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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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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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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글자수 :
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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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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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2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92화


거만하게 도발하기는 했지만, 갑각지네는 B급 헌터 따위가 비벼 볼 상대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다리들이 번갈아가며 떨어져 내렸다. 한껏 힘을 줘 환도를 휘둘러도, 간신히 옆으로 쳐 내는 게 고작이었다.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문제가 더 생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좋아질 수 있는 상황에 천장이 있을지언정 나빠질 수 있는 상황에 바닥은 없었다.

갑각지네의 다리 한 마디가 생각보다 길었다. 송곳 같은 찌르기를 어찌어찌 막았으면 곧바로 반격해야 하는데, 아무리 손을 높게 뻗으며 환도를 휘둘러도 마디까지 닿지가 않았다.


“으아아아!”


흑청색 오러를 두른 환도를 횡으로 휘둘렀다. 금속질 광택이 나는 지네 다리를 힘껏 배었다. 캉! 쇳소리가 나며 환도가 튕겨 나갔다. 오히려 환도를 이룬 육각미늘방패 조각에 금이 갔다.


‘잘리지가 않아.’


마디를 노리지 않으면 공격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디는 높은 곳에 있어서 공격하려면 점프해야 했다. 그렇다고 뛰어 오르는 순간,


시이이이익!!!


저 괴물이 허공에 떠서 방향 전환도 못하는 나에게 뾰족한 다리들을 미친 듯이 찔러대겠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졌다. 한껏 치솟아 오른 몸을 세 개의 다리들이 할퀴며 찍어누르고, 셋은커녕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팔이 꺾인다. 땅에 나뒹구는 몸을 몇 개의 다리들이 연속해서 찌르고, 상아처럼 끝이 뾰족한 다리 하나가 내 두개골을 산산히 짓이기며...

“쯧.”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악몽을 떨쳤다.

갑각지네가 머리를 이쪽으로 돌렸다. 등 뒤는 강철굼뱅이에게, 앞과 옆은 갑각지네의 몸뚱이에 막혔다. 그 사이의 작은 공간을 몸뚱이에서 뻗어나온 다리들로 찔러 대니, 이대로라면 언젠가 한 방 먹을 수밖에 없었다.


갑각지네는 이대로라면 저 조그만 헌터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한 방이면 놈을 죽일 수 있다는 것도.

헌터의 살과 피는 알을 품기에 좋은 영양분이었다.


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


세 쌍 여섯 개의 눈이 초점을 굴려 가며 43호를 바라본다. 넷으로 갈라진 아가리에서 불그죽죽한 돌기가 돋은 혓바닥이 들락날락했다. 걸쭉한 채액이 떨어졌다.


아직까지 꼬리는 강철굼뱅이를 넘어오지도 않았다. 다리들이 일사분란하게 차르르 차르르 움직였다. 놈의 거대한 두개골과 사마귀 같은 앞발이 가까워진다. 몸뚱이와 굼뱅이 사이에 갇힌 몸은 피할 곳도 없었다.


“44호. 묶어줘.”


피어싱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중력제어 스킬을 준비하고, 오러 블레이드를 환도에 넉넉하게 둘렀다. 심장이 북처럼 뛰고 핏줄을 따라 울긋불듯한 마나가 발광했다.

갑각지네가 사마귀 같은 앞발을 치켜들고 돌진했다. 넷으로 갈라진 아가리와 송곳 같은 이빨들이 점점 커져 온다. 압도적인 힘과 체격을 앞세워, 내 같잖은 발악을 자근자근 짖밟을 생각이겠지.


시익? 시이이익?


그때 놈의 다리가 꼬이고, 몸이 기울었다.


“잡았어.”

44호는 중력광선으로 막 움직이기 시작한 다리 네 개를 붙들었다. 사마귀 같은 맨 앞다리 뒤부터 연속으로 네 개. 허공에 주먹을 쥐고 힘껏 잡아당기며 갑각지네의 다리들을 꺾었다. 평소라면 그깟 다리 몇 개 치워두고 다른 다리를 쓰면 되겠지만, 한참 무게를 실고 움직이던 다리가 꺾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 스킬 괜찮은데? 견인광선이라고 부를까?’


시야 우상단에서 잔여 마나 게이지가 뚝뚝 떨어졌다. 예상한 범위 내였지만, 그래도 가슴 한구석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 정도의 마력을 퍼붓다니.


하지만 그때 43호에게 필요했던 건 딱 그 정도의 시간이었다.

갑각지네는 중심을 잡으려 수십 개의 다리들을 움직였다. 뛰어오른 43호를 격퇴하기 위한 다리는 지금 없다.


43호는 3미터 정도야 중력조작 스킬 없이도 뛰어 오를 수 있었다. 지상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환도로는 닿지 않던 마디를 걷어차며 한번 더 허공을 갈랐다. 갑각지네의 등판 위에 발을 내딛었다.


“넓네. 하룻밤, 아니 앞으로 계속 자도 좋겠어. 나 말고 네가.”


놈의 등판은 인간의 척추뼈같이 올록볼록했다. 두꺼운 전투화 발바닥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경도와 강도가 느껴졌다. 하지만 마디가 있는 이상 어떻게든 밸 수 있있다.


“시익?” 갑각지네가 여섯 개의 눈을 번뜩이며 몸을 뒤틀었다. 덕분에 마디마디 틈새가 벌어지며 불그죽죽한 근육이 더더욱 잘 보였다.


‘마수라 해도 신체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마나의 힘은 물리법칙을 뒤흔들었지만, 역으로 물리법칙에 영향을 받았다. 척추가 부러지면 다시 붙을 때까지 반신불구가 되는 건 A급 헌터도 똑같았다. 단지 A급 헌터의 척추를 부러트리는 게 초대형 유조선을 반으로 접는 것보다 어려워서 그렇지.


헌터가 그렇다면 마수도 그렇겠지. 이서윤 님처럼 기괴한 힘을 다루는 자들이라면 뭔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갑각지네의 잘려나간 다리는 여전히 꿈틀거렸다. 단면에서 흐르던 채액이 굳어 더 이상의 출혈을 막았고, 상처는 빠르게 나아간다. 이 놈도 피가 흐르고 신경이 있었다.

“살아있는 놈이라면 죽일 수도 있겠지.”

43호는 환도의 형태를 바꾸었다. 미늘 조각들이 달라붙으며 양손으로 들기도 버거워보이는 대검으로 화했다. 물론 육각미늘방패로 만들어진 방패와 검은 시전자에게 무게의 부담을 주지 않았다.

눈동자 실핏줄에 검은색 마나가 일렁였다. 손등 위로 불거진 링거 호스 같은 힘줄이 하얗게 당겨졌다. <중력조작> 검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또 무거워진다. <오러 블레이드> 물리력 없던 마나에 날카로운 결이 생긴다.


“대단하네. 언제 저기까지 간 거야.”


44호는 솔직한 감탄과 약간의 질투, 그리고 호감을 담아 중얼거렸다.


“견인광선.”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칭하는 단어를 만들고,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 다음부터는 그 단어를 내뱉거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래 과정이 행해진다.


네 발의 검은색 광선이 갑각지네의 앞다리에 엉겨붙는다. 뒤로 눞듯이 몸을 당기며 긴 앞다리를 잠시마나 묶는다.


언제나 그 잠시가 세상을 바꾸었다.


머리 위까지 치켜올린 오른쪽 앞다리가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과한 중량의 아령을 든 것처럼 갑각지네의 앞다리가 뒤로 꺽인다. 힘줄과 근육의 가동범위를 넘어, 힘을 주지 못하고 바르작거린다.


갑각지네가 반대편 앞다리를 들어 올릴 때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43호는 새까맣게 변한 대검을 척추 마디에 내려치고 있었다.


쩡! 유리병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호수 물결 같은 충격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몇 차레 퍼져나갔다.


“키에에에에에!!”


여유와 가학심이 흘러넘치던 쉭쉭 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거대한 갑각지네는 넷으로갈라진 입을 물 밖으로 떨어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척추뼈 같은 다리들이 갓 태어난 아기사슴처럼 파르르 떨었다. 뾰족한 끄트머리를 바위투성이 검은 땅에 찔러넣으며 버텼다.


쩡!


43호는 대검을 다시 어깨 너머로 넘겼다. 한 차레 뱅그르르 도나 싶더니, 유성처럼 꼬리를 남기며 떨어졌다.


“키에에에에!!”


지네의 다리 몇 개가 꺾였다. 43호는 중심을 잡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산성액, 혹은 독액이 가득 차 있을 꼬리가 파닥파닥 날뛰었다. 흉악한 이가 난 집개도 경련하듯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정상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공격이 먹히고 있어.’


새까맣게 변한 대검을 바라본다.


‘이게 몇 톤이나 할까? 어쩌면 몇십 톤까지도 하지 않을까? 더더욱 무게를 늘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이렇게 대단한 걸 만들었다고? 내가?’


놀라움에 한 숟가락 섞여 들어간 불안감이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손잡이를 준 손에 땀이 배어나왔다. 대검 손잡이는 성에가 낀 것처럼 싸늘했다.


“더웠는데, 잘 됐네.”


굳이 입 밖으로 내뱉으며 잡생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전히 이 몸에는 미르한의 피가 절반은 흐를 것이다. 하다못해 역장대검을 이룬 육각미늘방패도 혈통으로 이어받은 스킬이다. 더 짙은 쪽의 사념 따위가 흘러 들어올 수도 있다.

약한 생각을 할 시간은 없다. 굳이 그런 생각까지 하지 않아도, 우린 아직 충분히 약하다.


“그래. 중력조작.”


대검의 무게가 증가하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이 손 안에서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쩡!


갑각이 갈라지고 조각이 튀었다. 작은 것 몇 개가 뺨을 스치며 생체기를 냈다. 아픔마저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감히,”


쩡!


양 손으로 쥔 대검의 손잡이 끝을 변형시켰다. 퍼멀을 만들어 롱소드처럼 쥐고 나비가 날개짓하듯 사방으로 내리쳤다.


쩡! 쩡! 쩡! 쩡!


갑각 지네가 아가리를 쩍 벌렸다. 거품을 물며 앞다리를 휘둘러 제 등에 붙은 불청객을 뜯어내려 했다. 44호는 견인광선 여섯 발을 더 동원해 앞다리 둘을 묶었다. 얇은 팔에 힘줄이 잔뜩 솟았다.


43호는 대검을 한 손으로 쥐고 휘둘러댔다. 생각해보니 이 가벼운 걸 굳이 검세 취해 가며 무게중심 맞춰서 다룰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눈동냥으로 배운 검술은 모두 무게 있는 장검을 사용한다는 전제였다. 내 손에는 수수깡이고 맞는 상대에게는 몇 톤 짜리 철퇴라면 나는 수수깡 휘두르듯이 휘두드려면 그만이었다.


쩡! 쩡! 쩡! 쩡! 쩡! 쩡! 쩡! 쩡!


척추뼈 마디들이 흔들렸다. 양 옆으로 자라난 다리들이 축 늘어졌다. 쿵! 12미터 몸길이의 지네가 돌바닥에 엎어졌다.


“세상에. 제대로 난도질 해 놨네. 으..다 튀었잖아.”


먼지를 손으로 쫒으며 다가온 44호가 대검으로 내리친 관절을 가리켰다.


“엄청 단단했어. 그렇게 후려 갈겼는데도 이 정도가 고작이야.”


“대단한 칼이네. 대단한 갑각이고. 이거 벗겨가고 싶다. 이래서 헌터들이 마물 부산물, 마물 부산물 하는구나. 그 칼로도 한 번에 못 부순 거잖아.”


수십 번을 내려친 갑각지네의 척추마디는 한 입 배어 문 화이트초콜릿 코팅 딸기 아이스크림 같았다. 딱딱한 갑피가 조각난 틈으로 선홍색 체액이 부글부글 흘러 나왔다.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44호가 주머니에서 천조각을 들이밀었다.


“얼굴 닦아줄게. 살점이랑 체액 많이 튀었어.”


몸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가관이었다. 특히 흉갑과 정강이받이 부분은 새우젓 통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불그죽죽했다.


“고마워.”


44호가 손끝으로 턱을 밀어올렸다. 잠시 머리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얼굴을 하얀 천이 쓸고 지나갔다. 버석버석한 천이 뺨과 턱, 귓가를 쓸고 지나갔다. 애정어린 주인에게 세차당하는 스포츠카가 된 기분이었다.


“서윤 님이랑 만나면 뭐부터 먹고 싶어?”

44호는 잠시 입술을 달싹거렸다.

“초코칩 비스켓이랑 우유. 이상하게 과자가 당기네.”


바르르르, 갑각지네는 몸을 떨며 여섯 개의 눈을 떴다. 시답잖은 소리를 하며 나아가던 남녀를 똑똑히 응시했다.


“끼이이이이이...”


꼬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스물 두 개의 마디 중 열 세 번째 마디와 열 네 번째 마디 사이에 처참한 부상을 입었다. 생태계 정점에 선 갑각지네라도 쉽기 이겨내기 힘든 부상이었다.


“끼이익!”


뚝. 열 세 번째 마디가 끊어졌다. 근육을 조이며 출혈을 막았다. 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


척추뼈 같은 다리들을 움직이며 갑각지네는 소리 없이 돌진했다. 여전히 7미터에 달하는 거구라고는 생각하게 힘든 준민한 움직임이었다.


놈들의 뒤통수가 가까워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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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0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5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0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0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29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7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5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4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0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0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3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4 3 12쪽
88 88화 +1 21.04.23 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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