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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145
추천수 :
892
글자수 :
532,633

작성
21.09.26 13:05
조회
186
추천
3
글자
12쪽

첫인상

DUMMY

범헌은 수술대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고, 마스크를 한 연구원들은 바삐 손을 움직이며 뭔가를 자르고, 빼내고 있었다.


주동화는 다급히 범헌의 심박수를 보여주는 환자감시장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그러나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 말고는 조금도 다행한 상황이 아니었다.


주동화는 수술대 옆에 놓여 있는 범헌의 오른팔을 보았다.


이미 오른팔을 동강내어 놓고, 이어서 다리를 자르고 있는 것이었다. 사지를 잘라내어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재생 능력을 실험하려는 건가. 그러나 범예의 말에 따르면 범헌은 자가 치유를 할 줄 모른다.


아니, 의식이 없는 상태로는 그 누구도 자가 치유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동화는 바로 실험실에서 나와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권채선에게 무전을 했다.


"범헌이 실험을 당하고 있어요."


무전기에서 권채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헌의 상태는 어때?’

"의식이 없는 상태고 오른팔이 잘렸어요. 빨리 막지 않으면 다리도 잘려요."


주동화의 대답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권채선이 다시 말했다.


‘너무 늦었군. 구출은 범예와 최민의만 진행한다. 거기서 빠져나와.’

"하지만 아직 살아있어요."


곧 권채선의 답답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실험 중이라며. 거기 직원들 다 있는데 가서 데려올 거야?’


이에 주동화가 대답했다.


"네, 그러려고 연락드린 겁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구출 불가능할 경우엔 포기하라고.’

"불가능하지 않아요."

‘몸이 다 잘린 애를 데리고 어떻게 빠져나온다는 거야!’

"급한 부분만 치료해서 나가면 돼요"

‘어느 세월에 치료해서 전투기까지 데려가게?’


권채선은 답답함을 삭히듯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빨리 나오지 못하면 미군 전 병력이 그쪽으로 몰릴 거야. 그 산 송장을 데리고 어떻게 하려고.’

"더는 무전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리 절단 들어갔어요."

‘이미 팔이 잘렸다며. 어차피 과다출혈로 죽어!’

"아직 안 죽었잖아요."


이것을 마지막으로 주동화는 무전을 끊었다.


권채선은 단호하게 끊겨버린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야! 주동화!!"


즉시 권채선은 임제온에게 무전을 했다.


"제온아, 주동화가 실험 중인 범헌을 구하려고 하고 있어. 포기하고 나오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임제온은 51구역 상공에서 대기 중엔 전투기에서 무전을 받았다.


"범헌은 사망했나요?"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아.’

"그러면 어떻게든 데리고 나오려고 하겠네요."


임제온은 바로 현재 상황을 이해했다.


범헌을 실험체로 한 생체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상태고 그것을 주동화가 발견한 것이다.


당연히 권채선은 범헌을 놔두고 복귀하라 지시했을 것이고, 주동화는 그것을 이행하지 않았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권채선이 이쪽에 무전을 했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네가 가서 주동화를 데리고 나와. 힘으로라도.’


예상대로 권채선은 주동화를 빼내 오라는 명령을 했다.


그러나 임제온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제가 힘으로 동화씨를 어떻게 이겨요."

‘그럼 설득이라도 해봐. 너 말 잘하잖아.’

"절대 안 들을걸요."


주동화의 성격은 몸소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틸엘 총격전 때 보셨잖아요. 본인이 추락할지도 모르는데 끝까지 제 손을 놓지 않던 거."


가족이나 친구도 아닌,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스파이를 살리려고 했던 사람이다.


무전기 너머로부터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죽기 딱 좋지.’


권채선의 말이 맞다.


사옥에서 추락하면서 룩시온과 결합에 실패했으면 주동화는 죽었다.


아니, 그 전에 칭다오에서 주은표가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 그때 이미 죽었을 것이다.


"맞아요. 무모하고 감정적이죠. 저나 보스랑은 전혀 다른 인간이에요."


임제온의 주동화에 대한 첫인상은, 기이하다는 것이었다.


틸엘에 입사하는 사람들은 꽤나 명석하고 약삭빠르게 살아온 무리들이 대다수였다.


뛰어난 두뇌는 기본으로 갖고, 여기에 더하여 인생을 최고의 효율로 갈고 닦으며 살아온 최상위 그룹.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주동화는 단연 기이했다.


늘 주눅이 들어있고, 문제를 타파하려고 하기보다는 멍을 때리면서 상황을 회피하려 들고.


그것은 학습된 무기력.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포기의 정서.


틸엘 정도의 대기업에 입사했으면서, 주동화는 항상 불안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해댔다.


나중에 그가 아버지 빽으로 입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주눅 들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틸엘 대표이사의 외동아들, 더 나아가 한빛 그룹의 후계자가 될 사람이 도대체 왜 무력감에 젖어 있단 말인가.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박 책임의 요점정리 보고서를 닳도록 읽어대고.


주동화는 항상 스스로를 모자라고 부족한 인간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이런 모습에 의문이 들었던 임제온은 주동화의 과거에 대해 조사해보고 나서 이유를 알았다.


주은표 회장이 돌아오기 전 어머니와 둘이서 살던 시절, 그때의 습관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온 뒤 높은 사회적 지위의 획득과 함께 돈방석에 앉았지만, 주동화의 내면은 여전히 어머니와 둘이서 살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동화를 이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어머니 이야기에 눈이 뒤집혀 따라 나오지 않았나.


"어머니를 구할 생각만으로 스파이를 따라가고."


사실 임제온은 주동화를 칭다오로 데려갈 수 있을 확률을 50 대 50으로 생각했다.


내면세계의 전부와 다름없는 어머니를 구하려고 뛰쳐나오거나,


학습된 무기력에 의해 자신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포기하거나.


둘 중에 망설임조차 없이 전자를 선택했을 때, 임제온은 주동화의 본성을 조금은 눈치챘다.


20년이 넘게 심장을 틀어쥐고 있던 포기의 정서 사이로 고개를 내민,


예리한 불꽃 같은 투쟁심.


"자기를 죽이려고 드는 사람을 살리려고 하고."


어머니를 납치한 적에게 향했던 그 투쟁심은 인간의 죽음을 향해서도 어김없이 타올랐다.


상대가 적이든, 아군이든, 그런 것은 주동화에게 의미가 없었다.


오직 임이섭이라는 한 인간을 살리기 위해, 코앞까지 닥친 죽음과 싸웠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짓을 반복한다는 말입니다."


뒤늦게 생각해 보면 주동화가 끊임없이 과학 공부를 했던 것도.


결국엔 그가 가진 투쟁심의 온건한 발로였던 것이다.


고등학교 과학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틸엘이라는 대기업에서 바로서기 위한 조용한 투쟁.


주동화는 아버지의 명성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써 인정받는 방식을 택했다.


‘주은표의 아들로 살아간다.’ 대신 ‘고등학교 과정부터 박사 과정까지 공부한다.’ 라는 무모한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결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그 결과 지금은 인체 구조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바탕으로 치유술을 사용하며,


메타물질과 같은 물리학의 개념까지 완벽하게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아마 이번 일도 미국의 교섭권 독점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주동화가 투쟁의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성을 걷어내고 감정을 남기면, 삶의 본질이 보이게 된다.


자신의 안전보다 어머니의 구조를, 스파이의 척결보다 인간의 생명을, 아버지의 후광보다 정당한 실력을.


천국과의 무역 교섭권보다, 천국에서 온 세 사람의 안전한 귀환을.


"천국인을 구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걸 겁니다."


말하면서 큰 목소리 한 번 내는 일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도 재주가 없어 조용한 편이지만,


한 번 옳다고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다.


‘그래서, 주동화를 저대로 놔두겠다는 거야?’

"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네 상관이 누군지를 생각해.’

"이건 보스를 위해서입니다."

‘뭐?’

"임무의 성공을 위해 범헌을 포기하라고 하는 거지, 솔직히 마음은 그렇지 않잖아요."

‘너 아주... 선을 모르고 까부는구나.’

"보스가 나중에 괴로워할 것을 알아서요."


몇 달간 연락도 없이 도피 생활을 하다가 평택에서 얼굴을 가린 채 마주했을 때,


권채선의 표정에서 임제온은 안도를 보았다.


비록 목숨을 걸고 룩시온을 손에 넣으라는 명령을 했지만, 부하가 살아있는 것을 다행히 여긴 것이다.


그 부하는 피스메이커를 배신했는데도, 명령에 불복했음에도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다시 거두었다.


"그래서 동화씨를 도울 수밖에 없네요."


지금도, 주동화가 죽든 말든 내버려 두고 서울로 전투기를 돌리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지상으로 내려가서 주동화를 챙겨 올라오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주동화나 범헌이 잘못된다면, 권채선은 자기 탓을 하며 홀로 괴로워할 것이다.


권채선은 자신의 감정을 임무보다 후순위로 미뤄 놓았을 뿐, 절대로 그들을 포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임제온은 주동화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결국엔 저 사람이 선택하는 방향이 옳은 쪽이니까."


임제온의 말을 들은 권채선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작전자의 무전을 통해 명령했다.


"지금 즉시, 각자 맡은 장소에서 천국인을 구출하도록 한다."


구조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임이섭의 무전기에서 주동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임님, 51구역 활주로로 총공격해 주세요.’



***



‘타-앙!’


총알은 정확히 생물공학정보센터의 유리창을 관통했다.


하단우는 오픈된 해치 앞에서 손에 남은 총알을 만지작거렸다. 총을 사용할 줄 몰라서 요력으로 탄환을 발사한 것이다.


총알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자 연구소는 비명으로 뒤덮였다.


보안 요원들이 달려와 총알이 날아온 곳을 찾으려 했지만, 눈속임 상태의 전투기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타-앙!’


그때 하단우는 총알 하나를 더 날려 보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쪽의 유리창을 뚫었다.


두 번의 총격으로 건물에서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고 사람들은 허둥지둥 건물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속에서, 범예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요란하게도 찾아왔네."


그의 눈에는 보였다. 연구센터 상공에 자리 잡은 초대형 전투기가.


그리고서 범예는 잠시 문밖의 보안 요원을 확인했다.


이곳에 잡혀 들어오고 나서 쭉 이 1인실에 갇혀 있었고, 밖에는 무장한 보안 요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격전이 벌어진 이상, 보안 요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으리라.


범예는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손쉽게 유리창과 방범 창살을 부수고 밖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투기의 열린 해치로 미끄러지듯 날아 들어왔다.


범예는 해치 옆에 서 있는 하단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에서 또 보는군."

"다친 데는 없는 모양이네."


그리고서 하단우는 권채선에게 무전을 했다.


"범예 구출했습니다."


상황 보고를 마치고 범예와 함께 다시 좌석으로 돌아왔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근데..."


하단우는 좌석에 앉아 있는 백규빈을 향해 물었다.


"아저씨는 왜 계속 따라다니는 거예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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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문이 열리는 날 21.10.01 186 3 10쪽
98 사탕 한 개 21.09.30 18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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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51구역 (2) 21.09.28 191 3 13쪽
95 51구역 (1) 21.09.27 185 4 11쪽
» 첫인상 21.09.26 187 3 12쪽
93 작전 계획 21.09.25 198 3 12쪽
92 잠입 (2) 21.09.24 183 3 11쪽
91 잠입 (1) 21.09.23 197 2 12쪽
90 생물공학정보센터 21.09.22 190 3 10쪽
89 미국으로 (2) 21.09.21 206 3 12쪽
88 미국으로 (1) 21.09.20 20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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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개방 21.09.16 226 4 11쪽
83 전세 역전 21.09.15 227 4 12쪽
82 반은 신, 반은 인간 21.09.14 224 4 11쪽
81 눈속임 장막 21.09.13 228 4 10쪽
80 탑 마스터 21.09.12 221 4 10쪽
79 제온 21.09.11 237 3 12쪽
78 서부지사 21.09.10 226 4 12쪽
77 비공식 대담 (2) 21.09.09 220 4 11쪽
76 비공식 대담 (1) 21.09.08 241 4 12쪽
75 재회 21.09.07 23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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