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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연대기 SS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취룡
작품등록일 :
2012.12.05 12:57
최근연재일 :
2018.09.01 02:42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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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03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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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157

작성
12.12.10 12:04
조회
3,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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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
9쪽

나이트 사가 SS 황제의 아이들

DUMMY

세상의 적이 있었다.



&



가레이프 왕국의 위명 높은 검호 드래곤 나이트 카슈는 황제의 아이들 가운데 하나이자 엘프들의 배신자인 검왕 일레븐에게 패해 죽었다.

카슈의 패배는 개인의 패배가 아니었다.

검호의 힘에 기대어 간신히 버티고 있던 윙스턴 요새는 무너졌고, 이는 곧 가레이프 왕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세상이 불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세상의 적에 의해서,

황제와,

그 아이들의 의해서.



&



반파된 윙스턴 요새에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황제가 일으킨 붉은 기세의 흉흉함 뿐.

세상은 세상의 적을 인정하지 않았고,

황제의 아이들은 세상에게 있어 사람이 아닌 이물질에 불과했다.

암격왕 루인은 무너진 성벽 위에 섰다.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마치 세상을 불태우는 것만 같았다.

루인은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뭐해? 혼자서 청승맞게.”

애교 섞인 목소리에 루인은 투구 속에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시선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마주했다.

“오스카.”

“헤헷.”

2미터를 넘는 암격왕에 비하자면 너무나 작고 여린 푸른 머리칼의 미녀는 귀엽게 웃으며 암격왕의 옆에 섰다. 그 팔에 매달리며 함께 노을을 보았다.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

황제는 대륙의 절반을 불태웠다. 인간들의 나라는 이제 몇 남지 않았다.

황제와 그 아이들, 단 여덟이서 세상에 맞서 싸운다.

그 모든 증오와 그 모든 적의에 대항한다.

세상의 적 황제는 세상을 불태운다. 그리하여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다시 만든다.

세상이 자신을 거부한다면 그 세상을 버린다.

도망치는 대신 맞서 싸워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세상을 만든다.

이제 절반. 남은 것은 다시 절반.

지독한 시간들이었다.

노을은 짧다. 세상을 모두 불태울 것만 같던 그 붉은 기운은 어느새 보랏빛으로 변했다. 황혼 너머로 사그라들고 있었다.

오스카는 고개를 들었다.

“…오빠?”

암격왕 루인. 오크 족 역사상 최강의 전사.

그는 과묵했다. 가족들 앞에서도 말을 아끼는 자였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많았다. 입을 무겁게 닫고 그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스카는 루인의 눈을 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았다. 그래서 그를 대신해 말했다.

“너무… 많이 죽였지?”

루인은 오스카를 내려다보았다. 만년설의 화신인 오스카는 계속 말했다.

“너무 많이 죽였어. 대륙의 절반을 불태웠으니까. 우린 너무 많이 죽였어.”

세상의 적인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세상의 증오를 받고 죽던가,

세상에 맞서 싸우던가.

그들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죽인다. 살기 위해 죽인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암격왕은 이번에도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오스카는 그런 루인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맞서는 자는 괜찮아.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늙었든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우리에게 대항한 자들은 괜찮아. 그들은 이미 한 사람의 전사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 그저 죽어간 이들, 그저 업화에 휘말려 죽어간 이들.”

옹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기들.

엉엉 울며 엄마를 찾다가 이내 죽어간 아이들.

사랑하는 그 사람을 전쟁터로 떠나보내고, 이내 따라죽을 수밖에 없던 수많은 여인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대신 전쟁터에 내몰려 죽고 만 이들.

모두 죽였다.

모두 불태웠다.

오스카는 차가웠다. 그녀는 만년설의 아이였다. 그래서 그는 루인에게 온기를 나누어줄 수 없었다. 오히려 루인의 온기에 기대었다. 그 팔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이렇게 싸우지 않더라도…. 어딘가… 어딘가 먼 곳에는… 우릴 받아주는 그런 곳도 있지 않을까?”

도망치고 도망친다면.

가족끼리 서로 손을 붙잡고 계속 도망친다면.

“…오스카?”

오스카는 루인을 보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말했다.

“다른 분열세상이라든가, 거기도 안 된다면 아예 다른 세상이라든가… 찾고 또 찾다보면 하나쯤 있지 않을까?”

그런 곳이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 곳이 있다면 우리도 다른 누군가를 불태우지 않아도 될 텐데.

남의 행복을 빼앗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루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 커다란 손으로 오스카를 끌어안았다.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었다.

다른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면서, 셀 수조차 없는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행복을 꿈꾼다.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 없다.

세상의 증오는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 쌓아올린 업보는 언제나 그 목을 조인다.

이제 절반을 불태웠다.

아직도 절반을 더 불태워야 한다.

오스카도 루인을 끌어안았다.

온기. 따뜻한 체온.

살아있다는 증거.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

“오빠, 그래도….”

하루하루가 지옥이지만,

매일 매일이 전쟁이지만,

이렇게 오빠가 있어서,

아버지가 있어서,

언니이자 엄마인 마자르 언니가 있어서, 익살맞은 일레븐 오빠가 있어서, 언제나 생뚱맞은 페인 오빠가 있어서, 과묵한 막내 리버스가 있어서-

“나는 지금도 행복해.”

암격왕 루인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오스카를 끌어안았다.

해가 졌고, 밤이 찾아왔다. 어둠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



“오빠, 저기야?”

“그래, 저기란다.”


그날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날.

별의 아이 아샤도 사라지고, 그 제자들도 사라지고, 돌아온 황제와 그 아이들은 새로운 별의 아이와 싸워 끝내는 무너진 후.

암격왕 루인은 홀로 살아남았다.

황제가 만감이 교차한 미소를 지으며 소멸한 그 순간, 홀로 전장을 이탈했다.

기억하기 위해.

추모하기 위해.

세상 모두의 증오를 뒤집어 쓴 가족들을 혼자서나마 그리워하기 위해.

최종결전이 펼쳐졌던 평원 한 구석에 가족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제대로 된 무덤은 아니었다.

유품이나마 찾아 묻을 수 있었던 것은 막내인 리버스 뿐이었다. 다른 가족들의 무덤에는 아무 것도 묻혀있지 않았다.

루인은 실로 오랜만에 가족들의 무덤을 찾았다.

혼자는 아니었다. 그 어깨 위에는 푸른 머리칼의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세상을 둘러보고 있었다.

황제가 돌아온 날, 펠튼의 손에 일레븐과 오스카가 죽던 날,

마자르는 오스카의 파편을 아주 조금이나마 그러모았다. 그리고 루인은 북토의 땅에서 그 작은 조각을 보살폈다.

오스카는 본래 만년설의 화신.

조각난 파편이 귀여운 여자 아이가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암격왕은 그 아이에게 오스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오스카가 아니다.

그 파편에서 깨어났지만 기억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그 파편에서 자라났지만 이미 다른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암격왕은 그 아이를 오스카라 불렀다. 그리고 함께 가족들의 무덤을 찾았다.


무덤의 수는 모두 여섯 개.

화려하지 않았다. 웅장하지도 않았다. 그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비석 여섯 개가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황제의 것.

마자르의 것.

에인켈의 것.

페인과 일레븐의 것.

그리고 리버스의 것.

“꽃이네?”

오스카가 눈을 깜박였다. 루인 또한 놀란 얼굴로 리버스의 무덤을 보았다.

다른 무덤들과 딸리 꽃 한송이가 올라가 있었다.

사람이 다녀간 흔적.

누구의 것일까.

“오빠?”

루인은 어린 오스카에게 답하는 대신 숨을 길게 토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더욱 깊은 회한이 그의 가슴을 헤집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을 퍼트린다.

살아남기 위해 죽인다.

“…리버스.”

리버스는 퀸 아레이스타를 찔렀다.

웃으며 찔렀다.

그리고 울었다.

그래야만 했을까.

리버스에게 꼭 그런 일을 시켰어야만 했을까.

루인은 비석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이름조차 새겨지지 않은 비석들을 보며 가족들을 떠올렸다.

한 평생 세상과 싸웠던 아버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친 끝에 맞서기로 결심하셨던 아버지.

이제는 평안하실까.

큰형 에인켈, 아이들의 어머니 마자르, 페인과 일레븐, 막내 리버스. 그리고 오스카.

이제는 모두 떠났다.

루인만이 남았다.

루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탄 오스카를 보았다.

“그만 가자꾸나.”

오스카는 루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빠, 슬퍼?”

“…아니, 괜찮아. 괜찮단다. 이제는 괜찮단다.”

루인은 작게나마 웃었다. 오스카는 그런 루인을 똑바로 보았다.

“오빠.”

“그래, 오스카.”

“나는 지금도 행복해.”

루인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오스카를 돌아보았다.

“오…스카?”

오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루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무덤 앞에 섰다.

황제와 그 아이들의 무덤.

오스카는 돌아섰다. 루인은 그런 오스카를 마주했다.

루인은 알았다. 깨달았다. 오스카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스카였다.

“오스카.”

오스카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세를 낮춘 루인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



세상의 적이 있었다.

세상의 증오를 받던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함께 하던 이들이 있었다.

함께 서로을 위하며 세상에 맞섰던 이들이 있었다.


세상의 적.

그의 아이들.


세상 모두와 맞서야만 했던,

세상의 적.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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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이트사가 SS 그 날 +3 12.12.11 3,211 30 10쪽
» 나이트 사가 SS 황제의 아이들 +2 12.12.10 3,866 56 9쪽
10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백일몽 +2 12.12.08 3,375 52 12쪽
9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우울 +3 12.12.05 3,255 5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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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야곡 SS 퍼스트 블러드 +4 12.12.05 3,328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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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야곡 SS 어떻게 +1 12.12.05 3,163 27 6쪽
4 소야곡 SS 밤이 온다 +2 12.12.05 3,306 6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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