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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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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92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6.27 13:00
조회
627
추천
8
글자
7쪽

2-24 번외 경기 (2)

DUMMY

클라에는 따분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호세가 그토록 칭찬하던 인간 소년은 이미 잔뜩 긴장한 채 도망갈 궁리를 하는 생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과일의 즙으로 얼룩덜룩해진 옷 사이로 떨리는 손이 보였다. 그깟 과일 하나 피하지 못한 걸 보면, 심지어 재빠르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차오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클라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처음엔 의문이었고, 다음은 분노였다. 분명 차오의 눈이 삐었거나, 저 인간 소년이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차오를 구워 삶은 것이리라. 클라에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이를 꽉 앙다문 까닭이었다.


‘인간···, 인간.’


클라에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침착하려고 애썼다. 물론 인간 소년을 기꺼이 박살내 놓을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죽으면 곤란했다. 인간 밑에서 일하는 차오의 성격으로 보아, 분명 소년도 차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클라에는 자꾸만 치미는 화를 참기 힘들었다. 인간의 밑에서 일하는 것으로 모자라, 인간을 용족의 스승으로 삼다니. 클라에는 인간이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예가 아니라, 치밀한 계획을 꾸밀 줄 아는 두뇌였다. 그리고 이익을 찾아내는 능력.



마족섬멸전이 한창일 때, 클라에는 아직 어렸다. 성인식을 앞둔 클라에는 갑작스런 전쟁 선포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주는 압박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른 색깔의 부족과 함께 하는 전투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붉은 용족에게 더욱 그랬다. 그녀의 투하쿰은 누누이 붉은 용족에게는 공을 양보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타협에 능하고, 인간을 따르니까. 그러나 막상 전투에 임하자, 모든 용족은 용맹하게 싸웠다. 붉은 용족도 최전방에서 붉은 피부보다 붉은 피를 흘리며 마족을 베었다.


인간들은 용족을 칭송했다. 그들이 한 마리의 마족을 벨 때, 용족은 열 마리, 스무 마리를 처리했다. 기본적인 신체적 차이와, 날마다 무예를 갈고 닦은 경험치가 격차를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용족도 무적은 아니었다. 그들도 날카로운 마족의 이빨이 박히면 피를 흘렸고, 죽음에 이르렀다. 마족은 소환으로 하급 마족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용족이 먼저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클라에도 자신이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리고 그 때 차오를 만났다.


그는 도망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는 죽어가는 동료를 걱정함과 동시에, 자신이 베어 쓰러뜨린 마족의 죽음조차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마리라도 더 죽였다면 다른 용족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살해에 대한 공포로 도망치고 있었다. 천막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뛰어난 인재라고 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꼴 사나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클라에는 다시 마족을 쓰러뜨렸다. 찌르고, 베고, 잘라내는 과정을 마치 기계처럼 해냈다.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은, 마족을 멸절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인간들이 클라에의 뒤에 숨기 시작했다. 용족보다 빠르게 지치고 쓰러지는 인간들이, 용족의 등 뒤에 숨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겁나서 도망친 차오보다 보잘것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전투를 벗어날 수 있는 지만 궁리하는 족속들이었다. 개중에는 뛰어난 인간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랬다.


그래서 클라에는 그들이 자신의 등 뒤에 숨게 내버려 두었다. 클라에에게 있어 인간은 마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족은 용족을 물어뜯지만, 인간은 그러지 못한다는 점 정도를 제외하면, 비슷한 존재들이었다. 해충과 비슷한 생명들. 붉은 용족에 대한 적개심도 다시 생겨났다. 어떻게 이런 존재들과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클라에는 인간이 죽을 때 어떠한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약하고 약삭빠른 녀석들은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클라에가 다쳤을 때 몇몇 인간들이 다가와 치료하려 했지만, 클라에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들의 두려움이 옮을까 봐 진저리가 났다.


마족섬멸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마족의 괴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용족과 인간의 인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클라에도 자신이 지치는 것을 깨달았다. 무릎이 꺾이고, 처음보다 상처의 개수가 늘었다. 클라에는 검을 바닥에 꽂고 몸을 지탱하며 마족들을 노려보았다. 으르렁거리는 마족들이 물처럼 밀려들어왔다. 클라에는 처음으로 아득함을 느꼈다.


그 때, 차오가 다시 나타났다. 전장 한복판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온 그는, 곧 거대한 파도처럼 마족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무예는 독보적이었다. 한 번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수십의 마족이 쓰러졌다. 차오는 검에 기대어 있는 클라에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클라에는 전혀 고맙지 않았다. 그녀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왜! 왜, 진작에 오지 않았지?”


차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클라에의 목소리는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차오가 진작에 왔더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왔더라면 살릴 수 있는 용족들이 많았다. 그들의 죽음은, 차오가 겁쟁이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클라에는 휘청거리는 몸을 움직이며 차오를 노려보았다.


마족섬멸전은 차오의 활약과 인간의 지원으로 곧 끝이 났다. 다양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인간이 와서 많은 용족을 치료했다. 사람들은 승리에 취해 기뻐 뛰어다녔다. 오직 클라에만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차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굴복하는 작자들을 싫어한다.”


클라에가 나직히 내뱉었다. 호세는 굳은 몸으로 클라에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클라에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뽑은 검을 한손으로 가볍게 쥔 뒤, 땅을 빠르게 박찼다. 엄청난 속도에 호세가 헉 소리를 냈다. 클라에는 미끄러지듯이 호세의 옆으로 향해 몸통을 길게 베었다. 호세의 고개는 클라에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지도 못했다. 검은 용족들이 감탄하며 소리질렀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비무장을 울렸다. 클라에는 귀를 의심했다. 살을 가르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호세의 손에서 은은하게 푸른 빛을 내는 방패가 비무장의 절반을 덮을 정도로 크게 펼쳐져 있었다. 호세의 표정이 변했다. 방패를 다시 접은 호세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처음과 달리 완벽한 방어 태세를 갖춘 모습이었다.


호세의 목소리가 비무장을 조용히 채웠다.


“일단 한 번 막았습니다.”

‘일부러 빈틈을 보였나!’


클라에는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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