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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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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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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글자수 :
6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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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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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8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88화


다구리에 장사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일 때 이야기다. 한 줌의 헌터들은 수백 마리의 거대 갑각벌을 압도했다.


“시발! 이것들 좆도 아니잖아! 겨우 이게 다냐? 이게 다야? 이 벌래 새끼들아!”


67호의 전격은 날벌래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백금빛 전격이 허공을 휩쓸고 나면 날개가 오그라든 갑각벌들이 하나 둘 지상으로 떨어졌다. 놈들이 날개와 다리를 바르작거리고 있자면, C급 헌터들이 눈치 빠르게 뛰어다니며 손도끼로 목을 치고 나이프를 겹눈에 쑤셔 박았다.


수십 마리의 벌들이 B급 헌터들 주위를 맴돌았다. B급 헌터들이 등을 맞대고 만든 원 안에서 연구계 헌터들이 덜덜덜덜 떨었다.


벌때가 몰려든 순간 B급 헌터들은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오러 타오르는 검날에 벌들의 다리와 갑각이 송당송당 잘려 나갔다.


“젠장. 수만 많아가지고. 차라리 와이번 한 마리가 낮지.”

“좀만 모아 줘. 한 방에 끝낼게.”


열댓 마리의 벌때가 유독 방어가 약해보이는 쪽을 노렸다.


“내 그럴 줄 알았다.”


B급 헌터는 눈살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자존심이 상한 듯 찡그린 눈은 몰려드는 벌 때들을 보자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듯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한순간 입을 쩍 벌리고 박장대소하며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방패가 달아오르며 몇 분간 축적해놓은 충격파를 내뿜었다. 진로에 있던 수십 마리의 갑각벌들이 으깬 새우처럼 변했다.


두 A급 헌터는 이러저리 뛰어다니며 벌때를 학살했다. 끝이 가볍게 휜 세이버가 휘둘러질 때마다 검풍을 뿜어내며 허공의 벌들을 토막냈다.


“자꾸 시체 이쪽으로 떨어트릴래?”


충헌이 눈을 부릅뜨고 고함치며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붉은 기운이 퍼져 나가며 갑각벌들을 휩쓸었다. 외상 하나 없지만 껍질 안 내장과 근육이 짓이겨졌다. 갑각벌들이 상한 열매처럼 뚝뚝 떨어졌다.


“내가 여기서 뒤질 것 같냐?”


이미 하늘로 끌려 올라간 C급 헌터는 끝까지 몸부림쳤다. 이러저리 찔러드는 침을 꿈틀거리며 피했다. 자신을 얽어맨 다리들을 뚝뚝 부러트렸다. 놓친 손도끼를 대신해 작은 나이프로 벌들의 눈을 찌르고 배갑을 잘라냈다.


“아, 젠장.”


세 마리의 벌들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녀를 놓쳤다. 그곳은 하늘섬 위가 아니라 수백 미터 상공이었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지상을 보며 그녀는 소리쳤다.


“콘체른 길드에 영광 있으라!”


퍽!


그녀의 외침을 들으며 43호는 내달렸다. 44호가 유독 거대한 갑각벌 두 마리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열선으로 갑각벌의 배에 구멍을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그녀 역시 추락하겠지. 저 아래로.


“오지 마! 너까지 뒤지려고 작정했냐?”


44호가 눈을 까뒤집으며 외쳤다. 어깨 위에 하얀 열선이 맺히더니, 43호의 발 앞으로 쏘아지며 선을 그었다.


벌들은 빠르고 확실하게 섬에서 멀어져갔다. 이대로 가면 영원히 못 보겠지. 실감나지 않는 현실이 머리카락에 바람처럼 스치며 비웃었다.


움찔하며 멈춰 선 43호를 보며 44호는 싱긋 웃었다.

‘우리 어떻게 얻어 낸 삶이니? 너라도 살아야지.’

심장을 차가운 손으로 움켜준 것처럼 시렸다. 두려움이 냉기처럼 번졌다. 이를 악물고 거칠게 숨을 내쉬며 눈물을 참았다.


아쉽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겉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껏 스러진 형제자매들이 자존심을 지켜 왔듯이, 44호는 눈을 깜빡이며 흐르려는 눈물을 털어냈다.

일그러지는 얼굴을 애써, 정말로 애써 폈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여기서 뒤질 순 없지.”


언제라도 쏠 수 있게 열선을 준비했다. 꿈지럭거리는 꽁무니를 바라보며 혹시나 침을 꺼낼 경우 반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때 섬의 절벽으로 도움닫기하는 43호가 눈에 들어왔다.


‘저 바보새끼가! 한날한시에 죽자고 맹세라도 했냐?’


하지만 그 몸이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어?”


햇볕을 받아 허공에 뭔가가 반짝거렸다. 유리 조각을 뿌려놓은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43호의 형체가 조금씩 가까워져 왔다.


“내가, 뭐하러 폼 구겨 가면서 모래괴물한테 도망치고 돌격대장 악마한테 칼 맞아 가면서 기어나왔던 것 같아! 교관들 총 맞아가면서 연수원에서 널 빼왔는데! 미르한한테 머리 숙여 가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는데!”


살리자고 들어온 곳에서 널 잃어버릴소냐?


43호는 눈을 부릅뜨고 마력을 전개했다. 심장이 북처럼 뛰며 활기를 온 몸에 전달했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힘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미 한 번 해 봤던 일이다. 그때는 훨씬 더 짧았고, 동굴 안이었다.

하지만 떨어지면 끔찍하게 죽는다는 건 똑같았다. 그게 같으면 어지간한 차이는 무시할 수 있었다.


손을 휘두르며 육각미늘방패를 전개했다. 손바닥 크기에 반투명한 흑청색 미늘들이 허공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한 걸음 크게 건너뛰자 착지가 불안정했는지 발목이 크게 흔들렸다. 오른발을 내딛을 곳에 곧바로 미늘 한 장을 더 불러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벌들이 있었다. 두 마리 벌은 놀리듯이 천천히 멀어져 갔다.


“그래. 누가 먼저 지치는지 보자.”


이를 악물었다. 다리에 힘줄이 올라오며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신체를 최대한으로 강화했다. 한 걸음에 수십 미터를 뛰어오르며 허공을 갈랐다.


‘바깥에서라면 못 했을 재주야.’


A급 던전의 대기에는 많은 마력이 녹아들어 있었다. 모 마족 로열 가드가 사용했다는 반지가 정밀한 마력 운용을 도왔다. 폐에서 받아들인 마력을 정제해 심장으로 보내고, 심장에서 피를 타고 흐르며 이능을 전개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어느 만큼 나아갔고, 어느 순간, 어느 위치에 조각을 전개해야 하는지까지도.


‘아직도 느려! 가속? 가속!’


반쯤 잊고 있던 시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가벼운 진동과 함께 분침 바늘이 한 칸 움직이고, 시야 오른쪽에서 잔여 마력 게이지가 크게 감소했다.


타악, 그 댓가로 한 번의 도약으로 수백 미터를 가로지를 속도를 얻었다.


뛰는 놈이 나는 놈을 따라잡아간다.


시이잇!


어느새 벌의 갑각 무늬가 보일 만큼 가까졌였다. 놈들이 당황하며 곡예 같은 급선회를 선보였지만, 놀랍도록 준민해진 몸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갈기자로 도망치는 벌의 꼬리를 잡았다.


“44호! 날 잡아줘! 뛰어 내려!”


44호는 43호가 육각미늘방패를 전개하는 장면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짙은 혈통이 준 재능이 위기를 맞아 개화했다. 곧바로 따라하며 허공을 내달릴 수는 없었지만, 미늘의 좌표를 고정하고발받침으로 쓴다는 개념은 확실히 이해했다.


일부러 반지의 기운과 함께 열선을 쏘아냈다. 화기가 더해진 열선은 붉은빛이 돌았다. 43호를 조롱하듯 비행하던 두 마리의 벌이 깔끔하게 가로로 잘려 나갔다.


한 조각의 미늘을 발로 차며, 44호는 43호에게 안겨들었다.


“야! 이 미친 놈아! 죽을 뻔 했잖아!”

“미안.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나 말고!”


수백 개의 섬들 아래 서서, 반짝이는 미늘을 밟으며 둘은 얼굴을 맞댔다.


“너 죽을 뻔 했잖아...어떻게, 어떻게 얻어낸 삶인데.”


43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소녀를 한껏 껴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지독한 안도감이 피로와 함께 엄습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이제 우리 어떻게 돌아가?”


쩍, 불길한 소리가 났다. 생글생글 웃고 있던 소년 소녀의 눈빛이 빠르게 변해간다. 놀이공원에서 공과금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것 같았다.


“떨어져야지.”


신체강화.


남아있는 2천 가량의 마력 중 1천 가량을 강화에 집중했다. 혹여 잘못 내딛어도 발목이 부러지는 정도로 끝나도록. 44호를 가볍게 안아 들고, 미늘에서 미늘로 뛰어 내렸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몸이 7~9 미터 가량 아래로 떨어졌다. 조금 더 촘촘하게 만들 수 있으면 좋으려만, 지상까지 남은 거리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상 마력을 아껴야 했다. 100미터 상공에서 미늘 만들 마력이 남아있지 않아 오들오들 떨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젠장!”


강풍이 불었다. 떨어지는 와중 몸이 밀려, 본래 밟아야 했던 미늘을 지나쳤다. 급하게 여섯 장을 추가로 불러내며 착지, 아니 착미늘 했다. 무릎에서 쩍 소리가 났다. 연골이 다 닮아 없어질 것 같았다.


“땅까지는 몇 미터나 남았으려나?”


시야 우상단의 잔여마력 게이지는 불쌍할 정도로 조금 남아 있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원래 도달했어야 했던 하늘섬이 주먹만 하게 보였다. 벌들을 추격하며 생각보다 많은 거리를 이동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마력이 이것밖에 안 남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비행마법이 걸린 마도구를 빌려오는 거였어. 이 가속 시계는 뭐야? 한 번 발동하는데 마력을 돼지처럼 처먹잖아. 효율이 개판이야.’


탁, 탁, 타악.


끝도 없이 고개를 쳐드는 불평들을 저 깊은 곳으로 일단 밀어넣었다. 어찌어찌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땅까지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품 안의 온기와 존재감에 너무나 감사했고, 동시에 좀 내려높고 싶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열두 시간 정도 쉬고 싶었다.


불행히도 A급 던전은 방문객들에게 여유를 허락지 않았다. 검게 썩어버린 대기에 발을 딛자마자 생물로서의 직감이 밀려왔다.


‘뭔가 제대로 잘못됐어.’


무거웠다. 정확히 뭐가 무거운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온 몸에 모래 주머니를 매단 것 같았다. 손이 무거웠고, 다리를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다. 고개가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배낭이라도 맨 것처럼 어깨가 구부정하게 휘었다. 머리카락도 평소보다 축 가라앉았다. 몸무게 그 자체가 늘어났거나, 땅이 나를 더 강하게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44호.”

“응.”


지친 몸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고통 같은 게 아니었다.


“43호. 일단 좀 피곤해도 섬 쪽으로 이동해서 이서윤 님이랑 합류하는 걸 목표로 삼자. 다행히 아주 멀리 온 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래. 눈에 보이는 게 어디냐.


애인을 옆에 두고 검은 땅을 걸었다. 저 멀리 줄기줄기 늘어선 산들이 보였지만, 이곳은 무너진 돌담만이 가득했다.


“44호. 이게 문명의 흔적이겠지?”

“응. 근데 적어도 최근 5천년간은 아무도 안 쓴 거 같아.”


나무 기둥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역사 교과서 초반에 나오는 움집터처럼 생긴 돌담들이었다. 가장 멀쩡하게 남아있는 것도 높이가 무릎까지밖에 안 와서, 담이라도 부르기도 민망했다.


“의외네. 살아있는 게 있을 줄이야.”


44호의 손가락 끝에는 커다란 지네가 기어가고 있었다. 쫙 펴면 어지간한 사람 키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뭘 먹고 사는 걸까? 무지 황량해 보이는데.”


“43호. 이거, 검은 돌이 아니야.”


44호가 돌맹이 하나를 주워 내밀었다. 엄지 손가락으로 문질러보며, 버석거리는 막이 부스러지며 떨어져 내렸다. 연녹색 액체와 적잖은 습기까지 품도 있었다.


“...이끼나 버섯, 곰팡이 같은데.”

“이끼든 버섯이든 확실해. 이거, 독 있는 거야.”


손가락이 붉게 부어오르며 수포가 잡혔다. 물론 별 의미는 없었다. 티끝만한 마나라도 흘리는 순간 분해되어 흩어질 잡독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물이 만들어내는 독은, 축적이 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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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1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1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0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0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4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1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91 91화 +1 21.04.28 35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4 3 12쪽
» 88화 +1 21.04.23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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