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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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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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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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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글자수 :
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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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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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2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112화


67호는 쓰러진 44호를 안아 들었다.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치는 심장을 끌어안고, 하얗게 불타 버린 것 같은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정보들을 긁어 모았다.


먼저 목을 바르게 하고, 몸 안에 황록색 마나를 흘려 넣었다. 추락의 충격으로 으스러진 혈관과 근육을 찾아냈다.


‘안 째면 신장 맛 간다.’


경질화된 손톱을 매스처럼 그어 내렸다. 허리, 엉덩이, 어깨를 깊게 째고 파열된 근육 조각 섞인 검은 피를 흘려냈다. 더운 피가 눈을 녹이며 스며들었지만, 오래지 않아 얼어 붙었다.


‘다음은, 다음은, 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 하나도 모르겠어!’


옆에 굴러다니는 갑옷 기사 조각을 발로 걷어차 확실히 죽이고, 코 밑에 귀를 가져다 대 자가호흡이 가능한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불규칙하지만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폐나 심장 쪽에 파편이라도 박혔나?”


A급 헌터의 피에 흐르는 마나 순도라면 어지간한 상처는 몇 분 만에 회복된다. 67호는 뼈가 추가로 부러진 곳이 없나 마나를 흘려넣으며 몸을 더듬었다. 붉은 패딩 왼쪽 옆구리가 길게 찢어져 있었다. 연갈색 털에 피가 묻어나왔다.


“씨발!”


곧바로 상처를 압박하며 패딩 지퍼를 내렸다. 전투복 플레이트가 의외로 조금 부서져 있었다. 이 정도 크기의 상처라면 배여 봐야 좀 아프고 말 수준이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가진 마력에 비해 신체 강화율가 낫다고는 해도, 고작 10미터 높이다. A급 헌터가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응? 뭐야?’


플레이트 밖에 묻은 피는 꽁꽁 얼어 있었다. 패딩에 묻은 피가 언 건 그렇다고 쳐도, 패딩 안쪽의 피까지 언 건 조금 어색했다. 그래서 67호는 부서진 플레이트를 통째로 뜯어냈다.


“씨발!”


관용구처럼 내뱉던 평소와 달리, 진짜 악의와 살의를 담아 소리쳤다. 44호의 하얀 살결에 성에가 번져가고 있었다.


‘아까 그 칼, 주술이 걸린 거였어.

후방을 경계하지 않고 있던 건 나도 마찬가지야. 갑옷 기사들이 근처의 A급 헌터를 노렸다면 나를 노리는 게 맞아. 굳이 공중에 뜬, 준비해둔 열선까지 남아있던 44호를 노렸다. 이 갑옷 놈들은 44호를 노리고 온 거야. 왜 우리 중에 44호지?’


아까부터 주변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푸른 빛이 하늘로 쏘아지고 나면 얼음 골렘 무너지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건만, 푸른 열선의 빛도 얼음 골렘 무너지는 소리도 없었다.


고효산의 불기둥은 점점 더 크게 치솟았고, 이서윤의 시병들은 점점 더 많이 기어나와 꿈틀거렸다.


그때 67호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일어나 미르한을 눈으로 쫒았다.


피유우우우우웅...


힘 빠지는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조명탄이 터졌다. 붉은 빛이 하얀 대지를 비추고, 67호는 오래지 않아 은발의 수호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르한은 긴 창을 든 인형과 싸우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도 마나와 오러의 빛은 선명했다. 하지만 그는 날아 오르지도, 압도적인 출력의 열선을 퍼붓지도, 전류를 뿜어내지도 않았다.


동조율, 하고 중얼거린 67호는 곧바로 43호를 불러들였다. 얼음 골렘들은 상당한 수가 쓰러졌고, 비탈을 오르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거다. 짧은 대화는 할 수 있었다.


놀랍도록 차갑게 식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어플을 확인했다. 혹시가 역시로 변했다.


“일단 깨워야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67호의 손에서 황록색 마나가 넘실거렸다. 남의 몸 안에서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대신 마나에 대한 지배력은 낮았다. 자칫하면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겨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


이윽고 황록색 마나는 찬란한 황금빛을 띄기 시작했다. 44호의 몸 안으로 스며들며, 역병처럼 번지는 성에를, 냉기를 막아냈다.


‘우리가 같은 피라서 다행이다.’


여전히 마력 패턴에는 닮은 부분이 더 많았다. 남이었다면 이런 짓을 하는 순간 마나끼리 충돌을 일으킬 거다. 괜히 마석을 흡수하기 전에 정화하는 게 아니었다.


“상황이 급해 보인다.”


43호가 어느새 옆에 섰다. 영하 수십 도의 날씨에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성에가 낀 44호의 몸을 본 43호는 많은 말을 하고 싶다는 눈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실핏줄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67호는 분노의 뒤편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두려움이 훨씬 크다는 것도.


“시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들어. 질문도 욕도 그 다음에 하든지 말든지 해.”


67호는 성에가 44호의 마력을 빨아들이며 커져 가는 걸 느꼈다. 황금빛 마력을 움직이며 심장 박동에 간섭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44호, 43호, 자신, 미르한, 그 외 수많은 목숨들이 여기에 달려 있었다. 그걸 믿고 싶지 않아서 눈을 감았다.


그저 내 미래에 너희가 웃고 있었으면 했지. 그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세상 시발.


푸른 빛을 머금은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가능하면 피는 적게, 마나는 많이 버릴 수 있도록 유도했다. 아까 째 둔 허리, 엉덩이, 어깨의 상처를 이용했다.


“뭐 하는 거야. 그렇게 마나가 흘러나오면 얼어 죽을 수도-”

“조용히.”

67호가 욕을 하지 않았다. 43호는 설명하기에 너무나 복잡한, 그리고 중요한 사정이 있음을, 그리고 그 사정이 분명 44호를 위한 것임을 믿으려 노력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끓어오르는 이마를 식혔다.


피의 색이 가을 하늘 같은 파란색에서 불그죽죽한 보라색으로 변했다. 67호는 44호에게서 거의 모든 마나가 새어 나왔음을 본능적으로 알아 차렸다. 아까는 8백이라고 했었어. 이제 남아있는 마나는 많아야 2백, 정도겠지.


“패딩 줘.”


자신의 패딩과 43호의 패딩으로 44호의 몸을 감쌌다. 마나의 권능을 상당히 잃은 몸이 견딜 수 있도록.


왜 고은유의 정수를 받아드리지 못했을까? 67호는 어젯밤 이후로 이 경악스럽고 좌절적인 상황에 고민을 거듭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전부 털어냈다. 직감을 논리로 분석하며 가설 하나를 완성했다.


44호는 미르한과 마력 패턴 일치율이 90%가 넘는다. 그 맑고 순수한 하얀색과 푸른색은 정교하게 짜여 있어, 자기들까리 똘똘 뭉쳐 이색과 이형의 침범을 감히 허락하지 않는다.

중력조작 스킬을 얻을 때도 그랬다. 43호가 여덟 개를 흡수하는 동안. 44호는 세 개 밖에 흡수하지 못했지. 마력 제어는 44호가 훨씬 더 잘하는데도.


백린처럼 이글거리던 고은유의 정수를 떠올린다. 그건 그것대로 엄청나게 극단적이고 순수한 물건이다. 냉기와 열기 같이 상극까지는 아니지만, 각자 다른 방향으로 끝까지 달려간 사람들의 힘이다. 한 몸에, 그것도 이미 한 색으로 가득 차 있는 몸에 녹여내기는 불가능에 가깝겠지. 아무리 얇게 뽑아내서 뒤섞는다 해도.


“그래서 생각해 봤어. 몸 안에 남아있던 마력을 전부 뽑아내면 어떻게 반응할지. 뭐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평소에 잘 안 맞아서 구석에 처박아놨던 거라도.”

황금빛 마나로 붉은색 정수를 유도한다. 붉은 정수가 동맥과 정맥을 타고 흐르며 무색과 연청색의 마나를 끌어들인다.


“지금 이게 무슨-”


43호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고기공장 비스무리한 걸 시도한 과학자를 보는 눈으로 67호를 바라보았다. 지금 44호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43호의 이지를 벗어난 것이었다.


맨 살에서 연기가 솟았다. 주변의 눈에 물기가 생기는가 싶더니 빠르게 녹아 내렸다. 날씨가 영하 50도를 해아리는데도.


“43호.”


67호는 44호의 옆구리 쪽으로 정수를 유도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단호한 의지를 품은 적이 있었을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온당함과 절박함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미르한이 밀리고 있어. 가서 도와 줘. 우리 상사잖아.”

“44호는-”

“고은유의 정수는 강력한 열기를 품고 있어. 지금 44호는 미르한의 것과 닮은 마력을 다 써버렸어. 받아드릴 수 있을 거야. 이 성에도 녹아 내리겠지. 기사검이 A급 최상위 헌터의 정수를 뛰어넘는 저주를 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하지만 지금 S급 헌터가 쓰러지면, 다 끝이야. 시발.”

“기회네.”

43호는 마침내 이 상황을 이해했다. 기회였다. 세계 최강의 헌터에게 목숨을 빛으로 받아낼 수 있는 기회.

44호가 걱정되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여기 있어 봐야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경을 헤메던 중 애인의 목소리를 듣고 각성하는,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겠지.

아니, 내가 아는 44호라면 내가 여기 있기를 바라지도 않을 거다. 지금 다 죽을 판에 덩그러니 서서 뭐 하는 거냐고 화를 내겠지.

네가 나를 믿듯이, 나도 너를 믿겠어. 최선을 다할 테니까, 우리 살아서 만나자.

“무섭네.”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 67호가 한쪽 입술을 말아 올리며 답했다.

“시발, 나도 무서워.”


중력을 조작하며 몸을 가볍게 했다. 육각미늘방패 조각을 구름다리처럼 전개한다. 눈발 날리는 밤하늘을 내달린다. 찬 바람이 불어와 빰이 시렸다.


중력도검을 오른손에 굳게 쥐고, 골렘들의 머리 위를 지났다. 저 아래서 부딪히는 두 인영과 점점 가까워진다.


‘미치겠네.’


어쩌다 이런 싸움에 끼어들게 된 건지.


미르한과 겨울 후작의 곁투를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겨울 후작은 미르한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걸 알아챘고, 동조자가 성에의 저주를 나름 잘 버텨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미르한은 겨울 후작이 자신보다 훨씬 더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런 놈하고 싸울 때는 멀리서 열선으로 쏴 버려야 하는데.’

머릿속에 대규모 술식 몇 가지가 맴돌았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15분 정도에 맞출 수 있었다.

‘생각하지 말자. 지금 대마법을 억누르고 있는 것도 슬슬 한계야.’

푸른 오러가 사이드소드 날을 따라 광검처럼 빛났다. 얼음꽃 핀 창날과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샤악!


창날이 큰 궤적을 그리고, 미르한의 뺨에 긴 상흔을 남겼다. 식은 살결에 흐르는 피는 무척 뜨거웠다.


미르한은 사이드소드를 내던지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 참았다. 셔츠는 진작 넝마가 되었고, 상처들을 따라 성에꽃이 피었다. 이대로라면 얼음 동상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기전으로 끝낼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닌데,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불리해졌다.


“오기인가? 아니면 긍지인가? 긍지라면 부러지지 않을 것이고, 오기라면 끝까지 부려 주게나.”


겨울 후작이 창을 깊숙하게 찔렀다. 미르한은 막는 대신, 경질화시킨 배로 창날을 그대로 받아 냈다. 뒤쪽, 그리고 위쪽에서 알고 있는 상대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블루문 길드에 소속되어 있으니, 부하라고 불러도 되겠지.


“곧 내 대전사가 도착할 것 같아서 말이야.”


카드드득, 겨울 후작이 창대에 회전을 넣었다. 경질화한 피부가 빙수 기계에 들어간 얼음처럼 갈려 나갔다. 저게 대 내 살이라는 걸 굳이 생각하지 않으며, 창대를 움켜쥐었다.


“어리석군. 이 창이 겨울을 불러온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손아귀가 얼어붙었다. 얼음 조각과 성에꽃이 손가락에 하얗게 피었다. 차다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 말게나. 동장군이 발악하는 걸 보니 곧 겨울이 끝나겠군. 승복을 모르는 패자의 발버둥이 야속할 뿐이네.”


창대를 겨드랑이와 갈비뼈 사이로 잡아당기며 간격을 좁혔다. 겨울 후작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오러 일렁이는 사이드소드를 심장견에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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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0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5 2 12쪽
» 112화 +1 21.05.27 30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0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6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0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29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7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5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4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0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0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3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0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4 3 12쪽
88 88화 +1 21.04.23 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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