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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연재수 :
1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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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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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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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114. 카약스 공방전 (8)

안녕하세요~




DUMMY

◎◎◎◎◎





팔마스강 남부. 팔만 남부의 국경지대로부터 십 수 일정도 거리에 있는 대평원. 한산한 평원 곳곳에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대자연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풀을 뜯던 짐승들이 일제히 귀를 쫑긋 세우고 무언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쿠궁-!


굉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쿠구구궁!


처음의 이질적인 변화에서 곳곳으로 굉음이 퍼져나갔다. 고요한 초원 곳곳에 각각의 크기가 언뜻 첨탑에 준할 정도로 두텁고 거대한 석주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흔히는 볼 수 없는... 아니, 존재한다는 게 의심이 갈 정도로 놀라운 비경이었다. 흙먼지와 함께 솟아오르는 그 석주들에 의해 이미 오래도 전부터 초원에 뿌리를 내렸던 초목들은 그 결속력을 잃었고 초원의 짐승들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대한 움직임에 숨을 죽일 뿐이었다.


쿠궁-!


대체 언제쯤이나 끝이 날까? 기다림만 길어지던 그때, 마지막 석주를 끝으로 지상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단위 마법 중, 솟아오르는 대지라는 마법이 이와 유사한 효력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 위력의 수준이 달랐다. 일개 마법이 그런 위력이라니? 절대로 일개 개인이 수행한 마법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솟아오른 수많은 석주들. 놀랍게도 마구잡이로 솟아오르는 줄로만 알았던 석주들은 하나의 패턴을 가지고 하나의 거대한 ‘무언가’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갑작스레 대초원의 한가운데에 축조된 초거대 건축물. 인류의 역사, 아니 대륙의 역사를 뒤져봐도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적이 있었을까? 각각의 석주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정교함은 상식을 아득히 넘어선 기술이었다.


신이라는 존재가 아직 대륙에 가까이 머물러 있다면 그가 벌인 일이 아닐까? 그것밖에는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고요한 지상과는 반대로 지하에서는 여전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땅울림이 느껴졌다.


그것에 새겨진 고식의 글리프. 고대의 대륙이 속삭이던 언어. 그것은 라비린스(Labyrinth). 믿기지는 않지만 하나의 거대한 미궁이었다.





◎◎◎◎◎






빛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 삼켜진 공간,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손가락 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기척도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딱,.. 딱,.. 딱,..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대체 언제까지 지속이 되는 걸까? 그건 당사자만 알 일이었다. 그 무료함 속에서 시간들이 차례로 죽어갈 때 즈음, 어둠을 삼킨 공간 전체에 미약하지만 진동이 일었다.


끼익... 달그락... 달그락...


진동으로 탁자 위의 물건들이 위태로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흙부스러기 따위가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그(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두드릴 뿐이었다.


진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서서히 그 강도를 높여갔고 물건들이 하나, 둘 떨어졌다. 지루함? 조바심? 초조함? 이내 진동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그와 동시에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도 멈췄다.


“음... 흐응~ 늦었네.”


짧은 신음 끝에 눈을 뜬 그(그녀)의 눈동자는 보라색. 매우 맑으면서도 사이한 보랏빛이었다.




◎◎◎◎◎





“할아버지! 땅이 막 흔들려!”


“아가, 천천히 이리 오거라. 분명히 별일 아닐 테니 겁을 먹을 필요도, 굳이 걱정할 필요도 없단다.”


마을 외곽의 한 오두막, 한 아이가 그의 조부가 앉아있던 흔들의자로 달려갔다. 이 유례없는 진동에도 소년의 조부는 겉보기에는 일체의 흔들림도 없이 침착하게 아이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괜찮다. 아마 전부 괜찮을 게야.”


진동은 머지않아 잠잠해졌고 이내 완전히 사그라들었지만 노인의 깊은 눈동자는 남쪽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과연 그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이야기가 어찌 흘러가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보고 들은 걸 기록하는 것이겠지만...”





◎◎◎◎◎





“허어어! 이게 뭐야!”


“꺄아아아!”


“지진인가!?! 다들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떨어질 낙하물을 조심해라!”


막아서는 알랭을 뒤로 하고 그대로 거리로 나선 프리드와 로레인을 반긴 것은 도시 전체를 강타한 거대한 진동이었다.


“이런 젠장! 탈환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 이 망할 영감탱이가 노망이 났나! 도시를 통째로 날려버리려는 거야?”


진동은 더욱 거세져 건물들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고, 신체 강건한 성인 남성조차도 제 자리에서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 수준으로 땅이 울렸다.


“이게 정말 대공님이 벌인 짓이라고요?”


믿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너무 과한 처우가 아닐까 싶었다. 대충 들은 것과 조합해서 생각했을 때 블렌하임의 대마법의 여파로 보는 게 맞았지만 어딘가 많이 비틀려있었다.


“젠장! 나도 몰라! 일단 엎드려라!”


프리드도 지진이라는 재해를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래 살았던 한국에서도 지진이라는 재해는 먼 나라의 얘기였으니까. 막연히 표현하자면 바로 근처에서 수류탄이 연달아서 터지는 느낌이었다.


‘젠장. 전역한 지 2년이 훨씬 넘었는데 이런 진동을 다시 맛보다니.’


“어? 어어어!? 어이! 첨탑! 거기 아가씨! 당장 거기서 나와요! 위험합니다!”


재앙의 혼란 속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프리드와 로레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급히 그 방향으로 쏠렸다.


“저것 좀! 종! 종이 떨어지려 한다!”


“꺄아악! 누가! 누가 어떻게 좀 해봐요!”


첨탑은 이미 반쯤 기울어져 시간만을 다투는 위태위태한 상황이었고 종의 무게가 한쪽으로 크게 쏠린 탓에 실시간으로 붕괴하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요!”


첨탑 아래에 다리를 다친 것인지 상황에 눌려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인지 한 여성이 벌벌 떨고 있었다.


“눈 감아라. 로레인.”


“네? 하지만...”


“고개 돌려.”


구할 수 없다. 자신은 초인 같은 게 아니다. 솔직히 일어서는 것도 고작인데 이런 불안정한 자세에서 저런 거대한 종을? 확실히 이성적인 판단 아래에서 내린 결과였다.


‘처음 보는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로레인도 잠시간 입술을 뗐다 닫았다를 반복하더니 프리드의 심정을 이해한 것인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알고는 있었다. 영웅은 모두를 구할 수 없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미안... 미안합니다.’


“라이트니스 풋워크(Lightness foot walk)! 페더 폴(Feather fall)! 에어 워크(Air walk)!”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바람처럼 그들의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는 그대로 도움을 청하는 여성에게로 달려가 그녀의 앞에 섰다.


“에오스!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부탁할게!”


“넵! 디스펠(Dispel)! 중량화(Weightiness)! 스탠스(Stance)!”


남성은 그 자리에서 한 손으로는 검집, 반대편 손으로는 검의 손잡이를 잡고 뽑을 때를 기다렸다. 흔들리는 대지와 다르게 그의 몸에 떨림은 없었다.


(어떻게 이 진동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


(아까 저기 여성분이 캐스팅한 마법? 그 안에 에어 워크라고 있었잖아요.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저 남자는 아마 허공에 떠있는 상태일 거예요. )


‘그런 방법이... 하긴, 땅이 흔들리면 땅을 안 밟고 있으면 되는 거지.’


물론 허공에서 멀쩡히 균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거대한 종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려는 중력의 힘과 부동자세로 선 그의 거리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멈춰있던 그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찰나의 빛이 지나갔다.


거대한 종은 어느새 양단된 채로 그의 양옆으로 떨어져 있었고 그는 이미 검을 집에 갈무리하고 있었다. 마침 진동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혹시 일어서실 수 있는 분, 여기 계십니까? 급한 대로 일단 이 아가씨 좀 부탁할게요! 그럼!”


등장부터 퇴장까지 그의 검처럼 빠른 순간에 이뤄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들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저건 거합술... 거기에 저런 속도라니... 나이트 캐벌리(Night Cavalry)의 아서다! 제국! 밤의 기사야!”


“그렇다면 옆에 있던 여자는 고요한 사제 에오스인가?”


“하지만 대륙 서부에 있을 영웅의 일익들이 어째서? 어째서 그들이 지금 블레임에 머무르고 있는 거지?”


자리를 털고 일어난 프리드도 조금 전의 상황을 되새겼다.


“단말기가 있었어. 그 말은 저 아서라는 녀석도 여행자겠지?”


검을 다루는 솜씨에 몸이 저릿할 정도였지만 그래봤자 비슷한 궤의 헨릭보다는 덜했다. 거의 완벽한 상위호환의 검을 이미 목도한 경험이 있었기에 호승심이 일었다.


‘만약 그 검이 내게 향했다면 나는 반응할 수 있었을까?’


“되게 애 같은 표정을 하고 계시네요.”


그가 생각에 잠기려는 순간 로레인이 그를 끄집어냈다.


“음? 아. 그냥. 나라면 반응할 수 있었을까? 대충 그런? 뭐, 다시 만날 일이야 있겠냐만은.”


단순히 스쳐지나간 것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장에는 접점이라고 할 게 없었으니까.





◎◎◎◎◎





다친 여성의 처우는 프리드네가 손수 담당했다. 가벼운 상처였기에 로레인이 직접 치료했고 프리드가 업어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 것인지 업혀서 가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지진의 여파인지 거리는 대부분 난장판이었다. 둘 다 쓸데없는 오지랖이 있는 부류라 팔자에도 없는 자선사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 금세 해가 떨어졌고 피로를 느낀 탓인지 하루가 쉬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근 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을 그와 붙어 다니던 콘쿼러.


그 검이 사라진 것을 안 시점도 여관방에 들어오고 난 뒤였으니. 창고를 나설 때, 알랭이 손에 쥐어준 쪽지도 마침 생각나서 펼쳐보았다.


<모레 정오까지.>


짧지만 용건은 확실했다.


“아마 볼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을 말하는 거겠지?”


전시 상황이란 여러모로 특별했다. 아무리 여행자에 따로 용병패를 소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입성 검문에 걸리지도 않았던 여행자가 덜컥 성안에서 발견된다고 하면 여러모로 귀찮을 것이 뻔했다.


“모레 정오라고 생각하면 당장은 널널하다고 보네요. 여기서 나가기 전까지는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요.”


“그러게.”


“그래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없을까요?”


“없어. 있어도 이쪽에서 나서서 해줄 생각은 없다.”


“하긴...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런 취급과 시선을 받았는데 제가 조금 성급했네요.”


로레인의 눈에 측은함이 깃들었다. 당한 게 있어서 유독 여행자에 있어서는 엄격한 점이 있었다. 뒤돌아 앉아있던 프리드는 그걸 보지 못했지만.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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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카약스 공방전 (8) +2 20.11.10 9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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