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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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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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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
글자수 :
532,633

작성
21.09.3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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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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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사탕 한 개

DUMMY

무역의 대가로 천국의 모든 지식을 받아내야 한다.


그것은 권채선이 피스메이커를 설립한 두 번째 목적.


대한민국의 보호라는 첫 번째 목적과 달리, 두 번째 목적은 온전히 권채선 본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과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학자였다.


영생의 삶을 손에 넣고 나서 자신에 대해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 나이를 먹지 않는지, 왜 몸이 다쳐도 다시 재생이 되는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몇 번이나 신분을 바꾸며 수학을 하고 학위를 땄다.


생물학, 의학, 물리학, 철학, 인간의 생명과 삶에 관련된 학문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그러나 그 어느 영역에서도 불사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닿는 모든 지식에 손을 대었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


34년 동안 다른 사람들처럼 늙어가다가, 갑자기 자신의 시간만 멈추어 버린 이유를.


그래서 피라미드 꼭대기의 인간들을 찾아갔다. 그들과 피스메이커를 조직하며 그들이 가진 지식을 흡수했다.


그리고 당시 세계를 주무르던 미국과 소련의 수뇌부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51구역, 소련의 지트커 등 비밀기지도 방문했다.


그렇게 권채선은 지구상의 모든 지식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세계에 피스메이커가 모르는 지식과 정보는 없다.


1급 기밀인 51구역의 지식마저도 그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피스메이커의 레이더 안에 들어온다.


"이 세상에 내가 모르는 지식이 있으면 안 되거든."


권채선이 자신의 정체가 팍스임을 숨기고 활동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피스메이커 임무에만 매달리다 보면 정보와 지식 수집에 로드가 걸린다.


전에 없던 현상이나 개념이 나타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서 확인해야 하고, 필요하면 잠복도 불사해야 한다.


이런 일을 팍스의 위치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스메이커의 행동대장 역할에 스스로 자리했다.


"룩시온의 정체가 궁금한 건가요?"


주동화가 물었다. 권채선은 주동화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강력한 힘에 관심이 있는 거라고 오해할 수 있다.


"아니. 천국이라는 국가가 이 우주에 대해 갖고 있는 통찰력 전부가 필요해."


천국인은 권채선의 150여 년 인생에서 최초로 마주한 살아있는 외계인.


지구보다 발달한 문명을 갖고 있으며,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신비의 원소를 발견한 자들이다.


그래서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세 명의 천국인을 마주했을 때, 권채선은 가슴이 설레어 견딜 수 없었다.


그가 모르는 세계가 정말로 있었다.


그가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지식이 이 우주에 존재한다.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무엇인가를 알아낼 수 있다는 희망이.


불사의 이유를 풀어낼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


어쩌면 죽음을 만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천국의 지식을 얻기 위해 미국 땅을 팔아넘기겠다는 거예요?"


주동화의 말에 권채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적 사실을 따져 보면 미국인들도 그 땅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500년 넘게 눌러앉아 있던 땅 도둑을 몰아내는 셈 치면 된다.


"그렇게는 안 돼요. 제가 용납 못 합니다."


권채선은 주동화를 비웃으며 말했다.


"네가 용납을 못하면 어쩔 건데?"

"어떻게든 요원님을 막을 거예요."

"미국 편을 열심히 드네."

"아무리 다른 나라라도 식민지가 되는 건 절대 안 되니까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식민지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 권채선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식민 통치를 겪어보지도 못한 게 아는 척하지 마."

"그럼 요원님은, 겪어봤으면서 왜 그래요?"


이 말에,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권채선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정말 짜증 나는 소리만 해 대는구나."


그러자 주동화가 말했다.


"이건 제 생각인데...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다른 방법? 땅 말고 다른 걸로 거래를 하라는 거야?"


이에 주동화는 고개를 가로젓고서 잠시 말이 없다가, 생뚱맞은 말을 꺼냈다.


"요원님한테 사탕이 한 봉지 있어요."

"사탕?"


뜬금없는 소리에 권채선이 되묻자, 주동화는 말을 이었다.


"친구가 사탕 한 개만 달라고 하면, 돈 내놓으라고 할 거예요?"

"뭐?"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에 권채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동화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주동화가 말했다.


"같이 가 봐요. 사탕 먹으러."


권채선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속는 셈 치고 주동화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주동화는 범예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침대에 앉아 있던 범예는 약간의 경계와 함께 주동화와 권채선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그래도 예전처럼 다짜고짜 공격하거나 사납게 날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들은 미국에 의해 생체 실험을 당하기 직전 구출되었고, 범헌의 경우 실험이 이미 시작된 위급 상황에 가까스로 구조되었다.


그 과정을 직접 두 눈으로 본 범예는 더 이상 한국을 적대시하지 않았다. 특히 주동화는 그의 동생을 구한 은인이었으니.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곳은 다른 차원. 완전히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범예는 편안히 눕는 일이 없이, 언제나 몸을 바로 세우고 있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


주동화는 꼿꼿이 앉아 있는 범예에게 말했다.


"뭔데?"

"천국은 지구보다 문명이 발달한 곳이라고 했지."

"그렇다."

"우리가 천국의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을까?"


주동화의 요청에 범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주동화는 범예의 입장을 이해했다.


그들이 천국인을 미국에서 구해낸 것은 사실이지만, 불과 며칠 전에 피 터지게 싸웠던 상대고, 무엇보다 천국인이 지구에 온 목적은 정복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을 알려달라는 요구에 덥석 알겠다고 허락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권채선에게는 친구한테 사탕 얻어먹으러 가자는 투로 말했지만, 범예에게 그들이 친구라고 하긴 어렵다.


자신만만하게 말해 놓고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주동화는 범예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며 범예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누나, 치킨 남은 거 있어?"


범헌이었다. 범예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넌 이 나라에 먹으러 왔냐?"

"맛있는 걸 어떻게 해."


이렇게 말하는 범헌은, 확실히 이곳에 오기 전보다 얼굴에 살이 붙어 있었다.


51구역에서 생고생을 해서 빠졌던 살이 금방 다시 쪘다.


그도 그럴 것이, 범헌은 늘 긴장하고 있는 범예와 달리 침대에 늘어져 있기도 하고, 세상 편하게 숙면했다.


범예는 꼴 보기 싫다는 투로 범헌을 나무랐다.


"황족의 체통을 지켜라. 이럴 줄 알았으면 오른팔을 붙여주지 말 것을."


그러나 범헌은 범예의 핀잔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에이. 뭘 그렇게까지 말해~"


그리고는 다시 치킨을 찾는 것이었다.


"어쨌든. 치킨 다 먹었어? 경비병에게 물어보니 1인당 한 마리씩 줬다는데."


범헌이 말하는 경비병은 피스메이커 본부의 요원일 터. 요원에게 치킨 배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얻어먹으러 온 것이다.


범예가 냉장고 옆의 테이블을 가리키자 범헌은 얼른 달려가 닭다리를 잡고 뜯었다.


그것을 본 주동화가 범헌에게 물었다.


"너희 나라에는 그런 거 없어?"

"없지. 닭은 굽거나 삶아 먹기만 한다. 어! 이 치즈볼이라는 것도 아주 훌륭해!"


범헌은 다른 손으로 치즈볼을 집어 들며 감탄했다.


"조리법을 배워서 백성들에게 알려줘야겠어. 틀림없이 다들 좋아할 것이야."


새로운 음식을 보고서 사업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조리법을 공유할 생각을 한다니.


겉으로 보기엔 속 편한 먹보 같지만 주동화는 범헌이 확실히 황자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음식들을 만든 요리사는 어디에 있지? 조리법을 묻고 싶구나."

"글쎄... 배달시킨 거라서. 그래도 아마 인터넷에 나와 있을 거야. 내가 보고 알려줄게."

"정말 고맙다."


주동화에게 감사 인사를 한 범헌은 범예에게 물었다.


"그런데 모여서 뭐 하고 있었어?"


범헌의 물음에 범예는 입을 다물었고, 주동화가 말했다.


"천국의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있었어."

"그래? 지식? 뭐가 궁금한데?"


이에 권채선이 대답했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지식을 알고 싶어."

"그러면 생물학...? 아니, 천문학인가?"


범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련된 학문 영역을 고민했다. 그리고는 범예에게 말했다.


"성립 장서관을 이용하게 해 주면 될 것 같은데."


그러자 범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른 차원의 인간들에게 어떻게 고려성의 책들을 공개한다는 말이냐."

"그게 왜? 장서관엔 외국인도 들어가서 보잖아. 한국인도 똑같은 외국인인데 뭐가 달라."

"다르지. 이 자들은 다른 차원의 인간들이다."


범예가 단호하게 말하자 범헌은 주장의 근거를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그래도 내 생명의 은인인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뭐?"

"한국인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죽었어. 누나도 알잖아."

"지식은 고려성의 재산이다. 나라의 재산에 관한 일을 그렇게 감정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돼."

"도움을 받았으면 보답을 하는 게 맞아."

"보답은 다른 방법으로 하면 돼."


범예와 범헌은 서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방과 관련된 내용만 아니면 상관없잖아."

"저 자들이 고려의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할지 알 수 없어. 고려성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우리한테 해를 입힐 생각이었으면 나를 구해내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서 범헌은 주동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를 살리려다가 주동화는 거의 죽을 뻔했다고."


결론이 나지 않는 말싸움이 이어지자, 결국 범예 쪽에서 백기를 들었다.


"좋아. 일단 한국인을 데리고 가서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승낙하면 인정할게."

"그래."


이에 범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고려성의 황제. 즉, 황제의 허가를 받기로 한 것이다.


이 정도면 범예가 많이 양보한 것이다. 다른 차원의 인간을 고려성으로 데리고 가는 것까지 수용한 셈이니.


범헌은 주동화와 권채선에게 말했다.


"천국으로 같이 가자. 책들을 열람하게 해 줄게."


이에 주동화가 물었다.


"너희 어머니 허락을 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물어볼 것도 없어. 어머니가 내 부탁을 거절할 리 없거든."


범헌이 걱정할 필요 없다는 투로 말을 덧붙였다.


"어떤 영역의 지식이 필요한지 생각이나 잘 해 놓으라고."


이로써 아직 확정된 바는 아니지만, 천국의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에 권채선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범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문자가 통할지 모르겠구나."


그리고선 소매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권채선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읽을 수 있어?"


수첩에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권채선은 그것이 짧은 일기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알지. 꽤 최근까지 한자랑 한글은 병기되었었거든."

"그러면 걱정 없네. 천국의 지식을 볼 수 있게 해 줄게."

"어... 고마워."


권채선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나랑 누나랑 민의형을 구해줬는데. 이 정도야 뭐."


범헌은 방긋 웃고서 권채선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가 쓰는 글자. 내가 좀 배울 수 있을까?"

"한글을?"

"그 글자를 한글이라고 하는구나."

"한글을 왜 배우고 싶은데?"

"보기에 예뻐서. 글자가 참 단아하더라고."


그러자 주동화가 말했다.


"그건 내가 알려줄게. 나도 여기서 심심하던 차였어."


주동화는 범헌의 수첩에 기역, 니은부터 시작해서 히읗까지 자음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그것을 읽는 방법을 범헌에게 하나씩 알려주는 것이었다.


어느새 범예도 옆에서 주동화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동화는 천국인 둘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 큰 성인들한테 어린애 가르치듯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재미있기도 하고, 보기에 좋아 권채선은 옅게 미소가 배어 나왔다.


그렇게 세 사람을 두고 방을 걸어 나오며, 권채선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구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


권채선은 이런 것을 받아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가 임무를 수행하는 곳엔 선의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고,


만약 선의가 존재한다면 일방적으로 그가 베푸는 쪽이었으니까.


그 이유는 그가 너무나도 강하며,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


권채선은 아주 오랜만에 느꼈다.


자신 또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수혜자가 될 수 있으며,


자신도 별다를 것 없는, 불완전하고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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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완결) 21.10.06 287 6 13쪽
103 살신 21.10.05 201 3 11쪽
102 이대로 끝인가 21.10.04 185 3 13쪽
101 무한한 동력 21.10.03 193 3 12쪽
100 전쟁터 21.10.02 184 4 12쪽
99 문이 열리는 날 21.10.01 186 3 10쪽
» 사탕 한 개 21.09.30 183 4 13쪽
97 옥토 21.09.29 187 3 11쪽
96 51구역 (2) 21.09.28 190 3 13쪽
95 51구역 (1) 21.09.27 184 4 11쪽
94 첫인상 21.09.26 186 3 12쪽
93 작전 계획 21.09.25 198 3 12쪽
92 잠입 (2) 21.09.24 183 3 11쪽
91 잠입 (1) 21.09.23 197 2 12쪽
90 생물공학정보센터 21.09.22 190 3 10쪽
89 미국으로 (2) 21.09.21 206 3 12쪽
88 미국으로 (1) 21.09.20 204 4 12쪽
87 동맹 결렬 21.09.19 204 4 11쪽
86 교역 불가 21.09.18 212 4 13쪽
85 전투가 성립되지 않는 상대 21.09.17 229 4 11쪽
84 개방 21.09.16 226 4 11쪽
83 전세 역전 21.09.15 227 4 12쪽
82 반은 신, 반은 인간 21.09.14 224 4 11쪽
81 눈속임 장막 21.09.13 228 4 10쪽
80 탑 마스터 21.09.12 221 4 10쪽
79 제온 21.09.11 237 3 12쪽
78 서부지사 21.09.10 226 4 12쪽
77 비공식 대담 (2) 21.09.09 220 4 11쪽
76 비공식 대담 (1) 21.09.08 241 4 12쪽
75 재회 21.09.07 23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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