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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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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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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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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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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8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108화


67호는 쓰러진 골렘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머리통만한 얼음 조각을 경질화시킨 왼손 손등으로 쳐냈다.


“43호! 빨리!”

뿌듯한 표정을 하고 멍청하게 서 있는 제 형제자매에게 일갈했다.

“이 새끼 아직 안 죽었어!”

황금빛 전류가 손아귀에 모여들었다.


골렘이 몸을 비틀었다. 무릎을 세우고 상체를 비틀며 땅을 짚었다. 아스팔트 조각과 바윗덩이, 어깨와 등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이 눈송이와 섞여 날아다녔다.


“그냥 그대로 누워 있어! 이 씨발 새끼야!”

67호가 황금빛 전류를 볼링공 굴리듯이 내던졌다. 주변으로 튀던 유도류까지 돌돌 말아 흡수하며 맹렬하게 나아가, 한참 체중이 실려 있던 골렘의 오른팔에 직격했다. 무게 배분상 체격에 비해 가는-그래도 경차보다는 굵은-손목에서 폭발이 일었다. 눈을 돌리고 싶어질 만큼 밝은 빛이 한풀 꺽이고, 손목이 날아간 골렘이 잔류전류에 신음했다. 상성은 안 좋았지만, 출력은 압도적이었다.


44호는 골렘의 목을 향해 열선 여섯 발을 조준했다.


‘상성이 안 좋아. 이거 안 먹힐 거 같은데?’

거울 같던 갑각을 가진 거대한 거미와 싸웠을 때도, 열선이 제 효율을 내지 못했다.

‘고은유의 정수를 받아드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

지금도 심장 아래 가라앉은 열기가 느껴졌다.

마음도 훨씬 편했을 것이고, 상성도 완벽히 상극을 이뤘을 것이다. 열기와 냉기, 출력싸움으로 몰아가면 차리리 승산이 있으리라. 하지만 저 맨질맨질하고 반짝반짝한 얼음 등판에 고압의 빛줄기를 쏴 봐야 전부 흩어질 게 뻔했다.

“그럼, 이번에도 서포터 노릇이나 해야겠네.”

44호는 붉은 기운 감도는 하얀 열선을 검보랏빛 중력광선으로 교체했다. 어느새 절반 가량 자라난 발목을 흘깃 확인하고, 덩치에 비해 얇은 골렘의 목과 서리 같은 갈기가 자라난 머리를 노렸다.


“이게 중력 마법이라서 좋아.”


상체를 쳐들던 골렘이 다시 땅에 머리를 박았다. 도로 사이드 펜스가 형편없이 짖뭉개졌다.


“가벼운 놈은 가벼운 놈대로, 무거운 놈은 무거운 놈대로 힘들어하거든.”


맹렬한 눈보라가 가려버린 시야, 10여 미터 아래의 애인과 친우는 제 얼굴을 보지 못한다. 억눌려오던 불안감을 가학성으로 풀어내며 44호는 웃었다.


“43호! 목 자르고 핵 찾아줘! 심장이나 목에 있을 거야!”

“확인!”


달아오른 목소리를 정확하게 들었다. 43호는 육각미늘방패 조각들을 박차며 하늘을 달려올랐다. 6미터 높이에서 늘어트린 거대 골렘의 목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얼굴 구조상 눈이 있어야 할 곳에서 빛무리가 번쩍였다. 부러진 오른손목으로 땅을 바치고, 아직 무사한 왼손을 들어올렸다.


“씨발놈이! 손 안 치워!”


43호가 같은 조각을 한 번 더 밟으며 한 박자를 쉬고, 67호가 득달같이 돌진하며 푸른 전류를 쏘아냈다. 폭발과 열기를 통한 파괴에 초점을 맞춘 황금빛 전류와 달리, 푸른 전류는 고통과 경직, 넉백에 중심을 두었다.


전류가 표면에 흐르는 대로 굵은 얼음팔뚝에 금이 가고, 공기 대포에 얻어맞은 것처럼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기본적으로 피와 살이 흐르는 생명체가 아닌, 얼음만으로 만들어진 골렘인 만큼 큰 효과는 없었다. 골렘은 표면이 깎여 나가면서도 팔을 들어 목을 가리려 했다. 하지만 그 약간의 틈이면 충분했다.


43호는 골렘의 등골 위에 올라서 목을 향해 대검을 내리쳤다. 바람개비가 돌아가듯이 빠르고 현란했다. 한번 내리칠 때마다 큼지막한 얼음조각들이 튀었고, 일곱 번째 검격에서 머리가 떨어졌다.


목과 등골 사이 박혀있던 핵, 마석이 눈에 띈 것도 그때였다. 혹시 머리가 다시 자라나기 전에 67호가 푸른 전류로 단면을 지지고, 약해진 얼음을 44호가 열선으로 꿰뚫었다.


“하, 한 놈 잡았다.”


43호는 대검을 빛무리로 되돌리며 주먹만 한 마석을 주워들었다. 첫 번째 토벌이었다.


44호가 어플리케이션에 초대형종 토벌을 알리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붉은 패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서윤 님에게 연락 들었다. 내 이름은 원도연이야. 최근에 재각성했다면서? 축하해.”


43호는 눈앞의 사내를 똑똑히 눈에 담았다. 운이 좋다면 앞으로 오랫동안 상사 혹은 친구로 지내게 될 상대였다. 운이 나쁘다면 죽자고 싸워야 할지도 모르고.


줄기줄기 녹색 염색을 한 머리를 올려 묶고, 현대식으로 디자인한 동양풍 갑옷을 입고, 긴 환도를 허리와 등에 두 자루씩 차고 있었다.


“예. 경황은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67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예의 차린 말투는 어색하게 들렸다.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따라와. 가면서 설명해줄게.”


종아리까지 눈밭에 빠졌다. 골짜기를 타고 야산을 올라가다 산등성이로 올라섰다. 저 멀리 띄엄띄엄 붉은 패딩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앞 산에서는 골렘들이 몰려왔다.


“저게 다...저희가 잡아야 할 것들이죠?”

“다는 아니야. 딱 봐서 한 8미터 넘는 것만 잡고 나머지는 적당히 보내줘. 어차피 작은 놈들은 우리에게 오지도 않아. 8미터 정도 되는 애들은 뒤쪽에 B급 헌터들이 잡을 거야. 5미터 이하는 고정포대가, 3미터 이하는 외곽에 군인들이랑 C급 애들이 처리할 거야. 마나 덕에 피가 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날이, 워낙 추우니까 조심해. 아, 지도 봐봐.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 건지 알려줄게.”


게이트 바로 앞에서는 이서윤, 미르한, 고효산, 이한성이 최측근 A급 헌터들과 분투하고 있었다. 그 뒤로 서쪽은 블루문, 중앙은 콘체른, 동쪽은 레드서클 길드의 A급 헌터들이 주축이 되어 방어했다. 그 뒤로는 각 길드의 B급 헌터들, 중형 길드들, 고정포대, 최외각 방어선 순이었다.


“우리 앞, 그러니까 저 산 너머로는 이서윤 님이랑 미르한 님 있는 거야. 60미터 넘는 괴물들은 전부 잡아주실 거니까 너무 쫄지 마.”


어플리케이션의 지도를 보니,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뼈저리게 실감이 났다. 게이트에서 직선거리로 2.5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앞에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북한이었다. 여기저기 초소 잔해들이나 철조망, 철책이 보였다.


“여기 설마-”

44호가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맞아. 원래는 DMZ라고 불러. 지금 우리가 거의 남한 땅 끝에 와있는 거야.”

도연은 칼을 뱅뱅 돌리며 다른 능선으로 향했다.

“기본적으로는 위치 사수지만, 뭐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 어플 잘 확인해. A급 헌터니까 선조치 후보고 가능해. 상황 따라 적절히 판단해서 움직여. 원래 A급이면 따로따로 배치해야 하지만, 재각성한지 얼마 안 돼서 몸도 가누기 힘들다니까 셋이 같이 움직여도 좋아. 그럼, 살아서 다시 만나자.”


도연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저 아래쪽에서 17미터 정도 되 보이는 얼음골렘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 뒤로 14미터 정도 되 보이는 골렘 둘과, 9미터 좀 넘어 보이는 골렘도 하나 있었다. 자잘한 놈들은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었다.


“저거, 확실히 우리 타겟팅한 거 같지?”

44호가 쓰게 웃으며 중력광선과 열선들을 띄워 올렸다.

“우리 좋다고 오는 놈들이 이렇게 만다니.”

67호가 푸른 전류를 손톱 사이에서 튀겼다.

“67호가 발목을 지지면, 44호가 중력광선으로 주저앉혀줘. 내가 바로 머리를 자를게. 그리고 핵을 부서서 마석을 캐내자.”

“핵이 심장이나 명치 쪽에 있으면?”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건...그때 고민해 보자.”

“아니야. 그렇게 넘어가도 될 문제가 아닌 거 같아.”

44호가 딴지를 걸면서도 땅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오후 세 시 경에 시작한 전투는 일곱 시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우리들은 10미터가 넘는 골렘을 총 82마리 잡았다. 앞쪽에서 미르한이 놓쳤다는 41미터급 골렘과 마주쳤을 때는 그냥 주저앉고 싶었지.


그닥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벌써 하늘에 짙은 어둠이 내렸다. 폐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운 바람을 들이마시며, 중력도검을 빛무리로 되돌렸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44호, 마력 몇 남았어?”

67호가 헉헉거리며 근처의 나무에 등을 기댔다. 허리까지 쌓인 눈이 부드럽게 뭉개졌다.


“마력? 한 8백이나 남았으려나? 아 피곤해. 골렘들은 눈에 안 파묻히려나?”

44호가 팔다리를 대자로 벌리고 3미터 상공에서 뚝 떨어졌다. 한 뼘 가랑 눈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지금 영하 55도다. 그나마 바람이 좀 멈춘 것 같기도 하네.”

어플리케이션에도 바람이 약해진 것 같다는 글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눈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눈발이 날렸는데도 허리까지 쌓였는데, 날리지도 않고 쌓이면 얼마나 쌓이게 될지 무서웠다. 그나저나 이 스마트폰. 이 날씨에도 제대로 굴러가는 건가? 엄청 대단하네.


“이 악마의 하얀 똥가루 같은 게.”

67호가 비척거리며 붉은 패딩 챙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품 속에서 크림빵을 꺼내 셋으로 나누었다.


“네가 고개를 눈 속에 파묻고 혼자서 먹을 줄 알았는데. 아, 따듯하다.”

44호가 관 속의 시체처럼 손을 내밀었다. 크림빵 조각을 집고 다시 눈구덩이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나저나 방금 뭔가 광장히 위험한 소리를 들은 거 같았는데.

“그랬다가 시발, 너희 굶어 죽으면 누가 내 옆에서 싸워 주냐.”


피유우우우우웅....


맥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몇 개의 조명탄이 하늘로 솟았다. 오른쪽 지평선에서도 조명탄이 솟는 걸 보니, 군의 일제사격 같았다. 앞쪽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따라 거대한 얼음 골렘들이 내려왔다. 그중에는 30미터도 넘어 보이는 놈도 몇몇 섞여 있었다.


“우리 저거 다 죽일 수 있을까?”

누려보기도 전에 죽고 싶지 않았다. 너희가 죽지 않았으면 한다. 도망칠까? 설탕처럼 달콤한 유혹이 머릿속에서 결정화되며 커져 나갔다.


“글세? 그런데 도망쳐봐야 죽을 거 같아. 헌터들이 지면 저것들에게 죽을 거고, 헌터들이 이기면 이서윤에게 잡혀 죽겠지.”


67호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저 아래쪽을 보고 손을 흔든다. 손전등 불빛이 이쪽을 비추고,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난다.

“블루문 길드 현장지원직 채다영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마도 C급일 그녀는 1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물론 마나로 노화를 억누르는 헌터의 특성상, 얼굴만으로 정확한 나이를 알 수는 없다. 알고 보니 16세에 각성한 이후로 10년간 저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다영의 맑고 솔직한 눈빛에는 아직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수에 대한 두려움과 A급 헌터를 보며 느끼는 설렘이 온전했다. 분명 우리가 살아온 1년보다 훨씬 파란이 적은, 적어도 하루에 목숨이 몇 번씩 왔다갔다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거겠지.


“고은유 님이 전 전선에 보급 보내셨습니다. 마나 회복 물약 한 병씩 드시면 됩니다. 혹시 부상 입으신 곳 있으시면 아무리 작은 거라도 말해 주세요. 치유 물약도 있습니다.”


투명한 시험관 안에서 마나의 푸른 빛이 흔들렸다. 저걸 어떻게 잡아둔 거지? 하는 의문과 함께 값비싼 소모품을 들이켰다. 멘솔 특유의 시원함이 목구멍을 감쌌다. 시야 오른쪽에서 바닥을 치던 마력량이 수직 상승했다.


“물은 현장에서 보온병 안에 있는 것까지 다 얼어버려서...죄송합니다. 육포랑 에너지바, 치유 물약은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끝까지 보기 좋은 미소를 띄우며 다영이란 이름의 소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보급품을 가지고 다음 헌터에게 가겠지.


“43호.”

“응?”

44호가 에너지바 종이 포장을 까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도망가면 쟤도 위험해지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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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1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0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5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0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0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29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7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5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4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0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0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3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0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4 3 12쪽
88 88화 +1 21.04.23 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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