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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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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
글자수 :
532,633

작성
21.09.18 13:05
조회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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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교역 불가

DUMMY

권채선이 인사를 건넸지만, 범예는 대답이 없었다.


병상에 앉아 조용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평택 전투 이후 이틀 만에 만난 범예는 마치 손발이 묶인 호랑이처럼 온순한 태도를 보였다.


물론 눈빛은 그렇지 않았지만.


권채선이 침대 옆으로 걸어와 앉자, 범예는 권채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 네 마음은 이해해. 나를 찢어 죽이고 싶겠지."


권채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범예는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내 동생과 민의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거짓말하지 마! 민의는 아직도 의식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범예가 답답해하며 언성을 높였다. 권채선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최민의는 여기서 한참 떨어진 장소에 있는데, 범예가 어떻게 최민의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걸 어떻게 알지?"


권채선의 물음에 범예는 자신의 오른쪽 귓볼의 문신을 가리켰다.


"우리 생명 신호를 전달해 주는 장치야. 이걸로 서로의 상태를 알 수 있어."


겉보기엔 붉은색 문신일 뿐인데, 이것으로 동료들의 생명 신호를 전달받고 있는 것이었다.


범예가 귓볼에 손가락을 대자 범예의 눈앞에 자그마한 홀로그램 화면이 떴다.


그 화면에서는 범헌과 최민의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헌이는 전투가능 상태인데, 민의는 아직도 전투불능이야. 깨어나지 않은 거라고."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는 중이야."

"내가 치료하게 해 줘! 민의는 지금 어디 있지?!"

"그걸 알려주면, 바로 여기서 나갈 거잖아."


현재 천국인 3명은 모두 다른 곳에 수용되어 있다.


범예는 이곳 공주의 감호소, 범헌은 서울의 구치소, 최민의는 성남의 국군수도병원.


이렇게 찢어 놓은 이유는 천국인이 지구인을 상대로 도주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지구인보다 월등히 강한 신체 능력을 갖고 있으며, 눈속임 기술을 써서 모습을 감출 수 있다.


눈속임 장막을 썼을 때 이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주동화와 반신 뿐이니, 보통 사람이 천국인의 도주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세 명을 서로가 모르는 곳에 흩어지게 해 놓고, 행동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허튼짓을 하면, 다른 곳에 있는 네 동료가 위험해진다. 라는 협박으로 말이다.


그러나 권채선은 협박조가 아닌 부드러운 말투로 범예를 대했다.


천국과 무역을 터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범예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차원문이 열릴 때까지만 얌전히 있어. 내가 원하는 건 천국의 황제를 만나는 것뿐이니까."

"어머니를 만나서 무역을 하자고 제안할 생각인가?"

"어머니? 황제가 여성인가 보군."


범예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협상에 대해서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성의 황제들도 동의해야 돼. 고려성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야."

"다들 전쟁에 적극적인 입장인가 보지?"

"기본적으로 다른 차원은 정복해야 할 땅으로 보니까. 이미 한 차례 정복 전쟁을 시도했던 적도 있고."

"정복 전쟁을 이미 했었다고?"

"응. 실패했지만."

"어째서?"

"활소가 통하지 않는 상대들이었거든."


활소란 룩시온을 뜻한다.


천국인들이 지구에 오기 전, 먼저 찾아냈던 차원의 생명체는 룩시온이 먹히지 않는 상대였던 것이다.


범예의 말을 들은 권채선은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다른 차원에 또 다른 생명이 있다. 지구 말고도, 천국 말고도, 또 다른 세계가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다.


천국인들은 그가 모르는 이 우주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권채선은 천국인들에게 그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모두 듣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천국인은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으며, 지구를 정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구인을 상대로는 룩시온의 힘이 통하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 땅의 인간들은 모두 활소가 통하니까... 정복이 쉬울 것이다. 이 얘긴가?"


이에 범예는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그 주작을 불러낸 자는 정체가 뭐지? 그 자도 한국인인가?"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이지."

"자신을 반신이라 칭하던데... 신이 존재하는 건가? 한국에?"


범예는 하단우의 힘을 신경쓰고 있었다. ‘신’이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두려움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 신이 있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지금까지 이 나라를 정찰한 결과에 수정이 필요하겠지."

"정찰 결과가 수정되면, 전쟁을 하지 않는 쪽으로 황제를 설득할 수도 있나?"


범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천국에 불리한 대답이 되기 때문일 것이었다.


범예는 진지하게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반신이 등장하고, 주작을 소환하는 가공할 능력을 보여주었으니 공포를 느낄 만도 하다.


예상치 못한 반신의 참전이 협상의 방향을 바꾸게 될 줄이야.


권채선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천국에서 먼저 무역을 제안해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먼저, 천국이 필요로 하는 자원이 뭔지를 알아야 했다.


"천국에서 원하는 자원이 뭐지?"

"땅."


범예의 말에 권채선은 약간 당황했다. 석유나 광물 같은 것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땅? 설마 흙이 필요한 건 아닐 테고... 토지를 말하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옥토."

"비옥한 토지가 필요한 거야?"

"응. 나무가 잘 자라는, 지력이 풍부한 땅."


땅을 필요로 한다니. 권채선은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땅은... 교역으로 주고받을 수 없어."

"맞아. 그래서 속국을 제안한 거야."


천국이 원하는 자원은 땅.


무역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다.


무역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천국인이 지구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식민지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천국은 애초부터 무역이라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딱 3가지의 선택지만 있었다.


정복을 포기한다, 전쟁하여 정복한다, 전쟁없이 정복한다.


지구에 오기 전 접촉했던 차원의 경우, 승리하지 못해서 정복을 포기.


지구는 전쟁하여 식민지화하거나, 전쟁 없이 속국으로 만들거나. 둘 중에 한 가지를 고르려는 것이다.


그런데, 범예가 의외의 사실을 언급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옥토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

"누가?"

"나를 찾아왔던 자가 말했다. 남는 땅이 있다던데?"


남는 땅이라니. 지구에 그런 게 어디 있나. 지구상의 모든 땅은 모두 특정 나라의 영토에 속해 있는데.


"잘못된 사실이다.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범예와 무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피스메이커의 승인 없이 협상을 시도했다.


권채선은 독단적으로 움직인 자를 찾아내야 하는 것과 동시에, 무역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진 것에 대한 대응책을 세워야 했다.


천국과 무역을 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권채선은 생각이 많아졌다.



***



이틀간 인터뷰 세례에 시달린 주동화는 퀭한 눈으로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해서 쭉 버스나 지하철로만 다녔는데, 이제 도저히 대중교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쉴 새 없이 뉴스에 얼굴이 나오는 탓에 길거리만 걸어 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차를 사게 될 줄은 몰랐는데.


25년 인생 최초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목이 너무 전국구 급이다.


올해 마가 꼈는지 북악산 전투가 뉴스에 나온 것부터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아... 머리 아파."


조용한 차 안에서 혼자 운전을 하면서도 옆머리가 지끈거린다. 주동화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안 좋아하고 그 흔한 SNS도 안과 친구도 별로 없는데.


원하지도 않는 관심이 낯설고 기가 쭉 빨리는 느낌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주류가 되어 본 적이 없는 그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처럼 떠받들기도 하고 괴물이라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주동화는 다시 예전의 존재감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진 것을 다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 없는 현실이다.


"네, 책임님. 주동화입니다. 오늘도 출근은 어려울 것 같아요."


주동화는 결근을 하게 되어 박관배 책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틀간 연구실을 못 나갔지만 이 상태로라면 언제까지 결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된 가운데 회사에 가는 것도 민폐일 것이었다.


‘30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


아침부터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국군수도병원. 최민의가 입원한 곳이다.


평택 전투가 끝나고, 중상을 입은 범예와 최민의를 하병원으로 이송하려고 했지만 국군에게 저지당했다.


다른 차원에서 온 침략자를 민간 병원에 보낼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을 하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명호 박사의 치유를 받게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주동화는 급한 대로 범예를 이송하는 차량에 같이 타서 어느 정도 치유를 해 주었다.


덕분에 범예는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응급 처치를 해 주지 못한 최민의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반신의 요력이나 룩시온을 통한 치유술이 아니고서는 치료가 더딜 수밖에 없다.


최민의가 의식을 차린다면 스스로 치유가 가능하겠지만, 그전까지는 병원의 치료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상황.


그래서 주동화는 최민의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으면 치유술을 사용해서 회복을 도와야 했다.


집에서 분당의 병원까지는 30분 정도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주동화는 병원으로 들어가 최민의가 입원해 있는 1인실로 향했다.


그런데,


"어? 뭐야."


병실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



"누구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환자에게, 주동화는 병실을 잘못 찾은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뛰쳐나왔다.


나와서 바로 입원실 번호를 확인했는데 최민의가 입원했던 그 병실이 맞다.


겨우 이틀 전 일인데 번호와 위치를 잊어버릴 리 없다.


주동화는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


"여기 이 병실에 입원했던 환자, 어디 갔어요?"

"어떤 환자 말씀이십니까?"

"최민의요. 천국에서 온 사람 말이에요."

"접수처에 가서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주동화는 바로 접수처로 뛰어가서 최민의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입원 기록이 없습니다."

"예?!"

"최민의라는 성함을 가진 분이... 내원했던 기록이 없습니다."

"말도 안 돼요. 제가 이쪽에 입원한 걸 확인했는데?"


최민의가 구급차에 타자마자 응급조치를 하던 담당 의사의 얼굴도 선명히 기억난다.


왜냐하면 그 얼굴을 기억하고 수도병원에 전화해 의사와 직접 통화했으니까.


눈썹 옆에 큰 점이 있는 젊은 남자 의사였다. 병원에 전화해서 외모를 설명하니 어렵지 않게 담당의와 연결되었다.


주동화는 최민의가 무사한지 병원에 전화로 확인을 해 보았던 것이다.


그때 담당 의사는 최민의의 상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걱정하는 주동화에게 병실에 누워 있는 최민의의 모습을 영상통화로 보여주기까지 했다. 병실 호수도 그때 물어봐서 알고 있던 것이고.


"아... 신분증이 없어서 기록이 없나?"


최민의는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여권 번호도 없다. 신분을 증명해주는 그 어떤 증명서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의 접수 기록에 올릴 수 없었던 건가.


간호사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주동화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접수처를 돌아 나오던 주동화는 그날 최민의를 담당했던 의사를 발견했다.


주동화는 의사에게 뛰어가서 물었다.


"선생님! 여기 이틀 전에 이송되어 온 환자 있죠. 평택에서 그..."

"네, 그 천국인 말씀하시는 거죠?"


다행히 의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주동화는 한숨을 놓으며 말했다.


"그 환자 어디 갔어요? 병실을 옮겼나요?"

"아... 다른 병원으로 옮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상태가 심각해서."

"어디요? 대학병원으로 옮겼나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최민의가 병원을 옮겼다. 주동화는 전혀 듣지 못한 내용이었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정부가 담당하는 일을 그에게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피스메이커는 알고 있을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피스메이커의 주도하에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동화는 권채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원님, 최민의가 어느 병원으로 옮겼는지 아세요?"


그런데 돌아온 권채선의 대답은,


‘뭐? 최민의가 병원을 옮겼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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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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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완결) 21.10.06 287 6 13쪽
103 살신 21.10.05 200 3 11쪽
102 이대로 끝인가 21.10.04 184 3 13쪽
101 무한한 동력 21.10.03 193 3 12쪽
100 전쟁터 21.10.02 184 4 12쪽
99 문이 열리는 날 21.10.01 185 3 10쪽
98 사탕 한 개 21.09.30 182 4 13쪽
97 옥토 21.09.29 186 3 11쪽
96 51구역 (2) 21.09.28 190 3 13쪽
95 51구역 (1) 21.09.27 184 4 11쪽
94 첫인상 21.09.26 186 3 12쪽
93 작전 계획 21.09.25 197 3 12쪽
92 잠입 (2) 21.09.24 182 3 11쪽
91 잠입 (1) 21.09.23 197 2 12쪽
90 생물공학정보센터 21.09.22 190 3 10쪽
89 미국으로 (2) 21.09.21 205 3 12쪽
88 미국으로 (1) 21.09.20 203 4 12쪽
87 동맹 결렬 21.09.19 204 4 11쪽
» 교역 불가 21.09.18 212 4 13쪽
85 전투가 성립되지 않는 상대 21.09.17 228 4 11쪽
84 개방 21.09.16 225 4 11쪽
83 전세 역전 21.09.15 226 4 12쪽
82 반은 신, 반은 인간 21.09.14 224 4 11쪽
81 눈속임 장막 21.09.13 227 4 10쪽
80 탑 마스터 21.09.12 220 4 10쪽
79 제온 21.09.11 236 3 12쪽
78 서부지사 21.09.10 226 4 12쪽
77 비공식 대담 (2) 21.09.09 220 4 11쪽
76 비공식 대담 (1) 21.09.08 240 4 12쪽
75 재회 21.09.07 23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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