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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연재수 :
1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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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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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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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8. 카약스 공방전 (2)

안녕하세요~




DUMMY

스으으응, 캉! 펑!


그의 검이 비로소 목표에 다다랐을 때, 도저히 검과 검이 마주쳐 낸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수준의 굉음이 그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격렬한 힘을 교환한 것 치고는 비교적 고요한 그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 일대는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거의 반경 10여 미터 내의 모든 것에 날붙이에 당한 상처가 가득했던 것이다.


“으윽...”


“시몬! 너, ㅍ,팔! 팔이...! 정신 좀 차려!”


하필 운이 나쁘게 근처에 있다가 찰나의 검풍에 휘말린 것인지 제국군 갑옷을 입은 병사 몇몇이 절단된 신체 부위를 부여잡고 쇼크에 빠져있었다.


“쯧, 도움도 안 되는 녀석들이... 멍청하기까지 하군.”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에게 다가간 크레이만이 마나를 담은 손으로 그들을 잡아서 던져버렸다.


크레이만은 그들을 단순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한 전쟁도구. 그렇기에 그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재차 검을 앞세웠다.


다만 그게 후작의 눈에는 사뭇 다르게 비춰졌다.


“마저 이어가지. 방해물은 치웠다.”


“이거 의외로군. 방식은 격하지만 본질은 사악하지 않아.”


“...웃기지도 않은 소릴.”


후작의 앞으로 순식간에 다다른 크레이만의 발에 희뿌연 마나가 맺혔다.


텅!


하지만 후작 역시 최소로 치더라도 그와 동급에 준하는 상대였다. 상당히 변칙적인 수이긴 했지만 검도 사용하지 않은 조악한 일격이 그에게 닿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도 주먹에 마나를 모아 가볍게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일반인들과는 각자가 느끼는 시간의 밀도부터가 다른 저 너머의 경지. 팽팽하게 밀고 당기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흐름은 어느 한쪽의 흐트러짐도 쉬이 용납하지 않았다. 각자가 최고의 반열에 오를 재능과 그에 맞는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들이었기에 먼저 집중력을 놓치는 쪽이 패배하게 될 살얼음판과도 같은 대결이었다.


여력을 둘 여유조차도 없었다. 둘 다 마주 선 상대를 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서로가 쥔 검, 가슴팍에 품은 단검, 두 손과 두 발까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각도에서 검과 주먹이 쇄도했다.


챙!


분명히 사선으로 벤 검은 초격에 빗나갔을 터였다. 그런데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힘의 방향이 거의 정반대 방향으로 바뀌어서는 연속적인 공격이 들어왔다. 인간의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운동 능력이 아니었다.


“크읏...”


공격하는 크레이만 뿐만 아니라 받아내야 하는 마스커레이드의 손목에도 과부하가 오기 시작했다. 그를 이길 자신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허나 큰 반동 없이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리 경지를 넘은 육체라도 이런 충격을 아무런 제약도 없이 견디기란 요원한 일이다.’


막아내던 그의 감각에 크레이만의 검에 흐르는 마나가 잡혔다. 검에서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는 얇지만 극도로 응축된 마나.


“일종의 추진기인가? 그런 식으로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그대도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한다면 그런 몸을 깎는 방식의 운용이 좋지 않다는 건 알 텐데?”


크레이만은 별다른 대답 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검이 끝부터 서서히 검게 삭아 들어가고 있었다. 불완전했기에 더욱 비효율적이게 폭발하던 검의 마나를 그의 검이 견디지 못했던 것이었다.


어느새 손잡이만 흉흉하게 남아 더는 검이라고 부르기도 뭣해진 걸 발치에 던진 크레이만이 길었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포기하지, 애시당초 쉽게 이길 수 있을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강한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군. 나도 검의 길을 걷는 한 명의 검사로써 당신이라는 기사에게 경의를 표하지.”


그가 손을 우측으로 뻗자 그의 손에 눈부신 빛무리가 어렸다.


“아공간?”


“시간도 촉박하니 이제 순수한 검술로 제압하는 건 포기하겠다.”


빛이 떠난 그의 손에는 좀 전에 검게 타버린 것과 완전히 같은 종류의 롱소드가 들려있었다. 그의 수준에 맞지 않게 다소 약하다고 생각했더니 검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부류인 걸로 보였다.


한순간에 변해버린 패도적인 기세에 후작은 검을 잡은 두 손에 긴장을 담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냥 끝낼 생각은 없군. 벌써 피날레를 보여주려는 건가?”

 

크레이만은 대답하는 대신 검에 빛을 불어넣으며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스승 소르다스에게 사사받은 극한의 검로. 아직 충분한 경지에 오르지 못해 사용하는 데에 상당한 리스크가 동반되겠지만 그의 발로 여기까지 직접 온 이상 무언가 보이는 또렷한 성과가 필요했다.


후작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그에 맞설 수 있는 일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크레이만에게 소르다스가 있었다면 정식 스승이라는 개념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도 미드레이가 있었다. 그와 종종 대련이란 형식으로 검을 섞을 때마다 견식할 수 있었던 그의 드높은 경지.


모든 것을 파괴할 것만 같은 그의 묵직한 검을 살짝 비틀어 속도를 추구하는 자신의 검에

적용했다.


‘진짜와도 같은 가짜를, 실재하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환검(幻劍)의 묘리.’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검의 형상들이 그의 주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동의 자세로 기운을 모으던 둘 중 먼저 움직인 것은 크레이만이었다. 그는 파괴적인 기운을 제어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걸로 보였다. 그의 검이 그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붕괴 직전의 검을 쥐고 반대편 손으로 허리춤에 걸린 두 자루의 검을 감쌌다. 최초에 그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검은 세 자루.


“모든 걸 포함한 이 공격. 어차피 이런 파멸적인 검은 이제 몇 번밖에 못 휘둘러. 막아낼 수 있다면 그쪽의 승리. 그렇지 못한다면 나의 승리. 거부권은 당연하게도 없다.”


“좋아. 간단명료하군.”


이미 금이 쩍쩍 갈라져서 겨우 형체만 유지하는 게 고작으로 보이는 그 검에 물리력은 더는 의미가 없어보였다. 마스커레이드도 최후의 최후까지 마나를 끌어올렸다.


크레이만이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는 동시에 기어코 검이 산산조각이 났고 수십 수백 개로 나뉜 파편들이 후작이 서있던 방향으로 일제히 쇄도했다. 아마 단 몇 초 뒤면 조각난 날카로운 쇠붙이들이 모두 강맹한 마나를 두른 채로 일시에 날아올 것이다. 최악이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새로운 검을 뽑아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침착해라. 수가 많기야 하다만 결국 눈속임과 심리적인 압박감에 불과해. 애초에 전부 상대할 필요도 없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할 것들은 피하면서 쳐낼 수 있는 것들은 쳐내면 되는 부분이야.’


그의 판단은 그 무엇보다 빨랐다.


단순히 검의 속도로만 판단하더라도 미드레이의 검이 훨씬 매서웠고 빨랐다. 겨우 이런 칼날 파편이라고 막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떠오른 마나 소드(Mana Sword)들이 그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스쳐지나가는 환상의 검일 뿐이더라도 그 잔상에는 그의 마나가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감각을 극대화해라. 마스커레이드! 상대보다 우월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기회는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 속도는 너의 것이다!’


“스읍... 후우...”


더는 주저할 여유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단지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것이 기사인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챙! 채앵! 푹!


최초의 파편을 시작으로 그가 휘둘렀던 검의 잔영들이 파편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뭐, 날아드는 파편의 수도 수였기에 어쩔 수 없이 일부는 이도 저도 못하고 그에게 도달해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부였다. 마나의 잔영으로 타격한 파편의 경우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대상으로 향하는 궤도 자체를 비트는 것이 가능했다.


“크읍...”


좌측 어깨에 결코 작지 않은 관통상 하나. 살을 그대로 관통하는 격통에 입에서 자연스레 신음이 흘렀다. 가슴을 타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프다. 이렇게 목숨을 위협받으며 검을 나누는 것이 대체 얼마만의 일인가!’


전투 자체에서 오는 몸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고양감. 아프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찾아오는 건 확실한 죽음. 왼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찰나의 순간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오른쪽 손으로 고쳐 잡았다.


이미 두 번째 검도 휘두른 이후였고 세 번째 검에도 마찬가지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전진한다고...?’


그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제자리에서 머무는 게 아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파편의 폭풍을 흘리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크레이만의 눈에는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당초에 계획했던 세 번째 검으로도 마스커레이드를 제압할 수 없었다.


“크읍...!”


한계는 이미 넘어선 뒤였다. 검은 남아돌았다.


그가 다섯 번째의 검을 휘두른 직후, 이미 공격의 반동으로 터져나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의 오른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른손을 지혈하며 사태를 관망하는 것뿐이었다.


미묘한 시간차를 두고 날아가는 마나를 담은 쇠붙이들. 마스커레이드 후작의 정신을 끊임없이 혹사시켰다.


스으윽... 캉! 펑!


상반신을 덮은 크고 작은 자상들, 한눈에 보이는 크기의 3개의 관통상. 이미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은 스쳐지나가는 파편들로 너덜너덜해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걸로 보였다. 그가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턱.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크레이만의 입장에선 폭풍우가 격렬하게 치는 밤의 천둥보다도 커다랗게 다가왔다.


“마지막... 하나.”


기어코 그는 도달하고야 말았다. 몸 어느 곳도 성하지 않았지만 그는 당당하게 크레이만의 앞에 도달했다. 그가 모든 것을 쏟은 일격을 견뎌낸 것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검을 들어 크레이만의 목을 겨눴다.


“검은 검사의 목숨. 피로 절여진 인생. 또 죄가 늘어가는구나.”


영겁과도 같은 대치가 잠시간 이어졌고 먼저 입을 뗀 것은 크레이만이었다.


“그래,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진 것 같군.”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가 입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남해 청년들 특유의 시원함이 묻어나오는 웃음이었다.


“오늘 준비한 내 여력은 모두 떨어졌어. 확실히 강하군.”


“후우...”


“이번에는.”


‘잠깐! 이번에는?’


뭔가 깨닫고 다급하게 마지막 힘을 짜낸 마스커레이드가 그의 목을 쳤지만 그의 검이 베고 지나간 것은 텅 빈 허공뿐이었다.


“탈출용의 단발성 마병인가.”


그가 떠난 공허한 자리에는 은은한 마나의 잔향만이 남아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반지가 스스로를 밝히던 빛을 잃어가며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아... 지치는군. 당분간은 좋든, 싫든 열외겠어.”


털썩.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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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22. 낙수 (2) +2 21.01.05 98 2 12쪽
122 121. 낙수 (1) +2 20.12.29 9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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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7. 카약스 공방전 (11) +2 20.12.01 136 2 11쪽
117 116. 카약스 공방전 (10) +2 20.11.24 11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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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114. 카약스 공방전 (8) +2 20.11.10 9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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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카약스 공방전 (2) +2 20.09.29 115 2 11쪽
108 107. 카약스 공방전 (1) +3 20.09.22 141 3 13쪽
107 106. 2막 프롤로그 +3 20.09.15 152 3 7쪽
106 105. 비를 긋다 (15) +2 20.09.08 13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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