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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곰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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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곰
작품등록일 :
2020.05.20 11:51
최근연재일 :
2020.06.19 18:2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882
추천수 :
959
글자수 :
167,524

작성
20.06.06 00:40
조회
470
추천
47
글자
12쪽

16. 잘 할 수 있어! 멋지게!

DUMMY

암흑은 더욱 짙어져 의식조차 할 수 없었다.

색의 감각마저 없어진,

무(無)의 세계가 이럴까?


거진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주마등처럼 떠오른다는 과거도 없었다.

지구의 만유인력조차 무시한 무중력감,

아무 느낌도 존재하지 않는 무감각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기릭 기릭······!’


언젠가 들었던 익숙한 소리에 거진은 눈을 떴다.


세로로 길다란 모니터가 보였다.


‘s시그널’


[게임을 종료하시겠습니까? YES / NO]


달랑 하나뿐인 게임앱도, 종료를 알리는 문구도 역시나 세로로 쓰여 있었다.

알고 보니, 얼굴 옆면이 책상에 닿아 있었다.

고개를 바로 하려고 했으나, 그조차도 들 힘이 없었다.

숨 쉴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꺼져들어가는······.

촛불의 파라핀이 모두 연소되고 마지막으로 심지에만 간신히 불꽃이 남은 듯한 ······.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 들었다.

안 좋은 느낌이었다.

숨이 곧 꺼질 것 같았다.


'이 멍청한 새끼야······!'


이명처럼 들려오는 소리가 그나마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몸이 굼벵이가 된 건지, 책상에 놓인 핸드폰을 터치하는 데만도 한나절은 걸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음성이 들렸다.

그러나 거진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오직,


“살려주세요······.”


소리만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


병원에 어떻게 옮겨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거진의 손에는 아주 옛날에 가지고 놀던 골든 리트리버 강아지 인형이 쥐어져 있었다.

앞다리에 꿰맨 자국이 있는 걸로 보아 거진 자신의 것이 분명했다.


‘이게 왜 여기에······?’


아버지와 피시방 사장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피시방 사장의 머리 위에 이상한 것이 떠 있었다.


[조사극 - 노예근성지수 : 3.0]


“하하. 웃겨. 이름이 조사극이 뭐야?”


거진이 웃자, 아버지 임무생과 피시방 사장 조사극이 귓속말을 나누었다.


‘저놈이 형님 이름을 어떻게 알지요?’

‘스페셜 스킬을 익혔음에 틀림없구나. 내 상태창이 떴음이로다.’

‘어떡하죠?’

‘모르겠노라. 어쨌든 난 빨리 가서 차원문 폐쇄부터 해야겠도다.’


거진은 자신이 아직 게임 안에서 못나온 것으로 파악했다.

죽으면 ‘무덤부활’처럼 원위치로 오는 시스템이 아닌가.

그렇다면, 손에 들려 있는 강아지 인형 ‘미어’는 뭔가?

그리고 왜 아버지 머리 위엔 상태창이 뜨지 않는가?


“어디예요? 여긴?”


거진이 아버지 무생에게 물었다.


“여긴 병원이지. 이놈아!”


아버지가 속상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게임 속 아니에요? 광화문길드 같은 거 없어요?”


거진은 아직도 어리벙벙했다.


“거기 아니니라.”


이번엔 피시방 사장 사극이 대답했다.


“사장님은 어떻게 그 게임을 알아요?”


거진이 물었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로구나. 궁금한 것이 많겠다만, 일단 푹 쉬도록 하거라.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아드님 몸조리 잘 시키고, 자네도 몸 건사 좀 하면서 하고.”


그러면서 조사극이 병실문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거진이 조사극을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사장님도 그 세계 사람인 거죠? 그러니까 상태창이 뜬 거잖아요? 아유무, 지은, 인덕 모두 알죠?”


조사극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 끝났으니, 잊어버리고 살도록 하라. 그냥 꿈인 듯······.”


라고 말했다.


‘꿈인 듯 여기라고요? 그게 어떻게 꿈이 되는데요?’


그 착한 인덕이 불덩어리가 되어 비명을 지르고,

잘린 지은의 목이 눈앞에서 눈도 감지 못한 채 나뒹굴었는데······.


거진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물기가 가득했다.


“말도 안돼요! 저, 거기 다시 가야 해요!”


거진이 병상에서 내려오려 몸부림치자,


“이놈아, 가만 좀 있어!”


무생이 거진을 잡았다.


“난 가서 빨리 정리할 테니, 아드님 잘 돌보시게나.”


사극이 서둘러 나갔다.


“정리라니, 뭘 정리해요?”


거진은 혼신의 힘을 다해 무생을 밀쳤다.


“쯧쯧, 인생일장춘몽이거늘······.”


막 문을 열고 나가려던 사극이 거진에게 붙잡혔다.


힘이 없는 거진은 쓰러지면서 순간적으로 손을 뻗어 사극의 옷을 잡았는데, 개량 한복 바짓가랑이였다.

그 바람에 사극의 바지가 벗겨졌다.

그런데 이 양반, 바지 속에 아무 것도 안 입었다.

뭘 입고 안 입고야 자기 마음이지만,

하필 그때 간호사가 들어섰고, 민망한 장면에 간호사가 놀라 소릴 질렀다.

경비가 쫓아왔고, 병실 안은 갑자기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조사극은 성추행범으로 몰리고 아버진 그런 조사극을 위해 변호를 하다, 공범으로 몰리고······.


그 와중에 거진은 기다시피 병원을 빠져나와 피시방으로 향했다.

비틀거리면 걷는 거진의 시야에


[게임을 종료하시겠습니까? YES / NO]


화면이 어른거렸다.


*


그러나 피시방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환자복 차림의 거진은 피시방 유리 문앞에 주저앉았다.

힘도 없고,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넌 왜 거길 왜 다시 가려는 거냐?’


유리문에 비친 거진에게 환자복을 입은 거진이 물었다.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잖아!”


‘뭔 상관이냐? 넌 그쪽 세계 사람도 아닌데?’


“맞아. 그런데, 그런데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야.”


‘아, 왜?’


“어렸을 때, 골목에서 여자아이가 나보다 키 큰 남자애들한테 맞는 거 본 적 있다. 그때 못이길 거 같아서 외면하고 도망왔는데······. 그날 밤, 나 이불에 오줌 쌌다. 이제 다 컸는데, 이불에 또 오줌 쌀 거 같아. 됐어?”


‘그럼 가야지!’


거진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팡!


손으로 유리문을 쳤다.

유리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팡! 팡! 팡!


와르르, 유리가 산산조각나면서 문이 사라졌다.

손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런 건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기릭 기릭’


소리가 나는 구석탱이 컴퓨터 앞으로 갔다.

화면은 아직 그대로였다.


[게임을 종료하시겠습니까? YES / NO]


거진은 피 묻은 손으로 마우스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NO'


를 클릭하려 했으나, 이놈의 마우스가 또 미끄러지면서 YES를 누르고 말았다.


“안돼!”


그러나 접속종료를 알리고 게임은 꺼졌다.

멍하니 있던 거진은 컴퓨터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 재부팅을 했다.


재부팅 되는 시간이 백년은 걸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화면이 열리고,


‘s시그널’


게임앱이 나타났다.

거진이 앱을 클릭하자, 바로 자동 로그인 되었다.

예의 그 시크한 표정의 여자가 나와 ‘19금 게임’ 표지판으로 가슴을 가린 채 말했다.


[s시그널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9세 이상 입장 / 19세 미만 거부]


[‘enter'를 클릭하기 전, 감당할 수 있겠는지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거진은 마우스를 움직여 ‘입장’을 클릭했다.


[어서오세요. 사랑 충만한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자가 가리고 있던 ‘19금게임’ 표지가 사라지면서 풍만한 가슴이 튀어나왔다.


‘두, 두, 둥, 둥!’


거진의 심장박동이 커졌다.

그리고 그 큰 가슴도 점점점점점점 커지더니


화면에서 가슴이 튀어나왔다.


물컹!


‘헉!’


동시에 사방이 깜깜해졌다.


‘이 촉감은······?’


눈은 뜰 수 없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각!


처음 이세계로 들어오던 날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이제 곧 비명이 들려오겠지.’


역시나,


“꺅!”

“저 변태 새끼! 신고해! 신고!”


좀 있다 경찰 두 명이 몰려올 테고...


역시나······!


“이봐요, 일어나요. 여탕에 와서 이러고 있음 어떡해?”


거진은 이번엔 기절한 척하지 않기로 했다.


눈을 뜨자, 그녀가 있었다.

내 눈 앞에서 목이 떨어져 죽어갔던 소지은이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것도 알몸으로!


거진은 반가워서 눈물까지 나려고 하는데,

소지은은 거진의 목을 움켜쥐었다.


“미친개가 광견병 주사도 안 맞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네?”


날카롭고 뾰족한 손톱이 거진의 목덜미를 파고들려던 찰나,

곧이어 나타난 경찰 두 명이 거진을 위 아래로 잡고는 경찰차에 태웠다.


거진은 끌려가면서도 웃었다.


첫 번째 왔을 땐 보지 못했던 소지은의 알몸도 실컷 보았다.


‘좀 있다 봅시다! 소지은 대장!’


거진은 살짝 손까지 흔들었다.


경찰서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재연됐다.


“젊은 사람이 왜 그래?”


오칠환이라는 이름의 늙은 경찰이 그렇게 말했고, 거진은


“왜 이렇게 됐는지 저도 참 궁금하네요.”


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젊은 경찰 장규석은


“이름이랑 주민번호...”


를 대라고 할 것이고, 거진은 군대 간다며 한번 봐달라고 했었다.

그러면 오칠환이 짠하다며 한번 봐주자고 할 것이었다.

그러나 소지은이 어떤 사람이냐며 안 된다고 장규석이 말한 다음, 거진의 주민증을 보며 놀랄 차례였다.


“임거진. 97년생. F랭크에 1레벨? 뭐야? 이건 거의 갓난아기 수준인데? 너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냐?”


역시나 같은 레퍼토리!


“뭘 하긴요······? 그냥 학교 다니고 군입대 앞두고 피시방 알바 하고 있었죠. 저 말썽도 안 피우고, 아버지랑 좀 싸우긴 해도 말도 잘 듣고······. 아니 근데, 정말 1렙이에요? 스페셜 스킬도 라면끓이기밖에 없고?”


상태창을 열어 확인하니 맞았다.


모든 게 다 초기화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거진은 한숨부터 나왔다.


재부팅한 결과인가.


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시험이었다.


이번엔 병신 같이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아유무, 너의 그 사악한 정체를 낱낱이 까발려줄 테다!


경찰에게 건성건성 대답을 하고 곧 다시 만나게 될 지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는데,


오칠환이 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얘가 군대를 가야 하는데 어쩌고 저쩌고······.’


눈물겨운 오칠환의 읍소가 계속될수록, 전에는 점점 내려갔던 거진의 어깨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게다가 F랭크에······ 연애고자······ ’


오칠환이 전화로 거진을 소개하는 동안 거진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그때는,


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연애물 싫으니 차라리 용사냥꾼······. 아니 그냥 NPC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식당 주인도 아니고 종업원 정도로. 아니면 원래대로 보내주든가! 하고 빌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잘 할 수 있어! 멋지게! 이 세계에서 가장 예쁜 여자 셋과 함께······!’


“자, 얼렁 사과해.”


늙은 경찰이 전화기를 거진에게 넘겼다.


“여보세요?”

[오, 너 그 변태!]

“네. 소지은님······!”


감개무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맞다. 늦으면 3대!’


“반갑습니다. 빨리 가서 뵙고 싶네요.”

[너, 사과를 지금 말로 하니? 어디서 그따위로 배웠어?]

“그럼요. 사과를 누가 말로 합니까? 얼른 가야죠.”

[여기 경찰서 앞 ‘하니’카펜데 빨랑 튀어 와라. 딱 10초 준다. 10!]


9, 8, 7, 6, 5, 4, 3, 2, 1, 0!

...


그때는 3초 늦었지만 이번엔 충분했다.

느긋하게 계단을 올라가도 3초 정도 여유가 있었다.


“하아!”


정확히 시간 맞춰 들어가려다가,

너무 방심했다.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굴렀다.


젠장!


후다닥 일어나 뛰어갔지만,


“3초 늦었다.”


시계를 보고 있던 지은은 그 표독스런 눈빛으로 거진을 째려보았다.


그날 그때처럼.


그런데 이젠 그때와 달리,


그 눈빛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작가의말

16회를 더 재밌게 보시는 방법.


2회와 비교해 보시면 더 재밌습니다. 


^^


주말입니다.


저는 밀린 일 하느라 개고생하겠지만, 


제 글 보시는 분들은 모두 즐겁고 행복하십시오!!!


선작, 추천, 댓글에 늘 목마른 드래곰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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