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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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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52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6.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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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
추천
8
글자
7쪽

2-19. 칸 투레 (3)

DUMMY

호세는 몽롱한 표정에서 벗어나 루디간을 응시하며 물었다.


“루디간 씨도 이런 기분을 느끼시나요?”

“당연하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큰 능력 중 하나가 상상하는 힘이니까.”


루디간이 담담하게 말했다.


“강한 상대와 싸워야 할 때면,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을 하오. 내가 이기는 수, 지는 수, 공격과 방어, 손해와 이득. 몸은 가만히 있지만, 나는 이미 상대와 수없이 많은 싸움을 나누는 게요.”

“그렇군요.”


호세는 아직까지 긴장 때문에 축축히 젖어있는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디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꺼냈다.


“호세 님은 아직 기술을 모르는게 큰 약점이오.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정말 그대를 해하고자 하는 사람과 겨뤄본 적이 많지 않지.”


맞는 말이었다. 그마저도 마족과 겨뤄본 것은 그가 크게 방심하고 있을 때였다. 나머지의 경험이라곤 마법공학실험부의 식구들과, 구원 기사단이나 붉은 용족들이 전부였다. 모두 자신의 스승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잘 가르쳐주었다. 호세에게 도움이 되는 싸움을 한 셈이다.


“맞아요. 하지만 워낙 대단한 분들에게 배웠으니까, 기술의 발전은 제 노력에 달린 거겠죠.”


그러자 루디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기술을 말하는 게 아니오. 무예가 아니라, 심리를 이용한 싸움을 말하는 것이오.”

“심리요?”

“그렇소. 전투는 겉보기엔 단순한 무력 대결처럼 보이지만, 사실 안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소. 상대의 생각을 읽는 싸움이지. 내가 말했던 상상은 이때 필요한 것이오. 호세 님의 특기인 상대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보고 예측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공격 자체는 읽는 수법이지.”


호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요?”


깜짝 놀란 호세가 인상적이었는지, 루디간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잘 됐군. 심리의 전투에서는 내가 제법 일가견이 있소이다. 적격인 사람을 찾아온 셈이지. 내 ‘칼룸’의 칭호는 지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더군. 내 입으로 내뱉기엔 부끄럽지만 말이오.”


루디간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호세도 얼른 루디간의 옆으로 가서 엉덩이를 붙였다.


“정신 사이의 싸움에서는, 상대방을 속이는 게 가장 중요하오. 내가 할 행동을 모르게 하고, 하지 않을 행동을 믿게 하는 거요.”


호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이 보여주었던 움직임이 떠올랐다. 호세가 가장 취약하다고 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단번에 익히긴 힘들지. 많은 전투 속에서 싸움에 임하는 사람의 자세와, 습관 따위를 익혀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때문에 나는 호세 님을 단번에 뛰어난 지략가로 만들 수는 없소.”


호세는 시무룩해졌다.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았나 싶었더니, 역시 세상에 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루디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아무런 가르침도 없다는 건 아니지. 호세 님은 단 두 가지만 기억하시오.”


호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먼저, 빈틈을 보일 것.”


루디간이 말하자 호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빈틈을 보이는 것은 전투에 있어 치명적인 실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루디간은 호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다음 말을 꺼냈다.


“물론 정말 빈틈을 보이라는 것이 아니오. 미끼를 던지는 거지. 마치 나는 이 부분에 약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물론 이게 자연스럽게 보이기는 매우 어렵소만, 전투와 같은 급박한 상황엔 쉽게 이루어지기도 하지. 항상 기억하고 있으시오.”


호세는 머릿속에 새기는 것처럼 거세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은, 강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오.”

“강점을요?”

“그렇소. 빈틈을 보인 뒤에, 상대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알게 된다면, 스스로의 강점을 최대한 내보여야 하오. 상대를 압도하듯이. 싸움에는 흐름이 중요하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숨기지 말아야 하오. 그리고 그때부턴 잘 하지 못하는 것도 잘 하는 척을 해야 하지.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게 하시오. 그대야 상대방이 혼란스러워 지는 법이오.”

“내가 할 행동을 모르게 하고, 하지 못하는 행동을 믿게 하라···.”


호세가 작게 중얼거렸다. 루디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것을 생각하려 하지 마시오. 지금 배운 단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하오. 심리 싸움에서는, 약해 보여야 할 때에는 한없이 약해 보여야 하고, 강해 보여야 할 때에는 한없이 강하게 보여야 하오.”


루디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호세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 후룸바와 코하투가 땀을 흘리며 돌아오고 있었다.


“이것 참, 저 녀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투하쿰의 투하쿰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글러먹었군.”


루디간이 웃으며 혀를 찼다. 호세는 괜히 머쓱한 기분으로 뒷통수를 긁었다. 영문을 모르는 후룸바와 코하투만이 눈을 꿈뻑거리며 물을 마셨다.



칸 투레 당일, 호세는 차오가 가져다 준 용족 특유의 복장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멍하니 거울을 들여다 보던 호세는, 곧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때렸다. 볼이 붉어진 상태로 다시 거울을 보자, 그제야 붉은 용족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나팔소리가 들렸다. 요란하게 고막을 울리는 소리에 몸을 움츠리며 자리에 앉은 호세는 주위를 힐끗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붉은 색, 검은 색, 파란 색, 초록 색. 갖가지 색을 가진 용족들이 자신의 위치에 앉아 무거운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호세는 그들이 마치 색연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색연필은 저들처럼 화가 나 있지는 않았겠지만.


“지금부터, 칸 투레를 시작하겠다!”


우렁찬 차오의 목소리가 비무장을 울렸다. 그러나 아무도 소리지르거나, 흥분하지 않고 고요한 침묵 가운데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깨질 것 같이 날카로운 침묵이었다. 호세는 애꿏은 침만 꿀꺽꿀꺽 삼켜댔다.


붉은 용족 한 명이 나와 각 부족들을 소개했다. 붉은 용족이 개최한 칸 투레이며, 검은 용족과 푸른 용족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파란 색과 초록 색은 한 식구인가?’


그러나 명확하게 구분하여 앉는 걸로 보아, 완전한 가족은 아닌 것 같았다.


“이어서, 캇쿰이 있겠소. 각 일족의 출전자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호세는 얼른 코하투를 살폈다. 굳은 표정의 코하투가 후룸바와 함께 비무장 위로 올랐다. 세 부족의 용족들이 서로를 향해 짧게 인사했다.


“순서는 제비뽑기로 정하겠소!”


진행을 맡은 붉은 용족이 항아리에 담긴 나무 막대기를 붉은 용족과 검은 용족, 그리고 푸른 용족이 각자 한 개 씩을 뽑았다.


푸른 용족과 붉은 용족이 뽑은 막대기에만 붉은 색 종이가 붙어 있었다.


“첫 캇쿰은, 붉은 일족과 푸른 일족이 행하도록 하겠소!”


낭랑한 목소리가 비무장을 채웠고, 호세는 작게 코하투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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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2-22. 칸 투레 (6) +2 18.06.22 435 10 7쪽
70 2-21 칸 투레 (5) +1 18.06.21 429 11 8쪽
69 2-20. 칸 투레 (4) +1 18.06.20 434 11 7쪽
» 2-19. 칸 투레 (3) +2 18.06.17 457 8 7쪽
67 2-18. 칸 투레 (2) +1 18.06.16 450 10 7쪽
66 2-17. 칸 투레 (1) +2 18.06.14 458 11 7쪽
65 2-16. 발명품 (3) +1 18.06.13 459 10 7쪽
64 2-15. 발명품 (2) +1 18.06.12 468 11 7쪽
63 2-14. 발명품 (1) +2 18.06.11 483 11 7쪽
62 2-13. 칸 (3) +3 18.06.10 460 11 7쪽
61 2-12. 칸 (2) 18.06.09 450 9 7쪽
60 2-11. 칸 (1) +1 18.06.07 495 12 7쪽
59 2-10. 차오의 부탁 (3) +1 18.06.06 481 11 7쪽
58 2-9. 차오의 부탁 (2) +4 18.06.05 606 11 7쪽
57 2-8 차오의 부탁 (1) +5 18.06.04 504 11 7쪽
56 2-7. 기분을 말해줘 (3) +4 18.06.03 489 9 7쪽
55 2-6 기분을 말해줘 (2) +1 18.06.02 512 10 8쪽
54 2-5 기분을 말해줘 (1) 18.06.01 513 12 7쪽
53 2-4. 숨바꼭질 (4) +2 18.05.31 528 12 7쪽
52 2-3. 숨바꼭질 (3) +1 18.05.30 508 11 7쪽
51 2-2. 숨바꼭질 (2) +2 18.05.29 555 10 7쪽
50 2-1. 숨바꼭질 (1) +2 18.05.28 523 14 7쪽
49 49. 할 수 있는 일 (3) +1 18.05.21 549 11 7쪽
48 48. 할 수 있는 일 (2) 18.05.20 554 11 8쪽
47 47. 할 수 있는 일 (1) +1 18.05.18 565 12 7쪽
46 46. 마족과 배신자 (4) 18.05.18 607 13 7쪽
45 45. 마족과 배신자 (3) +1 18.05.17 577 12 7쪽
44 44. 마족과 배신자 (2) +1 18.05.16 564 12 7쪽
43 43. 마족과 배신자 (1) +1 18.05.15 689 1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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