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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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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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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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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2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102화


잠시 지도를 살핀다. 협곡과 큰 바위 몇 개와 산사태가 일어난 자갈지대가 눈에 띈다.

“고은유 님. 산입니다. 이동중에 다수의 장애물이 나타나 다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예상 추가 소요 시간은 30분 정도입니다.”

루트를 수정하고, 고은유에게 보고한다.

“알았어. 확인. 충헌이에게는 내가 말해 둘게.”

고은유는 이를 확인하고, 연구계 헌터를 기다리는 충헌 조에 이 사실을 일린다. 따라오는 윤 박사님이 너무 지치지 않았나 확인하고, 다소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다시 걷는다. 다시 사고를 이어간다.


미르한은 ‘일치율이 높은 클론에게 저주나 주술을 사용해 본인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44호를 제거하려 했다.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안위를 우선시한 판단이었다.

그의 안위가 동아시아 전체의 안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오히려 44호와 같은 위험요소를 남겨 두는 걸 무모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44호가 미르한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막 해결되었다. 고은유는 우리 중 하나가 3년간 콘체른에서 일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정수를 나눠 주기로 했다. 모두가 바랄 기연이었다.

이제 우리네 삶에 이렇다 할 불안정성은 없다. 누군가의 필요와 정치적 사정 탓에 목숨이 왔다갔다 할 일도 없다. 한 장짜리 서류가 우리의 폐기를 논할 수는 없다.

이제야 우리는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권리와 의무를 가졌다고 생각해도 되리라.

한 인간으로서.


저 멀리 반충헌이 기다리고 있을 골짜기가 보인다. 어쩐지 반가워서 걸음을 재촉했다.


***


2주는 순식간에 흘러갔다.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는 게 뭔 소리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네크로맨서들과 세 번 더 싸웠고, 수십 마리의 거대 갑각지네들을 잡았다. 네 개의 유적을 발견했으며, 그 중 한 개의 유적을 발굴했다. 골렘을 만들던 생산장이라고 한다. 기반 기술이 부족한 탓에 처음부터 강력한 골렘을 만들 수야 없겠지만, 헌터 외에도 마수와 싸울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발견이었다.


잔여마력: 7323/7388

공격스킬

마법계 <열선> <교란전격> <경질화>

도검계 <중력도검> <역장도검> <오러 블레이드> <흡성검기> <반탄검기>

방어스킬

<육각미늘방패> <역장방패>

보조스킬

<신체부분변조> <신체강화>

<점멸걸음> <중력조작>


어때, 하는 물음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고은유였다. 보이쉬한 적갈색 머리칼 뒤로 찬란한 상현달이 후광을 비췄다. 서늘함과 은밀함, 그리고 자신감이 드러나는 미소가 은유의 만면에 어려 있었다.


“어마어마한 성장이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내일모래면 A급 달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44호가 고개를 숙였다. 67호가 허탈함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상야릇한 얼굴로 큰절을 올렸다.


“세상...만수무강 하십시오. 이 은혜를 어찌 갚으라는 말씁이십니까?”


우리가 성장 가능한 헌터라는 걸 안 고은유는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정찰조를 운용해 갑각지네들을 끌어들이고, 우리를 계속해서 실전에 투입시켰다. 혹시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다면 본인이 개입해 갑각지네를 끌어내고 우리가 태세를 정비할 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아리수에게 중거리 전투법을, 반충헌에게 근거리 전투법을 배웠다. 누가 듣는다면 부러워 날뛰거나 개소리 하지 말라고 웃어넘길 이야기였다.


“가드 올려! 가드, 가드 올리라고!”


반충헌은 복싱의 기본부터 경질화를 통한 순간적 강화, 오러를 손에 두르는 법, 중력 조작 등의 개인 스킬 응용까지 총체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훅훅 나가는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또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다. 모르면 맞는 거고, 맞다 보면 알게 되었다.


“고개 들고 마력 배분해. 상대가 몇인지 빠르게 파악하고, 내가 가진 마력의 3분의 2 안에 전부 죽일 수 있도록 해 봐.”

아리수는 중거리, 원거리 전투를 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스타일이 확고한 67호보다는 44호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A급 헌터는 검술을 지도해 주었다. 그는 곡도 세이버로 수십 톤 중력도검을 손쉽게 흘려내며 다가와 내 목에 칼을 들이댔다. 그는 중력도검을 어떻게 다뤄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지 나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무거운 건 나다. 근데 왜 네가 무거운 칼을 쓰는 것처럼 굴어? 네가 추구해야 할 검은 극도의 쾌검이다. 가벼운 검은 빠르다는 장점과 위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 무거운 검은 위력이 강하지만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 네 중력조작 스킬로 만든 이 중력도검은 둘 모두의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무기야. 길이를 네 멋대로 조절할 수 있기까지 하니, 이건 뭐...내가 봐도 사기다.”

“가, 감사합니다.”

“끝까지 들어. 그 좋은 칼을 가지고 너는 둘 모두의 단점만 사용하고 있어. 크기 좀 줄이고, 검신도 조금만 더 얇게 다듬어. 그리고 미친 듯이 휘둘러. 좀 빠르게만 밸 줄 알아도 어지간한 B급 상위 헌터들 다 썰고 다니게 될 거다.”


고은유, 반충헌, 아리수, 이름 밝히지 않은 헌터, A급 헌터 네 명이 성장 가능한 세 명을 지도했다. 이미 모든 노하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만렙 찍은 플레이어가 부캐를 키우듯, 우리는 미친 듯이 강해졌다. 시야 우상단의 마력이 비 온 뒤 잡초처럼 늘어났다.

우리는 해면처럼 성장해 나갔다. 대기의 마나와 A급 헌터들의 지식을 스펀지같이 빨아들였다. 그렇게 빨아들인 양분으로 성장하고, 성장한 몸으로 더 많은 양분을 빨아들이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성장통이 뒤따랐지만, 아픔마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시이이이이익!! 갑각지네가 사마귀 같은 앞다리를 뻗으며 돌진했다. 칼끝 같은 다리들이 다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었다.

“시작한다.”

어둠 내린 땅에 하얀 빛이 반짝였다. 짧은 신호와 함께 44호가 움직였다. 중력 광선 네 발이 갑각지네의 꼬리와 뒤쪽 다리 몇 쌍을 땅에 떨어트렸다. 꼬리가 돌에 깔리기라도 한 것처럼 무거워지자 갑각지네가 당황하며 바르작거린다. 몇 쌍의 다리가 꼬이며 허둥댄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67호가 바위 뒤에서 달려 나갔다. 푸른색과 노란색이 뒤엉킨 전류이 밤을 밝힌다. 벼락이 몰아치고, 기껏 어둠에 적응했던 눈동자가 다시 커진다.

전격에 얻어맞은 갑각지네가 수십 쌍의 다리를 바르르 떤다. 몇 쌍의 다리와 몸의 옆면은 숯처럼 검게 그을려있다. 30미터에 육박하는 몸이 서서히 기운다.


그때 43호는 이미 갑각지네의 머리 위까지 도달해 있었다. <중력조작>으로 몸무게를 가볍게 만들고, <신체강화>로 속도와 위력을 올리며, <육각미늘방패> 조각을 적절한 타이밍에 만들고 부수며 하늘을 달렸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아리고 선선했다. 들이쉴 때마다 충만감이 폐부를 매웠다.

땅, 허공에서 반 바퀴 구르며 발과 머리를 뒤집는다. 천장을 박차듯 육각미늘방패 조각을 걷어친다. 밤바다 같은 색의 장검을 불러낸다. 저번보다 크기를 줄였다고는 해도 한 뼘 넓이의 검신에 날만 일곱 뼘이 넘는 대검이었다.

갑각지네가 전격의 충격에 부르르 떨면서도 날카로운 앞다리를 장창처럼 찌르려던 찰나,

퍼석, 그다지 요란한 소리도 없이 갑각지네의 머리가 부서졌다. 사과를 대리석 싱크대 모서리에 힘껏 내려친 것 같았다.

43호는 <점멸걸음>으로 순간적으로 가속해 갑각지네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 나비의 날개짓처럼, 돌아가는 바람개비처럼 대검을 휘둘렀다. 부체꼴 두개골이 잡아먹히듯 여기저기 패여 나갔다.

67호의 전격에 맞은 다리와 꼬리가 오그라든다. 갑각지네의 배가 돌바닥에 닿을 무렵에, 이미 머리는 제대로 된 형체도 남지 않았다.


“이제 좀 봐줄만 하네.”

반충헌이 퉁명스러운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고개는 한 번 끄덕여주었다.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 마음 놓지 마. 한 놈 더 간다.”


검푸른 어둠 속에서도 진홍색 트윈테일은 선명했다. 산 너머서부터 유인해온, 다리 하나가 신전 기둥만큼 굵은 거미가 그 뒤를 바싹 쫓았다. 정자의 주춧돌로 쓸 만한 크기의 돌들이 여덟 개의 다리에 조약돌처럼 채이며 튕겨나갔다.

어느새 넷이 다섯으로 늘었다.


“조심해라. 얘는 꽤 오래 묵은 거 같으니까.”

하나뿐인 눈으로 셋을 바라보며, 이서윤은 우리 머리 위를 뛰어 사라졌다.


“자리 잡고, 거리 벌려!”

44호가 먼저 소리치며 위치를 잡았다. 거미는 목이 꺽일 정도로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거대했다. 다리와 몸통은 거울을 칠한 것처럼 매끄러운 금속질이었다. 전차포를 일제 사격해도 흠집 하나 안 날 것 같았다. 여덟 개의 녹색 눈 아래 팔뚝보다 큰 독니가 빼곡했다.


44호가 거미의 정면에 서서, 붉은 빛 감도는 열선을 발사했다. 요란한 불똥을 튀기며 짙은 그을음을 남겼다.

녹색 눈 주변으로 채액이 흘러내렸다. 무의미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썩 훌륭한 일격도 아니었다.


“괜히 화만 돋운 거 아니야?”

압도적인 체급의 괴물이 뭔가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 67호가 공터 주변을 뱅 달려 거미의 오른편으로 향했다. 섬섬옥수에 다시 한 번 전류가 일어났다.


“와...시발 진짜 더럽게 크네.”

욕을 쏟아낸 67호는 앞다리리 두 개를 골고루 지졌다. 드럼통 같은 마디 사이사이가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고소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거미 구이는 관심 없는데. 시발. 아직 미디엄도 아니니까 구이라고 말하기도 뭐한가?”


살이 익은 갑각 거대 거미가 발광했다. 머리통만한 돌들이 아무렇게나 차여 날아왔다. 상당히 떨어져있던 43호가 역장 방패를 전개해야 할 정도였다.

67호는 경질화한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다. 바위, 하고 하기에 조금 작은 돌을 맞고 비틀거렸다.


“43호! 내가 한 번 더 어그로 끌 거니까, 몸통 위로 올라가!”


44호가 소리쳤다. 말하는 와중에 이미 몸은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같은 피를 타고난 이들끼리 긴 말은 필요 없었다. 눈높이 6미터 가량의 거미를 발밑으로 내려다보며, 44호는 수십 발의 열선을 어깨 위로 띄워 올렸다.


“빨리 타겟팅 좀 가져가!”


67호를 향해 가칭 ‘거대거울갑각거미’는 철퇴처럼 네 개의 다리를 내려찍었다. 다리가 떨어진 곳마다 크레이터같이 땅이 파이고 날카롭게 깨진 돌들이 튀었다.

67호는 떨어지는 굵은 다리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신속의 허리띠>가 주는 가속력에, 전류로 근육을 자극하며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기술’을 더했다. 43호의 <점멸걸음> 스킬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속도였다.


“타이밍 잘 잡아! 3점사 할 거야.”


44호는 60여 개 열선의 구들을 넓은 부체꼴로 펄쳤다.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수십 개의 붉은 달이 떠오른 것 같았다. 장관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아아아아악!!


거미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질렀다. 근처에 있던 S급 헌터 이서윤마저도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일반인이었다면 내장이 터져 죽었고, 하급 헌터였다면 심한 내상을 입었을 게 분명했다.


A급을 앞둔 44호 역시, 완전히 버텨내지는 못했다. 영혼을 긁어낸 것 같은 불쾌감과 귓가에서 웽웽 울리는 이명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44호는 애써 불러낸 열선의 구를 통제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번에는 내가 이긴 것 같네.”


애써 의연하게 웃으며, 44호는 한 손을 높게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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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1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1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 102화 +1 21.05.13 35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1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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