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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껌의 서재입니다.

광인이 되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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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껌
작품등록일 :
2023.05.11 13:24
최근연재일 :
2023.11.12 20: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1,248
추천수 :
18
글자수 :
187,767

작성
23.05.11 14:27
조회
176
추천
3
글자
11쪽

징집병(1)

DUMMY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으나 적막한 풍경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보다는 침울해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숨막혀오는 분위기가 목을 조여온다. 거친 숨소리만이 퍼져 나간다.


건너편에는 비슷한 수의 병력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원에서 벌어지는 회전. 죽어가는 것은 대부분 병사일 것이다. 그것도 징집받은 고기방패들이. 나 또한 그 선두에서 버텨야겠지.


살아남고 싶다. 죽고 싶은 생각은 일도 없다. 갑작스레 끌려온 전투에 걸 명예따위는 없다. 사실 전투에서 이기든 지든 우리에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망가면 뒤에 있는 정예병들과 기사들이 즉참할 것이 뻔하다.


선택지는 없다.


무언가를 죽여본 것이라고는 벌레뿐이 없다.


손이 무겁다. 전신은 이미 오랜 긴장으로 힘이 많이 빠지고 있다. 들고 있는 검이 무겁기 그지 없다. 겉보기에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이빠진 검과 그나마 멀쩡한 나무 방패가 있다.


나는 아직 죽기에는 젊다. 죽기 싫다. 이곳에서 죽으면 개죽음일 뿐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교향에 있는 가족만이 슬퍼 하겠지. 부고 소식 조차 없이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그제서야 죽은 것을 알 것이다.


주위에는 이미 죽어가는 있는 눈빛들이 만연하다.


"준비!"

"준비! 준비!"


이번 전쟁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의 지시가 들려온다. 뒤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징집병인 우리 또한 그에 대해 복명복창은 하지만 그대로 대기한다.


아는 것이 쥐뿔도 없기 때문이다. 작전에 대해 들은 것은 없고 아마 대부분 그저 돌진만 하다가 죽을 운명이겠지.


다리가 덜덜 떨려온다. 정신 차려야 한다.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 같았지만, 준비라는 것이 시간이 꽤나 걸리는 일 같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것 같음에도 양측 전부 움직임이 크게 없다.


그러나 분명 자리 잡고 있는 진형은 크게 변화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반대측의 진형의 모습이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측 또한 그런 모양새가 아닐까하고 추측한다.


조잡하기 그지 없는 고기 방패들이 선두에서 맞붙는 것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징집병으로 불려갔다가 살아돌아온 이들의 조언을 들어보자면, 이럴때 가장 위험한 것은 기사다. 말은 그 자체로 흉기고 기사는 조잡한 무구따위에 다치지 않는다.


눈먼 화살에 죽는 일도 많지만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니까. 운에 맡기라 들었다. 방패를 들어서 버티려해도 아군의 화살에 맞는 일 또한 빈번하니까. 특히나 난전중에는 더욱 그저 자신의 뒤는 안전하다는 일념 하나로 뒤 돌아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


방패! 방패만 잘 들고 있으면 살 확률이 높다. 칼을 들기 조차 힘든 그런 난전이 될 확률이 높다. 서로 전투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조잡한 칼이라고 해도 가죽갑옷도 안 걸친 그저 섬유조직에 불과한 옷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더 거칠어져 오는 숨소리에 괜히 불안감만 더욱 올라간다. 전우감 따위는 없는 처음보는 면상들이다.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들도 적은 수에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모양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돌격!"

"돌격! 돌격!"


잘 안떨어지는 발걸음을 움직인다. 다리가 저릿저릿하다. 걷는 것만으로 쓰러질것만 같다. 다행인건 우리측만이 아니라 저쪽 또한 그러한 낌새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다.


"시x!시x!"


나지막하게 욕을 하며 긴장감을 풀어본다. 그러자 주변에서도 곧 따라하기 시작한다. 이게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말을 탄 기사들은 이미 빙 둘러 달려오고 있다. 몇몇은 적의 지휘관을 노리고 태반은 고기방패들을 썰어버리려고 올 것이다.


아무래도 숫자가 많은 징집병들이 사라져야 쉬운 전투가 되기 때문이다. 전투에서는 아무리 무장이 뛰어난다고 한들 숫자가 중요하다고 들었다.


벌레의 울음소리와 새 소리가 사라져간다. 금속의 소리와 인간들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 사라진듯 보인다.


죽음이 다가온다.


눈 앞이 흐릿해지려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선명한 햇빛이 그를 부정하듯 내 눈을 찔러온다.


"충돌에 준비하라!"


이에 대한 복명복창은 없다. 아마 해야하는 것이 맞는 듯 하지만, 그럴 정신은 없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질타의 소리도 없다. 다들 곧 있을 전투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뿐이다.


본능적으로 방패에 칼을 가져다 대며 여러 번 쳐 본다. 굳어있는 몸을 풀기 위해 저도 모르게 움직인다.


쿵쿵!


호흡을 가다듬자. 지금은 너무 격양되어 있다. 눈이 부릅 떠진다. 손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있어 무기를 놓칠까봐 걱정이 된다.


이번에도 주변에서 나를 따라하기라도 한듯 방패에 칼을 부딪히는 사람들이다.


푸흡


별거 아닌 일에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내가 실성을 해버리고 만 것일까?


앞에서 달려오는 같은 처지의 고기방패들이 흠칫하고 더욱 천천히 오는 모습이 보인다. 뒤에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소리치지만 그것은 더욱 악영향으로 보인다.


문외한인 내가 이정도로 생각했으면 우리 징집병들도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잘하면 살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퍼져나간다.


죽어가는 눈ㅂ칭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총명한 눈빛까지는 아니더라도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가진 눈이다.


좋은 일이겠지.


"가자!"

"가자!!!"


내가 한 말에 다들 동조해 준다. 이 일이 천직이라도 되는 것일까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는다.


그래도 긴장을 놓치면 안된다. 그건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겠지.


그리고 주변에서 이미 나를 보는 눈빛이다. 징집병들이야 나를 피하겠지만, 정예병이나 기사들은 다르겠지. 이미 표적으로 삼을 지도 모른다.


이크


너무 생각해보니 너무 나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신경을 끄겠지. 난전 속에서 딱히 특징도 없는 징집병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만약 전투가 진다면 내게 큰일이 될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 날 기억하는 것도 용한 일이다. 앞에만 정신을 집중하자.


낡은 칼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칼이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들린다. 다들 이 다음 부터는 칼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칼에 맞아보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칼에 맞는 느낌이라고 하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먼저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 처음 하는 공격을 방패로 맞이하고 그 뒤로 칼을 내질러야한다. 치명상을 입힐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몸 어디를 찌르면 훈련이 안 된 징집병은 그대로 쓰러질 것이다. 그 뒤는 누구든 알아서 처리 하거나 밟혀 죽거나 운이 좋아 살아남을 수도 있다.


쾅!


방패로 강하게 민다는 느낌으로 짧고 강하게 밀어본다. 팔이 저릿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효과가 매우 좋았던 모양이다. 적은 칼을 놓쳤다.


"젠장!!!!"


잘 들려오지 않는 듯 하나 매우 당혹스러워 보이는 적군의 얼굴에 칼을 내질렀다.


실수했다. 몸을 노렸을 걸 하고 후회했다. 낡은 칼이 치명상을 입히기는 어렵다. 그래도 징집병이니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더욱 힘을 주어 내밀었다.


볼의 일부분과 귀를 잘라내었다. 적이 지x발x을 하며 있었지만 이내 아군에게 칼을 맞고 쓰러진다.


눈먼 칼에 맞기 싫은 이가 뒤에서 찌른 모양이다. 다행이다.


내게는 마구잡이로 때리는 칼이 더욱 무섭다. 죽기 싫어 칼을 내지를때마다 죽을 힘을 다하는 칼질이 내게는 더 안전하다. 초보자도 보기 쉬운 궤도가 내게 필요하다.


방패로 막고 칼이 창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며 찌른다! 그것만을 반복했다. 눈치 좋은 이들이 나를 따라하기 시작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런 사람이 내 앞에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운이 좋아서 그런지 눈먼 화살이나 칼이 구원을 해 주었다.


두두두두두둑


들려와서는 안될 소리가 들려온다.


"기사다!"

"도망쳐!"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것 없이 서로 사이가 벌어진다. 그 사이로 적군 인지 아군 인지 알 수 없는 기사들이 치고 나간다.


그 경로상에 분명히 내가 있다는 점은 불행이다. 기사는 내가 적이든 아군이든 베고 지나가겠지.


"비켜! 병x아!"


내 목소리가 닿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적은 그래도 어리둥절하지만 계속해서 나와 싸우려한다.


"병x아! 말! 기사! 기사!"


그제서야 그도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새하얗게 질려간다.


상당히 달아올라 악마라도 된듯 빨간 얼굴이 실시간으로 그리 변하는 것을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안 모양이긴 하다.


그를 칼로 찌르면 죽일 수 있겠지만 그러면 말에 밟히든 기사에게 죽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방패로 쌔게 밀어버리며 뒤로 걸음을 옮겼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녀석들과 부딯치며 같은 말을 반복하며 겨우 벗어났다.


그 와중에 죽지 않은 것은 천운이라 볼 수 있다.


기사가 지나가는 경로는 쓰러진 시체와 피로 낭자하다. 혈로가 열린 느낌이다.


그야말로 피로 된 길이다. 밥 먹고 전투만 하는 녀석들과 우리들은 천양지차인 것을 새삼 깨닭는다.


내 주변은 이미 조용하다. 서로 싸우는 것도 잊고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긴장이 풀리는지 칼도 방패도 들고 있기도 힘들다 이 상태로 그냥 쓰러져 버리고 싶다.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는 것은 나도 알지만,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죽음의 공포 마저도 집어상켜지는 상실감이 찾아온다.


잠시 소강되었던 전투의 상태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다.


힘은 다들 많이 빠졌는지 소리가 이전만 하지는 못하다. 그리고 숫자도 많이 줄어 든 것 같다. 그러한 감상에 빠져 칼에 맞을 뻔했다.


후웅~


눈앞을 칼이 지나간다. 눈치 채지 못한 칼이 내 안구를 벨듯이 아슬하게 지나간다. 어딘가 베인 느낌이 들어 얼굴을 메만져 보지만 어디가 다친 것인지 모르겠다.


칼을 내지른 적은 그게 마지막 힘이라도 된듯 거리를 잘 못 생각해 혼신의 힘을 담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 앞으로 쓰러졌다. 무척이나 힘겨워 하며 일어나려 하길래 나도 모르게 목을 베었다.


푸드득


반쯤 파고든 칼이 뼈와 만나며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땅에 떨어진 칼들도 적이 내지른 칼도 멀쩡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반쯤 부셔진 내 칼과 아직 멀쩡한 방패를 믿어야 한다.


지금은 굳이 적을 찾아 헤멜 필요는 없다. 그저 자리를 지키자.


내 앞에 쓰러진 시체들 때문인지 덤벼오는 숫자가 점점 적어진다.


내가 가장 선두에 섰던 것은 아니나 그래도 앞 줄에 있던 것이 문제인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의 증언과는 다른 숫자의 배를 이미 죽였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


제길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목이 메어온다. 사람에게서 나는 소리가 아닌 쇳소리의 숨소리만이 목으로부터 새어 나온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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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10.08 15:54
    No. 1

    제목이 특이해서 서재를 방문했는데
    작품은 의외로 최상급이군요.
    깔끔하고 힘 있는 문장에다 속도감 있는 전개 때문에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군요 작가가 많은 수련을 거쳤다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주인공이 왜 광인이 되어가는지...... 선작, 추천 누르며 추적을 해보겠습니다. 힘차게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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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악의 재림 23.11.12 6 0 11쪽
36 마물 토벌(6) 23.10.16 7 0 11쪽
35 마물 토벌(5) 23.10.15 10 1 11쪽
34 흑마법사(2) 23.10.14 11 0 11쪽
33 마물 토벌(4) 23.10.13 11 0 11쪽
32 흑마법사(1) 23.10.12 11 0 11쪽
31 마물 토벌(3) 23.10.11 12 0 11쪽
30 마물 토벌(2) 23.10.10 11 0 11쪽
29 마물 토벌(1) 23.10.09 10 0 11쪽
28 스콰이어(4) 23.10.09 10 0 11쪽
27 스콰이어(3) 23.10.08 13 0 12쪽
26 스콰이어(2) 23.10.08 14 0 11쪽
25 스콰이어(1) 23.10.06 17 0 12쪽
24 사교회(4) 23.10.05 15 0 11쪽
23 사교회(3) 23.10.04 16 0 11쪽
22 사교회(2) 23.08.03 18 1 11쪽
21 사교회(1) 23.07.15 23 0 11쪽
20 마석화(5) 23.07.13 30 0 11쪽
19 마석화(4) 23.07.11 24 0 11쪽
18 마석화(3) 23.07.09 27 0 12쪽
17 마석화(2) 23.07.06 29 1 11쪽
16 마석화(1) 23.07.04 31 0 11쪽
15 마물과 기생충(4) 23.07.03 29 1 11쪽
14 마물과 기생충(3) 23.07.01 26 1 12쪽
13 마물과 기생충(2) 23.06.30 28 0 11쪽
12 마물과 기생충(1) 23.06.29 34 0 11쪽
11 벌레(5) 23.06.28 38 1 12쪽
10 벌레(4) 23.06.27 34 1 11쪽
9 벌레(3) 23.06.26 40 1 11쪽
8 벌레(2) 23.06.25 4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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