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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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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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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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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9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89화


독이란, 사람에게 적은 양으로도 심각한 손상을 입히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물질이다.


독의 대명사 청산가리, 복어독 테트로도톡신, 동양 문화권에서 사약의 주재료로 사용했던 투구꽃 등이 유명하다.


사실 어떠한 물질 자체의 성분이 독인가 독이 아닌가의 구분은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다.


벨라도나라는 꽃의 추출물을 눈에 한 방울 넣으면 눈동자가 커져서 예뻐 보이지만, 두 방울 넣으면 사망한다.


300밀리리터 잔에 물을 가득 담아 시원하게 들이킨다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3000밀리리터 잔에 물을 가득 감아 시원하게 들이킨다면 혈중 전해질 농도가 낮아져 사망한다.


어떤 물질이든 인간의 몸뚱아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겨서 섭취했을 때 독이 된다. 그 중에서 적은 양으로도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것들을 편의상 독이라고 부른다.


“독화살 개구리는 원래 독이 없어. 색이 예뻐서 애완용으로 기르기도 하지.”


영상강의에서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럼 걔들은 왜 독개구리라고 부르는 거예요?”


미중년의 남자 헌터와 젋은 여자 헌터의 문답 형식으로 이뤄진 강의였다.


“걔들이 먹는 풀이 독초야. 그 독을 계속 몸 안에 축적하는 거야. 개구리들은 그 독에 영향을 받지 않아. 받더라도 아주 미미하게 받지. 의외로 자연에는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먹이를 통해 독을 섭취하고, 그걸 몸에 축적하는 애들이 많아.”


“그럼,”


“그래. 던전에서 자생하는 풀이나, 하위 몬스터가 독을 쓴다면 그 생태계 자체에 독이 만연하다는 거지. 생태계 고위종일수록 맹독을 지닐 거고.”


44호와 43호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같이 들었던 강의 내용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치겠다. 이걸, 이걸 어떻게 해결하야 하지? 우리 해독 마도구 하나도 없잖아.”


“어지간한 침이나 독니는 플레이트가 막아주겠지만, 고위종 만나면 한 번에녹아 내리겠지. 몸뚱이랑 같이.”


“빨리 가서 합류해야겠어. 이 무게감도 이상해. 뭔가, 뭔가 마법적인 거야. 독만 깔린 게 아니라고.”


43호 역시 느끼고 있었다. 거대한 손바닥으로 어깨와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다. 기마 자세를 하고 있는 것처럼 허벅지 근육이 꿈틀거렸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날 정도였다.


두 시간 가량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하늘 한켠이 어둑어둑해졌다. 머지 않아 해가 질 것 같았다. 여전히 하늘섬은 신기루처럼 멀게만 보였다. 주린 배를 챙길 여유도 식량도 없었다.


“이상하다.”

“응. 분명히 가까워지고는 있는데.”

혹여 인위적, 어쩌면 자연적으로 발생한 진법이 아닐까 의심했다. 평생 이 안을 뱅뱅 돌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고정점을 찾아 때려부숴야 했다.


“잠깐, 저거 뭐야?”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 바위였다. 거대한 그림자 안에서 녹색 안광이 튀었다. 높이상 절대 지네 따위는 아니었다.


44호는 어깨 위쪽으로 열선 두 개를 띄워 올렸다. 미미한 온기가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붉은 기운이 구의 외곽에 자연스럽게 감돌았다.


이색적인 빛을 본 43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숨기듯 한 발짝 크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붉은색,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광체였다. 뭐가 되었던 반투명한 은색보다는 나았다.


왼손 앞으로 역장 방패를 불러내고 고양이처럼 조심조심 접근했다.


“골램?”


돌로 된 갑옷 같은 것이 주저앉아 있었다. 일어선다면 키는 3미터 정도 될 것 같았다. 어깨가 비정상적으로 넓었다. 각진 팔다리와 몸통은 검은 이끼, 혹은 버섯으로 뒤덮혀 있었는데, 알아보지 못할 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골렘이 한 팔을 들려 올렸다.


“%$^*%^&%**^ 접속...증실패..#$5”


“뭐라는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44호와 다르게, 43호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돌바닥에 깔린 검은 이끼가 신발 밑창에 문대지며 벗겨졌다. 질척한 녹색 액체가 번들거렸다.


‘저런 걸 살려 두면 후환이 생기기 마련이지.’

그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A급 던전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소년이었다.


치켜든 검이 롱소드에서 두꺼운 박도의 형태로 변했다. 흑청색 오러가 진흙처럼 질척하게 흘렀다. 카이트 실드로 빈틈없이 전면을 방어했다. 지켜보던 44호가 오, 하고 탄성을 내지를 만큼 훌륭한 돌진이었다.


‘돌이라면 깔끔하게 배기는 힘들겠지만,’

일단 머리가 있는 이상 거기를 부수면 어지간해는 멈추겠지.


위아래로 긴 방패가 바위 틈에 긁히며 오랜지색 불꽃을 튀겼다. 43호는 역장을 이룬 미늘 몇 조각을 빛무리로로 되돌렸지만, 방패로 몸을 가린 자세 자체만큼은 철저하게 지켰다. 집요하리만큼 방어에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A급 던전의 골램이 날리는 주먹이 얼마나 아플지는 알고 싶지 않거든.’


캉! 골렘의 정수리를 내려친 박도가 파르르 떨었다. 뚝 부러져버리는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하지만 43호는 이제 막 배양소에서 걸어 나온 무력한 클론이 아니었다. 날개 달린 악마 돌격대장을 베어 죽인 B급 헌터였다.


자작, 자자자자자작!! 네모 반듯한 머리가 녹듯이 잘려 나갔다. 십자로 패인 홈 안에서 번들거리는 녹색 눈에 명백한 노기가 스쳤다.


군데군데 부러진 다섯 손가락을 말아 쥐고, 금 간 석재 팔에 새겨진 문자와 흠을 따라 마나가 흘렀다. 검은 기운이 물씬 뿜어져 나왔다. 기묘한 인력이 느껴졌다.


상체가 통째로 회전하며 날아온 강력한 훅! 맞았다면 그대로 머리가 터져버릴 일격이었다.


하지만 43호는 몸을 날리며 피하는 대신, 카이트 실드의 날카로운 끄트머리로 골렘의 팔꿈치 관절을 내리쳤다. 금은 크지 않았고, 그림자 내린 바위 뒤편은 어두웠지만, 이끌리듯이 그곳으로 손이 향했다.


상태창에 <시야강화>니 <추적>이니 <색적> 같은 스킬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냥 차이일 뿐이었다.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을 관철하는 방식의 차이.


쩍, 골렘의 오른팔이 팔꿈치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헛돈 상반신은 균형을 잃고 등을 노출했다. 43호는 다시 박도를 치켜들었다.


퍼석. 깔끔하게 머리가 깨져 나갔다.


“대단해졌네. 연수원에서보다도 훨씬 더.”


희미한 붉은빛이 감도는 구를 치우며 44호는 중얼거렸다.


“아니. 그거 치우지 마.”


흐흐흐,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43호는 다시 박도를 치켜들었다.


바위 뒤에서, 땅바닥 위에서, 담벼락 너머에서 녹색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어둠 속을 맴도는 늑대들처럼 집요했다.


“세상 시발.”


고개를 떨구며 단발 머리를 흐트러트린 44호는 천천히 왼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 손길을 따라 열다섯 개 열선의 구가 떠올랐다. 원래 있던 두 개를 더하면 한 번에 무려 열일곱 개의 열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네 삶이란 게 이런 거지.”


마력적 자극으로 혈통의 힘을 깨워 몬스터를 죽인다. 던전에 뛰어들어가 주먹과 검을 휘두르고 열선을 쏘아낸다.


“인생 예쁘네.”


반딧불이처럼 제 주위를 맴도는 열선, 사방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골램들. 불과 몇 걸음 앞에서 바위가 꿈틀거렸다. 길가의 돌맹이라고 믿었던 것이 얼굴이고 주먹이었다.


“기어나오는 거 기다리지 말자. 저 새끼들이 나쁜 놈이야.”


골램이 두꺼운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허리 아래로 파묻힌 양 다리를 뽑아내려 허리를 이러저리 비틀었다.


44호는 준비되지 않는 상대에게 망설임 없이 폭력을 휘둘렀다. 열선이 해방된 그 순간, 금 가 있던 머리가 붕괴하듯 쪼개졌다. 어찌어찌 형태를 유지하던 몸도 주저앉으며 돌 무더기로 변했다.


자세히 보니 골렘의 녹색 안광은 깜빡이기도 했고, 흐릿해졌다 진해지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단단한 석재 신체에도 크고 작은 금들이 즐비했다.


‘이것들 정상이 아니야. 불량인가? 폐기처분된 개체?’


폐기처분, 그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씁쓸한 기분이 덥쳐 왔다. 고개를 흔들며 잊어버렸다. 지금은 과거를 회상하기에 썩 적절지 못한 순간이었다.


한쪽 발이 없어 절뚝거리던 골렘의 하반신을 잘라내고, 머리 반쪽이 무너진 골렘의 머리 나머지 반쪽도 쳐냈다.


“오. 너는 좀 멀쩡해보인다?”


일단 사지가 전부 달려 있었다. 이렇다 할 큰 금도 없었다. 골렘이 긍정하듯 십자 눈을 빛냈다. 두 주먹에서 검은 기운이 빛을 빨아들이듯이 일렁거렸다.


쿵! 골렘이 각진 어깨를 들이밀며 돌진했다. 석재의 강도와 무게에서 나오는 힘은 어마어마했다. 부딪혔다면 그대로 가슴팍이 함몰되고도 남을 일격이었다.


44호는 가벼운 스텝을 밟으며 뒤로 몸을 날렸다. 들이받힐 듯 듣이받히지 않는 거리감, 언 듯 보면 골렘이 44호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작작 좀 따라오지? 스토커는 싫거든!”

열선이 얼굴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골렘은 곧바로 굵은 팔을 들어 방어했다. 아크 불꽃이 튀고 돌이 갈려나가듯 타들어갔다.


‘더 온다.’


두 마리의 골렘이 비척거리며 합류했다. 한 기는 외팔이었고 한 기는 몸통이 잔금 투성이였지만, 체급과 기세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열선을 막아낸 골렘이 반대편 팔을 들어 올렸다. 표면에 새겨진 홈을 따라 푸른 마나가 흐르고, 검은 기운이 은은하게 맴돌았다.


‘뭐지? 균형이?’


이윽고 골렘이 주먹을 휘둘렀다. 아주 빠르지는 않았다. 67호와 대련하던 44호로서는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낚싯줄에 잡아채이기라고 한 것처럼 몸이 기울었다.


“어, 어?!”


44호는 양 팔을 경화하고 육각미늘방패를 전개하며 머리를 감쌌다. 날아드는 주먹을 향해 제 몸이 달라붙었다.


쩍, 소리가 났다. 육각미늘방패가 산산히 부서지고, 수정처럼 변한 팔이 당장이라도 깨질 듯이 갈라졌다. 그나마 뒤로 자빠지며 충격을 흘려보낼 수 있던 것도 버티려고 하지 않은 덕이었다.


“쿨럭...43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일어나려고 다리에 힘을 준 순간 다시 주저앉았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모르겠어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것들...인력 마법을...아니 중력인가?”


말해야 하는데, 붙어 싸우는 43호에게는 더 치명적일 텐데,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시야를 확보했다.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골렘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단 남아있던 열선 열댓 발을 전부 해방했다. 어차피 더 이상 유지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팔이 부러진 골렘이 불꽃 속에서 대지에 무릎을 꿇고, 잔금이 간 골렘이 산산히 무너져 내렸다. 재차 돌진하던 골렘 역시 다섯 발의 열선을 맞은 끝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오른쪽 눈으로 보는 세상과 왼쪽 눈으로 보는 세상이 따로 놀았다. 뇌진탕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67호가 해주던 것처럼 핏속 마나를 움직였다. 짖눌려 막힌 혈관을 강제로 뚫고, 살과 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곧, 곧 나을 거야.’


피 흐르는 뒷목을 감싸쥐고, 어느새 적당히 붙은 오른손으로 땅을 집으며 몸을 일으켰다. 곧바로 주저앉을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배와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여전히 주변에는 녹색 안광들이 성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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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1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1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0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4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1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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