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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136
추천수 :
892
글자수 :
532,633

작성
21.10.01 13:05
조회
185
추천
3
글자
10쪽

문이 열리는 날

DUMMY

10일 후.




"세종문화회관. 세종이야기. 충무공이야기."


범헌은 광화문 광장에 서서 눈에 보이는 모든 한글을 읽고 있었다. 옆에서 범예가 말했다.


"가만히 좀 있어. 글자를 보고 따라 읽다니, 네가 어린 애냐?"

"배웠는데 써먹어야 될 거 아니야."


주동화에게 한글 교육을 받은 범헌과 범예는 이제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에 신이 난 범헌은 또 읽을 만한 글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피스메이커 본부에서 광화문으로 출발할 때, 모두 눈속임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행인들은 아무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때문에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범헌은 광장을 돌아다니며 한글 읽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한국에 머물렀으면 책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범헌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책을 술술 읽을 정도는 못 되었기 때문이다.


"원리를 알았으니, 자주 사용하여 익숙해지면 돼."


범예가 말했다. 체통 없이 소리내어 글자를 읽는 동생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열심히 한글을 배운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범예와 범헌을 보며, 권채선은 한숨을 쉬었다.


"너희는 참 속도 편하다."


천국인들과 달리 권채선은 꽤 긴장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차원의 문이 열리는 날이다.


그리고 범예와 범헌은 약속한 대로, 권채선을 차원문이 열리게 될 이곳에 데려왔다.


즉, 권채선은 이제 몇 분 뒤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코앞에 둔 권채선은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속이 불편할 이유가 뭐가 있어?"


범예가 물었다. 범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권채선을 쳐다본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 집으로 돌아가는 입장인 범예와 범헌에게는 조금도 긴장감이 없었다.


평소 거의 무표정한 최민의마저도 지금은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다.


그도 이제 낯선 차원에서 황녀와 황자를 보호하는 고된 임무에서 벗어나기 직전이니.


"그래, 너희는 아무 걱정 없겠지."


권채선은 확연한 입장 차이를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국인 세 사람에게는 한 달간의 이세계 정찰 임무가 끝나는 날이 아닌가.


이세계와의 만남을 앞둔 그와는 다른 처지다.


"그런데 저기는 한글이 아니고 천자를 사용했어. 왜지?"


광화문의 팻말을 가리키는 범헌에게 권채선이 말했다.


"저건 천자가 아니고 한자야."

"천국에선 저 글자를 천자라고 말해."


이에 권채선은 범헌이 보여주었던 수첩의 글자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한자라고 딱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한자와 매우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권채선도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국인들은 그 글자를 천자라고 부르며 문자로 쓰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권채선은 범헌에게 한자가 적혀 있는 이유를 알려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한글을 쓰기 전까지는 저 글자를 사용했거든."

"아하, 그렇다면 저것은 한글을 쓰기 전에 만들어진 건물인가 보구나."

"맞아."


여기에 권채선은 한자 혼용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한 50년 전까지만 해도 한자를 한글이랑 같이 썼는데, 한글이 더 편해서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

"네 말이 옳다."


범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천자에 비해서 훨씬 직관적이고 익히기도 쉬워."


그리고선 잠시 고민을 하다가 권채선에게 물었다.


"한글을 고려성에서 사용해도 될까?"

"네 마음대로 해."

"정말 고맙다. 우리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범헌이 눈을 반짝이며 감사 인사를 하자, 권채선은 약간 멋쩍어졌다.


"고맙긴.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고마워하려면 세종대왕께 감사해."

"세종...? 어디서 들어봤... 아!"


범헌은 아까 보이는 대로 글자를 읽어댔었던, 세종문화회관 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그 이름이 있었다!"


자신의 발견에 놀라워하는 범헌에게 권채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맞아. 저 건물에 세종대왕 전시관이 있거든."

"대왕이라... 그렇다면 왕족인가? 너희 세계엔 황제나 왕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범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을 퍼부어 왔다.


"100년쯤 전에는 이 땅에도 왕실이 있었거든."

"100년이라. 그리 먼 옛날은 아니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건 그거보다 더 전이지. 500년은 더 됐어."

"한글은 세종이라는 선왕이 혼자 만든 건가?"

"응."


권채선의 대답에 범헌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놀랍구나. 이 대단한 글자를 한 사람이 만들어 내다니."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지."


그리고서 권채선은 세종대왕 동상을 가리켰다.


"그래서 저렇게 기리고 있잖아."

"그래. 동상을 세워 추앙할 만한 업적이다."


범헌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권채선에게 약속했다.


"너희가 한글을 알려 주었으니, 네가 원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내가 돕겠다."


그리고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주동화도 우리와 함께 가면 좋았을 텐데."


그새 가까워졌다고 친근하게 주동화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범예의 생각은 달라 보였다.


"범헌, 이들은 우리를 공격했던 자들이야. 친구가 아닌 적이라고."


바로 범헌의 느슨함을 나무란다. 하지만 범헌도 대꾸할 말은 있었다.


"그러는 누나도, 지금 전혀 경계 안 하고 있잖아."


마음 편히 차원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건 범예도 다르지 않다.


정곡을 찔린 범예는 권채선을 힐끗 쳐다보고서 말했다.


"이 자는 우리를 공격할 리가 없거든. 천국의 지식을 노리고 있으니까. 우리한테 잘 보여야 되는 입장이지."


범예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다. 권채선도 인정하는 바였다.


아직 천국의 장서관에 들어갈 수 있다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황제를 만나야 결정될 테니 그전까지 권채선은 이 황녀와 황자에게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주동화까지 데려가기엔 염치가 없지. 나 혼자 가는 편이 대화가 쉬울 거야."


권채선이 차원문을 넘어가면 천국의 입장에서도, 처음으로 이세계의 인간이 방문하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명을 줄줄이 데려가면 아무래도 천국인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다.


"권채선의 말이 맞아. 돌아가면 천국의 다른 황제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바쁠 것이다."


범예는 천국에 돌아가는 대로, 이 차원을 정복하는 것이 불가함을 보고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투 불능 상태가 몇 번이나 발생했는데 지원하러 오지 않은 이유도 따져야겠지."


분한 얼굴로 말을 덧붙이는 범예에게, 권채선이 물었다.


"정복 불가를 설득할 수 있겠어? 여기엔 룩시온도 없고, 너희보다 문명이 발달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긴 하지만 너처럼 불사의 능력이 있는 자도 있고, 무엇보다 신의 힘을 가진 자들이 있다."


범예는 전부터 반신의 존재를 쭉 신경 쓰고 있었다.


실제로 지구에 대한 정복을 사실상 포기한 것도, 주작과 백호를 연달아 보고 난 직후였고 말이다.


"이 땅에 신이 있는 한, 천국이 정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신을 두려워하는 거야?"

"응. 천국에는 신이 없거든."


권채선은 범예의 말뜻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범예는 신이 정말 실존하는, 구체적인 존재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확인을 위해 다시 물었다.


"종교가 없다는 의미야?"

"아니? 말 그대로의 의미다. 천국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과학 기술만으로 국력을 키웠지."

"그러면... 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는 신이 있다는 뜻이야?"

"응."


권채선으로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대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신에 대한 것도, 천국에 들어가 자료를 열람하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 많은 편이 좋았다. 그러면 깨닫게 될 사실도 많아질 테니까.


권채선은 어서 천국의 지식을 손에 넣고 싶었다.


"문이 열릴 때까지 얼마나 남았어?"

"앞으로 1각."


범예가 대답했다.


이제 15분 후면 차원문이 열린다.


천국인이 지구에 와서 처음 발을 딛은 광화문 이 자리에, 똑같이 한 번 더 차원문이 열리는 것이다.


범예는 권채선에게 차원문에 대해 설명했다.


"차원의 문은 다섯 시진 동안 열려있을 것이다."

"꽤 오랫동안 열려 있네."

"응. 어긋난 공간이 자동으로 복구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리더군."


엄청난 에너지를 이용해 차원을 비틀어 통로를 만들면, 공간은 당연히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할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원래 모습을 되찾는 데 다섯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뜻이다.


"힘을 가해서 더 일찍 닫을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범예의 말에 범헌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상황이 괜찮으면, 다른 한국인도 천국에 들어오게 할 수 있어."


어차피 차원의 문은 다섯 시간이나 열려있으니, 천국 황제들의 태도가 우호적이라면 주동화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초대를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권채선은 범예와 범헌, 최민의를 바라보며 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이런 관계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불과 며칠 전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상대는, 천국으로 그를 데려가 지식을 전수해 줄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게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 오자,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하늘에 자잘한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햇빛으로 오해할 만한 반짝임이었다.


"문이 열리고 있다!"


범헌은 그것이 문이 열리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주먹만 한 크기였던 반짝임은 차차 자라나 커다란 고리 모양으로 하늘에 수놓아졌고,


범예가 권채선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들어가자."


그렇게 범예와 함께 하늘로 솟아오른 순간,


권채선은 눈 앞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게 뭐야...?"


차원문에서 수를 셀 수도 없는 천국인 병사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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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51구역 (2) 21.09.28 190 3 13쪽
95 51구역 (1) 21.09.27 18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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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잠입 (1) 21.09.23 19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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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비공식 대담 (2) 21.09.09 220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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