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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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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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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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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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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화. 프로젝트 이미테이션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2화


미르한의 복제. 오대현은 헌터관리지원실의 실장이라면 거부할 수 없을 유혹을 던졌다.


주한솔이 삐딱하게 앉아 귀를 후볐다. 누가 봐도 축객령이었다. 하지만 대현은 주한솔의 눈빛이 한순간 번뜩인 걸 놓치지 않았다. 말없이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들을 자세를 갖추자, 대현은 말을 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복제를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부식되기 전의 혈액을 체취하는 데 성공. 이미 배아 단계까지는 완료되었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주한솔은 지난 3주간 하루에 한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눈에는 오랜 시간 일선을 지켜 온 B급 헌터의 관록이 있었다.


“오 국장. 이건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뒷감당 어떻게 할 거냐? 고위 헌터 애들 마인드 옛날 중세 기사 같은 거하고 비슷하잖아. 모욕당했다면서 길길이 날뛸걸?”


“그래도, 아니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꼭 성공해야 합니다. 그 녀석들에게 주도권을 뺏어 올 수 있습니다.”


그 녀석들, 주어가 명확하지 않아 어디에 붙여도 만사형통인 그 단어를 대현은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고위 공무원답지 않은 태도였다. 동시에 주어를 밝힐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계속 설명해 봐, 한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혼란이 얼마나 심한지는 실장님도 잘 아실 겁니다.”


한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이 하루 아침에 옆 나라에 전쟁을 선포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ㄴ이대로면 우리 나라 망하는 거 아님? 다시 S급 게이트 열리면 누가 막아?

ㄴ그래도 S급 헌터 6명이나 더 있음. 급발진 삼가

ㄴ최소 무지능자 스웩 우리 S급 헌터들 전부 미르한 제자인 거 모름? 지금 전부 멘붕 와서 밥도 안 먹는다는데


신이라 믿었던 영웅이 쓰러졌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부모의 눈물을 본 어린아이처럼 충격에 빠졌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유명 유튜버, 메이저 신문사, 찌라시, 외신, 어디든 가릴 것 없이 충격과 공포로 가득한 문장들을 써 내려갔다. 어디서든 모이기만 하면 미르한과 블루문 길드의 미래에 대한 추측을 입에 담았다.


블루문 길드의 본사, 일백 층의 빌딩 앞에서 쾌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오늘로 다섯 자릿수에 육박했다.


“사람들에게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영웅이요. 아시다시피 지금 중국이랑 일본, 북한 쪽도 심상치 않습니다. 헌터가 꼭 마수하고만 싸우라는 법이 없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16년 전 세상이 뒤집혔고, 산유국들은 수출을 크게 줄여야만 했다. 그들은 넓은 유전지대에 발생한 게이트들을 전부 막아내지 못했다. 기름진 사막은 마수의 소굴로 변했다.


체굴 가능한 유전은 줄었고 가격은 올랐다. 현재 유가는 그 당시의 마흔 배. 전기차 기술이 발단했던 대한민국은 영향이 그나마 적은 편이었다.


병사들에게는 끓인 밸트를 먹일 수 있었지만, 탱크와 전투기는 기름이 있어야 했다.


헌터는 기름이 없어도 싸울 수 있었다.


“안으로는 국민들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밖으로는 건재함을 내세우기 위해서라도 꼭 이번 계획을 승인해주셔야 합니다.”


“헌터들은 어떻게 설득할 건데? 클론 만들어서 갔는데, 고효산이 이거 어떻게 만든 거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내부적으로는 사실을 공유하고 입단속을 시킬 겁니다.”


“오 국장. 뭔 잡소리야?”


한솔은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일갈하려는 목구멍을 꾹꾹 틀머 막았다. 자신도 대현도 제대로 못 잔지가 어인 20일. 깔끔하고 훌륭한 보고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아주 훌륭한 설명인데 자신이 귀가 먹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뇌었다.


“S급 헌터들도 국민들을 진정시키고 자신들의 건재함을 알릴 수단이 필요함은 알고 있을 겁니다. 오히려 그 부분은 저희보다 더 간절할 수도 있겠지요. 당장 제일 놀라고 당황한 게 그들일 테니까요.”


제일 놀라고 당황, 한솔은 현 고위 헌터들이 대다수 사춘기에 각성해 바로 게이트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들은 혼란의 시대를 온몸으로 거치며 자라난 세대였다.


헌터가 마수들로부터 힘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던 국회의원이 있었다. 종말이 찾아왔다며 심판을 순순히 받아드려야 한다고 말하던 종교 단체가 있었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헌터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하물며 그때에는 말할 것도 없다.


1여년 전 병원의 의사를 통해 건네받은 정신 건강 검진서에 따르면, 그들의 자아는 매우 불안정했으며, 실제 나이에 알맞게 성숙하지 못했다. 몇몇 고위 헌터들이 10대 중후반의 엣된 외모를 유지하는 것도 그 영향이라고...


“계속해 봐.” 잡생각을 지우고 피곤함에 찌든 눈을 꿈뻑이며 한솔은 프로젝트 보고서를 쥐었다.


“적당한 성능을 낼 수 있는 클론이 완성되면 그들에게 먼저 접촉할 예정입니다. 어디까지나 대외용이라고 선은 긋겠지만요.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당연히 대량으로 복제, 어쩌고 하는 소리는 말아야겠죠.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한솔에게 대현은 보고서 중간쯤을 가리켰다.


“옛날에 한 헌터 연구원이 내놓은 논문입니다. 너무 위험한 내용이었기에 저희 쪽에서 회수하고 보상했었습니다. 이 기술이 이미테이션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솔은 논문의 개요를 몇 장 넘겼다. 순간 그의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한 놀라움을 만면에 띄우고, 급하게 결론으로 넘어가 읽었다.


“헌터의 클론이 본래의 헌터와 같은 등급의 헌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입니다. ‘영혼 공명 현상과 마력 공유가 각성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저자가 말했습니다. 간단히, 헌터의 클론은 계속해서 원형인 헌터와 미세한 신호를 주고 받는다는 겁니다.”


“텔레파시 스킬과 비슷한 건가?”


“예. 그렇습니다. 클론은 자극에 따라 그 미세한 신호를 내부적으로 증폭해 원형에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원형의 70%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신호를 주고 받아야 하는 특정상 다수의 클론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헌터로부터 최대 열 명 정도의 클론이 한계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잠시 동안 한솔의 눈에 오만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이 기술의, 이 프로젝트의 가치를 몰라보는 자라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신이라 불릴 만큼 강대한 헌터 미르한의 70%. 심지어 원형만큼 성격이 제멋대로이지도 않을 거다. 양산까지는 무리겠지만, 열댓 명의 인원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장 그 정도 무력이 손에 들어오면 S급 헌터들과 대형 길드들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었다.


아니, 월화수목금금금에 밤낮으로 일하는 그들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었다. 그 불쌍하고 잔인한 구세주들이 스트레스와 부담에 치여 폭주와 일탈에 빠지지 않게 해줄 수 있었다.


한솔은 거대한 스크린에 떠 있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오른쪽으로는 일본, 왼쪽으로는 중국, 아래쪽으로는 미국, 위쪽으로는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영토 대비 빼곡한 S급, A급 게이트 출몰 위치까지.


전교 6등인데 반에서 1등을 못 하는 기묘한 나라가 그곳에 있었다.


최고위 S급 헌터의 70% 전력을 열 명 가까이 더 갖출 수 있다면...


“성공하기만 하면, 그 인원을 사용할 곳은 무궁무진하다. 하다못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유하고 관리지원실 휘하에서 다룰 수도 있겠지. 견제, 지원,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한솔은 하지만, 하고 운을 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성공한 다음 이야기야. 최악의 시나리오는 뭐지?”


이미 준비했다는 듯이 대현은 말을 이었다.


“프로젝트 성공 여부와 관계 없이, 은폐에 실패한다면 국제 사회로부터 큰 논란이 이는 걸 피할 수 없습니다. 이미지와 입장 때문이라도 국내 S급 헌터들 역시 우리를 비난할 겁니다.”


한솔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야기를 바란 게 아니야. 외교 문제는 외교부 애들이 할 일이지. 물론 욕이야 먹을 거야, 앞으로 국가적 신뢰도가 낮아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일성 반도체 없으면 아무것도 못 만드는 나라들이 관세를 높힐 거야? 아니면 수출을 통제할 거야? 실험에 성공한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미지? S급 헌터들의 비난? 하다못해 성공해서 그 클론들 데리고 게이트 브레이크 한 개만 막아내도 줄일 수 있는 피해액이 얼마야? 지난번에 강원도에서 게이트 브레이크 났을 때 6조짜리 화력발전소랑 인근 소도시들 초토화 된 거 기억하지? 피해복구 예상 예산이 18조 플러스 알파였어. 그런 걸 막을 수 있다면야 욕 따위야 얼마든지 쳐먹을 수 있어. 문제는...”


“이서윤이 눈알 돌아가서 데스 나이트 군단을 거느리고 정문으로 쳐들어왔을 때 뭐라고 달랠지군요.”


씁쓸하게도 정답이었다. 그들은 대통령 다음가는 의전을 받고, 어떤 부처보다 많은 예산과 권한, 인력이 주어졌다. 본래라면 그들이 정책과 프로젝트를 실행함에 있어 개개인의 눈치를 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하는 일이 헌터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언제부터 현실에 말이 되는 일만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면 나는 꼬리를 잘라야 해.”


한솔이 대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현은 입술을 지긋하게 깨물었다. 무감정하던 실장의 눈빛은 한때 밤을 새워 가며 함께 나라의 미래를 논하던 대학 선배의 그것으로 돌아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입 안에서 중얼거리며 대현은 물음표 없는 질문에 답했다.


“역대급 대규모 횡령이 되겠군요. 당연하게도 직위 남용일 거고요. 실장님도 부하 관리 못한 죄로 국정감사에서 엄청나게 깨지실 겁니다.”


“설마 잘리기야 하겠냐? 이 자리, 말이 좋아 실장이지 고위 헌터랑 길드들 욕받이에 고민받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 고효산이 연애상담 해달라고 비밀가옥으로 찾아온 거 모르지?”


“저희 직원들 다 알고 있습니다.”


잠시 동안 눈이 마주쳤다. 실없는 웃음을 나눈 끝에 대현은 일어섰다.


“대면으로만 보고드리겠습니다. 실장님은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다.”


“내가 뭘 모른다는 건가?”


대현은 담담하게 문을 닫고 돌아섰다.


한솔은 옅은 어둠이 내린 실장실에서 한참 동안 보고서를 읽고는 문서 파쇄기에 집어 넣었다.


-프로젝트 이미테이션- 어느새 읽기만 해도 가슴이 뛰게 된 문자열이 순식간에 갈려 사라졌다.


***


3달 후. 8월 말.


숙소의 작은 방 한구석의 스피커에서 기상을 알리는 노랫소리가 우렁차게 흘러 나왔다.


43호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시계를 확인했다. 바늘은 정확히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샤워를 완료하고 7시 30분까지 식당으로 올 수 있도록 합니다.”


한 달여 동안 매일같이 들어 온 여자 연구원의 목소리다. 그녀의 이름은 나수빈. 우리를 창조한 프로젝트의 중심 인물.


43호는 어제의 격렬한 훈련으로 무거운 팔다리를 끌고 일어나 샤워실로 들어갔다.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만 뜨거운 물로 온몸을 씻어 내렸다.


“오늘은 좀 덜 맞을 수 있으려나?”


미묘하게 퇴페적인 눈매 아래로는 새파란 멍이 들어 있었다. 헌터 특유의 강한 재생력으로도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걸 보면, 어제의 부상은 뼈에 금이 갈 정도의 부상이었음이 틀림없다.


뜨거운 물줄기가 상처에 닿자 아릿한 통증과 함께 쾌감이 저릿저릿하게 피어올랐다. 가장 감각이 진한 곳에 마력을 흘려 보냈다.


눈두덩이 주위로 살얼음이 낀 것처럼 옅은 푸른빛이 감돌고, 저릿한 통증이 가라앉았다.


윤기 도는 은발을 가볍게 말리고, 하얀 셔츠와 옷을 갖춰 입었다.


“거의 나아가는구나.”


잔근육 또렷한 복근에 자리잡은 긴 흉터가 조금씩 옅어져 가고 있었다.


철컥, 43호는 43번이라 적혀 있는 명찰을 달며 문 밖으로 나갔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동시에 복도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프로젝트 이미테이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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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7화 +1 21.06.02 28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6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2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2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1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9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7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8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6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8 2 12쪽
99 99화 +1 21.05.10 27 2 12쪽
98 98화 +1 21.05.07 42 3 12쪽
97 97화 +1 21.05.06 38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8 2 12쪽
95 95화 +1 21.05.04 35 3 12쪽
94 94화 +1 21.05.03 36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7 3 12쪽
92 92화 +1 21.04.29 42 3 12쪽
91 91화 +1 21.04.28 36 2 12쪽
90 90화 +1 21.04.27 46 3 12쪽
89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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