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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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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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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글자수 :
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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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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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9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99화


43호는 육각미늘방패 조각을 부수며 하늘에서 뛰어 내렸다. 44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반혼 기사들이 이를 갈았다. 희비가 엇갈리는 점을 찍었다.


네 번째 반혼 기사가 소검과 단검을 꼬나들고 이를 드러냈다. 눈빛에 살기가 형형했다. 뒤통수가 찌릿찌릿할 정도였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게, 건방지다.”


역장도검을 불러내고 중력조작으로 무게를 더했다. 밤바다 같은 색으로 물든 대검을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내리쳤다.

소검과 대검이 부딪히는 순간, 반혼 기사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생각보다 무겁지?”

오랜지색 눈동자에 경악이 가득 차 올라왔다.

다음 순간 으직, 소리가 났다. 네 번째 반혼 기사가 구둣발에 밝힌 딱정벌레 같은 모습이 되어 꿈틀거렸다. 머리가 목으로 파고 들어가 우스깡스러웠다.


다섯 번째 반혼 기사가 끝이 녹아내린 레이피어를 겨누었다. 죽더라도 잇자국 하나 정도는 남겨주리라는, 생전의 각오를 되살린 눈빛이었다. 호승심을 느끼며 대검을 꼬나든 찰나, 44호의 열선이 등 뒤에서 날아왔다. 반혼 기사의 손을 불태웠다. 레이피어와 말라 비틀어진 손가락 몇 개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44호. 죽이지는 말아줘. 이것도 가져가면 부산물로 인정받을 거야.”

“쓸모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이런 걸 굳이?”


중력도검을 툭 내려놓았다. 땅에 닿은 칼끝에서 검은 색이 벗겨지듯 날아가고, 반투명한 푸른색의 육각미늘방패가 싸레기눈처럼 흩어졌다. 두 주먹을 경질화시켜 한 번 부딪혔다.


“뭐라도 가져다 바쳐야 미르한이 우리를 예뻐라 해 주겠지.”

허벅지에 박힌 단검을 힘껏 빼며 44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 지금...내가 빈말로라도 몸이 멀쩡하다고는 못 하겠어서.”

“염려 마.”

43호는 새파란 마나를 핏줄에 흘리며 대답했다. 44호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보자마자 알아챘다. 플레이트가 다 깨져 있어서 전투복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했다. 오른쪽 어깨에는 경질화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왼쪽 옆구리의 자상은 척 봐도 상당히 깊었다. 주술에 휘말려 추락했을 테니 그 충격도 상당할 것이다.


감히, 하고 입 안에서 중얼거렸다.

‘우리가 너희 같은 잡졸 따위를 상대하려고 죽을 고생하면서 연수원에서 나온 거 같아?’

선물 같은 삶을 44호에게 바칠 각오를 했다. 언데드 따위의 버러지들에게 잃기에는 균형이 안 맞았다. 이마와 눈이 뜨거웠다. 당장이라고 돌격하고 싶었다. 얼굴을 후려치고 몸통을 짓이기고 싶었다.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는 걸 새삼 자각했다.

분노했다.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만큼.

‘더 강해질 거야. 부귀와 영화, 누군가에게 존중받는 삶. 세상을 지켜내고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을 거야.’

이것저것 뒤섞인 목표, 분명한 건 안정적인 삶과 옆에 선 44호.

땅, 총성 같은 울림이 일며 43호의 몸이 쏘아져 나갔다. 다섯 번째 반혼 기사는 갈비뼈 안쪽에서 단검을 빼들었다. 경질화한 손날과 단검이 부딪히자 불꽃이 튀었다. 단검 이가 빠지고 손날에서 수정 가루가 튀었다.

“단검으로는 이런 거 못 하지?”

경질화한 손으로 단검을 틀어쥐었다. 반혼 기사가 팔꿈치를 당기며 단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순순히 놓아 줄 생각은 없었다. 그대로 손목을 비틀었다. 잠시 힘줄이 당겨지나 싶더니, 끈이 끊어지는 것 같은 반동과 함께 단검이 동강 부러졌다.

“XXXXXX!”

반혼 기사가 몸을 뒤로 기울이며 물러났다. 갈비뼈 아래쪽으로 왼손을 집어넣으며 다른 칼을 찾았다.

그대로 돌진하며 왼손 팔뚝을 걷어찼다. 막 빠져나오던 손이 다시 새장 같은 갈비뼈 안쪽으로 처박혔다.

“축하한다.”

경질화한 주먹으로 명치를 후려쳤다. 반혼 기사가 입을 쩍 벌리고 채액을 토했다.

“영원히 살고 싶었지?”

주먹 마디에 살점이 묻어나도록 턱을 올려쳤다. 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이빨 몇 개가 옥수수 알갱이처럼 튀어올라 나뒹굴었다.

“그래서 언데드가 된 거잖아.”

놈의 눈이 적황색으로 타올랐다. 건방진 눈빛이었다. 잘려나간 오른손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뼈를 칼처럼 내질렀다.

“너는 아주 오래오래 살 거야.”

카드드드드득, 경질화한 손이 뼈 칼을 돌바닥에 문댔다. 푸른색으로 물든 손가락은 돌을 갈아냈지만, 뼈 칼과 말라붙은 살점은 돌에 갈려나갔다.

“불루문 길드, 아니라면 콘체른 길드의 연구실에서.”

척추를 말며 고개를 한껏 치켜 올렸다. 이마를 경질화하고 정통으로 반혼 기사의 흉곽을 내리찍었다. 숨도 안 쉴 놈의 목구멍에서 가스가 밀려 나왔다.


“그러다 죽겠다. 그만 해.”


43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반혼 기사의 머리체를 잡고 질질 끌며 44호에게 다가갔다. 몇 시간 전보다도 수척해진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너, 많이 다쳤어. 못 이길 것 같으면 하늘로라도 도망치지.”

아슬아슬하게 여기까지 수정구슬 빛이 닿았다. 44호의 뺨에는 깊은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

“열심히 발버둥쳤지. 역시 근접전은 취향이 아니라니까.”

“너 죽을 뻔 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걸? 너랑 나, 앞으로 몇 번이나 죽을 뻔 할 것 같아?”

43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44호는 아직까지는 잘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으로 43호의 왼손을 감쌌다. 말라붙은 반혼 기사의 살조각을 털어 냈다.

“43호. 날 잃을까 두려워하는 걸 알아. 내가 죽어도 한동안 네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걸 알아. 하지만 헌터가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마주해야 하잖아.”

갈갈이 찢긴 반혼 기사들의 시신을 한 번 둘러보았다.

“등을 돌리면 쉽게 죽어. 내가 싸우기 않았다면, 저것들이 내 등을 잡았을 거야. 그럼 넌 내 시체랑 마주쳤겠지. 날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걸 알아. 나도 널 지켜주고만 싶어. 이건,”

“망할 잡념이지.”

“그래. 망할 잡념이야. 이래서 헌터가 사랑을 하면 안 되나 봐.”


43호는 마나를 끌어 모으며 44호의 뺨을 쓸었다. 막 아물어가는 상처가 약간 벌어지고, 44호가 눈썹을 움찔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가자. 죽여야 할 것들이 남았을 거야.”


한 손으로는 44호를 안아 들고, 한 손에는 반혼 기사의 머리체를 쥐었다. 밤바람 맞은 손이 시렸다. 육각미늘방패 조각을 밟고 하늘을 내달리며 생각했다.

역시 나는 아직 약해.


***


“찾아왔냐?”


고은유가 작은 바위에 걸어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C급 헌터 몇몇이 끓인 물에 가루 우유와 커피를 타 돌렸다. 또다른 C급 헌터는 B급 헌터들의 방패를 수선했고, A급 헌터들의 갑옷과 검을 받아 기름칠했다.

한참 동안 방패벽을 유지하던 B급 헌터들은 찌뿌둥한 허리를 펴고 목을 풀었다.

언데드 군세는 전부 물러났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산처럼 쌓여있어야 할 시체는 먼지로 사그라진지 오래였다.

“아까 잘했다. 자잘한 놈들이 쌓여서 방어선이 무너지는 건데, 너 덕분에 쉽게 막아냈어.”

“전기 타입에 중거리. ‘강한 소수’도 ‘약한 다수’도 전부 커버가능. 은유 님. 얘 탐나지 않으세요?”

67호는 A급 헌터들 사이에 앉아 부드러운 라떼에 달달한 비스켓을 찍어먹고 있었다. 소동물마냥 둘러쌓인 상황이 부담스러워할 만도 하지만, A급 헌터들의 칭찬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과, 과찬이십니다. 저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리수 님이 쓴 물색의 파동은 어떻게 쓰는 건지 감도 못 잡겠더라고요. 시ㅂ...반충헌 님 돌진기도 진짜 부럽습니다.”

리수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그냥 힘으로 밀어붙인 거야. 그런데 네가 전기 다루는 건 기술이잖아. 대단했어.”


“잘 녹아들었네. 누가 쟤를 보고 욕쟁이 67호라고 하겠어.”

“그러게. 아까 엄청 대단했어. 내가 방진 가운데에서 열선으로 엄호사격했잖아. 67호는 엄호할 필요가 없더라. 대형종이고 소형종이고 전부 전류로 불태워버리더라고.”


“왔냐?”

어디로 끼어들어야 할지 잠시 망설이던 찰나, 67호가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시발! 아까 너 날아가는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

“미안미안. 상당히 기괴한 주술이었어.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당연하지! 앞으로는 너무 눈에 띄는 곳에 있지 마. 혹시 원거리 공격 가능한 놈 있었으면 큰일날 뻔 했어.”

67호는 의외로 진중한 눈빛이었다. 44호는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서 큭, 하고 웃어버렸다.

“알았어. 조심할게. 43호. ‘그거’ 보고하고 와.”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어.”

43호는 반혼 기사의 머리체를 질질 끌고 고은유 앞으로 다가갔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듯 발치에 내려놓았다. 연구계 헌터들이 언데드처럼 눈을 빛내며 모여들었다.

“이건...상당히 흥미롭네? 죽은 걸 되살리기보다는 반만 죽인 거 같은데...어떻게 만든 거지?”

고은유가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검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흐트러트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연구계 헌터들이 지하철 잡상인처럼 몰려들어 반혼 기사를 잡아채고 캠프의 중심으로 향했다.


“쟤들이 알아서 할 거야. 자, 고생했을 테니까 커피 마시고 이야기해. 쓰니까 달달한 거랑 같이 먹어. 어차피 오늘 밤 잠은 다 잤어.”


여전히 검푸른 하늘에 별이 총총했지만, 달은 지평선 아래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하늘 한구석에 희푸른 기운도 착착 차올랐다.


감사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이고 쫀득 바삭한 비스켓을 한 입 가득 배어물었다. 단 향이 퍼지는 걸 느끼며 몇 번이고 씹었다. 부드러운 라떼로 잔여물들을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서윤 곧 오겠네.”

고은유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돌려 말했다.

“제 이름은 43호라고 말씀 드렸죠?”

“그래. 이육사 시인 같은 거야?”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고 해도 될 것 같은데...사실 저희 클론이에요.”

이 커피 맛있네요, 와 같은 어조로 말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고은유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를 필사적으로 떠올리려는 것 같았다.

“...그 실험은 벌써 몇 년 전에 실패했다고 알고 있는데. 살아남은 실험체들은 길드 내부적으로 운용한다고.”

“알고 계시는 거하고 다른 실험일 거에요. 제조 시설도 다르고요. 저희 만들어진지 아직 1년도 안 됐어요.”

다 말하지는 못해요. 왜 그런지 알아차려 주세요.

고은유는 방금 전보다 더 긴 침묵 시간을 가졌다. 담당자 어쩌고, 고효산 저쩌고 하며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닮았다 했어. 처음에는 사생아일거라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이거 견적 안 나오네. 밖으로 나왔다는 건 이미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끝났다는 거 아니야? 헌터관리지원실하고도 여러모로 깔끔하게 마무리 됐을 거고...손을 못 대겠네. 그래. 알았어. 알았어. 뭔가 이뤄내야 하는 게 있구나. 마력량이든 마력 속성이든 마력 패턴 일치율이든.”


패턴. 그 말을 들었을 때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치는 건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여유롭게 웃은 은유는 상체를 슬며시 이쪽으로 기울였다.


“마력 패턴 일치율...내려야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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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2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1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1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5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 99화 +1 21.05.10 27 2 12쪽
98 98화 +1 21.05.07 41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6 2 12쪽
90 90화 +1 21.04.27 46 3 12쪽
89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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