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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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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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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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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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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7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107화


눈이 펄펄 내렸다. 폭풍 같은 바람을 타고 휘몰아치며 시야를 가리고, 쓰러진 사람을 파묻었다. 이것도 뭔가 마법적인 현상인지 피부 안쪽에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무릎까지 눈 속으로 파묻혔다. 직원들이 버스 트렁크에서 두툼한 붉은색 패딩을 꺼내 건네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소속 길드에 관계없이 붉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첫 번째 목표는 아군 식별, 두 번째 목표는 동사 방지. 따라와.”


고은유가 한쪽의 천막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깁이 뿜어져 나왔다. 천막 바깥에 온도계가 걸려 있었다. 영하 36도였다.


사거리 근처의 주차장에 천막 몇 개 쳐놓은 지휘 본부는 엉성하고 소란스러웠다. 스피커에서 계속 증원 요청이 들려왔고, 군용 트레일러와 대형 SUV가 들락날락했다. 헌터들을 쏟아 놓고, 혹은 잔뜩 태워서 전선으로 달려가기를 반복했다.


“네! 네! 이제 이해가 좀 되십니까? 이건 A급 게이트 브레이크입니다! 아무리 강원도라도 영하 36도까지 내려갈, 아니. 이제 영하 39도입니다! 대마법이라고요! 지름 몇km이 삼켜진 지 아십니까? B급 이하 헌터들 전부 외곽으로 보낼 겁니다. 군이랑 합동해서 포위망 구성할 수 있도록 하세요.”


푸르러 보일 정도로 짙은 검은 머리의 사내가 대형 스크린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16분할된 스크린에는 군의 장성들과 행정부의 고위인사들이 눈을 내려깔고 있었다.


“뭐? 국회의원? 전부 닥쳐 이 개새끼들아! 이게 니 새끼들 얼굴 비출 만한 사이즈인줄 아냐? 이러다 나라 망한다고! 씨발! 내일도 살아있고 싶으면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막 화면에 끼어든 중장년의 남자에게 진노를 쏟아낸 사내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게 다 살자고 하는 짓 아닙니까? 81mm박격포랑 대전차로켓 위주로 화망 구사해주세요. 얼음 골렘들이 고정포대를 우회하고 있으니 동선 추적하는 거야 어렵지 않을 겁니다. 대형종들은 고위급 헌터들이 현장에서 빠르게 처치하겠습니다. 소형종들은 외곽에서 해결하세요.”


C급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헌터들이 SUV 다섯 대에 나눠타고 후방으로 내달렸다.


“3번 고정포대에 레드서클 길드 3-2번조가 보급로 확보했습니다. 120mm, 155mm 포탄 신속히 보급 요망합니다.”


사내는 수정구슬과 스마트폰을 번갈아 사용하고, 스크린과 가죽 지도에 점을 찍고,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관료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지난 한달간 함깨 했던 여자와 옆모습이, 콧날과 눈매가 닮아 있었다.


“오빠, 아니지. 마스터. 콘체른 길드 부마스터 A급 헌터 고은유. 하늘섬 게이트-광산의 탐험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사망자 1명. 부상자 없습니다.”


고은유가 천막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들었어? 고효산이면-”

44호가 말을 잊지 못했다. 67호가 홀린 듯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젋고 준수한 얼굴에 날카로운 인상. 깊은 눈과 약간 두툼한 아랫입술. 한쪽 손에만 낀 하얀 장갑. S급 헌터이자 콘체른 길드의 마스터.


“너희가 그 유명한 3인조구나?”

효산이 스크린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아아, 지금 이 시간부로 통합작전사령부의 지휘권은 콘체른 길드의 부마스터 고은유에게 이양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이 시간부로 통합작전사령부의 지휘권은 콘체른 길드의 부마스터 고은유에게 이양한다.”


권력자 남매는 어깨를 스치며 교차했다. 16분할 스크린 앞에 선 은유는 원래부터 자기 자리였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매워 나갔다. 보고를 듣고, 명령을 내리고, 인력을 파견했다.


“척살 현장에서의 군 인력 후퇴가 완료되었습니다. 연천군으로 이어지는 길목, 1-3 지역으로 블루문 길드의 C급 헌터 40여명, 스케빈져 길드의 C급 헌터 40여 명이 이동 중입니다.”


이제 뭘 어째야 하는가? 살짝 멍청한 표정을 지은 내 어깨 위로 고효산의 손이 떨어졌다.


“셋. 따라와. 네가 43호지?”


고효산의 앞에 스타렉스 한 대가 멈춰 섰다. 바퀴에 스노우체인을 감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느 지역으로 가시겠습니까!”

기사가 보급품을 트렁크에 던져넣으며 물었다. 효산은 언짢은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최전선. 내가 거기 말고 어디 가겠어. 도로 끊히기 전까지, 5-1로 올려 보내. 게이트 앞으로 간다.”

기사가 잠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가슴의 배지를 두 번 두드린 그는 옆문을 활짝 열며 소리쳤다.

“안전하고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차 안의 히터에서는 고기도 구울 수 있을 것 같은 열풍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차 안의 온도는 간신히 영하 3도를 웃돌았다. 그것만 해도 차 밖에 비해 40도는 높은 온도였다. 효산은 보급 상자에서 성에 낀 소시지 빵을 꺼내 한 입 가득 배어 물었다. 굳은 치즈와 케첩이 버석버석 씹혔다.


“은유가 폰 줬지? 켜 봐. 어플리케이션 쓰는 법 알려줄게.”


앱은 지도+커뮤니티의 역할을 수행했다. 위성정보 기반의 아이콘을 통해 어느 지역에서 어느 헌터가 활동하고 있는지 알려줬다. 꼭 헌터뿐만이 아니라 군의 이동이나 포대의 위치 역시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이게 지금 이 구역에서 몇 명 더 필요하다는 거야.”


지도 위에 붉은색 알림이 미친 듯이 떠올랐다. 클릭해보니 해당 지역에서 전투중인 헌터들의 정보와, 어느 정도 수준, 몇 명의 인력을 원하는지에 대한 글이 쓰여 있었다.


“지금 여기는 아이콘 하나지? 길드 문양이네? 그런데 6대 길드 문양 아니잖아. 중형 길드 하나가 막고 있네. 마력 수치 6천 이상 되는 헌터 두 명 증원해달라고 했어. 이걸 누르면 내가 가겠다는 거야. 배차 신청을 할 수 있어. 위성 좌표 보고 기사들이 와.”


효산은 어플리케이션 쓰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강대한 헌터보다는 까칠해 보이지만 유쾌한 학교 선배 같았다. 물론 능력을 사용하기 전의 인상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않았다.


효산이 트렁크로 손을 뻗더니 성에 낀 슈크림빵 몇 개를 우리에게 건넸다. 끝도 없이 들려오는 포성에 넋을 놓은 44호가 사양의 손짓을 했지만, 효산은 단호했다.


“밖에 영하 40도야. 바람 불어서 더 춥게 느껴질 수도 있어. 너희도 A급이니까 얼어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열량 쌓아놔서 좋을 거 없어. 누가 알겠냐? 이게 나나 너희가 살아서 먹을 마지막 빵일지?”


순순히 빵을 집어들고 44호에게도 건넸다. 다행히도 내 손은 뿌리치지 않았다. 크림빵에서 모래 씹는 맛이 날 줄 알았건만,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이게 왜 맛있지?”

44호가 당황과 황당 사이쯤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발...시발...”

“67호. 울어?”

“내가 안 울게 생겼냐?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근데 빵이 맛있어. 시발. 이, 이게, 이게 뭐라고!”

“끝나고 먹는 빵은 또 얼마나 맛있겠냐?”

효산이 낭만적으로 중얼거렸다. 눈이 끝도 없이 내렸다. 골짜기 사이 언덕 길, 스노우체인 단 바퀴가 회전하며 차체를 끌어 올렸다. 겹겹이 늘어선 설산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골짜기마다 마나의 푸른빛이 번뜩이고 폭발음이 들려왔다.


“나는 게이트까지 나갈 거야. 너희는 앞쪽에 증원 요청 들어온 능선에다가 내려줄 거니까, 블루문 쪽 헌터들이랑 합류해서 싸워. 거기에 일혼이 있을 거야. 자잘한 애들은 놔줘. 군대랑 C급 헌터들이 처리할 거야. 잘할 수 있지?”


“네, 네.”


무슨 배짱이냐? 44호와 67호가 옆구리를 찔렀다. 그녀들 역시 효산의 얼굴을 보고 눈빛을 바꾸었다.


“여기는 내가 살 나라야.”

잃을 게 많은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최전선으로 내달리던 중,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기사가 핸들을 팽이처럼 돌리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왜 그래?”

“아, 앞에 골렘이...”

“어디?”


쿵! 도로가 뒤흔들렸다. 67호가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었다. 눈송이들이 폴폴 날려와 붉은 패딩 위에 쌓았다.


“...세상 시발.”


쿵!


키가 너무 커서 옆 창문으로는 머리 꼭대기가 보이지도 않았다. 아파트 10층 높이는 되는 것 같았다. 눈보라를 해치며 걸어온 골렘이 도로를 짖밟았다. 아스팔트가 깨지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골재가 새어나왔다.


“고효산. 저희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어차피 저희 가려고 했던 지역까지 몇백 미터도 안 남았잖아요. 저건 뒤쪽으로 못 보내요.”


효산은 잠시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견적을 내듯이 우리와 골렘을 바라보았다.


“목숨 바쳐 죽일 상대는 아니다.”

“걱정 마십시오.”


드르륵, 차 문을 열고 중력도검을 불러냈다. 육각미늘방패 조각들이 손잡이부터 모여들며 대검의 형태를 이루고, 중력조작 스킬이 자연스럽게 더해져 수십 톤 대검을 만든다. 밤바다 같은 색으로 물든 대검을 휘두르며 달린다.


“진짜, 울고 싶다.”


44호가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10미터가 넘게 상승하며 골렘의 허리 높이까지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내린 67호가 차 문을 닫고 고효산을 보내는 동시에, 손아귀에 전류를 모은다.

“일단 다리 병신으로 만들고 시작하자.”

“적의가 없는데?”

44호가 골렘의 등을 보며 소리쳤다. 골렘은 우리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버스만 한 발을 부지런히 옮기며, 우리가 내려온 골짜기 사이 길을 거슬러 올라갈 뿐이었다.


“적의가, 없는 게 아니야.”

“뭐?”

67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어느새 상당히 멀어진 골렘의 뒤로 따라 붙으며 외친다.

“B급 헌터 이하는 저거 못 죽일 거야. 놈은 나가려는 거야. 외곽의 방어선에는 고위 헌터가 없어. 고정포대가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자가수복이 가능한 놈들이라고 했잖아.”


“여기서 못 죽이면 안 된다는 소리네.”

그냥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67호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랑 43호가 한쪽 발목씩 부술거니까, 명치 뚫어 버려!”


67호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달렸다. 골렘의 다리는 교각의 콘크리트 기둥보다 굵었고, 남극의 빙산처럼 푸른빛을 띄는 얼음은 강철보다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못 부술 것 같지는 않아.”


내 적의에 반응하듯 골렘이 슬며시 이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별것도 아니잖아? 라고 생각했는지, 우리를 무시하고 다시 걷는다.


말은 필요 없었다. 뛰어 오르며 중력도검을 휘둘렀다. 상대에게는 수십 톤의 무게, 나에게는 수수깡 같은 무게. 쩍, 소리가 났다. 한 번의 검격, 그것만으로도 거신 같은 얼음 골렘의 발목이 절반 가까이 부서져 나갔다.


“너, 너 뭐야? 어떻게?”


67호가 당황하며 손에 모으던 전류를 사그라트렸다.


당황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하는 소리만 내며 휘청이는 골렘을 바라보았다.

지난 한 달간 마력 농도 짙은 던전에서 많은 실전을 겪었다. 뛰어난 스승들이 붙어 최고의 지름길을 안내해주었다. 혈통의 가능성이 빠르게 개화했고, 7천 후반대까지 쌓아올린 마력이 새 스킬을 뒷받침했다.

중력도검이 생각보다도 무거워져 있었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


골렘이 낮게 울부짖었다. 주변의 눈송이들이 밀려나고, 산봉우리들을 따라 메아리쳤다. 포효해 봤자였다. 발목 반쪽으로는 수백 톤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다.


쩌적, 하는 소리가 났다. 반쪽 남은 발목이 체중에 눌려 으스러지고 몸이 크게 기울었다. 산 같은 골렘이 쓰러지고 얼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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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1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1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0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4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1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4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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