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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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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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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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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4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00화


“아리수 헌터, 반충헌 헌터는 콘체른 길드에 충성을 바치겠지요. 그들의 충정은 블루문 길드에서 더 많은 월급을 제시한다고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서윤 님은 돈에 혹해 찾아온 이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고은유 님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시 여섯 길드를 이끌어가는 분들이 바라는 인재는 더 좋은 장비, 더 많은 월급보다 큰 뜻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겠지요. 그러니 저희 역시, 저희의 뜻을 지키기 위해, 가치를 지키기 위해 거절하겠나이다.”


“언제 저런 말투를 배운 거야?”

44호가 눈을 파르르 떨며 입술을 달싹였다. 정장을 입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문어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몰라. 뭐야 저거. 무서워.”

67호는 불루문 길드가 아주 마음에 들었나 보다.


“너, 말 예쁘게 잘하는구나? 이름이 뭐니?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은유 님의 하문에 당장 답하지 못하는 처지를 해아려 주십시오. 그보다, 선객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67호는 몇 대 동안 귀족을 섬겨 온 집사 같은 손동작으로 은유의 뒤편을 가리켰다.


“응? 무슨 소리를?”

“고은유. 지금 너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거야?”

진홍색 양 갈래 머리가 파도처럼 물결쳤다. 슬림한 정장이 빙산의 단면처럼 깔끔하게 떨어졌다.

총기를 품은 오른쪽 눈은 화산처럼 이글거렸고, 안대로 가린 왼쪽 눈에서는 흑회색 기체가 피어올랐다.

방금 전 하늘에서 착륙한 서윤이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 은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디부터 들었어?”

“이런 것도 남아 있네, 거기부터.”

“처음부터 들었네? 세상 시발.”

고은유는 자몽처럼 상큼하게 웃으며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서윤이 이를 악물고 그 뒤를 쫒았다. 그제야 고은유가 도망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43호.”

“응?”

44호가 5초에 한 번씩 한숨을 쉴것만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6대 길드 양대산맥이라더니, 자알 돌아간다.”

“...”

“...”


근처에 돌아다니던 마수 몇 마리를 해치운 A급 헌터들이 돌아왔고, C급 헌터들은 그들을 맞아 갑옷과 무기를 받아들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이리저리 오가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물에 담궈놓은 하얀 돌을 꺼내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에 불을 붙혀 냄비를 데웠다. 벽돌처럼 굳힌 건더기와 양념을 까넣고, 마법 수통에서 물을 붓어 한소끔 끓이면 인스턴트 국 완성이었다.

거대 길드의 이인자 둘이 얼굴에 맞는 나이대의 소녀들마냥 근처를 뛰어다녔고, 연구계 헌터들은 B급 헌터들과 함께 복잡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43호.”

“응?”

“붉은 자갈 던전에서도 이랬어?”

67호가 흘러가는 구름 같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거기는 지옥이었지. 사방이 시뻘건 바위에, 악마처럼 생긴 몬스터들에, 집채만한 버섯과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공기.”

43호는 진절머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그런 끔찍한 소리를.


“그럼...우리 지금 진짜 평화로운 것 같지 않냐? 생각해 봐. 지난 1년 동안 이렇게 편안한 적 있었어?”

“갑자기 왜 그래? 술이라도 훔쳐 먹었어?”

44호가 토끼눈과 도끼눈 사이쯤의 눈을 하고 되물었다.

67호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거친 욕지거리도 날 선 태도도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누군가 대단한 사람을 위해서 치열하게 일하고,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지친 몸과 상쾌한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면 맛있는 밥이 기다리는...에이, 시발...됐다! 벌써부터 이상한 생각 하면 안 되지.”


“얘들아. 와서 밥 먹어!”


아리수가 종이 그릇을 들고 손짓했다. 44호는 43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요즘 67호가 이상해진 거 같아. 왜 저러지? 미쳤나?”


***


은유가 그날의 잠자리를 정하면, 범위 대기계 스킬을 가진 B급 헌터가 일대를 깔끔하게 쓸어낸다. 광풍이 불고 나면 독 이끼와 자갈과 울퉁불퉁하니 튀어나온 바닥이 전부 갈려나간다. 그 자리에 작은 담요와 방석을 깔고 자면 된다.


불침번은 지금도 눈을 초롱초롱 뜨고 주변을 살피고 있겠지, 그러니까 굳이 나까지 눈을 뜨고 잠을 설칠 필요는 없다. 43호는 그렇게 되뇌이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44호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반투명한 은발에 붉은기가 감돌았다. 이제 간신히,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순백이라고는 하기 힘들 정도다.


“미르한이 널 살려 줄까?”


43호는 입술을 지긋하게 깨물었다. 약속을 어길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원하지 않는 약속은 애초에 하지도 않을 사람이었다. 아니, 그게 사람은 맞나?


미르한이 마력 패턴 일치율이 너무 높다며 44호를 죽이려 한다면, 사지가 갈려나가는 한이 있더라고 끝까지 덤빌 거다. 하지만 내 저항이 썩 유의미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잔여마력: 5603/5603

공격스킬

마법계 <열선> <교란전격> <경질화>

도검계 <역장도검> <오러 블레이드> <흡성검기> <반탄검기>

방어스킬

<육각미늘방패> <역장방패>

보조스킬

<신체부분변조> <신체강화>

<점멸걸음> <중력조작>


점멸걸음은 연습을 더 해야 한다. 미세한 부분을 제어할 수 없는 이동기는 못 쓰는 것만도 못하다. 정확한 점과 선을 그리지 못한다면 괜히 적의 공격 앞으로 몸을 들이밀 뿐이다.

아직 중력조작을 단일기로 사용하기에는 무리다. 마력이 더 강해질 때까지는 역장도검의 무게를 늘리는 보조기로 사용하는 편이 좋겠지.

마력은 상당하다. 던전에 들어왔을 때보다도 1천이 넘게 늘었다. 마주쳤을 때보다는 우리보다 강했을 콘체른의 B급 헌터들도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래 봐야 원형과 싸워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원형의 혈통이 준 힘이다. 가능성을 개화시키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애초에 가능성을 준 것이 원형이다.


44호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무심코 손가락이 이마에 닿는다. 은은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반드시 너를 지키겠어.


이 결심이 녹은 얼음처럼 사그라들게 하지 않으려면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에게 제시할 것이 필요하다. 찾아내야겠지, 없다면 만들어야겠지. 내가 가지고 있고 그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리고 그가 44호를 살려둔다는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을. 그조차 아니라면...44호를 죽이지 않아도 될 다른 이유를.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


상념은 갑작스래 끊어졌다. 쇠를 비벼대는 것 같은 끔찍한 비명이 일대에 울려 퍼졌다.


“뭐, 뭐야?”


44호가 눈을 비비며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일어나라! 마수들이다.”


반충헌의 고함이 캠프를 뒤흔들었다. 그가 급하게 작은 가방을 뒤지더니 수정구슬을 꺼내 저 멀리 집어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백여 미터를 날아간 수정구슬이 허공에서 멈춰 서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우유빛 액체가 그 안을 가득 채웠다. 두 번째 달이 뜬 것 같이 밝은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연구계 헌터들이 부랴부랴 노트와 기구, 소모성 마도구들을 챙겨 맨 가운데로 모여들고, B급 헌터 몇몇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연구계 헌터들을 둘러쌌다. C급 현장보조 헌터들은 셋으로 나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짐을 추려 방패벽 안쪽의 연구계 헌터들에게 건네주고, B급, A급 헌터들의 무장을 챙기고, 자신들의 갑옷과 무기를 꺼내들었다. 수십 번의 경험과 수백 번의 훈련으로 완성된 몸놀림이었다.


“시발. 자다가 이게 웬 난리냐?”


67호는 부스스한 머리를 슥슥 빗으며 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조그만 달이 머리 위에 떠서 희뿌연 빛을 뿜지 않나, 사방에서 끼에에 끼에에 괴성이 들려오지 않나, C급 헌터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먼지를 날리고 있지 않나...


“고은유 님. 이게 무슨...?”

“나도 몰라.”

“예? 잘못 들었습니다?”

“애초에 모르니까 알려고 여기까지 내려온 거잖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뭔지 알 수 있겠지.”

은유가 불안과 기대로 가득 찬 눈으로 A급 헌터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했다. 리수와 충헌, 나머지 두 A급 헌터가 네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67호는 액상형 접착제를 한 입 가득 머금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차마 할 말이 없었다. 이서윤을 찾으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 시발.”


43호는 역장 방패와 역장도검을 빼들고 주변을 살폈다.

별이 총총한 하늘에 몇 개의 수정구슬들이 더 던져지고, 캄캄한 바위산 산등성이들을 비춘다.


“...저게 뭐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선 아리수가 눈을 얇게 뜨고 고개를 내밀었다. A급 헌터마저 처음 보는 경우라니.

달 같은 수정구슬들의 빛마저 어두워진 것 같다.


그것이 헐벗은 몸뚱이를 드러냈다. 생각 외로 사람을 닮아 있어, 무척이나 놀라고 말았다.


“역겨워.”


44호가 되다 만 것을 보는 눈길로 그것을 응시했다. 머리 위쪽으로 20여 개의 열선을 둥둥 띄워 올렸다.


가랑이 사이가 맨숭맨숭해서 그놈인지 그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새로이 얼굴을 드러낸 아인형의 마물은 고온저습한 곳에서 시체를 반건조한 것처럼 생겼다. 활처럼 굽은 등을 따라 척추 마디마디가 가시처럼 드러났다. 팔과 다리는 앙상하니 말라 뼈마디가 선명했고, 갈색 뱃가죽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빼곡했다. 해골바가지 같은 얼굴에 썩은 생선 같은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러갔다.


“저런 거에게 진다면 맞아 죽는 게 아니라 징그러워서 죽을 거야.”


67호가 손가락 사이서 백금색 불꽃을 튀겼다.

신호라도 된다는 듯, 되다 만 미라 같은 게 이쪽으로 달려왔다. 척추가 굽어 완전한 이족보행이 불가능한지 네 발과 두 발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육식어류의 것 같은 이가 번뜩이고, 작은 맹수처럼 뛰어올랐다.

44호가 붉은빛 도는 열선을 쏘았고, 아인형의 마물은 깔끔하게 반으로 잘려 나갔다.


“뭐, 한 놈 한 놈은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충헌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반토막난 시체를 걷어차고, 반쪽을 들어 올려 헌터들에게 보였다. 열선에 잘려나간 단면이 타다 만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악몽 같은 회색 기운이 물씬 피어오르고, 시체가 비에 젖은 잿가루처럼 무너졌다.

“이거 일종의 언데드다. 태양 아래선 1초도 못 버틸 하급이니까 겁낼 필요 없어. 물량공세로 나올 것 같으니까 마력 배분 잘해라. 아침까지 몇 분이나 남았지?”


“5시간 34분 후 일출 예정입니다!”

C급 헌터 하나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좋아. 제일 먼저 쓰러지는 놈은 내일 아침 식사 당번이다. 내 눈에 콘체른의 힘을 보여 다오!”


자신감 넘치는 짧은 연설에 헌터들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등성이에서 수천 마리의 마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시궁창 같은 골반에서 뻗어나온 다리를 개구리 표본마냥 휘저으며 몰려들었다.


“시발!”


미라 같은 마물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몰려들었고,

반충헌의 적갈색 정장이 순식간에 사막의 모래 같은 언데드들의 틈에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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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2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1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1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5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7 2 12쪽
98 98화 +1 21.05.07 41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 94화 +1 21.05.03 36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6 2 12쪽
90 90화 +1 21.04.27 46 3 12쪽
89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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