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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127
추천수 :
892
글자수 :
532,633

작성
21.09.11 13:05
조회
236
추천
3
글자
12쪽

제온

DUMMY

27년 전.


북한 량강도, 혜산.




절기로는 완연한 봄이었지만 고원의 기후는 혹독했다.


권채선은 양털 점퍼의 지퍼를 목 끝까지 끌어 올렸다.


지금 그는 2차 한국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 북한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무전기를 통해 요원들에게 상황을 전했다.


"북서부, 현재까지 이상 없음."


북한의 핵 개발 사찰 거부, 그로 인한 미국과의 갈등은 전쟁의 불씨로 자라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항공모함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피스메이커의 중재와 대한민국의 의지로 전쟁의 발발은 막을 수 있었지만,


급진적 성향을 가진 북한의 비정규군이 남한으로 침투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이 넓은 데를 언제 다 뒤져."


권채선은 지도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비정규군의 집결지는 개마고원에 위치한 지하 벙커라는 정보가 전부.


개마고원은 한반도의 20%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 넓고 척박한 땅을 어느 세월에 다 뒤져서 벙커를 찾아낸다는 말인가.


그러나 비정규군이 남한으로 침투하게 되면, 남한에서 대응을 할 것이고 그 즉시 전쟁이 발발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 한국의 피스메이커 본사는 물론 동부지사와 서부지사의 요원들까지 모조리 동원하여 개마고원을 뒤지고 있었다.


수색 과정에서 북한 군인에게 발각되면 더 시간이 지체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추적 중에, 권채선은 어린아이와 마주쳤다.


"얘, 왜 여기에 혼자 있어?"


다섯 살이나 겨우 되었을까. 비쩍 마른 남자아이였다.


이 추운 날씨에 민소매 티를 입고 맨발이라니. 그것도 척박한 개마고원에 아이 혼자서.


국경에는 구걸을 하는 아이가 많이 있기에 그런 아이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멀뚱히 서서 권채선을 쳐다보기만 할 뿐, 구걸하러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을 이상히 여긴 권채선은 아이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이름이 뭐니?"

"림."

"성 말고 이름을 물었잖아."


그러나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림이구나. 몇 살이야?"


림은 대답하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권채선은 서둘러 뒤를 쫓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추격전은 끝났다.


림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권채선은 기절한 림의 상태를 살폈다. 몸에는 온통 멍투성이에 영양실조가 의심되었다.


"국경을 넘으려고 했던 건가?"


국경을 넘다가 발각되어 구타를 당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단순히 강도에게 맞은 것일 수도 있고.


권채선은 림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흘간 쉬지 않고 걸었으니 휴식도 취할 겸 림이 눈을 뜰 때까지 잠깐 머물기로 한 것이다.


지도를 펼치고 요원들과 무전을 하며 조사를 끝낸 구역에 표시를 하고 있는데, 누워 있던 림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권채선에게 달려들어 손칼로 턱을 쳐올렸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했지만 권채선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림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무슨 짓이야."


림은 정확히 급소를 노렸다. 만약 상대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바로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몸을 단련한 권채선을 상대로 어린아이의 힘은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손목을 붙잡힌 림이 자기 혀를 깨무는 것이 아닌가.


"야! 안 돼!"


권채선은 서둘러 림의 입에 손을 넣어 혀를 깨물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깨물렸지만, 일단은 림이 죽지 않게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림의 정체에 대해 짚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마고원을 민소매로 혼자 돌아다니고, 순간적으로 급소를 공격하는 기술, 궁지에 몰리자 자살 시도.


"침투병..."


비정규군의 게릴라 침투전에는 어린애만 한 전력이 없다.


훈련시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가장 효과적이다.


어린아이들을 모아 이름조차 붙이지 않고 병사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권채선은 일단 가방에서 주먹밥을 꺼내 림에게 내밀었다.


"먹어."


림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생존 욕구 앞에서 인내를 배우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주먹밥을 낚아채듯 가져가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는 림에게, 권채선이 물었다.


"몇 살이야?"

"여섯 살입니다."


림이 무시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


"집에서 도망친 거야?"

"아닙니다."


역시 사람 마음을 여는 데는 먹을 것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권채선은 다시 질문을 했다.


"그럼 혼자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단련입니다."

"단련이라니? 무슨 단련?"

"생판 모르는 땅에서부터 집까지 돌아가는 것입니다."


권채선은 바로 알아챘다. 이건 생존 훈련이다.


이런 걸 어린애가 자발적으로 할 리는 없고, 분명히 강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는 그것이 착취인지도 모르겠지만.


"집이 어딘데?"

"동무들이 있는 곳입니다."

"나한테 들켰으니 집에 돌아가는 건 글렀네."


이에 림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는 남조선에서 왔습니까?"

"응."


그러자 림은 주먹밥을 먹으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머리로.


그때 권채선이 말했다.


"나는 너한테 밥을 매일 줄 수 있어."


그러자 림은 움푹 패인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대신에 네 집이 어딘지 알려줘."


그곳이 바로 비정규군의 은신처일 터. 하지만 림은 대답은 하지 않고 권채선에게 물었다.


"동무들을 죽일 생각입니까?"

"살려주려고 그래."

"믿지 못합니다."


그리고서 림은 주먹밥을 내던지고 도망쳤다.


권채선은 림이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요원들에게 무전을 하여 지금 뛰어나간 남자아이를 뒤쫓으라고 말했다.


권채선은 아이가 도착한 곳에서 요원들과 함께 지하 벙커를 덮쳤고, 어렵지 않게 비정규군을 소탕할 수 있었다.


비정규군은 위치가 발각되자 지하 벙커에 불을 질러 모든 흔적을 없애려고 했다.


훈련을 시키던 아이들까지.


피스메이커 요원들은 있는 힘을 다해 아이들을 구해냈다.


권채선 또한 불길을 뚫고 들어가 림을 구해냈고, 데리고 나와서 말했다.


"내가 살려주겠다고 했잖아."


그때 바로 위치를 알려줬으면 너나 나나 고생을 덜 하지 않았느냐고, 권채선이 투덜거리자 림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불길에서 살아 나온 동무들의 숫자를 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림은 동무들이 모두 대피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그리고 권채선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먹던 밥을 버리고 도망쳤니?"


그러자 림은 당연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남조선에서 적군이 왔다고 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뛰어가서 알린 거야? 남조선에서 온 사람을 봤다고?"

"네, 동무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대답을 들은 권채선은 림에게 점퍼를 벗어 걸쳐 주었다.


민소매 티셔츠의 시린 어깨 위로 따뜻한 양모가 덮였다.


그리고 권채선은 림의 손을 감싸 쥐며 말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제온이야. 따뜻한 아랫목에서 따뜻한 밥만 먹고 살라는 뜻이지."

"제온..."

"너는 나하고 남한으로 갈 거니까. 성도 림이 아니라 임이라고 해야 돼."

"임제온."

"그래. 그게 오늘부터 네 이름이야."



***




"제온아! 두 명 남았다!"


권채선과 임제온은 마지막으로 남은 두 명의 요원을 향해 달려갔다.


총알 세례를 받아도 쓰러지지 않는 권채선과 초합금 의수로 무장한 임제온을 상대로 프랑스 피스메이커 요원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30 대 2의 수적 우세는 간데없고 이제는 2 대 2 싸움이 되어 있었다.


한편 주동화는 권채선의 말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제온?"


임이섭의 본명이 임제온인 것을 모르는 주동화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프랑스 요원 두 명도 무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서른 명의 요원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나서, 권채선은 고개를 들어 프랑스피스메이커 전투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주동화! 방어 해!!"


권채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프랑스 전투기에서 폭탄이 발사됐다.


주동화는 서둘러 룩시온 모드로 들어가 투명한 방어벽을 만들었다.


빠른 속도로 생성된 방어벽은 주동화와 천국인들을 폭탄이 일으킨 폭발에서 막아 주었다. 하지만,


"요원님! 주임님!!"


권채선과 임제온에게까지 방어벽이 뻗어나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주동화는 폭탄을 정면으로 맞은 권채선과 임제온을 부르며 소리쳤다.


한차례 폭탄이 떨어지고 난 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임제온이 의수로 자신의 머리 위를 감싼 채, 권채선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있었다.


당연히 임제온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그 안에서 권채선은 큰 상처 없이 무사했다.


주위에 쓰러져 있던 프랑스 피스메이커 요원들도 큰 부상을 당했다. 지사장은 자신의 요원들이 다치는 것도 상관없이 폭탄을 발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한국피스메이커 무인기가 방향을 돌려 프랑스 전투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본사 요원이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비록 같은 피스메이커라고 해도 대응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듯했다.


주동화도 레이젯 무인기에 무전을 했다.


"저 대형 전투기 공격하세요."


그렇게 해서 무인기 세 기와 대형 전투기 한 기의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권채선은 전투기를 향해 기관포를 쏘는 무인기들을 확인한 뒤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는 임제온에게 말했다.


"너 그러다 잘못하면 죽어."


그러자 임제온은 얼굴에 쓰고 있던 마스크와 고글을 벗고 일어섰다.


"보스가 저한테 이름을 주신 날."


그리고 권채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부터 제 목숨은 당신 것입니다."


이에 권채선은 피식 웃었다.


"네 목숨 따위 필요 없어."


그리고는 자연치유 되어가는 손 피부의 상처를 훑어보며 말했다.


"나는 이미 가진 목숨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그러자 임제온이 말했다.


"그래도, 제가 있어서 아프지 않았잖아요?"


권채선이 가진 불사의 힘, 즉 자연치유 능력은 권채선의 생명을 무한히 연장시켜 주지만, 상처에 대한 고통까지 없애 주는 것은 아니었다.


상처가 나면 보통 사람처럼 아프고, 병에 걸려도 앓는 것은 똑같다. 다만 회복력이 빠를 뿐이다.


그러니 전투기의 포탄을 혼자서 받아냈다면 꽤 부상이 심했을 것이다.


이렇게 바로 두 발로 일어서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회복이 될 것이고, 권채선이 죽임을 당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까짓것 좀 아프면 뭐가 어때서."

"그래도 제가 보스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요. 고맙다고 해 주세요."

"그래, 고맙다."


거의 반강제로 고맙다는 말을 들어낸 임제온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권채선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야, 레이젯이 도와주고 있네. 고맙기도 해라."


그리고는 주동화에게 엄지를 한 번 들어 보이고서 임제온에게 물었다.


"3대 1이라... 이기기는 힘들겠지?"

"격추는 힘들어 보입니다. 셋 다 소형 무인기라서요."

"어쩔 수 없구나."


그리고서 권채선은 자켓 안주머니에서 손가락만 한 리모컨을 꺼냈다.


리모컨의 버튼은 총 3개로, 가장 위에 검은색, 두 번째에 빨간색, 마지막 세 번째는 흰색이었다.


"팍스를 거역한 지사장을 살려 보낼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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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탑 마스터 21.09.12 220 4 10쪽
» 제온 21.09.11 237 3 12쪽
78 서부지사 21.09.10 22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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