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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연대기 SS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취룡
작품등록일 :
2012.12.05 12:57
최근연재일 :
2018.09.01 02:42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52,976
추천수 :
2,646
글자수 :
181,157

작성
13.08.14 01:32
조회
3,698
추천
96
글자
5쪽

소야곡 SS 단막

DUMMY

날카로운 도검처럼 늘어선 빙벽들 사이로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서리 거인들과 서리 용들의 주서식지인 만년설에는 단 하루도 눈보라가 멎는 날이 없었다.

그런 땅에서, 한기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서리 거인과 서리 용을 제하고는 그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는 혹한의 땅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좀 더 꽉 안아줘. 춥단 말이야.”

빙벽과 빙벽이 맞닿는 지점에 뚫린 자연 동굴 안을 발열마법을 건 짐승가죽으로 완전히 뒤덮다시피 한 뒤, 바람 한 줄기 새어 들어올 틈 없이 입구를 막았지만 극한의 땅이 지닌 한기 그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칭얼거리듯 말하며 몸을 꼼지락 거리더니 조금 더 남자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의 행동에 남자는 곤혹스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로드.”

“왜?”

하얀 머리칼의 여자가 고개를 빼꼼히 들어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빛 하나 없어 어둠 그 자체였지만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해맑은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 남자는 한참이나 우물쭈물한 끝에 겨우 말을 만들어냈다.

“저도 일단 남자입니다만…….”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의 남자는 말끝을 흐리며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굴렸다. 여자의 얼굴만이 아니라 그 새하얀 목선이, 온기를 나누겠다며 옷을 벗어던진 탓에 고스란히 드러난 속살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반응에 키득 웃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불편하면 남자로 변할까?”

“아뇨, 그냥 이대로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재빨리 답한 남자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여자와 하체가 맞닿지 않게 하기 위해 허리를 부자연스럽게 비틀었다. 그리고 몇 차례 시도 끝에 역시나 소용없다는 사실을 확인 한 뒤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로드.”

“자꾸 왜.”

“그냥 마법으로 온도 높이죠.”

“체온이 더 좋아. 그리고 진은 따뜻하단 말이야. 유다가 그런 얘기 안 해?”

“하긴 합니다만…….”

왜 하얀 머리칼이 옷에 묻어있냐는 둥, 왜 로드의 향수냄새가 그리 나냐는 둥의 말을 더 자주 하지만 말입니다.

여자의 천연덕스런 물음에 참으로 한심하게 답한 남자는 한숨을 토했다.

차라리 이게 유혹하는 거라면 마음이 편했으려나. 여자는 딱히 다른 의도가 없었다. 지금 말하는 것처럼 그저 자신의 품이 따뜻해서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믿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남자 취급 안 해준다고 삐져야 하나.

“…헤헤.”

속으로 갈등하던 남자는 여자의 작은 웃음소리에 다시 시선을 내렸다.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자신의 가슴에 반쯤 짓눌린 여자의 앙가슴으로 가려는 눈동자를 억지로 끌어올려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왜요.”

“아니, 그냥 참 다행이구나 싶어서. 우리 진이 그때 못 만났다면 일이 몇 배는 더 힘들었겠지? 지금처럼 기대지도 못하고. 많이 힘들었을 거야.”

여자는 그대로 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남자는 잠시 망설인 끝에 여자의 어깨를 안았다. 그 새하얀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로드.”

“왜?”

“아뇨, 아무 것도.”

“실없기는.”

남자는 여자를 잘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응석을 부리며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자신과 그녀의 양부뿐이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이렇게 행동하지 못했다.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지언정 그가 걱정할까 두려워 약한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정말로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녀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온 세상에 오로지 남자 혼자뿐이었다. 여자는 그래서 남자를 믿고 의지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것에 감사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로드.”

새삼스럽게 그리 말하며 남자는 여자를 좀 더 꼭 끌어안았다.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볼을 살짝 비비며 화답했다.

“잘 자, 진.”

내 동생, 내 부하, 내 친구.

남자는 한참 전부터 눈을 감고 있던 여자를 따라 눈을 감았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잠들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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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84 바회
    작성일
    13.08.14 02:17
    No. 1

    다른 소설은 끝나면 그 소설속 세상이 죽어버리는 느낌인데, 연대기는 완결 후에도 ss로 계속 이야기가 나오는걸 보니 소설속 인물이 살아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네요. 건필하세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6 뀨아아악
    작성일
    13.08.14 02:44
    No. 2

    아 진짜 윗분댓글 보고 그런 느낌이드네요 확실히 취룡님소설만의 매력인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공국의밀사
    작성일
    13.08.14 07:40
    No. 3

    같은 생각이에요 아직도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듯 해요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엘리시르
    작성일
    13.08.14 08:14
    No. 4

    정곰님이 진짜 잘 표현해주셨네요 그게 연대기의 가장 큰 매력이고 한번 보면 다른 작품들까지 계속 보게 해는 원동력인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길동무
    작성일
    13.08.14 11:29
    No. 5

    기계장치신은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신듯 ㅎㅎ 주위사람들도 엄청 잘 챙기실거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kazema
    작성일
    13.08.14 12:48
    No. 6

    오오~~이게 얼마만의 글인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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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강철의 기사들 SS 기도 +1 13.11.20 2,817 3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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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기상곡 SS 해후 +13 13.09.02 5,129 53 5쪽
18 폭뢰신창 SS 생生 +7 13.08.31 8,848 184 35쪽
17 SG SS 사자와 호랑이 +6 13.08.28 4,214 109 1쪽
16 강철의 기사들 SS 천생연분 +7 13.08.15 3,311 134 6쪽
» 소야곡 SS 단막 +6 13.08.14 3,699 96 5쪽
14 SG SS 눈물 +8 13.06.08 3,471 129 5쪽
13 나이트사가 SS 메데이아 +4 12.12.13 3,428 26 9쪽
12 나이트사가 SS 그 날 +3 12.12.11 3,209 30 10쪽
11 나이트 사가 SS 황제의 아이들 +2 12.12.10 3,862 56 9쪽
10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백일몽 +2 12.12.08 3,372 52 12쪽
9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우울 +3 12.12.05 3,253 52 19쪽
8 광시곡 SS 영생자들의 우울 +3 12.12.05 3,359 35 19쪽
7 소야곡 SS 퍼스트 블러드 +4 12.12.05 3,324 35 11쪽
6 강철의 기사들 SS 성인식 +5 12.12.05 3,464 35 22쪽
5 소야곡 SS 어떻게 +1 12.12.05 3,160 27 6쪽
4 소야곡 SS 밤이 온다 +2 12.12.05 3,304 61 5쪽
3 강철의 기사들 SS 영웅의 시대 +5 12.12.05 5,538 39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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