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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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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72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6.06 13:00
조회
481
추천
11
글자
7쪽

2-10. 차오의 부탁 (3)

DUMMY

루디간의 웃음에 호세는 민망한 표정으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루디간이 웃음을 멈추고 다시 후룸바와 코하투를 향해 말했다.


“호세 님의 수준을 알았으니, 이번엔 이 두 녀석들의 실력을 봐야겠소. 너희들은 가서 장비를 잡아라.”

“예!”


어린 용족들이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방패와 목검을 들었다. 루디간은 뒷짐을 지며 그들이 자세를 잡을 때 까지 기다렸다.


“너네 마음대로 치고받아 보거라.”


루디간의 말이 끝나자 후룸바가 우물쭈물하더니 곧 목검을 꼬나쥐고 코하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코하투도 몸 가까이 방패를 끌어당기며 막을 준비를 했다. 이윽고 후룸바가 목검을 크게 휘둘렀고, 목검과 방패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비무장을 울렸다. 몇 번의 소리가 이어지고, 루디간이 다시 말했다.


“그만, 그만.”


어느새 땀을 흘리고 있는 후룸바가 검을 거둬들이며 다시 처음의 장소에 위치했다. 코하투도 방패를 땅에 내려놓았다.


“호세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방금 저 둘의 움직임을 보고.”


호세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음, 아직 몸이 덜 풀린 건지, 조금 뻣뻣해 보여요. 기본 자세는 좋은 것 같은데.”


호세는 구원 기사단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모두 강인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호세는 자신이 그 정도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발전해야 하는 부분을 후룸바와 코하투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지. 아직 대담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소. 다양한 상대와 맞서보지 않은 것도 있고.”


루디간은 말을 마치고 목검과 방패를 한 개씩 더 가져와 내밀었다


“아무래도 직접 가르치는 것이 빠를 게요. 자세를 교정해 주시오.”


호세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패를 잡았다. 코하투에게 다가가 방패를 쥐는 법, 꼬리를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코하투는 빛나는 눈으로 가르침을 빠르게 흡수했다. 호세는 묘한 기쁨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가르쳤을 때 느낀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시간정도의 연습을 마치고, 잠시 휴식했다. 호세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비무장 바깥으로 향했다. 언제 보아도 무시무시한 화장실의 입구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기, 길을 물어보고 싶은데.”


호세는 목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헛숨을 삼켰다.


“검은색?”


그곳에는 검은 비늘을 가진 용족이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체형으로 보아 여성인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마주한 검은 용족은, 붉은 용족과는 또 다른 위압감을 뿜고 있었다.


“인간?”


놀라기는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용족의 저택 한가운데에서 인간을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검은 용족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인간이 있을 곳은 아닌 것 같은데.”


호세가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코하투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 때에도 화장실이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화장실과 악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 저는 호세 린필드라고 하는데요.”


검은 용족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름을 물어본 게 아니야. 붉은 멍청이들이 이젠 갈 데까지 갔군. 어리숙한 인간을 집으로 들이다니.”


그녀는 눈으로 호세를 훑다가, 호세의 엉덩이에 삐죽 솟아나온 꼬리를 보았다. 그리고 흠칫 놀라며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꼬리? 인간이 아닌가? 아니, 용족과 인간의 혼혈은 들어본 적도 없어. 마족인가? 마족은 기괴한 모양으로 생물을 만들어 낸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

“아니, 저, 저는 인간인데요!”


호세가 서슬 퍼런 칼날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입 다물어! 얼빠진 차오 녀석을 어떻게 속이고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녀석처럼 무르지 않아. 당장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널 치겠다.”


호세는 얼른 방패를 꺼낼 생각으로 손목을 만졌다. 그러나 손목에는 있어야 할 ‘호세 지키미’ 팔찌가 없었다. 아까 비무장에서 방패를 쓰기 전에 풀어놨기 때문이었다.


‘망했다!’


호세는 후다닥 뒤로 뛰쳐나갔지만, 검은 용족의 꼬리가 다리를 걸어서 넘어졌다. 검이 머리칼을 스쳤다. 호세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손으로 빠르게 검을 쥐고 있는 손을 쳐냈다.


갑작스러운 호세의 공격에 당황한 검은 용족은 다시 검을 고쳐 쥐고 눈에서 불을 뿜으며 검을 휘둘렀다. 용족 특유의 절제된 동작이 허공을 갈랐다. 호세는 하는 수 없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용족이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호세는 문을 잠그고 바짝 엎드렸다.


콰앙-!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로 만든 문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졌다. 덜렁거리는 문 뒤에 숨어 도망칠 기회를 엿보고 있자, 용족은 아예 검으로 문을 잘라버렸다. 반토막이 난 문이 호세의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호세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검은 용족을 바라보았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마족.”

“저는 마족이 아녜요!”

“끝까지 거짓을 말할 생각이군. 네놈의 목을 들고 차오에게 실책을 묻겠다.”


차갑게 빛나는 검이 점점 다가왔다. 호세는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공포였다. 죽음에 가까운 감정. 그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미안함이었다. 루디간과, 후룸바와, 코하투에게 향한 미안함. 아직 가르치고 배워야 할게 많이 남았다.


‘소년인 줄 알았더니, 전사였군’


그러자 루디간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가 해주었던 말이 자신을 무척 기쁘게 했기 때문이었을까. 호세는 이를 악물고 검 끝을 바라보며 천천히 일어났다. 자신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저는 마족이 아니고,”


호세가 칼날의 옆쪽을 빠르게 쳐내고, 잘렸던 문의 문고리를 잡고 방패 삼아 몸을 가렸다. 검은 용족이 검을 휘둘렀지만, 방패가 생긴 호세가 공격을 흘려보냈다.


“전사입니다.”


검은 용족이 놀란 표정으로 검을 거뒀다. 군더더기 없는 그녀의 몸놀림은 루디간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높은 무예의 경지가 뿜는 기백이었다.


“제법이군. 훈련을 받았나?”

“방금 전까지도요.”


검은 용족은 다시 검 끝을 정렬하며 자세를 취했다.


“좋아. 마족의 기괴한 동물인 줄 알았더니, 제법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야. 적당히 겁줘서 입을 열게 만들 생각이었지만, 그만두겠다.”


그녀의 검에서 황금빛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차오와 같은 색이었다. 그러고 보니, 몸의 색깔은 달랐지만, 눈동자의 색은 같았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호세는 문을 바짝 몸에 붙이고, 막아낼 준비를 했다.


그 때, 중후한 목소리가 침묵을 뚫고 나타났다.


“이것 참, 화장실에서 칸 투레가 열렸군.”

“루디간 님!”


그 때의 호세의 표정으로만 보자면, 화장실은 비무장이 아니라 천국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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