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훼룡 님의 서재입니다.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훼룡
작품등록일 :
2020.12.29 11:21
최근연재일 :
2021.06.03 19:00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8,834
추천수 :
338
글자수 :
636,119

작성
21.04.28 19:00
조회
35
추천
2
글자
12쪽

91화

DUMMY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91화


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

악몽 같은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아가리가 넷으로 갈라지며 흉악한 이빨을 드러냈다.


전반적으로 보면 거대한 지네나 다름 없었다. 반 뼘 두께의 금속골질 갑옷과 바위를 생크림처럼 즈려밟아 부수는 다리를 한 가득 달고 있다는 걸 빼면.


“으아아아악!!”


저 괴물이 어떻게 소리없이 다가온 거야? 의문만큼이나 빠르게 다리가 움직였다.


반쯤 굳어버린 44호의 손을 잡아챘다. 전류가 통한 것처럼 44호가 몸을 획 돌렸다.


“가, 가자.”


곧바로 바위에서 뛰어내려 우리가 떨어진 하늘섬을 향해 달렸다. 돌바닥에 달라붙은 이끼와 버섯들이 짖이겨지며 녹색 독액을 흘렸다.


시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몸을 길게 뻗으며 놈이 쫒아오기 시작했다. 거친 갑각 사이로 옅은 선홍빛 살덩이가 엿보였지만, 차마 역습을 가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돌아보지 말자!”


와마디 외치고 배에 힘을 주었다. 양팔을 미친 듯이 내저으며 육상 선수처럼 대지를 질주했다. 작은 바위를 뛰어넘고, 큰 바위를 뱅 돌아 달렸다.


“43호! 중력조작! 몸무게 가볍게 하고 뛰어!”


그 말을 남기고 44호가 총탄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앞으로 고꾸라질 듯이 몸을 기울이고, 잔뜩 힘을 준 발목으로 땅을 박찼다.


“아!”


중력조작을 사용하자,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훨씬 힘이 덜 들었다. 땅을 박찰 때마다 폭발이 일어나듯이 몸이 가속했다.


“그런데 왜 저놈도 같이 빨라지는 거냐고!”


다리가 백 개라고 백 배 빠를 리 없을 텐데, 괴물은 달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전차처럼 질주했다. 다리가 꼬여 주면 좋겠건만,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시이이이악!


차르르르르르르르르르. 비늘 같은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뭔가 웅웅 울리며 회전하는 소리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뒤를 돌아보았다.


“44호! 거리벌려!”


놈이 꼬리를 머리 위로 쳐들고 이쪽을 조준했다. 2미터는 넘어 보이는 집게 사이에서 녹색 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맹렬하게 회전하며 구형태를 이뤘다.


“저거 맹독이야! 조심해!”


상당한 범위공격기일 만큼, 우리 둘이 거리를 벌린다 해도 데미지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괜히 낭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 거다.


예상이 맞았는지, 저 거대한 뼈다귀 갑옷 지네는 흉악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꼬리 끝을 움직였다.


44호가 약간 속도를 줄인다. 지쳤나 싶어 부축하려 다가갔지만, 입술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뭔가 술식을 중얼거리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곧이어 등 위로 네 발의 열선이 떠올랐다. 검은색을 띄고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44호는 달리던 그 기세 그대로 뛰어 오르며 반 바퀴 돌았다. 맑은 거울 같은 눈에 뼈다귀 갑옷 지네를 담고, 손을 휘두르며 열선을 해방했다.


“아무 일도 없잔!...?”


검은색 열선에 얻어맞은 갑각 꼬리가, 휘청이며 오른쪽 아래로 기울었다. 철퇴처럼 떨어져 옆에 있던 바위를 부쉈다.

“시에에에에에에에엑!”


지네가 경악과 당혹감이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적색 눈 여섯 개를 깜빡이며 다리들을 뒤틀었다.


“뭐, 뭘 어쩐 거야?”


“중력 스킬. 열선에 응용해 봤어. 맞은 부위가 몇 배는 무거워질 거야.”


잠시 멈춰 서서 거대 지네의 바르작거림을 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재빠르게 다가가 역장도검을 휘둘러 목을 따는 욕심이 났다. 저 정도 마물의 마석은 얼마나 강한 힘을 품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되며 가슴이 뛰었다.


“가자.”


44호가 팔을 잡아끌었다. 못 이기는 척 하며 몸을 돌려 다시 다리를 재촉했다.


분명히 꼭 싸워야 할 순간이 온다.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치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하게 될 거다.


***


해가 떴다. 벌써 몇 시간째 잠도 음식도 물도 먹지 못했지만, 의외로 몸이 멀쩡했다. 다리는 한두 시간쯤 걸은 것처럼 노곤했고, 물 생각도 간간히 났다. 그래도 못 버티고 주저앉을 만큼은 아니었다.


“43호. 붉은 자갈 던전에서도...이렇게 안 지쳤어? 뭔가, 피곤하지가 않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기에 마나...마력이 풍부해서 그런 거 같아. 붉은 자갈 던전에서는...응, 확실히 던전 밖에서보다 덜 지쳤던 거 같아.”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고개를 떨구고 말을 잊었지만,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하늘섬이 훨씬 커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오 이전에 하늘섬 아래에 도달할 것 같았다.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났다. 피비린내와 탄내 사이의, 불쾌한 냄새였다. 옷자락으로 코를 감싸고 눈동자를 돌려 가며 주변을 경계했다. 독은 아닌지 신체에는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기. 저거 마수 시체 아니야?”


44호의 손가락 끝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회색고구마 같은 것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높이는 4미터, 몸길이도 8미터는 넘어 보였다.


“세상, 대체 왜 이딴 것들이 사는 거야.”


금속질 갑각을 전투화 앞쪽의 징으로 걷어찼다. 적잖은 반동과 함께, 쇳소리가 울렸다.


동산만큼 거대한 몸뚱이를 뱅 돌자, 대충 이 거대한 강철굼뱅이가 어떤 생물이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무지무지 거대한 쥐며느리처럼 생겼네.”


빛을 잃은 유리질 눈을 톡톡 두드리며 44호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44호. 너 이거 열선으로 뚫 수 있겠어?”


갑각은 같은 두깨의 철판보다 몇 배는 단단했다. 역장도검으로 쑤셔 봤지만, 오러 없이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뚫 수야 있겠지만, 열선 몇 개를 한 점에 집중해서 쏴야 하겠지. 옆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조준점도 정확히 잡아야 할 거고.”


하필 들어오는 곳이 다 A급 던전이라서 그렇지, 우리는 이제 썩 괜찮은 전력이었다. 마력량이 4천 대니 아직은 B급 중에서도 하위권이지만, 원거리전과 난투를 모두 수행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스펙이었다. 마력을 다루는 능력도 타고났다. 총량이 더 많은 상대라도 한 번에 많은 힘을 쏟아부어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거대한 강철굼뱅이의 갑각에는 저칠게 뚫린 자국이 몇 개나 있었다. 검이나 창 같은 걸로 쑤신 흔적이었다.


“사실 이게 같이 들어온 A급 헌터님들이 잡은 거라고 하면 이상할 게 하나도 없거든.”


“...아닐지도 모르니까 불안한 거지?”


44호가 강철굼뱅이의 머리 쪽으로 빠져 나온 수십 개의 다리들을 만지작거거렸다. 다리들은 잔뜩 오그라들어 있었다.


“43호. 이거 봐봐. 전기로 지진 흔적이야. 67호가 잡았을 수도 있어. 아까 그 거대 지네 때문에 좀 불안한 거 같은데...너무 그러지 마. 이제 곧 합류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44호의 머리 위로 두 개의 기다란 앞발이 솟아올랐다. 높이 4미터에 달하는 강철굼뱅이의 뒤에서 부체꼴 머리돌기가 올라오고, 세 쌍의 붉은 눈이 햇살 아래서 희번덕거렸다.


“시발.”


이제 입에 완전히 붙어버린 관용어구를 내뱉으며 역장 방패를 불러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돌진하며 44호를 밀어냈다.


갑자기 밀려난 44호가 인상을 쓰며 뭐라 소리치려 하고, 역장 방패가 산산히 부서졌다. 사마귀 같은 앞발이 귀 옆을 스치고 땅에 박혔다.


44호가 인상을 찌푸리고 이를 드러냈다. 헝클어진 앞머리 사이에서 색소 옅은 눈이 이글거렸다, 곧바로 어깨 뒤쪽에서 네 발의 열선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얼굴에 놈이 고통스럽게 고개를 저어댔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물러나지는 않고, 끝이 뾰족한 다리들을 움직이며 강철굼뱅이를 타넘으려 했다.


“...절지동물계 마수는 야행성이라고 배웠는데....43호! 빨리, 일어나! 집요한 새끼. 여기까지 쫒아올 줄은 몰랐어.”


44호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얼굴이 납처럼 창백해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어찌어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쓰러질 것처럼 일어나 역장 방패와 도검을 불러냈다. 뒤통수가 따뜻해서 문득 만져보니 끈적한 게 손에 묻어났다.


“...세상.”


이렇게나 강렬한 색이 있을까?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피를 본 꼴도 기구했다. 바지에 슥슥 닦고 날 두꺼운 환도를 손아귀 안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방금 거대 지네 때문에 불안하냐고 했지?”


44호 옆을 스치며 환도를 늘어트렸다. 세심하게 방패 크기를 조절했다. 방패 안쪽에 44호가 있도록.


“붉은 자갈 던전 나올 때도 그랬어. 꼭 이제 괜찮겠다 싶을 때 저것들이 나오더라고. 아주 방심의 기류를 읽어내는 대에 도가 튼 놈들이야.”


네 갈래로 갈라진 입 사이로 송곳 같은 이빨들이 즐비했다. 화르륵, 흑청색 오러가 늘어트린 환도에 타올랐다. 환도를 대각선으로 들어 바르게 겨누었다.


“못 이길지도 몰라. 그럼 죽어.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아니면 한 번 찔러나 볼까?”


어떻게 살아남아 보겠다고, 태어나게 해준 은인을 납치해가며 아등바등 도망쳤건만,

마수 앞에서 등 보이기 싫은 건 헌터의 자존심일까 질병 같은 망집일까?


44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멎쩍게 웃으며 여섯 발의 열선과 네 발의 중력광선을 어깨 위로 불러냈다.


“아까 도망쳐봤잖아. 속도는 우리가 더 빨라. 대신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도망치기. 저 다리에 한 대만 맞아도 중상이니까.”


44호가 땅을 걷어차며 뒤로 점프했다. 어느새 중력 조작이 꽤 익숙해졌는지, 풍선처럼 느릿하게 떠올라 서서히 내려앉았다.


“내 조준력 믿지? 안 맞게 잘 쏠 거니까 적당히 괴롭혀!”


하하, 웃음이 나왔다. 그래. 부디 안 맞게 잘 쏴 주라고. 달리기 쉬게 커다란 카이트 실드를 위아래로 깍아냈다. 거대한 갑각 지네가 손가락 마디를 움직이듯 다리들을 놀리며 강철굼뱅이 위에서 내려왔다. 몸통의 절반 가량이 굼뱅이를 타넘고 등허리가 위로 볼롯하게 솟았다. 집게와 침이 있을 꼬리는 여전히 굼뱅이의 반대편에서 얼쩡거렸다. 그 때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시이이이이익!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놈이 머리를 돌렸다. 부체꼴 모양의 거대한 두개골과 넷으로 갈라진 턱이 햇볕을 받아 번들번들 빛났다.


‘아무리 그래도 다리가 스무 쌍이나 되는데, 뭘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걷지는 않겠지.’


측면을 들이받을 듯이 돌진했다. 놈이 머리를 돌리는 것보다, 중력조작으로 가볍게 만든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게 빨랐다.


끝이 뾰족하게 갈린 갈비뼈 같은 다리들이 눈 앞으로 줄줄이 늘어섰다. 것보기에는 이음매 하나 없이 갑각으로 둘러쌓인 것 같지만, 정말로 그랬다면 걷지도 못했겠지.


‘기본적으로 나보다 큰 놈들과 싸울 때는 관절을 노리는 거다.’


마디마디 사이 불그죽죽한 살덩이가 언듯언듯 보였다. 땅을 박차고 뛰어 오르며 환도를 머리 위로 치켜올렸다.


‘중력제어!’


발이 지상을 떠닌다. 날아 오르듯 다리를 휘젓는다. 한순간 시야가 높아지며 높이 3미터에 달하는 지네와 눈높이가 맞았다. 그 순간 중력제어로 두 배에 달하는 중량을 몸에 건다.


쩡!


날카로운 쇳소리가 났다. 지네의 마흔 개 다리 중 하나가 바닥을 나뒹군다. 잘려나갔음에도 아직 신경이 살아 있는지 도마뱀의 꼬리처럼 날뛴다.


시이이익!


고통보다는 불쾌감으로 가득 찬 소리를 내며, 지네가 넷으로 갈라진 아가리를 오물거린다.


생각보다는 자를 만 했다. 갑각을 버서뜨리려면 오러를 치덕치덕 둘러야 하겠지만, 다리 관절 정도야 배어낼 수 있었다.


갑각 지네가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이 투명한 안구에 상을 맺는다. 이제는 눈 돌리지 않는다. 다시 환도를 치켜들었다.


“마흔 개 다리 중에 몇 개가 잘려나가면 못 걸으려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7 118화. 레플리카 헌터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FIN. +1 21.06.03 32 2 13쪽
116 117화 +1 21.06.02 27 2 13쪽
115 116화 +1 21.06.01 25 2 12쪽
114 115화 피와 꽃 Fin. +1 21.05.31 31 2 12쪽
113 113화 +1 21.05.28 26 2 12쪽
112 112화 +1 21.05.27 31 2 12쪽
111 111화 +1 21.05.26 31 2 12쪽
110 110화 +1 21.05.25 28 2 12쪽
109 109화 재시험 Fin. +1 21.05.24 26 2 12쪽
108 108화 +1 21.05.21 37 2 12쪽
107 107화 +1 21.05.20 41 2 12쪽
106 106화 +1 21.05.19 44 2 12쪽
105 105화 +1 21.05.18 30 2 12쪽
104 104화 선물 Fin. +1 21.05.17 38 2 13쪽
103 103화 +1 21.05.14 26 2 12쪽
102 102화 +1 21.05.13 35 2 12쪽
101 101화 +1 21.05.12 31 2 12쪽
100 100화 +1 21.05.11 37 2 12쪽
99 99화 +1 21.05.10 26 2 12쪽
98 98화 +1 21.05.07 41 3 12쪽
97 97화 +1 21.05.06 37 3 12쪽
96 96화. 짧은 밤 fin. +1 21.05.05 37 2 12쪽
95 95화 +1 21.05.04 34 3 12쪽
94 94화 +1 21.05.03 35 3 12쪽
93 93화. 중력도검 Fin. +1 21.04.30 36 3 12쪽
92 92화 +1 21.04.29 41 3 12쪽
» 91화 +1 21.04.28 36 2 12쪽
90 90화 +1 21.04.27 45 3 12쪽
89 89화 +1 21.04.26 35 3 12쪽
88 88화 +1 21.04.23 41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