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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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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64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6.03 13:00
조회
489
추천
9
글자
7쪽

2-7. 기분을 말해줘 (3)

DUMMY

호세는 긴장한 숨을 몰아쉬며 방패를 몸 가까이 가져갔다. 붉은 위용을 자랑하는 에밀리아의 기검은 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호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에밀리아를 주시하며 빈틈을 노렸다. 에밀리아는 다시 양손으로 목검을 쥐고 검끝이 호세를 향하도록 자세를 취했다.


“이제 방심하지 않을게.”


에밀리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손을 얼굴 가까이 들고 검을 가로로 일(一)자게 되게 쥐었다. 칼끝이 호세의 방패로 향했다. 호세는 방패를 몸에 최대한 가까이 붙이고 조금씩 에밀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일도(一刀)라, ‘실바람’을 쓸 모양이군.”


대장은 여전히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세는 대장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죽었다. 애송이.”

‘뭐야!’


호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방패에 얼굴을 숨기고 상대의 모습을 파악하고 있었다. 처음 자세와 모양은 달랐지만, 크게 기색이 변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대장의 말을 통해, 에밀리아가 이제까지와 다른 기술을 쓸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호세가 대장이 말한 무서운 기술의 전조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때, 에밀리아는 천천히 다리를 굽히며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 땅을 엄청난 속도로 박차고 빠르게 돌진했다. 호세가 에밀리아의 움직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코앞으로 다가온 뒤였다.


에밀리아는 호세의 앞을 지나 등 뒤까지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얼핏 보면 공격하지 않고 그저 지나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호세는 보이지도 않는 검이 빠르게 방패를 때리고 지나갔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를 악물어도 몸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은 충격이 몸으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콰앙-!

에밀리아의 돌진이 끝나고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굉음이 방패에서부터 울려퍼졌다. 강한 바람이 호세의 몸을 때렸다. 호세의 몸이 무중력 상태처럼 떠올라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호세는 밭은 기침을 토하며 일어났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방패를 들었던 손이 추욱 처졌다. 몽둥이에 직접 맞은 것처럼 욱씬거렸다.

대장이 큭큭거리며 계속 웃었다. 마치 처음 호세가 불꽃을 막았던 때처럼 통쾌한 웃음이었다.


“에밀리아의 ‘실바람’도 이제 끝물이군. 애송이도 꿰뚫지 못하다니.”

“과연.”


에밀리아가 낮게 말했다. 검을 쥔 상태로 다시 호세에게 검을 향했다.


“호세, 정말 열심히 노력했구나. 아니, 원래 뛰어난 걸지도 몰라. 어쨌든 나에겐 큰 자극이 됐어. 고맙게 생각해.”


호세는 당장이라도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에밀리아의 말에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비명을 꾹 참고 다시 방패를 들었다. 팔이 이제 그만하라며 소리치는 것 같았다. 손을 번쩍들고 항복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대장의 불같은 질책을 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에밀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들고 있는 팔을 축 내렸다. 대장이 계속 웃었다. 폭소에 가까웠다.


“부디 이것도 막아내길 바라.”


호세는 이를 악물었다. 에밀리아의 기검이 짙어지더니, 축 늘어진 검을 올려쳤다. 연무장의 잔디밭이 갈라지더니, 날카로운 바람이 호세에게로 날아왔다. 호세는 감지하지도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방패의 왼쪽 단추를 눌렀다. 방패에서 방어막이 크게 전개되면서 날아오는 바람을 받았다. 그러나 강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얇은 곳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족의 폭발 마법도 막아낸 방어막이, 깨지고 있었다.


호세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토해내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에밀리아는 이번엔 들었던 검을 강하게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이번엔 바람이 눈에 보일 정도로 뚜렷하게 호세를 향해 날아왔다. 바람이 방패에 닿자, 굉음과 함께 늘어났던 방어막이 산산조각이 났다. 호세는 바람에 휘말려 멀리 날아갔다. 이미 반 쯤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대장은 웃으며 미리 그려두었던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반대 방향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호세의 몸을 감싸며 바닥에 내려왔다. 호세는 빙글빙글 도는 시야에 대장이 악마 같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 앞이 캄캄해졌다.



“미안해, 호세."


호세가 정신을 차리자, 에밀리아의 턱이 보였다. 반짝이는 은발이 자신의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호세는 자신이 에밀리아의 무릎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고 싶었지만,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제발 누워있으라고 부탁을 하는 통에, 다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장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굴려 주변을 살펴보니, 아직 연무장 안인 것 같았다.


“‘산들바람’에, ‘된바람’? 아주 작정을 했군. 애송이를 마족이라고 착각했나?”

“호세라면 충분히 막아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밀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막지 못했는걸요···.”


그러자 대장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 정도여서 다행인 줄 알아라. 방금 네가 경험한 기술이, 마족의 폭발 마법을 날려버린 거니까.”


호세는 새삼 자신이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에밀리아는 호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달리기도 오래 하지 못하던 네가 이렇게 까지 성장하다니, 솔직히 놀랐어. 다른 사람을 말을 듣고는 믿지 못했거든.”


호세는 구원 기사단의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나뒹굴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이 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때보다는 튼튼해진 모양이었다. 호세는 작게 웃었다. 몸이 고통으로 덜걱거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에밀리아가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방금 같은 기술을 쓰면 몸에 부담이 오기 마련이다. 너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경험을 한 거야.”


대장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세는 왠지 평소보다 더 하얗게 변한 에밀리아의 얼굴을 보며,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죄송해요.”

“아냐. 말했잖아, 자극이 되었다고. 종종 함께 대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에밀리아의 말이 끝나자 호세의 피부가 그녀보다 더 창백해졌다. 대장은 킬킬 웃으며 누워있는 호세의 옆구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호세가 꽥 소리를 지르며 옆구리를 잡았다. 에밀리아가 꿈틀거리는 호세를 토닥였다.


그 때, 데이지가 다가왔다. 데이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결국 감정의 변화는 없었어. 호세, 널 상대하면서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나 봐.”


에밀리아는 곤란한 듯 아니라며 말을 덧붙였지만, 호세는 눈앞에 존재하는 구원의 최정상 앞에서 말로 표현할 수 아득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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