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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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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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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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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0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110화


북한 쪽의 산들은 연구원들의 기억 속에 있던 것처럼 거의 민둥산이었다. 나무를 심기는 한 것 같지만, 거의 묘목 수준인지 눈밭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올라서 있던 산은 생각보다 높았다. 조명탄 불빛에 그림자를 드리워 게이트를 가려버릴 만큼.

“저런 게 만들어질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추워서 뇌세포가 다 얼어 죽었나?”

67호가 기가 차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지름 40미터는 되 보이는 게이트가 골짜기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60미터급 얼음 골렘이 허리를 숙이고 걸어 나왔다.


“처음부터 저 정도 크기는 아니었겠지. 봐봐. 조금씩 커지고 있어.”

44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불쾌감 때문이 아니라, 자세히 보기 위해서였다.

“꼭, 뭔가를 먹고 있는 거 같아.”


고개를 들어 오른쪽 끝을 바라보았다. 고효산이 지배하는 권역을 넘어, 짐승의 포효 소리와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바람결을 따라 들려왔다. 이한성 헌터인 것 같았다.


“미르한은 어디에 있지?”


대답이라도 하듯이 게이트 앞에서 마나의 푸른 빛이 점멸했다.


푸르스름한 열선이 50미터급 얼음 골렘 두 기를 동시에 꿰뚫었다. 붕괴 현상 특유의 몽글거림과 함께 얼음 골렘이 무너지고 부서진 얼음덩이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사이를 뚫고 달려온 15미터급 골렘의 주먹을 경질화시킨 주먹으로 맞부딪혔다.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고, 미르한은 뿌리 내린 거목처럼 버티고 서 있었지만, 팔꿈치가 깨진 골렘은 비틀비틀 물러났다.


새파란 교란전격이 이제 막 게이트 밖으로 고개를 내민 60미터급 얼음 골렘에게 작렬했다. 골렘이 팔꿈치를 들어 막았지만, 얼음 살결이 깨지고 벗겨지며 순식간에 마모되어 나갔다. 결국 몸통에 전격을 얻어맞은 골렘이 비틀거리며 게이트 안쪽으로 넘어졌다. 쿵!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나무들이 흔들리고 눈가루가 피어 올랐다.


“익숙한 스킬들인데, 익숙하지가 않다.”

“갑자기 내가 너무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기분이야.”

“시발...저런 걸 따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클론을 만들 만도 하지.”


게이트와 고작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야말로 최전방에서 미르한이 날뛰었다. 후열의 A급 헌터들이 감당하기 힘들 대형 골렘들을 자르고 부수고 썰어냈다.


그때 44호는 막 게이트에서 나온 15미터급 골렘의 어깨 위로 시선을 돌렸다. 피부 안쪽이 아릿하고 간질간질해졌다. 근처에서 마나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감각과 비슷했지만 뭔가 달랐다. 좀 더 날카로웠고, 좀 더 악의적이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얼음 투성이인 사방에 이색적인 금속색의 인영이 있었다.


“왜 그래?”


44호가 겁먹은 표정으로 한 발 물러섰다. 자존심이 상한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이를 갈았다.


“나를 봤어. 골렘 어깨 위에 갑옷이 있었어.”

“그것도 골렘의 일종 아니야?”

“맞겠지. 그런데 훨씬 더 강해 보였어. 강하다는 게 힘이 세다는 게 아니라, 수준이 높아 보였어.”

“지능이 있는 것 같다는 거지? 알았어. 나도 확인하면 어플에 글 올릴게. 새로운 형태의 마수가 출현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니까.”

반신반의하며 산을 오르는 골렘들을 바라보았다. 미르한을 지나친 20미터급 골렘들이 산 중턱까지 다다랐다. 원래 뒤쪽 산 중턱에서 골렘들을 맞닥트리다가 여기까지 왔으니, 방어선을 앞당겼다고 해도 좋겠지.

슬슬 다시 골렘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겠다, 하고 생각한 순간, 민둥산 아래서 날렵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44호. 네가 말한 갑옷이라는 게 혹시 저렇게 생겼어?”

확신 쪽으로 기운 의문을 실어 묻는다.

“생각보다 날렵하네.”

긍정과 함께 중력조작 스킬을 사용하는 44호.

“그래 봐야 네 마리잖아? 죽이고 사진 찍어서 올려야겠다. 속도가 빠른 만큼 원거리계 A급 헌터들에게 접근하면 위험할 거야.”

여유를 잃지 않는 67호.


중력도검을 불러냈다. 순간 눈을 마주친 것 같았다. 투구의 틈 사이에서 일렁이는 한기. 적어도 정상적인 생명체가 아닌 건 알겠다.


“하지만 너희도 이건 몰랐던 것 같네.”


10여 미터 상공으로 떠오른 44호가 스물 여덟 개 열선의 구를 띄워 올린다. 붉은빛이 머리 위를 은은하게 비춘다.


네 기의 갑옷 기사들이 좌우로 흩어진다. 눈밭에 배를 깔고 엎드리고, 때로는 뛰어 오르고 때로는 질주한다. 하지만 44호의 눈에 눈밭에 반짝이는 회색 갑옷은 좋은 표적일 뿐이었다.


“북한은 나무를 연료로 쓰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서 산이 대부분 민둥산이야.”


저 새끼들도 엄폐물 하나 없는 고지에서 비행 가능한 원거리 능력자를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겠지. 투구 틈 사이로 창백한 빛이 흔들린다. 당황과 혼란으로 받아들인다면 지나친 추측일까?


“44호! 쏴버려!”


산이 떠나가라 외치며 중력도검을 들고 뛰어 내렸다. 무모한 돌격은 아니다. 양손에 전류를 모은 67호가 뒤에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다. 44호의 열선이 머리 위로 쏘아져 나간다. 갑옷들의 몸뚱이를 두드리고 일대를 초토화시킨다.


“...!”


차마 이딴 전투를 강요받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갑옷 한 기가 고개를 쳐든다. 열선 세 발에 두들겨 맞은 갑옷이 찌그러지고 파인다. 산 아래로 데굴데굴 떨어진다. 느릿느릿 올라오고 있는 골렘들의 발치까지 굴러간다.


“너도 칼 차고 있네? 나도 칼 좋아하는데.”


두 번째 갑옷을 찾아 정면에서 돌진한다. 놈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 속에서 기어오고 있지만, 나는 중력조작으로 눈밭 위를 달린다. 검술로는 밀릴 것 같다. 애초에 1년도 수련하지 않은 검술이다.

하지만 혈통이 준 재능과 같은 길을 먼저 간 이들의 관심은,

많은 시간을 마냥 갈아넣은 정공파를 뛰어넘는다.

중력도검을 머리 위까지 치켜올리고 내려친다. 검보다는 도끼에 가까운 사용법, 하지만 중량 그 자체를 무기로 사용하는 중력도검에 알맞은 사용법이다.

갑옷뿐인 기사가 살쾡이 같이 울부짖으며 허리에 찬 기사검을 발도한다. 역시 나보다 빠른 속도, 중력도검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내 검을 쳐내고 내 명치를 찔렀겠지.


하지만,

“냉병기는 결국 무거운 놈이 제일이라서.”

와지직, 알루미늄 캔 으스러트리는 소리가 났다. 조각난 기사검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가운데, 놈이 당황과 울분으로 일그러진 울음소리를 토한다.

“사람 말로 해. 사람 말로.”

눈밭 속에 반쯤 파묻힌 놈의 이마에 중력도검을 내려친다. 갑옷이 옆으로 반 바퀴 굴러 피하며 뒷발질을 날린다. 투구 옆을 우그러트렸지만, 강철 부츠에 가슴팍이 걷어차이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내가 비틀거리는 사이에 놈이 일어나 두 번째 기사검을 빼들었다. 서늘한 오러가 안개처럼 검신을 휘감았다. 깨진 투구 사이로 창백한 연기가 피어 올랐다.

“제대로 차였으면 갈비뼈 몇 개는 나갔을 거야.”

하지만 내 몸은 중력조작으로 무척이나 가볍게 해 둔 상태였다. 예상보다 더 밀려 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충격은 무사히 흘러낼 수 있었다.


“오러 좋지. 나도 그거 잘하거든.”

중력도검에 오러를 흘린다. 검은 검신에 흑청색 오러가 잿불처럼 타오른다.


다음 순간 이미 우리는 칼을 부딪히고 있었다. 체중과 검술은 내가 아래 였지만, 스킬과 오러의 질은 내가 위였다.

중력도검에 닿기만 해도 놈의 검은 형편없이 밀려 나갔다. 일단 밀어내고 쳐내야 빈틈을 만들 수 있는데, 아무리 날카로운 찌르기로도 중력도검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억울하지? 나도 그랬어. 너희 같은 것들을 죽이려고 태어났는데, 아무것도 못 해보고 죽을 뻔했어.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야.”


빠르게, 더 빠르게, 중력도검을 쳐 내렸다. 단순한 내려 배기의 연속이었지만, 그 칼이 수십 톤의 중량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번 막아낼 때마다 갑옷뿐인 기사의 자세가 무너진다. 놈이 자세를 되찾는 사이에 나는 다시 검을 내려쳤다.

캉! 불꽃이 튀었다. 성에가 낀 것 같은 놈의 기사검이 부러져 나갔다. 놈은 곧바로 뒤로 뛰며 등에 매고 있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리막에서 뒤로 뛰었다가는 데굴데굴 구를 수도 있건만, 과감하고 용감한 판단이었다.


“난 이런 재주도 부릴 수 있거든.”

육각미늘방패 조각을 밟으며 돌진했다. 아직 놈의 기사검은 칼집에서 전부 뽑혀 나오지도 않았다. 사정없이 중력도검을 내리쳤다. 적잖은 반동에 손목을 떨었다. 오러까지 두르고 있는대도 한번에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승자는 나였다. 놈의 흉갑이 우그러지고 알루미늄 호일처럼 구멍이 났다. 갑옷 틈에서 창백한 가스가 수증기처럼 피어 올랐다. 동시에 놈이 기사검을 전부 뽑았다.


하아, 숨을 들이쉬며 쓰러진 갑옷을 내려다보았다. 창백한 가스가 투구와 갑옷의 틈에서 피어 올랐다. 저 가스를 통해 혼이나 그와 비슷한 것을 갑옷에 묶어놨겠지. 갑옷은 움찔거리더니 곳 움직임을 멈췄다.


문득 뺨에 아릿한 느낌이 나서 쓸어보았다. 작은 생체기가 나 있었다. 마지막 발검에 배인 모양이다. 역병처럼 냉기가 퍼졌다. 인상을 찌푸리며 마나로 억눌렀다.

“검에 주술이라도 걸려 있나 보네.”


어느새 산 중턱까지 올라온 골렘들을 흘깃 쳐다보고, 다음 갑옷기사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성상으로 67호는 갑옷기사들에게 상당한 우세를 점했다.

그리고 67호는 현실에서 왜 상성이 그렇게 매겨지는지를 증명했다.


야산 높다란 바위 위에 정복자 왕처럼 올라서서, 눈 덮힌 비탈면을 기어 오르는 갑옷기사들에게 푸른 전류를 퍼부었다. 갑옷 사이사이 잔류전기가 지직거리고, 가죽으로 된 끈들이 까맣게 타 들어갔다.

강력한 넉백기에 당한 갑옷기사들은 발밑에 쌓인 눈과 함께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아, 방금 조금만 더 밀려났으면 골렘 발에 밟히는 건데, 아쉽네.

67호도 그걸 아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네 놈은 한 놈은 아래로 떨어트렸고, 한 놈은 방금 죽였다. 한 놈은 67호의 손에 작살나고 있고, 한 놈은 44호의 열선포격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여기서는 내가 골렘들하고 싸우는 게 맞겠네.”


지형상 우세를 점하고 있다. 중력 조작과 육각미늘방패를 적당히 활용하면 날 듯이 달리는 것도 힘들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중력도검을 들어 올렸다. 경사가 가파르게 변하는 산 중턱에서 한참 허우적거리던 25미터급 골렘에게 검 끝을 겨누었다.


“넌 몇 번 만에 부서질 거 같아?”


골렘의 어깨 위에 서서 목과 삼각근의 사이쯤에 중력도검을 내리쳤다. 부피로 보면 이쑤시개만도 못하지만, 한 번 내려칠 때마다 자동차만 한 얼음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양 손은 진작 잘라버렸다.


고오오오오오오!!


살기가 풍압에 실려 왔다. 18미터정도 되어 보이는 골렘이 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뼈마디에 스파이크같이 날카로운 얼음이 돋아 있었다.

옛날에 아버지의 배에 앉은 파리를 잡으려 주먹을 휘두르다 파리가 이리저리 옮겨가는 바람에 졸지에 아버지를 두들겨 팬 어리석은 아들 이야기가 있었지.


타악! 25미터급 골렘의 등에서 뛰어올랐다. 구름다리처럼 펼친 육각미늘방패 조각들 밟고 달려 18미터급 골렘의 손목 위로 착지했다.


쩍! 18미터급 골렘의 주먹이 25미터급 골렘의 삼각근과 등을 후려쳤다. 내가 방금 전까지 열심히 다져 놓았던 곳이다. 유난히 단단한 스파이크가 얼음을 뚫고 들어가고, 25미터급 얼음 골렘의 대가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18미터급 얼음 골렘의 주먹이 깨져나가며 얼음 조각들을 튀겼다.


손목에서 팔꿈치로, 팔꿈치에서 어깨로 달려 올라갔다. 날 쏘아보는 건방진 눈을 향해 중력도검을 휘둘렀다. 얼음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감히 말하건데, 모든 게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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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1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1 2 12쪽
» 110화 +1 21.05.25 29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5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7 2 12쪽
98 98화 +1 21.05.07 41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6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6 2 12쪽
90 90화 +1 21.04.27 46 3 12쪽
89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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