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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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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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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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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1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101화


진정해. 은유는 겁먹은 고양이 같은 눈으로 서윤을 달랬다.

“너도 쟤들 좋아하지? 보기 좋잖아? 앞으로 잘만 키워주면 A급 헌터도 될 거야. 사이도 좋지, 능력도 있지, 충성심 있고 헌신적이지. 이 조건 다 갖추는 거 진짜 어려운 거 알지? 아직 어려서 그런가? 때가 안 묻었어.”

서윤은 반박하지 않았다. 은유는 기세 좋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며 눈을 빛냈다.

“그런데 너도 알잖아. 이대로면 셋 중 하나는 죽어. 아마 다른 사람도 아니라 이서윤 네 손에 죽게 될 거야. 내가 미르한 오빠를 모르는 줄 알아? 한 달 지나서 이 던전 나갈 때, 쟤 머리색 그대로면 네가 바로 낫으로 목 잘라버릴 거잖아? 그럼 나머지 둘도 버리게 되겠지? 쟤들이 가진 특별함은 짙은 유대감에서 나오는 거니까.”

“화 안 낼 거니까 앞 뒤 잘라서 이야기해.”

은유는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43호에게 들었어. 44호의 마력 패턴 일치율을 떨어트려야 한다고. 그러려면 마석이나 정수를 흡수하는 게 제일이지. 내 걸 나눠주기로 했어.”

“댓가는?”

“당연히 받아야지. 셋 중 한 명이 콘체른 길드에서 3년간 일해주기. 야, 야, 그런 눈 뜨지 마. 몸도 마음도 멀쩡한 체로 돌려보내줄 거니까.”

서윤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C급 현장지원직 헌터가 가져온 뜨거운 물수건으로 안대 아래 회색 눈을 닦았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은유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정할 수 없는 건 없어. 넌 이서윤이야. 일인군단. 넌 백일혼 헌터 휘하 수십의 A급, B급 헌터들을 다 합친 것보다 강해. 네가 뭔가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미르한 오빠가 거절한 적 있어? 가서 보고해. 고은유가 44호에게 정수 나눠줘서 일치율 떨어트렸다고. 그 댓가로 한 명을 3년간 데려갈 거라고. 조금 짜증낼 수도 있겠지만, 술 한 잔이면 전부 잊어줄 거야. 그날 저녁까지나 기억하고 있으면 다행,”

“말 조심해.”

“틀린 말 했어?”

“...”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아. 재수없게 초 S급 마수랑 마주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아득한 세월을 살겠지. 미르한 오빠는 그 세월에 익숙해질 준비가 되 있는 사람이야.

알잖아. 오빠는 사람 가치에 차등을 둬, 나나 넌 선 안에 있어. 물리적으로 뒤통수만 안 치면 뭘 해도 귀엽게 봐 줄 거야. 아니, 뒤통수를 후려쳐도 사정 설명하고 사과하면 몇 번이고 넘어가줄걸?”

“아직도 클론 기술에 미련이 남았니?”

“나는 실패했고, 누군가는 성공했어. 그걸 참을 수 없을 뿐이야.”

“그 누군가는 영원히 블루문 길드 밖으로 못 나올 거야. 고은유 네가 패배감 느낄 건 없어.”

“아는 게 독이야. 아는 게 병이고. 딱히 해부하고 뇌를 들여다보고 이딴 짓거리 안 한다니까? 그냥 약간의 정보만 얻으면 돼. 일치율 조정의 기술이라던가...뭐 그런 거. 패배감이 아니야. 항상심이지. 아직까지 배양액 안에 담궈둔 애물단지들을 관리할 약간의 팁만 얻을 수 있으면 충분해.”

“그런 정보는 헌터관리지원실이나 쟤들 만든 연구자를 찾아보는 게 나을 거야. 알잖아. 너는 연구보다 지시에 더 능력이 있어.”

“연구자들은 다 묻어버린 게 너잖아.”

은유가 치기어린 눈빛으로 서윤을 응시했다. 안 그래도 붉은 기운 감도는 눈동자에 실핏줄이 섰다. 서윤은 외눈으로 담담하게 그 시선을 받아냈다. 거울 같은 눈이었다. 지금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봐라,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그 태도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은유가 고개를 세웠다.

“그럼 어떡할 거야? 네가 44호 목 딸 거야? 네 정수는 나눠줄 수도 없잖아. 재들 괜찮은 전력이야. 어지간해서는 가져야 할 전력. ‘높은 일치율을 이용해 미르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만 없으면 좋은 인재라고. 쟤들 살려서 써먹으려면 내 정수 있어야 돼.”

서윤은 전혀 내키지 않다는 듯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게 받을게.”

하아. 거친 숨을 몇 번 내쉰 은유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좀 흥분했네. 이렇게까지 굴 일이 아닌데...그래. 탐사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도 44호 머리색 그대로면 내 정수 나눠주고 마력 패턴 일치율 떨어트릴 거야. 3년간 데려가는 문제는 네가 미르한 오빠에게 말해 줘.”

“알았어. 좋은 전력. 살려서 써먹어야지.”

“고맙네.”


***


언데드의 습격을 겪었지만, 탐사는 아무 문제 없이 이어졌다. 잠시 커피를 마신 서윤은 네크로맨서들을 잡아오겠다며 다시 검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서른 하나의 네크로맨서 중 열 아홉 마리를 이미 잡았으니, 네크로맨서가 증원되지 않는 한 어제 같은 웨이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저, 이것 좀 도와 주시겠어요? 백 마리 넘게 접어야 해서.”


43호는 B급 헌터의 부름을 받고 다가갔다. 수십 장의 종이가 널려 있었다. C급 헌터 몇몇이 B급 헌터의 옆에 앉아 새 비슷한 걸 접고 있었다.

“뭐 하면 되요?”

“날개 좀 접어 주세요. 이거 정찰용으로 띄울 거라서.”

그가 숨결을 불어넣으면, 종이새가 파닥거리며 하늘로 날아 올랐다. 아까부터 눈에 초점이 안 맞는가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구나.

“몇 개나 한번에 유지할 수 있어요?”

“얼마나 정밀하냐에 따라 다른데, 종이새 같은 건 3천 마리도 할 수 있어요. C급 중상위 헌터하고 비슷한 수준의 골렘은 한번에 30기? 한번에 보이는 게 너무 많으면 어지러워서 종이새 백 마리만 운용하는 거에요.”

“그럼 지금?”

“네. 종이새 서른여 마리가 보내주는 영상이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아요. CCTV 관리실에 앉아있는 느낌?”


정찰이 진행되면, 고은유는 실시간으로 계획에 반영했다. 통신 마법이 걸린 주먹 크기의 수정구슬에 대고 끝없이 지시를 내렸다.

“반충헌. 오른쪽으로 500미터 지점에 갑각지네 군락지 있는 거 같으니까 조심해. 아리수. 유적지 예상 지점 1km 앞에 있어. 입구 상당히 높으니까 돌바닥만 살필 필요없어.”


한 명의 A급 헌터와 한 둘의 C급 헌터, 한 명의 연구계 헌터로 이뤄진 수색조였다. A급 헌터가 없으면 B급 헌터 두셋을 묶어 보냈다. 44호와 67호도 다른 수색조에서 실시간으로 뛰고 있었다.


“3조는 유적 아니었다고? 그냥 동굴? 알았어. 확인했어.”

은유는 접이식 테이블에 편 하이오크 가죽 지도에 곱표를 쳤다. 그 부분이 붉게 빛나더니, 원래 그려 놓았던 물음표가 사라졌다.

“아리수입니다. 유적 확인했습니다.”

이런 통신이 들어오면 은유는 화색을 띄며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좋아. 3조를 그쪽으로 합류시킬게. 1시간이면 도착할 거야. 연구계 헌터도 한 명 보내 줄게. 지선아. 좀 쉬었으면 장 박사님 좀 모셔다드리고 와라.”


그렇게 일이 굴러갔다. 소수정예 정찰조가 유적의 유무를 판단하면, 인근의 다른 조를 합류시킨다. 유적지를 탐사하기 전에는 연구계 헌터를 파견한다. 이때 수정구슬 하나와 B급 헌터 하나를 붙여 보낸다.


“안백아. 3조랑 아리수 조 합류하는 길에 마수 없지?”

새를 날려보내던 B급 헌터는 정신없이 허공에 손짓을 하다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3조랑 아리수 조 사이에는 문제 없습니다. 지선 헌터랑 장 박사님이 아리수 조랑 합류하려는 길에 거대 거미가 몇 마리 보이는데, 우회하라고 지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리 끝부터 끝까지 8미터 정도 되는 애들이 일곱 마리나 되네요.”


보고가 들어오면 은유는 곧바로 해당 조에 연락해 루트를 수정했다. 각지의 수색조와 정찰 종이 골렘, 하이오크 지도와 통신 구슬을 십분 활용한 지휘였다. 꽤나 훌륭한 컨트롤타워였다. 던전 밖에서 현대문명의 장비들을 사용하면 몇 배나 되는 일사분란함을 보여주지않을까?

고위 헌터 인력과 마도구 자원이 넉넉한 대형 길드만 할 수 있는 운용법이었다. 국내의 대형 길드들 사이에서는 이미 표준화되었지만, 세계적으로는 특출나게 우월한 연락 체계였다.


“산. 이리 와서 지도 봐봐.”

은유의 부름에 43호는 후다닥 달려가 지도를 확인했다. ‘사십삼’이 ‘사삼’, ‘사삼’이 ‘삼’, ‘삼’이 ‘산’으로 변하기까지는 세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거대한 바위산 사이 붉은 잉크점이 찍혀 있었다. 점 위로는 ‘충헌조’라는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여기로 박사님 호위해가면 됩니까?”

“그래. 저쪽에 윤 박사님. 투톤 염색한 단발 여자분 보이지? 저분 모셔다드리고 오면 돼. 간편 가방에 지도 열화본이랑 물이랑 간식이랑 있어. 왔다 갔다 다섯 시간이면 될 거야. 자, 뛰어.”


43호는 가방을 둘러매고 윤 박사님이라 불린 여자에게 목례했다. 한산해진 캠프를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지금 67호는 3조에서, 44호는 4조에서 뛰고 있겠지. 캠프에서 유적추정지까지 연구계 헌터들을 호위하는 것보다 더 힘들 거고, 더 스펙타클할 거다. 그리고 더 재미있을 거고, 더 많은 성장을 거둘 수 있을 거다.


진녹색과 흑회색 이끼로 가득한 대지를 끝도 없이 걸어나가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흙이 쓸려나간 산세는 험했고, 뒤따라오는 상대는 침묵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건 마음을 썩 안정시켜 주었다. 탐사는 벌써 절반 가량이 지나갔다. 고은유는 네크로맨서를 포획했다는 사실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이 던전을 나설 때면 44호의 머리에는 붉은 기운이 맴돌 거고, 그럼 미르한은 44호를 살려주겠지.

우리의 스펙도 썩 좋아졌으니, 이대로 블루문에서 일할 수도 있을 거다. 현장의 헌터로서도 사무직으로서도 훌륭한 직장이다.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주는 건 일도 아니겠지.

정 블루문이 아니라면 콘체른에 얼굴을 기웃거려도 좋을 것 같다. 고은유가 우리 셋을 세트로 탐내는 것 같으니,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


“살아남은 건가?”

“응? 방금 뭐라고?”

“아닙니다. 잠시 생각이 깊어져서.”


대충 얼버무리고 사고를 이어갔다. 그래.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안정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던전에서 차마 이길 수 없는 강력한 마수와 재회한다는 끔찍한 미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불안 요소를 성공적으로 잘라냈다. 이른 축배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더 이상 헌터관리지원실은 우리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처우는 더 이상 나수빈 소장과 헌터관리지원실의 고관들이 아닌 미르한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교관들 따위야 45인승 버스 몇 대 분이 온다고 해도 무섭지 않다. 선임교관 엑스를 한 방에 때려눞힐 자신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전략물자로 대우받는 B급 헌터다. 범죄를 저지르면 수갑과 요원 대신 협상 전문가가 달려올 거다.


예상 외로 미르한은 우리를 혐오하지 않았다. 고은유의 태도에서 유추해 봤을 때, 이미 헌터의 클론 연구는 상당히 많은 시설에서 자행되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미르한이 주도한 본인의 클론 연구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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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0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5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0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0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29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7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5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4 2 12쪽
»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0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4 3 12쪽
88 88화 +1 21.04.23 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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