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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연대기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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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작품등록일 :
2012.12.05 12:57
최근연재일 :
2018.09.01 02:42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53,123
추천수 :
2,646
글자수 :
181,157

작성
13.08.15 02:37
조회
3,313
추천
134
글자
6쪽

강철의 기사들 SS 천생연분

DUMMY

사제지간인 동시에 친구관계인 두 사람은 체스판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검은 기사로 하얀 성벽을 무너트리며 메르헨이 짓궂게 웃었다.

“야, 넌 전생에 달의 여왕인지 뭔지 였다며. 그런데 왜 이렇게 못 해.”

“전생이잖아요!”

그리고 달의 여왕이랑 체스가 무슨 상관이라고!

끝에 가서는 소리치는 대신 중얼중얼거린 시안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인 뒤 체스판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이미 승패가 결정난 지 오래였다. 끽해야 세 수 앞 밖에 헤아리지 못하는 시안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턱이 없었지만 말이다.

메르헨은 턱을 괴고 시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분함과 부끄러움 등이 뒤섞여 발갛게 변한 시안의 뺨에다 물었다.

“그래도 기억 거의 다 가지고 있잖아?”

“좀 달라요. 그때 나는 마법사였다고요.”

그리고 자꾸 그 얘기는 왜 하는데요.

시안은 하얀 병사를 움직였다. 메르헨의 예측 범위 안의 수였고, 동시에 사지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하얀 왕이 굴복하기까지 앞으로 다섯 수. 메르헨은 시안이 말을 옮기자마자 검은 성벽을 전진시켰다. 순간적으로 울상을 짓는 시안을 보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권사고?”

시안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시안도 이제는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니까. 체스판을 바라보는 대신 메르헨을 보았고, 눈썹을 모았다. 그녀의 물음 아닌 물음이 묻는 바에 대답했다.

“바랐던 것 같아요.”

왜 마법사였던 그녀가 현생에는 권사가 되었는지. 마법을 부리는 대신 직접 주먹과 발을 휘두르게 되었는지.

“무엇을?”

무엇을 바랐기에, 어떤 소망이 있었기에.

시안은 시선을 애 먼 곳으로 돌렸다. 다소 부끄럽다는 듯 볼을 몇 차례 긁적이더니 조금은 아련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는 내가 그 사람 자리에 대신 있고 싶다… 내가 저 사람 앞에서 지켜주고 싶다… 그 사람, 권사였으니까요.”

마지막에 가서는 어설프게 웃었다.

태양의 왕.

달의 여왕의 반려. 모두를 지키기 위해 늘 최전선에서 싸웠고, 끝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던 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싶었으니까. 다음에는 남겨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메르헨은 따스한 미소를 그리며 손을 뻗었다. 시안의 뺨을 쓰다듬는가 싶더니 이내 손가락을 놀려 살짝 꼬집었다.

“어유, 그런데 어떡하니 그쪽은 부인까지 떡 하나 들여놓고 있었으니. 거기다…….”

“거기다 뭐요.”

시안이 불퉁하게 되묻자 메르헨은 손을 거두었다. 화난 모습도 귀여워 죽겠다는 듯 피식피식 웃더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이 묻었다.

“아니, 그냥 말 안 해줄래. 어차피 그냥 내 짐작에 불과하니까.”

확실한 게 아니니까. 그리고 왠지 말해주면 어설픈 네가 감동할 것 같으니까.

시안은 결국 볼을 부풀렸다.

“치치치, 메르헨까지 이러기에요?”

“왜, 티르가 속 썩여?”

가볍게 말한 것이 정곡을 찔렀는지 시안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정말이지… 옛날엔 안 그랬는데.”

태양의 왕이었던 시절에는 지금과 달랐는데. 시안 자신은 그의 유일한 달이었고,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태양이었는데,

메르헨은 시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결국 시안의 뺨을 다시 꼬집지 않을 수 없었다. 귀엽고 어리숙한 계집애.

“그래서, 그럼 지금은 싫어?”

시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안이 티르를 사랑한 것은 그가 전생에 태양의 왕이었고, 시안 자신이 달의 여왕이었기 때문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속상한 것은 속상한 것이었다. 더욱이 메르헨도 얄밉다.

“메르헨은 그냥 내 편 좀 들어주면 안돼요? 놀리지만 말고!”

“어머나, 내가 왜?”

메르헨은 방실방실 웃으며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였고, 시안은 다시 뺨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어, 잠깐만요.”

메르헨에게 양해를 구하자마자 시안은 손가락을 허공에 놀려 통신 단말을 활성화 시켰다. 제한적이나마 세상 간 통신까지 가능한 절대기사단의 연락망이었다.

무슨 내용인 걸까.

메르헨은 궁금했지만 묻는 대신 기다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시안의 얼굴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인간을 진짜!”

벼락같이 일어난 시안은 그대로 휙 돌아섰다. 역시나 예상대로 티르와 관련된 일인 모양이었다.

“다음에 봐요, 메르헨!”

시안은 메르헨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절대기사단의 세상간 이동 장치가 있는 방을 향해 달렸다. 그 빛살 같은 뒷모습에 메르헨은 피식 웃었다. 입에 곰방대 하나를 물고 연기를 삼켰다. 시안에게 해주지 않은 말을 홀로 허공에 흘려보냈다.

“달은 모두를 지키는 주먹이 되었지만… 태양은 그걸 어찌 알기라도 한 걸까, 언제나 앞장서 돌진하는 창이 되었구나.”

뒤를 돌아보지 않는 랜스 차징. 항시 적의 심장을 향해 질주하기에, 언제나 적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기에 지켜야 할 자들을 자신의 등 뒤에 두는 그것.

“천생연분이구나.”

부럽네, 부러워.

메르헨은 담배 연기를 길게 토했다. 미완으로 끝난 체스판의 하얀 기사와 하얀 여왕을 장난스럽게 들어올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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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월드메이커/플레이어즈 SS #2 왕의 별 +27 15.08.31 8,337 159 16쪽
22 강철의 기사들 SS 일지 +11 13.11.20 3,853 46 9쪽
21 강철의 기사들 SS 기도 +1 13.11.20 2,819 30 11쪽
20 강철의 기사들 SS 어느 화창한 오후 +4 13.09.21 4,343 49 8쪽
19 기상곡 SS 해후 +13 13.09.02 5,132 53 5쪽
18 폭뢰신창 SS 생生 +7 13.08.31 8,851 184 35쪽
17 SG SS 사자와 호랑이 +6 13.08.28 4,218 109 1쪽
» 강철의 기사들 SS 천생연분 +7 13.08.15 3,314 134 6쪽
15 소야곡 SS 단막 +6 13.08.14 3,700 96 5쪽
14 SG SS 눈물 +8 13.06.08 3,473 129 5쪽
13 나이트사가 SS 메데이아 +4 12.12.13 3,431 26 9쪽
12 나이트사가 SS 그 날 +3 12.12.11 3,211 30 10쪽
11 나이트 사가 SS 황제의 아이들 +2 12.12.10 3,866 56 9쪽
10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백일몽 +2 12.12.08 3,375 52 12쪽
9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우울 +3 12.12.05 3,255 52 19쪽
8 광시곡 SS 영생자들의 우울 +3 12.12.05 3,362 35 19쪽
7 소야곡 SS 퍼스트 블러드 +4 12.12.05 3,328 35 11쪽
6 강철의 기사들 SS 성인식 +5 12.12.05 3,467 35 22쪽
5 소야곡 SS 어떻게 +1 12.12.05 3,163 27 6쪽
4 소야곡 SS 밤이 온다 +2 12.12.05 3,306 61 5쪽
3 강철의 기사들 SS 영웅의 시대 +5 12.12.05 5,546 39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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