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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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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43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6.09 13:00
조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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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7쪽

2-12. 칸 (2)

DUMMY

차오는 두려워졌다. 더 이상 생명을 해친다면, 영원히 살육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 같았다. 차오는 숨기 시작했다. 전쟁의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귀를 막았다. 다른 용족들이 그를 찾아 다독이거나 윽박질렀지만, 차오의 마음은 이미 굳어버린 뒤였다. 그의 머릿속에선 붉게 물든 풀과 꽃이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


‘이 위선자!’


차오는 막사에 틀어박혀 물도 마시지 않고 누워있었다. 몸이 수척해지고, 항상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다른 이들도 점차 그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차오 뿐 아니라, 다른 용족들도 길어지는 섬멸전에 지쳐가고 있었다. 피로는 모든 사람들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얼기설기 엮어있던 용족 연합군은 다시 색깔 별로 나뉘어 갈라지고 있었다.


결국 당시 젊은 투하쿰이었던 루디간이 차오에게 찾아왔다. 루디간은 차오의 마음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오가 스스로 헤쳐 나오기 전까지 가만히 둘 생각이었으나 전력이 점차 손실 되고 있었으므로 일으켜 세워야했다.


“차오, 밖으로 나와보거라.”


차오는 존경하는 투하쿰인 루디간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휘적휘적 밖으로 나왔다. 막사 밖에선 여러 색의 용족들이 서로를 무시하거나,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주먹다짐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차오는 자신의 머리 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루디간을 바라보았다.


“우린, 강하지 않다. 차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루디간이 차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무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분명 다른 종족보다 힘이 세고 체력이 좋을지 모르나, 그것뿐이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신이 아닌 이상 모두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루디간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린 신이 아니야.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지켜야 한다. 따라오거라.”


루디간이 차오를 이끌고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동물 형태를 한 마족들을 무참히, 무감각하게 베어나가는 용족들이 있었다.


“우리는 병들고 있다, 차오. 죽음이라는 병에 걸려버린 게야.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고 있다는 말이다.”


루디간이 검을 뽑아 차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차오. 저 괴물들의 죽음마저 안타깝게 여기는 이는 너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 저것은 그냥 장애물일 뿐이야. 괴물들을 소환한 사람이나, 베어 없애는 사람이나 똑같다. 어차피 죽어가는 생명이야.”


차오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파하거라. 네 손에 죽어가는 생명들만큼 아파하고, 미안해하거라. 그리고 우릴 지켜주어야 한다. 널 지켜야 한다. 도망치지 말고, 고통을 받아들이거라.”


차오는 손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마치 처음 보는 생경한 물체를 보는 것처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자신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는지 떠올랐다. 붉은 빛의 피부가 마치 피에 절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회스러웠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생명 또한 지켜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죽이면서, 동시에 살리는 손이었다.


“투하쿰 루디간. 저는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

“저는 이제 내려놓겠습니다.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래, 그러거라.”


차오는 루디간이 내민 검을 쥐었다. 처음보다 초췌하고 마른 차오의 몸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기백이 뿜어져나왔다. 차오의 마음속에 있던 빗장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 날, 차오는 한 개의 부대는 홀로 궤멸시키고, 소환하고 있는 인간형 마족을 잡았다. 다른 용족은 차오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칸 차오의 기백은 대단했지. 그동안 응어리졌던 것이 무예로 승화되는 것 같았소.”


호세는 전래동화를 듣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 때 다른 용족도 칸에게 손을 많이 빌렸소. 차오는 색깔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었지. 클라에와도 그 때 만난 거요. 정작 클라에는 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왜요?”


루디간이 허허롭게 웃었다.


“도움을 받았으니까. 클라에는 강함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의지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아이였으니, 그럴 법도 하지.”


호세는 날카롭던 검은 칸의 얼굴을 떠올렸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강해지고, 칸이라는 위치까지 올라간 이의 집념이 서린 눈빛이 그려졌다.


“칸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안되는 걸까요?”


호세의 말에 루디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도움을 더 많이 받아야 하지. 세상엔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수없이 많소. 검은 용족이 아직 우리보다 세력이 부족한 이유는 클라에의 고집도 한몫 했을 게요.”

“칸은 다른 용족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잖아요. 클라에 씨는 어떻게 칸이 된 걸까요?”

“자세한 사항은 나도 모르오. 허나 녀석의 강함은 인정하지. 투하쿰조차 거절하고 혼자의 힘으로 갈고닦은 실력이 그정도니. 개인으로만 따지자면 우리 일족에서도 녀석을 당해낼 자가 별로 없을 게요.”


호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패를 스치던 검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번 칸 투레를 이 악물고 준비하고 있을 게 뻔하오. 칸 차오를 이기는 게 녀석의 오랜 소망이었거든.”

“차오 씨가 그렇게 강한가요?”


루디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지. 칸의 위력은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 가장 빛을 발하오. 마치 폭풍처럼.”


호세는 다정하게 웃는 차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마족을 물리쳤지만 따스하고 정겨운 목소리였다. 루디간은 호세가 생각하는 것을 대충 눈치챘는지 웃으며 말했다.


“강함과 부드러움은 함께 있기 힘들지. 그러나 함께 있을 때에는, 강력한 장점이 되는 법이오.”


루디간의 말에 호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튼튼하기만 한 나무는 바람에 부러진다고 했다. 땔감에 쓰는 나무를 잘라내며 하는 말이라 설득력은 떨어졌지만.


“자, 이제 다시 돌아갑시다. 시간이 제법 지났군.”

“네.”


어느새 해의 위치가 상당히 변해 있었다. 호세는 화들짝 놀라 루디간을 뒤따랐다. 비무장에서 후룸바와 루디간이 목검과 방패를 들고 땀을 흘리며 연습하고 있었다. 호세는 헐레벌떡 다녀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갑자기 누굴 만날 일이 있어서···. 너무 늦었지?”


그러자 코하투가 땀을 훔치며 웃었다.


“아닙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셨겠죠.”

“고마워.”


호세가 대답하자, 뒷짐을 지며 걸어오는 루디간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호세 님은 방금 검은 칸과 비무를 벌이고 오는 길이다. 제법 바쁜 일이지.”


그러자 후룸바와 코하투가 동시에 얼빠진 표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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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2-14. 발명품 (1) +2 18.06.11 483 11 7쪽
62 2-13. 칸 (3) +3 18.06.10 460 11 7쪽
» 2-12. 칸 (2) 18.06.09 450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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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2-8 차오의 부탁 (1) +5 18.06.04 503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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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2-6 기분을 말해줘 (2) +1 18.06.02 512 10 8쪽
54 2-5 기분을 말해줘 (1) 18.06.01 513 12 7쪽
53 2-4. 숨바꼭질 (4) +2 18.05.31 528 12 7쪽
52 2-3. 숨바꼭질 (3) +1 18.05.30 508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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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 할 수 있는 일 (2) 18.05.20 553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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