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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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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75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6.07 18:40
조회
495
추천
12
글자
7쪽

2-11. 칸 (1)

DUMMY

“루디간. 오랜만이군요.”


검은 용족이 루디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디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일년만이겠군. 저번 칸 투레에서 보았으니. 검은 칸 클라에.”

“칸?”


호세가 놀라 되물었다. 클라에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도 검이 호세를 향하고 있었다.


“루디간, 이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까?”

“물론이지. 방금까지 함께 있었는데.”

“마족 나부랭이와 같이 계셨단 말입니까?”


호세는 방패를 여전히 몸에 가깝게 들고는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마족 아니라니까···.”

“마족?”


루디간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군. 여기 있는 인간 소년은 붉은 칸이 직접 데려온 인재일세. 투하쿰의 자격으로 말이야.”

“투하쿰? 차오가 결국 자존심마저 버렸군요. 인간에게 손을 벌리다니.”

“그런 말 마시게. 자네는 인간에게 전혀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우리와 인간은, 별개가 아니라 공생하는 존재야.”


클라에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다고 인간이 약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루디간이 껄걸 웃었다.


“그래서 약자에게 칼을 들이밀었는가? 아주 바람직한 태도군.”

“혹여나 마족이라면 차오에게 책임을 묻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클라에가 칼을 집어넣었다.


“글쎄다, 나는 자네가 호세를 쉽게 제압했으리라 생각하지 않네.”


클라에의 표정이 분노로 꿈틀댔다. 루디간은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호세 님은 전사다. 우리와 비교해서 전혀 부족한 것이 없는.”

“전사? 당신마저 그런 말을 하십니까! 용족은 스스로의 힘으로만 존재해야 합니다. 남에게 의지하는 것은 인간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당신의 안목도 이제 끝이군요. 한 때 존경해 마지않았던 분인데.”


그러자 루디간이 다시 웃었다.


“나는 자네가 소녀였을 때도 기억한다네. 그 때는 지금보다 덜 고집스러웠는데 말이야.”

클라에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차오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마 집무실에 있을 걸세. 여기서 멀지 않으니 쭉 걷기만 하면 되네.”


루디간이 대답하자 클라에는 가볍게 인사하고, 호세를 잠시 노려보더니 몸을 돌려 사라졌다. 호세는 쥐고 있던 문고리를 놓고는 한숨을 몰아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엔 검은 칸과 겨루다니. 호세 님의 행운은 대단하구려.”

“행운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살벌했는데요···. 죽을 뻔 했어요.”


루디간이 호세를 일으켜 세우며 웃었다.


“용서하시게. 강함에 대한 강박이 지나친 녀석이라 그렇소. 지금도 충분히 강하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있거든.”


용족의 수장이 되었을 정도라면 아주 강한 사람일 터였다. 호세는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라 물었다.


“칸은 어떻게 뽑는 거에요? 칸 투레에 ‘캇쿰’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소. 그러고 보니 궁금하겠군. 사실 아무에게나 말해주면 안 되지만, 이번에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왔으니 칸도 이해할게요.”


둘은 화장실을 나서며 걸음을 옮겼다.


“칸의 자격은, 무예와 인망을 함께 갖춘 자여야 하오. 일족의 반 이상이 동의해야만 칸과 대결을 벌일 자격이 주어지지. 칸이 스스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나이가 들었을 때 말이오. 그럴 때는 칸이 후계를 정하오. 그리고 모든 용족이 그에게 도전하여 칸의 자리를 가져올 수 있지.”


호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족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과 깊은 덕이 있어야만 했다.


“칸 투레에서 원래의 칸을 이겨야만 새로운 칸이 될 수 있소.”

“만약 지면요?”


호세가 물었다.


“다시는 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지. 일생에 단 한 번 뿐이오.”

“그렇구나.”


루디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와 인간이 다른 점은, 우리의 칸은 힘과 인품만 있으면 누구든 일족을 이끄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오. 인간은 그렇지 않지.”


인간의 왕은 오직 혈통으로만 정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력이 가장 강한 이가 왕이 되는 것이다. 마력이 없는 일반 사람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칸 차오의 이야기가 듣고 싶소?”

“네?”


루디간이 쿡쿡 웃었다. 호세의 깜짝 놀란 표정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차오는 아주 특별했소. 아주 특별한 아이였지.”


호세는 아이였을 적의 차오를 상상해보았다. 지금의 강건한 모습을 아이로 되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이야기를 좀 해야겠군. 내 생각엔, 호세 님이 차오에 대해서 더 알 필요가 있소. 동료라면 더욱. 상대에 대한 지식은 관계를 단단히 고정 시키는 법이오.”


호세는 흥미로운 눈길로 루디간을 쳐다보았다. 루디간은 빙그레 웃었다. 이마부터 길게 이어지는 상처가 눈매를 따라 휘어졌다.


“차오는 무척 여린 아이였소. 꽃도 함부로 꺾지 못했지.”


루디간이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금빛의 눈이 향수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차오는 꽃이나 동물 따위를 무척 좋아했다. 숙소 앞 화단에 꽃을 가꾸거나, 들짐승들의 밥을 챙기는 일에 몰두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붉은 용족은 마족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바빴으므로, 차오의 이런 행동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차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사지, 꽃장수가 아니야.”


무예에 두각을 보이던 차오에게 그의 투하쿰이 한 말이었다. 또래보다 덩치도 좋고 감각이 뛰어난 차오의 모습을 보고 용족의 어른들은 그에게 강한 전사가 되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나 차오는 남몰래 화분을 가꾸거나, 먹이를 주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호세가 성인이 될 무렵, 마족섬멸전이 시작됐다. 국경을 침범한 마족들이 많아지자, 왕궁이 용족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라는 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젊은 용족들은 모두 국경으로 보내졌다. 차오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족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했다. 늑대의 얼굴에 곰의 몸뚱이를 가진 마족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또 말의 몸에 악어의 얼굴, 꼬리는 뱀인 마족도 있었다. 차오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죽어갈 때 했던 행동 때문이었다.


마족은 피에 물들어 갈 때마다 마치 길가에 버려진 들짐승 같은 행동을 했다. 끼잉끼잉대거나, 상처는 핥거나, 눈물을 흘렸다.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마족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마법을 쓰거나 후방에서 마족들을 소환했다. 마치 소모품처럼 동물을 섞어놓은 마족들을 계속 만들어냈다.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차오는, 어느 날 자신의 앞에서 쓰러진 늑대 형상의 마족을 땅에 묻어주었다. 차오의 마음속에서 분노와 혐오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자신은 생명을 죽이면서, 그들을 가여워하고 있었다.


그러자 혼란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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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2-16. 발명품 (3) +1 18.06.13 460 10 7쪽
64 2-15. 발명품 (2) +1 18.06.12 469 11 7쪽
63 2-14. 발명품 (1) +2 18.06.11 484 11 7쪽
62 2-13. 칸 (3) +3 18.06.10 461 11 7쪽
61 2-12. 칸 (2) 18.06.09 450 9 7쪽
» 2-11. 칸 (1) +1 18.06.07 496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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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9. 차오의 부탁 (2) +4 18.06.05 607 11 7쪽
57 2-8 차오의 부탁 (1) +5 18.06.04 504 11 7쪽
56 2-7. 기분을 말해줘 (3) +4 18.06.03 490 9 7쪽
55 2-6 기분을 말해줘 (2) +1 18.06.02 513 10 8쪽
54 2-5 기분을 말해줘 (1) 18.06.01 514 12 7쪽
53 2-4. 숨바꼭질 (4) +2 18.05.31 529 12 7쪽
52 2-3. 숨바꼭질 (3) +1 18.05.30 509 11 7쪽
51 2-2. 숨바꼭질 (2) +2 18.05.29 556 10 7쪽
50 2-1. 숨바꼭질 (1) +2 18.05.28 523 14 7쪽
49 49. 할 수 있는 일 (3) +1 18.05.21 549 11 7쪽
48 48. 할 수 있는 일 (2) 18.05.20 554 11 8쪽
47 47. 할 수 있는 일 (1) +1 18.05.18 565 12 7쪽
46 46. 마족과 배신자 (4) 18.05.18 608 13 7쪽
45 45. 마족과 배신자 (3) +1 18.05.17 579 12 7쪽
44 44. 마족과 배신자 (2) +1 18.05.16 566 12 7쪽
43 43. 마족과 배신자 (1) +1 18.05.15 689 1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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