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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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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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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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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5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95화


대지가 이끼로 뒤덮혀 썩어 문드러질 때 우리는 침묵했다.

갑각을 두른 거대한 벌래들이 집을 부수고 이웃을 잡아먹을 때 우리는 침묵했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전부 알아서 해결해주마.”

신과 같은 힘을 가진 우리의 지배자들을 믿었다.

지배자들을 믿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하여 기다렸다. 높다란 산 위 황금 궁전에서 군림하던 지배자들이 빛나는 검을 들고 와 괴물들을 물리쳐주기를.


“땅이 완전히 독이끼로 뒤덮혔다. 저걸 되살리려면 천 년을 걸릴 거야.”

“다른 세계에서 온 년놈들이다. 싸웠다가는 우리도 저렇게 죽지 못한 꼴이 될 수도 있어.”

“저 버러지 같은 놈들을 위해 내 목숨을 걸 수는 없지 않은가? 하물며 시신조차 추리지 못할 수도 있다니!”

“언제나 우리가 저들의 재난을 해결해주었잖습니까? 이번에는 스스로 이겨내라고 하지요.”

“반중력마법진 개발이 거의 끝났습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거센 바람이 불어서 독기가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허허. 역시 황금가문이십니다.”

“우리 몽돌가문의 골렘들도 거의 다 준비되었습니다. 이들이 농사를 짓고 묘지를 지킬 것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골렘들의 심장으로는 저희 가문 마석을 쓰십시오.”

“우리의 부귀는 영원할 것입니다!


거만한 웃음소리가 황금궁전에 울려 퍼졌다. 왜 몰랐을까? 지배자들에게 우리는 벌래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저 나무를 파내서 이리로 가져와라!”

“저쪽 기름진 흙을 전부 긁어내!”

“가축을 팔아라. 시가의 두 배를 쳐주지.”

영문도 모른체 명을 받들었다. 풀이나 나무, 흙을 사들이다니. 귀족들이 단체로 정신이 나가버린 줄 알았다.

산봉우리마다 찬란하게 빛나던 귀족들의 궁전이 산봉우리체로 하늘로 떠오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사람 잡아먹는 벌래들이 마을로 밀려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정신이 나간 건 우리들이었노라고. 지배자들은 지킬 생각도 없던 약속을 철떡같이 믿고 있었노라고.

우린 산골짜기처럼 긴 지네에게 잡아먹혔고, 집채만한 강철굼뱅이의 몸뚱이 밑에서 갈려나갔다.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이 땅의 어디든 같은 꼴이었다.

집도 없이 떠돌아다닌 지 몇 년이 흘렸을까? 강철굼뱅이와 갑각지네조차 이 땅으로 쫒겨 왔다는 걸 알았다.

그제야 우린 파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말린 진흙 같이 버석거리던 존재의 눈은 오랜지색으로 빛났고, 그 눈빛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말라 갈 뿐이었다.


나라, 도시, 마을, 집, 밭, 이웃, 친구, 가족, 연인, 그리고 목숨마저 잃었다.

더는 포기할 것도 없다.

그러니 이제 침묵하지 않으리라.


***


“XXXXXXXX!!!”


되다 만 미라가 거미처럼 기어왔다. 43호는 그것의 머리를 힘껏 걷어차 뭉개버렸다.

“어디서 더러운 아가리를 들이밀어?”


카이트 실드의 방팻날로 가슴팍을 부수고, 얇게 오러를 두른 박도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칼날이 깡마른 팔다리를 훑을 때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잘려 나갔다. 손목 스냅만으로 한 미라의 머리를 반으로 잘라버리고, 그대로 박도를 내질러 원숭이마냥 뛰어오른 다른 미라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끼이이익!”


놈은 언데드다운 재생력으로 몸이 관통관 상태 그대로 전진했다. 깡마른 손가락이 뺨에 닿기 직전에, 박도를 대각선으로 올려배며 상반신을 잘라내버렸다.


“할 만 한데?”


열댓 마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팔다리 달린 파도처럼 밀려왔다. 카이드 실드를 앞세워 그대로 들이받았다. 적잖은 반동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방패에 이마를 부딪혔지만, 끔찍한 덩어리는 갈갈이 흩어졌다.

충돌의 여파로 비틀거리는 놈의 머리를 박도로 내리쳐 세로로 쪼개고, 주저앉은 놈의 허벅지를 짖밟아 부수고, 이제 막 일어나려는 놈의 가슴을 걷어찬 뒤,

콰직. 방팻날을 도끼처럼 내리쳐 목을 잘라냈다.


“사등분한 좆같이 끔찍한 괴물새끼들아! 지옥으로 돌아가라!”


67호는 낭랑하게 소리치며 전류를 쏘아냈다. 손가락 끄트머리에서 쏟아져 나온 백금빛 탁류가 수십 미터를 뻗어나갔다. 어떤 놈의 가슴팍을 태우고, 어떤 놈의 다리를 안쪽에서부터 터뜨리고, 어떤 놈의 얼굴을 갈아냈다.

어찌어찌 초격을 버텨낸 미라 하나가 몸에 붙은 불을 끄지 못해 그대로 혀 날름거리는 불씨에 삼켜지고, 67호는 그 놈을 비웃으며 다시 한 번 전류를 방사했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전류는 67호가 손을 움직임에 따라 부체꼴을 그렸다. 범위에 있던 반쪽짜리 미라들이 불 붙은 대나무 쪼개지듯이 터져나갔다.


“끼에에에에에에!!”


바닥을 거미처럼 기어온 미라 여섯이 67호를 향해 뛰어올랐다. 마디마디 불거진 손으로 바짓단을 잡아 늘어지려 했다.


“니 엄마다! 이 시발 벌래만도 못한 새끼들아!”


67호는 신속의 허리띠와 근력강화 아대, 경질화 스킬을 적절히 사용했다. 바람을 두른 스탭으로 철갈퀴처럼 긁어대는 손들을 피하고, 경질화한 주먹으로 머리통을 후려쳐 터뜨렸다.


미라 하나가 얼굴에 달라붙으려 뛰어 올랐다. 두 팔꿈치와 두 무릎으로 67호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67호는 손을 뻗어 남아있던 머리칼을 옥수수 수염 뽑듯이 움켜쥔 뒤, 그대로 바닥에 내리치고 짖밟았다.


“싹 다 뒤져버려! 어디서 기어올라!”


굵직한 노란색 전류가 손아귀에 모여들었다. 파란 유도류가 백금색 머리칼을 비추고, 67호의 얼굴에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움찔, 천둥번개 치고 비바람 부는 날 정체를 밝히는 흑막 같은 미소였다. 밀려오는 언데드들이 잠시 멈칫했다.


“늦었어. 그러게...두 번이나 죽기 싫었으면 상대를 잘 골랐어야지.”


왼발로 한 걸음 크게 내딛었다. 허벅지에 힘을 줘 버티며 오른팔을 최대한 뒤로 뺏다. 볼링공을 굴리듯 전류의 구를 집어던졌다. 허공의 레일을 따라 황금빛 구가 데굴데굴 쏘아져 나갔다.


“하여간 대단하다니까.”


44호는 이빨 사이로 헛웃음을 흘리며열선을 띄워 올렸다. 구가 허공을 가르며 전류를 뿜어냈다. 직접 부딪힌 언데드는 흔적도 없이 타 잿가로 변했고, 그 근처를 지나던 언데드는 가지처럼 튀어나오는 유도류에 맞아 팔, 다리, 머리가 터져나갔다.


“나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중력조작. 발 밑이 한없이 단단해진 것 같았다. 까치발을 들며 발목의 힘만으로 지면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하늘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R급 헌터들과 연구계 헌터들의 정수리가 발밑으로 내려다보였다.


‘12시 방향에 고은유, 6시 방향에 아리수, 3시 방향에 반충헌, 그리고 8시, 10시 방향에 A급 둘을 추가로 배치했어. 2시와 4시 방향에 43호와 67호가 있고, 그곳들을 꼭지점으로 B급, C급 헌터들이 성형의 방진을 이루고 있다. 5시 방향에 제일 몰리네.’


67호는 주저 없이 열선을 발사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하얀 빛이 지면을 세로로 길게 쓸었다.


B급 헌터는 라운드 실드가 젖혀지지않도록 힘껏 붙들었다. 낮에 갑각지네와 싸우다 다친 팔에서 다시 피가 터져 나왔다. 말라비틀어진 손목이 결국 방패 안쪽으로 들어왔다. 이로 물어서라도 잘라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손목이 툭 하고 떨어졌다.


손목의 주인이었던 언데드는 상반신 절반이 타들어가 쓰러졌다. 그 앞으로 몰려들던 수십 마리가 팔다리 한 두 개씩을 잃고 바르작거렸다.


44호는 폐가 갈비뼈에 닿을 때까지 숨을 들이쉈다.

“지원 필요한 곳 말해요! 고은유 님이 기준! 12시!”

제대로 들렸을까? 생각한 순간, 아리수가 여름철의 계곡처럼 시원하게 소리쳤다.

“6시 방향으로 길게 사격지원 요망!”

“9시 방향! 대형종 3기 출현! 점사 요망!”

“2시 방향! 화력 지원 요망!”

44호는 태양같이 웃으며 스물 다섯 개의 열선을 띄워 올렸다. 녹은 초에 몸을 담군 것처럼 후끈후끈했다. 소금처럼 굵은 땀 한 방울이 눈썹 아래로 미끌어져 내려와 턱에 맺혔다.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열선들이 태양의 코로나처럼 뿜어져 나갔다.


‘저게 대형종인가?’


되다 만 미라 같은 것들은 사람보다 작았다. 작은 놈은 1미터도 되지 않았고, 큰 놈도 170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대형종들은 적어도 4미터 이상의 신장에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했다.

‘저게 뭐야? 얼굴?’

수십개의 얼굴 가죽 같은 것이 어깨에 들러붙어 있었다. 팔다리에는 굵은 실로 꿰맨 자국이 있었고, 난데없이 갈비뼈가 팔뚝에 튀어나와 있기도 했다.


44호는 타고난 마법진 설계의 재능으로 대형종의 구조를 빠르게 이해했다.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억눌렀다.


“언데드-키메라야? ...진짜...몇 짓을 다 하는구나.”

오른손 검지의 붉은 반지를 엄지로 꼭 눌렀다. 붉은 기운이 물씬 피어올랐다. 열선구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갔다. 레이저보다는 초장거리 화염방사기에 가까웠다. 불꽃이 분노한 용이 불을 뿜듯 쏟아져 나가 대형종 두 마리와 일반종 열댓 마리를 한번에 집어 삼켰다.


증기를 뿜으며 타들어가던 대형종들은 오래 가지 못하고 무너졌다.


“나이스!”


C급 헌터들이 하나같이 외쳤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격에 제압할 수 있는 일반종과 달리, 체격 자체가 압도적인 대형종은 빠르게 처치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것들이 누구 얼굴을 함부로 밝아대는 거냐!”


반충헌이 언데드 더미에서 몸을 일으켰다. 좋아하던 여자와 데이트하던 중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다는 걸 알아챈 듯이 얼굴이 붉었다.


“아침은 기대해도 되지?”


아리수가 히죽거리며 외쳤다.


“젠장! 다들 잘 들어라! 내일 아침은 언데드 볶음, 언데드 탕, 언데드 구이, 언데드 비빔밥이다.”


손바닥으로 뺨을 얻어맞은 언데드의 턱뼈가 으스러졌다. 충헌은 그가 담당한 3시 방향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나갔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걷어차며 사람 잡아먹는 거인처럼 날뛰었다.


“이 버러지들이!”

휘두른 손날에 언데드 셋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돌진해오는 대형종의 무릎을 걷어차 다리를 부러트린다.

“어떻게 나에게!”

양 손으로 각각 목을 잡아 좌우로 휘두르며 주변의 언데드들을 쓸어 버리고, 한 번 더 힘을 줘 목을 으스러트린다.

“순순히 너희 같은 버러지들의 동료가 되줄 것 같으냐?”

언데드들의 이글거리는 눈을 이마로 부딪혀 깨트려버렸다.


“대단한 꼰대 납셨네.”

아리수가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물빛 보석이 달린 지팡이를 한 B급 헌터에게 겨누었다. 지팡이 끝에서 몽글몽글한 녹색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B급 헌터의 상처에 가 달라붙었다.

“조심하려무나. 아직 밤이 아직 많이 남았단다.”


43호는 스킬: 중력조작으로 박도에 무게를 더했다. 갑각지네와 싸울 때처럼 엄청난 중량을 걸지는 않았지만, 땅에 떨어트리면 칼자루까지 파묻힐 정도의 무게였다.

“진작 이럴 걸.”

팔랑거리며 휘두르기만 해도 언데드들의 바싹 마른 팔다리가 뚝뚝 부러져 나갔다. 수수깡을 쇠파이프를 때려부수는 기분이었다.


‘역시 원거리 헌터가 대우받는 이유가 있었어.’


중앙에 떠오른 44호가 쉴 세 없이 열선을 쏘아댔다. 일격에 쓰러트리기 힘든 대형종들을 도맡아 처리했다. 열기를 품은 열선에 맞으면, 잘 마른 몸은 기름 부은 지푸라기 뭉치처럼 타올라 흩어졌다.

A급 헌터들은 소문대로 강했다. 왜 A급, A급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언데드가 흉악한 손톱을 휘두르면, 아리수는 일곱 살 어린아이같이 고운 손등으로 받아쳤다. 그 손등이 언데드의 팔을 부러트리고 목까지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약점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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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0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5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0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0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29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7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5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4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0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0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4 3 12쪽
88 88화 +1 21.04.23 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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