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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8,866
추천수 :
338
글자수 :
636,119

작성
20.12.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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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3화


“안녕 43호. 잘 잤어?”


터무니없을 정도로 43호 자신의 것과 닮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귀가 좋거나 음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높고 맑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 44호. 너도 잘 잤지?”


44호의 얼굴은 놀랄 만큼이나 43호와 똑같이 생겼다. 깊은 눈과 또렷한 눈썹, 높고 멋들어진 코까지.


43호는 머리칼을 뒤로 당겨 묶었지만, 44호는 일자 앞머리가 매력적인 단발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마치 쌍둥이 같다.


하지만 역시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44호의 얼굴은 조금 더 선이 부드럽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다지 눈썰미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44호의 흉부와 둔부에는 43호에게는 없는 매력적인 지방층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44호는 생물학적 여성이다.


찰칵. 그녀의 번호표, 아니 명찰이라고 불러야 할 그것이 흉부의 물방울 형태의 지방층에 눌려 파묻혔다.


“44호. 명찰 안 보인다. 교관님들이 또 잔소리 할 거야.”


“아. 하필 왜 나는 이런 몸에 걸린 거지? 뛸 때 거추장스럽다니까.”


44호는 명찰을 푼 뒤 조금 위쪽으로 올려 달았다.


“안녕 38호.” “안녕 35호.” “안녕 41호.” “안녕 46호.”


슬슬 옆 방의 놈들이 하나하나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라 하기에는 뭐하지만, 완벽한 경쟁자도 아니다.


하얗고 핏이 넉넉한 셔츠가 복도에 줄지어 나아갔다. 같은 셔츠였지만 단추를 목까지 잠구는 녀석부터 가슴팍을 휜히 드러내는 녀석까지 다양했다.


머리칼 역시 그 옷만큼이나 하얀색이었다. 길게 기르고 있는 놈, 반삭 수준으로 자른 놈, 뒤로 넘겨 묶은 놈,


우리들은 명찰 없이도 서로를 구분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우리들은 휜개미 때처럼 보일 게 분명했다.


***


꽤 넓은 섬 하나가 통째로 우리의 훈련장이었다. 연구원 님들은 혹시나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껏 배 한 척 지나간 적 없는 망망대해를 보고 있자면 뭔가 다른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날개가 달렸다 한들 아무도 나갈 수 없게 하기 위해서라던가.


“주목! 오늘은 이론교육 없이 바로 어제 하던 방어막 생성 훈련을 완료하겠다. 강한 방어가 아닌 순발력과 임기웅변을 보는 훈련이니,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쳐할 수 있도록!”


검은 옷에 붉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교관이 고함을 질렀다. C급 최상위 헌터인 교관은, 아직까지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교관이 한 손을 높이 들어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목마다 걸린 목걸이에서 철커덕 하는 소리가 났다.


아. 맞아. 목걸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넓이의 두툼한 목걸이는 착용자의 마력 사용을 막는 마법 물품이다. 그다지 고급은 아니라서 차고 있을 때도 상처 치유를 돕는 수준의 마력 사용은 가능하다.


교관들은 그걸 배려라고 말했었다.


“매일 같이 다치고 깨질 텐데 치유도 못 하면 어떻게 사냐?”


그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던 생색은 무색하다. 알고 있다. 그들이 마나가 완전히 차단되는 목걸이를 사지 못한 것은 예산 때문이다.


우리 머릿속을 만들어낸 나수빈 연구원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주었고, 그 중에는 마법 물품들의 잔인한 가격대 역시 들어가 있었다. 예를 들어 C급 헌터의 마력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C급 마법 물품 백여 개를 구하려면, 서울에 빌딩을 세울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거다.


“1조 준비!”


1번부터 20번까지의 클론들이 연병장으로 걸어 나갔다. 각자의 취향대로 자세를 잡고 마력을 끌어올리며 부상에 대비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연병장에는 바닷바람이 지독하게 불어왔다. 쓰고 짠 냄새가 났다.


철컥. 익숙하지 않은 차가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게이트 속 세상에서 현대식 기계병기는 고물이 된다. 헌터들의 무기는 모두 검과 같은 냉병기. 그래서 우리들에게 현대식 소총은 모습도 대응도 익숙하지 않았다.


“고무탄 장전 완료!”


국방색 교관복을 입은 조교들 20명이 차가운 총구를 겨누었다.


이번 훈련을 돕는 조교들은 헌터가 아니다. 군인 출신 헌터인 교관의 인맥으로 섭외해 온 특전사들이다.


“인당 300발만 방어하면 된다! 다치지 마!”


그들은 헌터를 모른다. 초인인 헌터의 시야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총기를 우리보다 훨씬 더 잘 다룬다.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그래서 총구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명령이기에 정확히 급소에 겨누고 쏘겠지만, 쏘면서도 살의를 담지는 못한다.


그쪽이 피하기는 더 어려웠다.


단발, 3점사, 연발까지 다양한 옵션의 불꽃이 자유분방하게 튀기 시작했다.


***


“3조 준비!”


2조 조원들이 사로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여기저기 터지고 부어오른 녀석도 있었다.


고무탄인 만큼 눈에 직격당하지 않는 이상 죽을 일은 없었지만, 살과 근육을 뭉개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스윽. 마력을 끌어올리며 스킬을 준비했다.


“조심해. 44호.”

“너도 43호.”

“우리 다치지 말고 돌아가자.”


42호가 슬쩍 뒤돌며 씩 웃었다. 분명 다 똑같이 생긴 클론들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장난기 많은 얼굴이었다.


다치지 말고 돌아가자, 훈련 중 심하게 다친 클론들은 의무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몸값이 생각보다 싸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바로 옆방에 살던 녀석이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고무탄 장전! 사격준비!”


“정신차리고 막아! 눈 똑바로 뜨고 스킬 준비해!”


숨을 들이쉬며 마력을 운용하자 눈앞으로 반투명한 스테이터스 창이 떠올랐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이 창의 형태와 상세함은 헌터의 무의식에 기초한다.


평소에 특정 게임을 많이 하던 헌터라면 그 게임의 스테이터스 창과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좋아하는 색이 있다면 그 색으로 보인다.


하나하나 값을 메기고 숫자로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면 잔여 체력과 마력량이 소숫점 아래 단위까지 표시된다.


반대로 감에 맞기고 즉석에서 이미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마력량은 고사하고 스킬 목록조차도 떠오르지 않는다.


방어 스킬:

ㄴ육각비늘방패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원형이라는 그 위대한 헌터는 그다지 많은 스킬을 개발, 사용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몇 안 되는 스킬도 마력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었다. 비효율적이다.


스윽!


“준비해!”

“화이팅!”


주변의 소리들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스킬을 발동했다. 30여 미터 거리에서 총구가 무심하게 불을 뿜었다.


제 아무리 반응 속도가 좋더라고 총알을 보고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동되는 스킬은 정신력과 마력의 힘으로 호모 사피엔스 종 육체의 한계를 가뿐하게 즈려밟았다.


탄환이 탄두의 스크레치까지 보일 듯이 다가왔다. 손을 뻗으면 간신히 닿지 않을 듯한 거리에 조각 하나가 점멸하듯 떠올랐다. 손바닥 크기에 여섯 모가 난 형태, 반대쪽이 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반투명한 푸른색이었다.


팅!!


철판에 부딪힌 듯한 반발음과 함께 고무탄두가 튕겨져 나갔다.


동시에 시야 오른쪽 위쪽에 게이지바의 형태로 존재하는 잔여 마력량이 몇 도트 분명하게 감소했다. 어제의 난투가 회복되지 않아, 전체 마력량의 4분의 1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팅! 팅! 팅! 팅! 팅! 팅! 팅!


푸른 조각이 점멸할 때마다 고무 탄두는 허공의 벽에 부딪히고 떨어졌다.


벌써 60발 이상은 막은 것 같다.


잔여 마력: 135/604


D급 하급의 마력량은 변변치 않다. 그래도 오늘 훈련 정도는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거다. 43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여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아악! 팔, 팔 맞았어.”


옆에서 들러온 비명 소리만 아니었어도 그랬을 거다.


44호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얀 옷이 졎어 비칠 만큼 땀이 삐질삐질 쏟아졌다. 화사한 단발 아래 드러난 목덜미에는 탄이 스친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바로 옆자리인 만큼 상처가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하얀 옷에 붉은 무늬가 무심한 노을처럼 수놓아졌다. 44호의 왼팔은 더 이상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는 전염된다. 유리관 안에서 깨어난 그 순간부터 알고 있었지만, 몰랐다 한들 금방 알 수 있었을 내용이었다.


공유되지 않는 공포보다는 공유되는 공포가 쉽게 번진다.


폭격 생존자가 비행기를 보고 공포를 느끼는 것을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게이트의 공포는 이 시대의 모두가 알고 있다.


누군가 게이트가 생겼다고 외친다면, 모두 비명을 지르고 눈알을 가뒤집으며 도망갈 테지.


우리에게 옆 친구들의 비명소리와 총상은 전염되는 공포였다.


“야! 44호 괜찮아! 다들 집중해! 흐트러지지 마!”


옆에서 42호가 외쳤다.


“뭐? 44호 맞았어?”


3미터 가량의 간격을 두고 20명이 좌우로 늘어섰다. 40번대 초반대인 왼쪽 끝과 50번대 후반대인 오른쪽 끝 사이에는 수십 미터의 간격이 있다. 총소리가 울리는 가운데에 쉽게 비명이 들릴 거리는 아니었다.


“뭐 좋은 거라고 소리쳐대고 있어! 모르면 아무 상관 없을 텐데! 너 때문에 괜히 흐트러지는 애 생긴다고!”


그래서 44호는 42호에게 앙칼지게 일갈했다.


“아악! 씨발! 씨발! 그만 쏴!”


“이미 흐트러지는 애 생겼잖아!”


공포가 전염되기 시작했다. 42호에게 살의가 피어올랐다.


“으악! 다리! 다리가!”


진짜, 실탄 맞은 것도 아니면서 왜 저리 호들갑인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야 오른쪽 위를 흘깃 확인했다.


“뭐가 제대로 잘못 돌아가는 것 같은데?”


잔여 마력: 92/604


마력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젠장. 안 그래도 효율이 좋지 않은 <육각미늘방패>를 너무 자유분방하게 사용했다.


철컥! 내 앞의 사로에서 다른 감각이 전해졌다. 짖궂은 장난기가 바람을 타고 남실남실 날아와 뺨을 간지럽혔다.


40mm 유탄발사기용 단일 탄두형 고무탄. 폭도 진압용으로는 딱 좋은 무기다.


그게 나에게 향하고 있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알고만 있을 수 있었겠지.


탕! 세상이 멈춘 듯이 사고가 가속했다. 공포와 설램으로 가득 찬 무의식이 자연스래 스킬을 조합했다.


공격스킬:

ㄴ원거리:

ㄴ중거리:

ㄴ단거리:

ㄴ체술: <부분 경화>


츠츠츠츠츠츠츳


손등이 살얼음이 낀 것처럼 반투명한 푸른색으로 얼어붙어 갔다. 굵은 핏줄들이 하얗게 달아오르며 단단하게 굳었다.


캉! 맹렬한 타격음이 손등에서 튀었다. 통증도 반동도 없이 깔끔한 방어였다. 안도감도 잠시, 빗발치는 고무탄 사이에서 또다시 짖궂은 장난기가 바람을 타고 왔다. 이번에는 산탄이었다.


잔여 마력: 74/604


몇 발이나 남았지? 카운트를 잊었다. 여유를 분배할 수 없다.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감각은 지독하게 선명했다. 한없이 느리던 주변의 속도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집중력을 잃은 최악의 순간에 궤적을 읽을 수도 없는 산탄이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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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2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8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6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2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2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1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9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7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8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6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8 2 12쪽
99 99화 +1 21.05.10 27 2 12쪽
98 98화 +1 21.05.07 42 3 12쪽
97 97화 +1 21.05.06 38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8 2 12쪽
95 95화 +1 21.05.04 35 3 12쪽
94 94화 +1 21.05.03 36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7 3 12쪽
92 92화 +1 21.04.29 42 3 12쪽
91 91화 +1 21.04.28 36 2 12쪽
90 90화 +1 21.04.27 46 3 12쪽
89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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