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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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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최근연재일 :
2024.07.0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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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6,379

작성
23.06.0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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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3쪽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12)

DUMMY


리버의 만능 잡화점 내부에는 미묘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잡화점에서 일어난 상황 자체는 그리 복잡할 것이 없었다.

요컨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목에 단검을 겨누고 있는 장면은, 적당한 상식을 갖춘 인간이라면 한 가지로 밖에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당연히 위험하고, 다급한 상황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그 장면을 목도한 누군가가 인간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리버에겐 아쉬운 일이지만, 현재 그 장면의 유일한 목격자는 토비였고, 토비는 인간이 아닌 아돌프였다.


처음에 기세 좋게 가게로 들어왔던 토비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야 여러가지 문제들이 토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토비가 당황한 이유의 대부분은 리버의 태도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가게 안의 상황을 처음 목도 했을 때만 하더라도 토비는 리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확신했다.

사실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인간들 틈에 섞여 생활한 것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의 목에 칼을 겨누는 행위는 아돌프의 관점에서도 결코 호의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토비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됐다.

정확히는 리버가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시간과 토비의 의심은 비례하며 커지고 있었다.

토비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실제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분명 리버 쪽에서 도움을 요청해 왔어야 했다. 만약 침착하게 도움을 요청할 정신머리가 없다면, 하다 못해 비명이라도 질렀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리버는 쭉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토비는 이미 몇 번이나 보냈던 의구심 섞인 눈빛을 다시 한번 리버에게 보냈다. 하지만 리버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잔뜩 구겨진 얼굴로 토비를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토비는 리버가 아돌프였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다면 지금 저 괴상한 표정에서 리버가 하고 싶은 말을 유추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아돌프들의 문화에 박식하다고 해도 리버는 엄연한 인간이었다. 결국 토비는 이번 시도에서도 리버의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끄응..."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토비는 다시 처음의 고민으로 돌아갔다.



*



리버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친구가 엉뚱한 상상을 한 나머지 최악의 판단을 내리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최악의 판단이란, 토비가 자신을 구하겠답시고 소녀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일이었다. 리버는 어떻게든 그 상황 만은 피하고 싶었다.

물론 리버는 토비가 작은 인간 여자 한 명을 제압할 수 없을 거라 여기지는 않았다. 소녀가 검을 다루는 실력이야 어떻든 성인 아돌프를 그녀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리버는 두 사람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비에게 곧바로 구원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 또한, 순전히 두 사람의 위치에 기인했다.

현재 토비는 가게 문 앞에 서 있었고 소녀는 리버의 바로 코 앞에서 단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것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큰 차이였다. 도움을 요청하면 그야 토비는 분명 빠른 시간 내에 그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에 새로운 숨구멍 한 두개쯤은 더 생겨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이유로 리버는 토비에게 살려 달라는 식의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리버는 입술을 깨물었다. 비명을 질러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고, 스스로 소녀를 제압할 수도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소녀가 순순히 물러나길 기도하는 것은 말 그대로 기도에 불과한 행위가 뻔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본 리버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쪽을 선택했다. 모로 봐도 그게 최선인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리버의 그 선택이 가게 안의 분위기를 이상야릇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다. 토비는 여전히 리버의 생각을 유추하고 있었고, 그래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 한참을 끙끙 앓던 토비가 갑자기 계면쩍은 표정으로 두 인간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왠지 모를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혹시 지금 내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냐?"


리버가 의문스러운 투로 되물었다.


"오해라뇨? 무슨 오해요?"


"뭐, 인간들의 문화란 가끔 지독하게 복잡한 면이 있잖냐. 그러니까... 혹시 내가 너희들의 어떤 경건한 의식을 방해하고 있다거나?"


토비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버가 벙찐 표정으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여태 무덤덤하던 소녀조차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토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 인간의 뜨거운 시선을 받은 토비는 변명하듯 얼른 덧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인간들이란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에 상대방에게 단검을 겨누는... 어떤 의식을 반드시 치러야 하는 걸 수도 있잖냐. 실제로 그 비슷한 장면을 몇 번 보기도 했고..."


토비는 방랑 중에 몇 번인가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인간들이 가끔 상대방의 머리 위나 얼굴에 검을 올려 놓고서, 어떤 엄숙하고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장면들이었다.

그 장면들은 각각 기사의 서임식이나, 혹은 종단의 세례였지만 토비가 그 사실을 알리 만무했다. 토비에겐 과거에 겪은 그 장면들과 현재 잡화점 안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토비는 그것들의 차이점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토비의 말이 끝나자 가게 안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다음 순간 두 인간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토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토비는 그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토비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음- 그래 알겠다. 아무래도 너희들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군. 뭐 우리들은 날붙이를 잘 쓰지 않으니까 말이야."


기본적으로 아돌프들은 칼을 쓰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쓸 이유가 없다. 그들에겐 날붙이를 대용 할 만한 멋진 손톱이 있기 때문이다. 토비가 한껏 겸연쩍어하고 있었을 때 리버가 어이없다는 투로 외쳤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의식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토비 당신은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토비의 끔찍한 상상력에 대해 비난을 퍼부어줄 요량이었던 리버는 그러나 입을 다물었다.

물론 처음과 같은 이유였다. 소녀가 쥐고 있는 단검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고, 입구와 카운터 사이의 거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멀어 보였다. 리버는 상황을 설명하는 순간 그녀의 팔이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

의외로 상황을 정리하고 나선 것은 소녀였다. 그녀는 토비가 꺼낸 말보다는 토비의 모습 자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시골 영지에 아돌프라니 별일이군. 여기 이 녀석이랑 아는 사이야?"


"일단은 친구라고 해두지. 그런데 말이다. 지금 네가 벌이고 있는 짓이 인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종의 의식이 아니라면, 너는 대체 왜 그 녀석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거냐?"


"아직 내 행동에 대한 뚜렷한 목표는 없어. 하지만 이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건 확실해."


순간 토비의 두 귀가 쫑긋 위로 솟아 올랐다.


"이봐. 나는 지금 분명히 그 녀석이 내 친구라고 말했다. 너는 아돌프의 친구를 눈 앞에서 죽이겠다는 말이냐?"


"아돌프니 청력 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 테지. 그럼 이해력의 문제겠군."


태연한 대꾸가 채 끝나기도 전에 토비의 귀가 머리 위로 납작 드러누웠다. 그때까지 좌우로 가볍게 흔들리던 꼬리는 갑자기 축 쳐져서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토비의 털이 전체적으로 약간 빳빳하게 부풀어 올랐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떤 인간도 오금이 저릴만한 모습이었다. 토비는 호승심 넘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해보겠다는 말이군! 좋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아돌프는 없지. 시작하기 전에 이름을 대. 나는 토비다."


"나는 털이 많은 남자에겐 관심이 없어. 간혹 귀부인들 중에서 이상할 만큼 남성 아돌프에게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곤 들었지만... 아무래도 너는 내 취향은 아니야."


토비는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것은 꽤 거친 농담이었다. 그리고 토비는 그 농담을 인간이 건넸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토비는 사납게 으르렁댔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이름을 밝혀라 이 카니쿨라 같은 자식아. 네 묘비에 써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전형적인 발언이었지만 현재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 토비여서 그 말은 단숨에 특별한 것이 되었다. 아무튼 토비는 뒷골목의 시정잡배는 아니었다. 토비는 아돌프였고, 그 단순한 한 가지 사실로도 충분했다. 토비가 뱉은 말은 가장 사내답고 거친 남자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오히려 약간 재밌다는 듯이 작게 웃으며 대꾸했다.


"라르토 루나. 나보다는 네 묘비 명이 짧고 간결해서 좋아 보이는군."


종족을 떠나서 모욕적인 언사였고, 토비는 더 이상 모욕을 참고 있을 마음이 없었다.

팔짱을 푼 토비가 콧잔등을 잔뜩 찡그렸다. 코를 당기자 자연스레 입술이 위로 들렸고, 그 바람에 입술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거대한 송곳니가 드러났다. 이어서 토비는 큰 사과를 쥐듯이 손가락을 오무렸다. 그러자 코비의 손 끝에서 지나치게 위협적인 형태의 손톱이 쑥 삐져나왔다.


맞은 편에 있던 루나 역시 토비를 따라 자세를 바꿨다. 그녀는 리버를 향해 쥐고 있던 단검을 토비 쪽으로 틀었다. 그리고 단검을 역수로 고쳐 쥔 다음에 그대로 자신의 가슴 근처로 가져가 꽉 쥐었다.

그 자세로 루나는 왼손을 들어 토비를 향해 뻗었다. 마치 거리를 재려는 듯한 몸놀림이었다.


두 사람은 꼭 당장이라도 서로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었고, 그래서 상황을 관망하던 리버는 그녀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리버는 칼을 휘두르기는커녕 폭력을 행사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때문에 리버는 루나가 얼마나 훌륭한 칼솜씨를 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리버는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돌프라는 사실 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인간 기준으로 봐도 여리여리한 몸집이었고, 따라서 토비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리기나무에 대패질을 하는 격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가게 안의 공기는 팽팽하다 못해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았다. 결국 참지 못한 리버가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만요! 두 사람 정말 싸울 작정이에요?"


두 사람을 향해 던진 질문이었지만 루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대답은 토비에게서 나왔다.


"저 인간 여자가 만약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물러난다면 특별히 한번 봐주지. 안 그래도 심각하게 더러운 가게에 피까지 뿌리긴 싫으니까."


리버는 억울한 심정을 담아 잠시 토비를 노려보았다.

가게 바닥이 처참한 이유는 정오쯤 방문했던 스스로를 깔끔하다고 여기는 무스와, 그 뒤에 찾아온 아돌프 때문이며, 그 아돌프는 바로 토비였다.

리버는 결코 자신이 가게의 위생에 대해 태만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봐도 그런 변명을 주절댈 만큼 한가한 상황은 아니었다.

토비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버는 고개를 돌려 루나를 바라보았다. 토비의 말처럼 루나의 사과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이 끝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리버는 그동안 상인 생활로 갈고 닦은 자신의 설득 기술을 활용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리버는 신중하게 루나에게 할 말을 골랐다.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다는 교훈이나, 아돌프를 상대로 도망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위로 같은 것이 곧바로 몇 개 떠올랐다.

리버는 그 중 가장 무난하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을 만한 것을 추린 뒤 루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루나의 바로 옆에 선 리버는 이내 그녀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도무지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루나의 입술은 쉴 새 없이 작게 달싹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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