아갔다. 아마 지금쯤 왕도에서 여동생 머리나 빗겨주고 있겠지. 지금 프리드는 그때의 결정을 미친 듯이 후회하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대략 두 달 전으로 돌아간다. 1월의 층은 그레이 트롤이라는 놈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 이 얘기부터 해야겠다.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네.”


미궁에 들어왔으면서 무슨 술집인가 싶을 것이다. 아직 뚫지 못해서 이 아래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1월의 층만큼은 하나의 세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바깥과 구분할 수 없었다.


“이야~ 나도 처음에는 놀랐다니까. 하늘이 어떻게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있어! 심지어는 밤이랑 낮도 제대로 돌아간다니까.”


“혼자 또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아.”


이따금씩 나오는 하레이의 정신병. 그는 대첸 누구랑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설명을 한다거나 종류는 가지각색이었다.


프리드는 다시 로레인이 떠난 그 날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1월의 층을 돌파하기 위해서 그날도 여느 때처럼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지.”


“에휴... 이젠 나도 모르겠다. 네 멋대로 떠들어라.”


막 그레이 트롤들과의 교전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잠깐의 휴식을 취하던 때였다. 갑자기 로레인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벌떡 일어서는 게 아닌가?


머리카락의 그 기묘한 움직임에 당연히 프리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주위를 기웃거렸다. 숨이 닿을 거리에서 이리저리 움직이자 그녀도 어지간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읏, 프리드 님, 너무 가까워요.”


“잠깐만 기다려봐. 이거 뭐지? 벌렌가?”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 머리는 사실 블렌하임의 마병이었다.


“참 음흉한 아저씨라니까. 별 잡스런 장난감도 만드는 건 알고 있었는데 멀리서도 말을 하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는 마병이라고?”


블렌하임이 보내온 내용은 이랬다.


“갑자기 말도 없이 떠난 건 조금 섭섭하지만, 이제 팔만은 완전히 몰아냈으니 편하게 일 보라는 내용이었나?”


아세로스의 군세가 전장에 합류했던 것까지만 보고 급하게 이곳에 왔으니까. 그 짧은 몇 걸음의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짐작도 가지 않았다.


뭐, 프리드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마 외부와 완전하게 차단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로레인에게 그런 생각을 들게끔 만들었던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비록 네 파티에 합류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항상 묘한 느낌을 받았지.”


“어떤 느낌?”


“항상 어딘가 조급하다는 느낌.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게 있는 법이지. 아마 너라는 인물의 곁에서 자신이 항상 짐만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비정기적으로 출근하는 하레이의 진중한 모습이었다.


“웬일로 그럴싸한 얘기냐? 하레이?”


“난 항상 그 누구보다 진중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네. 프리드 군.”


뭐, 그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된 균열이었다. 비전투 상황에서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그에 따라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위험한 순간도 몇 번인가 있었다. 결국 프리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만 했다.


“안 되겠다. 너 먼저 돌아가.”


“네? 하지만...”


“너 지금 집중이 전혀 안 되고 있어. 이번 전투만 해도 적중한 마법이랑 튄 마법이랑 거의 비슷할 정도잖아. 중간에 실패한 마법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이상은 같이 있더라도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어떻게 보면 대륙인들은 미궁의 제약에서 보다 자유롭다는 게 도움이 된 셈이었다. 결국 그녀는 올 때 당시에 사용했던 초대장으로 왕도로 돌아갔다.


“덤으로 걔랑 같이 내 정복의 마나도 사라져버렸고.”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해서는 안 되지. 로레인이 가지고 도망쳤다거나 하는 이상한 추측은 하지 마라. 정복의 마나 자체는 미궁에 들어온 직후에 사라졌으니까.


체내에 가지고 있던 잔량이 떨어졌다는 말이었다. 이상하게 몸 자체에서 어떤 마나도 느낄 수가 없었다.


프리드가 스스로의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이전이라면 당연히 피어올랐을 붉은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괜시리 우울해지네.”


“그렇다면 술이나 한잔 나누실까? 외로운 청년과 적적한 중년을 달래주는 건 술뿐이지.”


“이 빌어먹을 주정뱅이가...”





◎◎◎◎◎





왜 기라성 같은 대륙의 정상급 여행자들이 이렇게 모였는데도 그들은 아직 이야기의 첫 장인 1층도 벗어나지 못한 걸까? 간단했다.


입구에서의 그 거대한 주먹 녀석. 놈의 위치를 아직까지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강 추측되는 덩치만 작은 동산 수준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어디에 꽁꽁 숨은 건지 여행자들에게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대장? 이쪽에 샛길이 하나 있는뎁쇼?”


“샛길?”


이 부근은 이미 수차례 지나갔던 구간이었다. 새로운 길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있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애시당초 꼭 길로만 다니라는 법도 없었고.


“냄새가 나는디? 구리구리한 똥내가 나는 것 같아.”


쇠창살에 갇힌 해골. 그 다소 철학적인 문양이 대부분의 구성원들의 몸 어딘가에 있었다. 완갑, 견갑, 흉갑, 어떤 이들은 그들의 육체 자체에 새긴 이들도 있었다.


알카트레즈였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지독해질 수 있는 그들이었기에 당연하게도 그들은 모험에 미쳐있었다. 선두의 레가릭이 가장 먼저 샛길로 진입하자 알카트레즈 전원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숨겨진 계곡으로 향하는 샛길을 발견했습니다.


--------------------------------------


“내 직감이 미친 듯이 말하고 있다. 이 끝에 놈이 있다. 그 빌어먹을 회색 거인 새끼.”


“역시 대장이야! 우리가 최초로 놈을 쓰러뜨리면 다른 버러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레가릭의 앞에 선 사내의 아랫도리가 볼록해졌다.


“이런 미친 새끼. 이제 그런 거에도 흥분하냐? 이거 진짜 적응이 안 되는 새끼네.”


“더! 더 욕해! 더 욕해줘! 대장!”


레가릭은 눈앞의 사내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힘의 정체가 꽤나 오래된 나머지 약에까지 손을 대버린 녀석이었다. 확실히 무력은 전보다 강해졌지만 부작용으로 뇌에 구멍이라도 난 건지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다.


이미 계층에 머무르며 그레이 트롤이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잡아서 죽였다. 놈들은 덩치도 컸고 근력도 인간과 비교가 안 될 수준이었지만 인간에게는 학습이라는 최고의 기술이 있었다. 뭐든 반복하면 결국 익숙해지고 숙달되기 마련이었다.


검에 묻은 놈들의 역겨운 피를 털어낸 레가릭이 스스로의 걸음을 재촉했다. 저 미친놈의 말마따나 최초로 클리어할 수만 있다면 다른 여행자들과의 간극을 벌릴 수 있었다. 그의 머리에 특정인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일단은 공식적으로는 최초의 대륙급 재앙이다. 정체된 나 스스로를 성장시킬 계기가 될 거라는 건 이견의 여지가 없어... 어쩌면 놈들과의 간극을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스스로 다짐을 하며 좁은 계곡길을 따라서 계속 걸었다. 계곡을 지나가자 그들의 눈에 거대한 분지 지형이 들어왔다. 험준한 골짜기에 둘러싸여 있었기에 외부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대장, 저기.”


“젠장할... 대체 어디서 저렇게 쏟아져 나오는 거야?”


“빨리! 빨리 들어가서 전부 죽이자!”


돌아버린 사내는 자신의 쌍검에 손을 얹으며 당장이라도 뛰어들 기세를 내비췄다. 레가릭은 그런 그의 안면을 가볍게 잡아 바닥에 비벼서 뒤로 던져버렸다.


“좀 닥쳐라. 아직 우리를 인식하진 못했으니까.”


그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가 생각대로 놈들의 본영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그게 있어야 했다.


“그 덩치는 어디에 있다는 거지?”


단순히 생각해도 계산상의 그 덩치가 여기 있다면 안 보일 수가 없었다. 분지 내부는 거의 완전한 평지라 따로 은폐할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흐으... 위치상으로는 여기가 딱 제격이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


평소에는 말하지 말라고 해도 쉬지 않는 녀석이 말을 걸어줬음에도 말을 하지 않았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너는 말만 대장, 대장 거리지 말고 좀 더 나를 존중할 필요가 있... 어?”


그 말이 끝날 때까지도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뒤를 돌아봤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돌아버린 부하도, 그 무엇도 아닌 텅 빈 공간이었다.


“하... 뭐야? 계속 혼잣말한 건가? 그새 또 어디로 샌 거야?”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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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1월의 층 (2) +1 21.02.23 89 1 12쪽
129 128. 1월의 층 (1) +1 21.02.16 87 1 11쪽
128 127. 분기점 (2) +1 21.02.09 90 1 12쪽
127 126. 분기점 (1) +2 21.02.02 8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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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3. 낙수 (3) +2 21.01.12 90 2 12쪽
123 122. 낙수 (2) +2 21.01.05 97 2 12쪽
122 121. 낙수 (1) +2 20.12.29 9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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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6. 카약스 공방전 (10) +2 20.11.24 11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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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108. 카약스 공방전 (2) +2 20.09.29 114 2 11쪽
108 107. 카약스 공방전 (1) +3 20.09.22 14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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