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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연대기 SS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취룡
작품등록일 :
2012.12.05 12:57
최근연재일 :
2018.09.01 02:42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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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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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0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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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쪽

강철의 기사들 SS 영웅의 시대

DUMMY

강철의 기사들 SS #6 영웅의 시대




기나긴 전란의 시대였던 청동의 시대가 끝났다.

살육과 파괴에 지친 인류는 서로에게 겨누었던 적의를 거두고 평화의 손짓을 보냈다.

아멜리아, 벤자민, 에어하트.

삼 개 대륙에 자리한 다섯 개의 초거대 국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대.

하지만 아직 그 시대를 가리키는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


인류는 황금의 시대에 이은 제2의 황금기를 누렸다.

청동의 시대에 급감했던 인구는 이제 다시 백억을 웃돌았고, 과학과 마법의 결합으로 탄생한 마도공학은 제네식 플렌트에 미치지는 못할지언정 인류에게 청동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요를 안겨 주었다.

인간들 간의 대전쟁에 끼어들지 않기 위해 인류의 곁을 떠났던 동물신들 역시 돌아왔다.

인류는 황금의 시대 이래로 항상 인간들의 편에 서서 천재에 맞섰던 동물신들을 환영했고, 동물신들 역시 그런 인류에게 활발한 활동으로 보답했다.

인명 구조, 범죄 박멸, 약자 보호.

동물신들은 인류의 영웅이 되었다.


“대기실에서 담배 피지 말라니까요.”

트레이닝 시설부터 시작하여 식사, 수면을 위한 장소까지 모두 마련된 거대한 원형 방 안에서 볼멘소리가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견신 미티어 블루.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어엿한 투신 가운데 하나였다.

“미안, 미안.”

적당히 손사래를 치며 급히 담뱃불을 끄는 것은 장신의 남자였다.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에 꽉 끼는 검은 타이즈와 청바지, 거기에 귀에 낀 귀걸이가 한량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남자의 이름은 마신 고져스 스텝. 동물신들 가운데 ‘최속’을 자랑하는 자였다.

고져스 스텝은 소파에 등을 깊이 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흐아, 죽겠구먼. 요새 우리 신전에만 사람이 안 온다고 키라라가 죽는 소리를 해 대서.”

“키라라면 형네 대신관이요?”

미티어 블루가 옆에 앉으며 묻자 고져스 스텝은 약간은 난처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에, 뭐 그렇지. 요새 좀 날카로워.”

동물신들을 모시는 신전들도 결국엔 돈이 있어야 운영이 가능했다. 고져스 스텝의 신전의 경우 신전을 오가는 사람들의 수가 하도 적다 보니 명색이 대신관인(하지만 동시에 유일한 신관인) 키라라가 소위 말하는 투잡을 뛰어야 할 정도였다.

미티어 블루도 키라라가 번역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고져스 스텝은 소파 등받이 뒤로 고개를 젖히더니 한숨을 길게 쉬었다.

“아니, 근데 애당초 생각을 해 봐. 내 별호는 바람을 앞서는 말이라고. 딱히 내 신전에 사람들이 찾아올 일이 있겠어?”

인간이 신을 찾은 것은 결국 기도하고 바랄 것이 있어서이다.

더욱이 동물신들은 참으로 많았으니까. 다른 신들 다 제쳐 두고 굳이 고져스 스텝의 신전을 찾을 일은 없었다.

미티어 블루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성실하게 고민을 해 보았고, 이내 다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마… 중독자들?”

누구보다 빠른 마신에게 찾아갈 일이라면 그것밖에 없을 테니까.

고져스 스텝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로 미티어 블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튼, 이게 다 블랙 윙 때문이라니까. 아니, 왜 난데없이 가수 활동은 시작해 가지고. 걔네 신전이 우리 신전 바로 근처니까 키라라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만 블랙 윙 누나가 가수 활동 시작한 지는 벌써 수십 년이 다 되었는걸요. 키라라가 태어나기도 전부터니까.”

흑발이 아름다운, 마신의 대신관은 올해로 22세였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블랙 윙 탓을 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고져스 스텝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냐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래, 키라라는 성장 과정 내내 블랙 윙네 신전에 신도들을 빼앗기는 기분을 누려 왔지. 자그마치 22년 동안이나.”

고아였던 키라라를 보살핀 것은 고져스 스텝이었으니까.

할 말이 없어진 미티어 블루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래도… 형은 구조 활동이 즐겁지 않나요?”

위기에 빠진 인간들을 구한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을 돕는다.

“뭐, 그렇긴 하다만…….”

고져스 스텝은 뺨을 살짝 긁적였다. 미티어 블루의 말대로였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도 랑신 나이트워커처럼 독고다이나 하고 있었겠지.

“안녕~♡”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돌아볼 것도 없다는 듯 견신과 마신은 함께 웃었다.

“화제의 아이돌 등장이시구먼.”

목소리의 주인공은 연신 블랙 윙이었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세계 최고의 가수로 군림하는 그녀는, 제비답게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나긋나긋한 걸음으로 두 신에게 다가섰다.

“신전에 사람들이 넘쳐흐른다고 신관들이 죽는소리를 하지 뭐야.”

어째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마신은 입을 앙다물고 볼을 부풀렸고, 견신은 쾌활하게 웃었다.

“그보다 누나, 화이트 로커스 누나가 아까부터 기다렸어요.”

“응? 화이트가?”

“그래, 기다렸다.”

으르렁거림에 가까운 목소리는 반대편 문 쪽에서 들려왔다. 눈꼬리를 잔뜩 치켜세운 묘신 화이트 로커스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화, 화이트?”

“너… 너, 내가 내 속옷 입지 말라고 했지!”

묘신이 단숨에 지면을 박찼다. 단번에 연신의 멱살을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트렸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돈도 잘 버는 년이 왜 자꾸 그래! 네가 제비지 도둑고양이냐?! 왜 자꾸 내 속옷을 훔쳐가는 거야!”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두 달 이어진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자그마치 십 년이 넘었다.

바닥에 깔린 채 켁켁거리던 연신은 급히 묘신의 어깨를 쳤다.

“화이트, 화이트!”

“왜 이년아!”

연신 블랙 윙은 무어라 답하는 대신 묘신 화이트 로커스의 등 뒤만을 가리켰다. 결사적이라 해도 좋을 행동에 묘신은 반응했고, 등 뒤를 돌아보았다. 능글맞게 웃고 있는 마신과 부끄럽다는 듯이 눈을 내리깔고 있는 견신의 모습에 얼굴을 붉혔다.

무어라 알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더니 그대로 연신을 옆구리에 끼고 사라졌다.

두 여신이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사라진 자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신과 견신은 함께 웃었다.

견신 미티어 블루는 웃으며 생각했다.

이런 나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모두와 함께 인간들을 도우며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매일이 이어지기를.

“언제까지나.”

견신은 소망했다.

그리고 다음 날,

존자 전쟁이 시작되었다.


&


어느 날 갑자기라고밖에 표현 못할 존자들의 공격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열두 존자.

그리고 감히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을 숫자의 괴들.

동물신들의 수장인 용신 레드 저지먼트는 동물신들에게 명령했다.

‘존자 전쟁에 관여하지 마라.’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용신 레드 저지먼트는 동물신들을 모두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향했다.

인류의 기도는 의식적으로 무시하였다.

사람들이 죽어 갔다.

끔찍한 절망에 짓눌려 비탄에 찬 비명을 질렀다.

군대가 무너지고, 국가가 붕괴되었다.

사람들은 기도했다. 간절히 동물신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동물신들은 인류를 도울 수 없었다.

레드 저지먼트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동물신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약속의 땅에 틀어박혀 인류를 애써 외면하였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

그렇게 하지 않은 자가 있었다.


&


그곳은 폐허였다. 더 이상 도시가 아니었다.

중부 전선 최후의 보루였던 헤이스팅스 요새는 결국 무너졌다. 살아남은 잔존 병력들은 북부로 향하였다.

급하게 신설된 인류 통합 사령부는 헤이스팅스 요새가 자리했던 아멜리아 대륙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잔존 병력의 탈주를 위해 준비된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대규모 핵공격이 예정되어 있었다. 통합 사령부 최고 책임자는 ‘대륙을 수장시킬 각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멜리아 대륙에 더 이상 민간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기실 이 세상의 인류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군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수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괴에 비해 인류는 너무나도 적었다.

NA 183년, 존자 전쟁 개전 4년째, 겨울을 바라보는 가을의 끝 무렵.

인류 통합 사령부의 지령에 따라 213지구 수비 작전이 준비되었다. 잔존 병력의 탈출을 위한 포인트를 확보하는 한편 괴들의 시선을 213지구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였다.

인류 통합 사령부는 이 작전을 위해 막강한 전력을 투입하기로 했다.

부대원 전원이 개인형 용갑주로 무장한 흑익 기사단과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로 대표되는 스컬 대대, 대천사 사리엘이 이끄는 제5독립부대, 아멜리아 대륙 최후의 정예라 할 수 있을 6사단, 제4세대형 전투함들로 구성된 9함대.

그리고 마지막은 인류의 영웅.

인류에게 처음으로 내밀어진 도움의 손길, 헤이스팅스 요새의 구원자, 인간을 지키는 강아지―견신 미티어 블루였다.


인간을 지키는 강아지 견신 미티어 블루는 멍한 얼굴로 213지구의 한가운데 섰다. 땅은 피폐했고 하늘은 회색이었다. 번영을 상징하던 빌딩 숲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미티어 블루는 213지구를 기억했다. 강아지를 지켜보는 고양이 화이트 로커스와, 봄을 /이끄는/ 제비 연신 블랙 윙과, 바람을 앞서는 말 마신 고져스 스텝과 함께 213지구의 명물인 놀이공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미티어 블루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반파된 인공 섬이 보였다. 꿈과 희망을 캐치프라이로 걸었던 놀이공원은 더 이상 없었다. 놀이 기구의 철골들이 썩다 남은 시신의 백골처럼 보여 처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미티어 블루는 터벅터벅 걸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땅에 떨어진 인형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정말로 그런 것이라도 보였다면 어떤 기분이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니까.

미티어 블루는 적당히 아무데나 앉았다.

괴들은 자신들이 죽인 인간들의 시신을 먹었다. 그래서 괴들에게 정복된 도시에는 끔찍한 시신 따윈 없었다. 그래서 213지구의 폐허에도 인간의 시신은 없었다. 이건 과연 미티어 블루에게 있어 불행일까 행운일까.

끔찍한 소리지만 행운일 거야. 인형만 보아도 참지 못할 것 같은데 사람의 시신이라니.

바람이 불었다. 상쾌하지 못한 무거운 바람이었다.

“혼자서 뭐해?”

익숙한 목소리였다. 미티어 블루는 억지로나마 작은 미소를 그리며 뒤돌아보았다. 죽음의 대천사 사리엘이 보였다.

“왔네.”

“어, 혼자서 청승 떨고 있는 게 멀리서 보여서 앞장서 왔지. 다들 금방 올 거야.”

생긋 웃은 사리엘은 미티어 블루 옆에 앉았다. 미티어 블루는 그런 사리엘의 어깨 너머로 하늘을 보았다. 잿빛 하늘을 가르는 인류의 군세가 보였다.

저들 가운데 순수한 인간은 드물었다.

인류의 군세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대부분이 제네식 플렌트에서 태어난 인조병들이었다.

흑익 기사단은 단장인 칠흑의 아지다하크를 비롯한 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투형 클론인 타입 자이언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타입 엔젤들로만 구성된 사리엘의 부대는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하멜 소령이 이끄는 스컬 대대도, 제6사단도, 9함대도, 순수한 인간들만으로는 도저히 구성할 수 없었다. 그만큼 많은 인간이 죽었다.

“무슨 생각해?”

“아니, 든든해서.”

미티어 블루는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눈동자만 살짝 굴려 사리엘을 보았다. 사리엘은 프로젝트 에인헤리얼에 의해 탄생한 타입 아크 엔젤이었다. 태어난 지는 이제 고작해야 9개월 남짓. 그녀의 짧은 생애는 오로지 전투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어 온 것은 모조리 다 사투. 전투는 매일같이 이어졌고, 사망자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만 갔다. 오늘 함께 싸운 동료가 내일은 없었고, 정을 붙이기가 무섭게 죽어 갔다.

사리엘에게 행복한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사리엘에게는 무례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미티어 블루는 언제나 사리엘이 신기했다. 그녀는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기계장치의 신이 애당초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괜찮아?”

미티어 블루는 눈을 껌벅였다. 괜찮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들었다. 그 반동으로 잠시 멍해 있자니 사리엘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많이 지쳐 보여서. 열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하면서 손을 미티어 블루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열은 없는데?”

“괜찮아. 네 말대로 조금 지쳤나 보지.”

미티어 블루가 짐짓 여유롭게 말했다. 사리엘은 그런 미티어 블루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인류의 영웅이잖아? 기운 내.”

웃으며 건넨 말에 악의는 담겨 있지 않았다. 순수한 호의로만 가득했다. 하지만 미티어 블루는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 그러고 보니 잊어먹을 뻔했네.”

“사리엘?”

“가만 있어 봐, 이것도 기념인데 사진 찍자.”

“어?”

“사진 찍자고.”

히히 웃은 사리엘은 미티어 블루에게 얼굴을 바짝 가까이 가져가는 한편 팔에 부착된 통신기를 높이 들어 올렸다. 소위 말하는 셀카 찍는 자세였다.

“웃어, 웃어.”

사리엘은 정말로 밝게 웃었고, 미티어 블루는 어설프게 웃었다. 하지만 사리엘은 만족한 것 같았다. 입체 사진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더니 이내 입술을 말아 올렸다.

“좋아, 나중에 아우리엘이랑 부대원들한테 자랑해야지.”

사리엘의 얼굴에 그림자는 없었다. 미티어 블루는 자신이 너무 섣부르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오로지 전투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사리엘은 그 가운데서도 기쁨을 찾고 있었다.

“사리엘.”

“응?”

사리엘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사과를 하는 것도 생뚱맞았지만 미티어 블루는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 입술을 열려는 순간 세찬 바람이 미티어 블루와 사리엘을 덮쳤다.

“오붓하게 데이트하고 계십니까?”

경쾌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미티어 블루와 사리엘의 등 뒤에 착지한 강철의 거인. 보라색 망토를 휘날리는 저것은 용갑주계의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였다. 사리엘은 세찬 바람에 사정없이 흐트러진 머리를 바로잡으며 언성을 높였다.

“데이트인 걸 알면 방해하질 말아야지!”

화가 난 것처럼 소리쳤지만 어쩐지 모르게 즐거운 목소리였다.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 안의 남자도 웃었다. 마그누스의 해치를 열고 얼굴을 내미었다. 스컬 대대 지휘관이자 용갑주 부대의 에이스, 스컬 나인 하멜 소령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광풍이 일었다. 온통 칠흑으로 물든 개인용 용갑주를 걸친 일백의 무리가 미티어 블루와 사리엘을 에워싸듯 착지했다. 그리고 그들의 최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용갑주의 헬멧 부분을 해제했다. 눈 아래는 검은 복면을 하고 있어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애당초 중요한 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눈빛이 남자의 모든 것을 설명했다.

흑익 기사단 단장 칠흑의 아지다하크. 오라 유저의 극한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사리엘과 미티어 블루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린 남자가 취향이었나? 다 늙어서 추하군.”

“뭐가 어째?!”

만 1세도 되지 못한 사리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항변했고, 아지다하크는 사리엘의 폭언을 귓등으로 흘렸다. 하멜 소령은 계속 웃었고,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는 소리 없이 영상을 기록했다.

미티어 블루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미티어 블루는 웃음을 터트렸다.


&


“내일이군요.”

“응, 힘든 싸움이 될 거야.”

213지구 수비 작전에 투입될 병력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다. 괴들의 대부대는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일 오전 10시를 전후로 하여 괴들과의 교전이 시작될 터였다.

밤은 차가웠다.

달빛도 없는 하늘은 어둡기만 했다.

“받아요.”

나란히 앉아 모닥불을 쬐던 하멜이 캔 커피를 건넸다. 예전에야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전쟁이 길어진 지금은 아닌 그런 물건이었다. 미티어 블루는 두말없이 캔 커피를 받았다. 따뜻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네.”

인간에게 건네받는 뜨거운 커피라니. 화이트 로커스 누나는 커피를 참 좋아했는데. 블랙 윙 누나는 싫어했고.

전선의 모두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기에 병사들은 짧게나마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중요한 작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개인마다 한 잔의 술도 허락되었다. 사리엘은 병사들의 한가운데서 웃음을 유도했고, 병사들은 왁자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이제는 침묵만이 가득한 곳에서 미티어 블루는 멀리 보았다. 문득 사리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하멜, 영웅이 뭘까?”

영웅이란 무엇일까.

하멜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미티어 블루의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하멜은 이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맹목적인 동물신이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도 알았다. 그래서 되물었다.

“미티어 블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잘 모르겠어.”

사람들은 미티어 블루를 영웅이라 불렀다.

헤이스팅스 요새의 구원자.

인류의 희망.

인류의 영웅.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 최초의 대천사,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기계장치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등장으로 그 색이 바/래/긴 했지만 미티어 블루는 여전히 인류의 영웅이었다.

하멜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가지고 있는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죠.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인가.”

“뭐, 이건 사전적 의미에 불과하죠.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하멜은 다 마신 캔 커피 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군용 고체 연료를 태우며 활활 피어오른 불꽃을 바라보았다.

“지금 시대의 영웅은… 저 고체 연료와 같은 자이죠.”

“고체 연료?”

“네, 불꽃을 피어오르게 할 자, 싸울 용기를 불어 넣는 자, 절망에 맞설 희망을 가져다 줄 자…….”

하나하나 나열하던 하멜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제가 말했지만 민망한 단어들이군요. 아무튼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영웅이란 결국 희망의 상징이니까요.”

살 수 있다.

끝내 이겨 낼 수 있다.

인류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헤이스팅스 요새 공방전을 기억하나요?”

미티어 블루가 처음으로 참전한 전투.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티어 블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그때 저도 헤이스팅스 요새에 있었죠.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습니다. 인류 통합 사령부가 보내 준 지원군도 전멸했고, 요새 총사령관은 괴에게 잡아먹히기 싫다며 자살했고, 물자도 바닥났고, 그런데도 괴들은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었다. 하멜은 그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모두가 요새에 틀어박혀 죽음만을 생각했다. 계속된 패배에 몸도 마음도 모두 꺾여버린 탓에 아무도 내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생각한다는 것이 요새를 폭파시켜 괴들과 함께 죽는 것.

말 그대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

“그런데 그날, 당신이 내려왔습니다.”

절망으로 가득 찬 하늘을 가르고,

요새에 몰려드는 수천, 수만의 괴들을 일소하며,

헤이스팅스 요새의 메인 게이트 앞에 버티고 선 자.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살 수 있다. 우리는 버림받지 않았다. 기적은 있다……. 그 증거. 절망에 짓눌리려 할 때마다 그에 맞설 힘을 주는 존재……. 그것이 당신이었습니다. 미티어 블루.”

이번에는 미티어 블루가 얼굴을 붉혔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마냥 새빨개진 얼굴로 떠듬떠듬 말했다.

“으… 아, 어, 으…….”

하멜은 웃었다. 그의 얼굴 역시 붉었다.

“말하는 저도 다 부끄럽군요. 아무튼 이 시대의 영웅은 그런 것이겠죠. 희망의 상징, 희망을 불러오는 자, 인류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는 자.”

미티어 블루의 등장은 인류에게 많은 것들을 주었다. 패전만을 계속하던 인류에게 첫 승리를 안겨 줌에 따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다시 한 번 괴들에 맞서 싸울 용기를 주었다.

“사리엘을 비롯한 대천사들이나… 저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엄청나게 강한 힘으로 인류를 지켜 주고 있죠. 그들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떻게든 싸울 수 있는 겁니다. 고체 연료의 힘을 빌려 활활 타오르는 저 불꽃처럼 말이죠.”

사리엘은 언제나 웃었다.

그녀는 언제나 웃고 또 웃었다.

사리엘은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어떤 역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인지.

“사리엘은 대단해.”

“네, 대단한 아가씨죠. 그리고 당신도 대단합니다, 미티어 블루.”

모든 동물신들이 인류를 버렸지만 그만은 버리지 않았다.

하멜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감히 묻지는 못했지만 짐작할 수는 있었다. 이 전투 끝에 미티어 블루를 기다리는 것은 결코 영광된 내일이 아닐 터였다.

미티어 블루와 하멜은 고체 연료를 들여다보았다. 불꽃을 크게 피운 대가로 /점/점 작아져 가고 있었다.

“하멜.”

“네, 미티어 블루.”

“영웅이 고체 연료라면… 조금 유치한 얘기일지 몰라도 결국 이 자리에 선 모두가 영웅이겠지?”

그들 역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으니까. 인류의 불꽃을 더 크게 피우기 위해, 결코 꺼트리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섰으니까.

“…부끄러운 소리를 참 잘도 하시는군요.”

“하멜!”

미티어 블루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소리치자 하멜은 키득 웃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겠지요.”

아마도 이 자리에 선 모두가 영웅이겠지요.

밤이 저물고 아침이 밝았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


“흑익 기사단 참전 준비 완료.”

괴들의 대군세가 몰려오고 있었다. 임시 지휘 본부의 대형 스크린은 온통 새빨간 빛으로 물들었다.

“제5독립부대, 언제든지 출전 가능해.”

최전선에 선 것은 칠흑의 아지다하크가 이끄는 흑익 기사단과 죽음의 대천사 사리엘이 이끄는 제5독립부대였다.

괴들은 땅과 하늘을 가리지 않았다. 실로 어둠이 밀려온다고밖에 표현 못할 대진격이었다.

하멜 소령을 중심으로 한 스컬 대대는 각 기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그 광경을 보았다.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가 말했다.

“많군.”

“엄청 많아.”

하멜은 시답잖게 답하며 조종간을 꽉 움켜쥐었다. 황금빛 오라가 일렁였다.

제9함대가 전투 준비를 갖췄다. 제6사단이 지상에서 포격전을 준비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느 때.

12기의 전술 ED탄/이/ 하늘을 갈랐다. 일순간에 불과했지만 스크린을 뒤덮던 붉은 점들을 일소했다.

지금이었다.

“굿 럭, 커멘더.”

하멜은 사납게 웃으며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를 발진시켰다. 칠흑의 아지다하크는 거창을 높이 세우고 비상했다. 사리엘은 200장에 달하는 라플라스의 거울을 소환했다.

살아라.

죽지 마.

너나 죽지 마.

죽여 버려.

이기고 돌아가는 거다.

수많은 상념이 교차했다. 전선을 지키는 모두의 생각이 교차하고 또 교차했다.

미티어 블루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 주먹을 움켜쥐고 날았다.

언제나처럼 푸른 유성이 되어 잿빛 하늘을 갈랐다.

NA 183년 10월 27일 Am 10:02

213지구 수비전의 시작이었다.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는 용갑주계의 마스터 피스였다. 파일럿의 오라 능력과 완전한 동화를 보여 주는 그것은 저 대천사들과 더불어 기계장치의 신이 만들어 낸 걸작이었다.

“가자, 마그누스!”

“간다, 마스터.”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는 보라색 날개를 펼쳤다. 전신은 황금으로 빛났다. 한 자루 대검에서 피어오른 것은 멸망을 부르는 희망의 검이었다.

눈앞을 가득 메운 것은 온통 괴였지만 하멜도, 마그누스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검을 들어 올렸다. 괴들이 시야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모으고 모았던 오라를 폭발시켰다.

오라 블레이드,

나이트 오브 나이츠Knight of Knights.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의 검끝으로부터 황금의 파란이 일었다. 수km에 달할 그것을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는 휘둘렀다.

전장이 갈라졌다. 폭음과 폭발과 괴성과 빛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었다. 수천에 달할 괴들이 단숨에 일소되었다. 하멜과 마그누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보라색 광익을 펼쳤다. 스컬 대대에 속한 132대의 용갑주들과 함께 맹진했다.

“사리엘!”

사리엘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멀리했다. 밉살스런 하멜의 활약에 질 수 없었다. 하멜은 인간이었고 그녀는 대천사였다.

제5독립부대의 천사들이 저마다의 거울을 꺼냈다. 사리엘의 것과 도합하면 일천 장에 달할 거울들.

“내려라, 죽음의 비.”

사리엘은 비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비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직경 1미터에 달할 죽음의 광선이 하늘을 수놓았다. 하멜과 아지다하크의 돌격 부대가 꿰뚫고 지날 길을 열어 주었다.

제9함대가 포문을 열었다. 제6사단 역시 지지 않고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이긴다.

살아남는다.

괴들을 모두 쓸어버린다.

선전이었다. 괴들의 수는 많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은 하멜과 아지다하크를 넘지 못했다. 사리엘이 불러온 죽음의 비가 그들의 한계선이었다.

이기겠다는 각오가 이길 수 있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이겼다’라는 확신으로 변하였다.

틀리지 않은 생각이었다. 개전 3시간이 되었을 때는 괴들의 숫자도 많이 줄어들었다. 전선의 모두는 승리를 확신하였다.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사리엘은 미소를 그렸다.

제9함대를 지휘하는 톨 함장도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오퍼레이터들의 항의를 귓등으로 흘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톨 함장의 머리가 갈라졌다.

제9함대의 기함인 모비딕이 세로로 동강이 나 침몰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일어난 일에 인류는 바로 반응할 수 없었다. 모비딕을 호위하는 세 척의 전함이 똑같이 두 동강이 나 침몰한 그때야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사리엘은 고개를 돌렸다.

최전선에서 괴들과 교전하고 있던 하멜과 아지다하크마저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비딕이 있던 공간에 자리한 것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사람보다 조금 더 큰 크기였다.

보라색이었다.

양손에는 두 자루 대검을 쥐고 있었다.

그것이 다시 양손을 들어올렸다.

사리엘은 비명을 토했다.

“단탈리안!”

열두 존자 가운데 하나.

보라색 섬광이 일었다.

어쭙잖은 승리의 열망에 빠져 있던 인류에게 절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


제6사단 사단장 인호 중장은 후퇴를 명령했다.

인류 최악의 대참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존자 전쟁을 일으킨 열두 명 가운데 하나가 전선 가장 깊은 곳에 등장한 순간 이미 모든 것이 무의미할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명했다.

그 명령은 틀리지 않았다.

존자는 통제 불능의 대상이었다.

애당초 존자 전쟁이 인류 사상 최악의 대참사로까지 발전한 것은 존자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인류가 가진 그 어떤 힘으로도 존자들을 막을 수 없었다. 비발디가 멸망한 것도, 끝내는 아멜리아 대륙을 포기하게 된 것도 전장에 직접 참전한 존자들의 전진을 막아낼 이렇다 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 존자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셋뿐이었다.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 최초의 대천사 카무이.

그 셋은 모두 다른 대륙에 있었다.

이미 존자 단탈리안의 공격 범위 내에 들어간 9함대는 포기한다 할지라도 6사단을 비롯한 그 외 부대만은 살려야만 했다.

전격적인 후퇴.

하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못했다. 존자 단탈리안은 인류의 군세가 도망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존자 단탈리안은 까마귀의 그것을 닮은 날개를 펼쳤다. 투구라고 단언하기 힘든 무언가에 감싸여 보라색 안광을 빛냈다.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사리엘은 숨을 삼켰다. 하멜은 반전했다. 아지다하크는 이미 날아올랐다.

하지만 늦었다. 닿을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일섬.

장대하고 긴 보라색 섬광이 9함대를 휩쓸었다. 거대한 전함들이 가로로 동강 났다. 비현실적인 추락을 개시했다.

폭염이 하늘을 불태웠다.

절반은 9함대가 폭발하며 일으킨 것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지상의 6사단이 쏘아올린 포격이었다.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존자 단탈리안이 나타났을 때 반응했던 유일한 자.

모두가 넋을 잃고 추락하는 기함 모비딕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미 가속을 /개/시했던 자.

그밖에 없었다.

애당초 존자 단탈리안에 맞설 수 있는 자는.

“단탈리안!”

폭염을 관통하는 것은 푸른 유성이었다. 청색 섬광이 보라색 절망을 향해 돌진했다. 단탈리안도 시선을 돌렸다. 주먹을 움켜쥔 미티어 블루를 노려보았다.

“미티어 블루.”

존자와 견신이 교차했다. 서로에 대한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주먹과 검을 나누는 그 찰나의 순간 견신과 존자는 서로를 확인하였다. 둘만이 알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존자 단탈리안.’

‘왔구나, 대행자.’

교차한 둘은 돌아섰다. 서로를 보았다.

견신 미티어 블루는 언제나와 같았다. 푸른 장발을 길게 늘어트리고 인류가 지혜를 모아 만든 특수 용갑주를 입었다. 푸른 눈동자는 그의 이명처럼 환히 빛났다.

존자 단탈리안은 검지만 화려한 남자였다. 까마귀를 연상시키는 새카만 코트에 보라색 깃털로 장식된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존자 단탈리안.”

“그래, 나의 대행자야.”

두 사람이 다시 격돌했다. 세상의 시스템이 요동쳤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이들에게 인호 중장은 명령했다.

“퇴각해!”

시간벌이였다. 견신 미티어 블루가 시간을 버는 사이 최대한 많은 병력을 추슬러 도주해야만 했다.

6사단이 필사적인 도주를 개시했다. 하멜은 자신을 제외한 용갑주 부대 전원에게 적당히 싸우다 이탈할 것을 명령했다. 아지다하크의 흑익 기사단은 존자 단탈리안을 향해 날았다. 사리엘은 이를 악물고 광익을 펼쳤다. 천사병들에게 용갑주들을 도와 전면의 괴들을 막을 것을 명한 뒤 날아올랐다.

미티어 블루의 주먹이 단탈리안의 얼굴에 꽂혔다. 투구를 연상케 하는 가면을 박살 냈다.

존자 단탈리안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미티어 블루의 왼팔과 공간을 함께 베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박살 난 가면 사이로 몹시도 지친 단탈리안의 얼굴이 드러났다.

상황은 급박했다.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단탈리안과 미티어 블루는 의식을 교환했다.

인류의 적인 열두 존자의 일원인 존자 단탈리안과 인류의 수호신인 견신 미티어 블루의 만남이 아니었으니까.

단탈리안, 그는 존자이기 이전에 수호 의지였으니까.

인간을 지키는 강아지 견신 미티어 블루를 자신의 대행자로 창조한 열두 수호 의지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레드 저지먼트를 비롯한 동물신들이 인류를 버린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인류의 적이 된 것은 그들의 상관이자 어버이라 할 수 있을 열두 명의 수호 의지들이었다.

이 세상의 진정한 신들이었다.

존자 전쟁에 존자들의 편에 서서 참전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동물신들은 인류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었다.

미티어 블루야말로 배신자였다.

용서할 수 없는 역도였다.

미티어 블루는 존자 전쟁이 개전한 이후 처음으로 단탈리안을 마주했다.

미티어 블루는 깨달았다.

단탈리안은 변했다.

애당초 이렇다 할 감정을 가지지 않은, 시스템의 일부라 할 수 있었던 그는 더 이상 없었다. 눈앞의 단탈리안에게서는 감정이 느껴졌다.

단탈리안은 미티어 블루를 동정하고 있었다.

미티어 블루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투기를 일으켜 단탈리안을 밀쳐 내는 한편 재생력을 발휘해 출혈을 막았다.

자색 날개를 펼쳐 밀려나는 것을 막은 단탈리안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너는 선택했구나.”

단탈리안의 목소리는 그 표정만큼이나 지쳐 있었다. 미티어 블루는 이런 이야기보다는 어째서 수호 의지들이 존자라는 이름을 앞세워 인류를 핍박하는지에 대해 문답을 나누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니, 이제 와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기분도 들었다.

단탈리안이 돌진했다. 미티어 블루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추락했다.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듯 미티어 블루를 지면에 처박았다.

음속을 넘어선 가속에 대기가 비명을 토했다. 지면이 폭발했고, 그 충격을 주변 멀리 퍼트렸다.

단탈리안은 미티어 블루의 목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미티어 블루도 순순히 의식을 잃지 않았다.

정원의 주인인 수호 의지들은 정원을 보살피기 위해 정원사들을 만들어 냈다.

동물신들은 정원사였다.

세상을 보살피는 자들이었다.

세상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물신들에게 있어 인류는 그저 정원을 차지한 수목들 가운데 특히나 수가 많은 것들에 불과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미티어 블루는 결정했다.

인류의 편에 서기로,

끝이 정해진 절망뿐인 전쟁일지라도 끝끝내 그들의 곁을 지키기로.

미티어 블루의 상처로부터 왼팔이 솟아올랐다. 존자 단탈리안을 쳐 냈다. 움켜쥔 주먹을 내질렀다.

파동이 번졌다. 존자 단탈리안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단탈리안은 신이었다.

그것이 전지전능한 절대자를 의미하는 단어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가 엄청난 존재라는 것을 대변하기에는 충분한 단어였다.

죽은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정제해 만들어 낸 괴들은 하늘을 뒤덮었고, 단탈리안의 권능은 인류가 총력을 기울여 만들어 낸 최신예 전함들을 날벌레 처리하듯 쓸어버렸다.

미티어 블루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었다.

단탈리안은 입을 열었다.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너는 그들과 함께 침몰할 거다. 가라앉는 배에서 떠나거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가라앉는 배.

맞는 말이었다.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이 강림한 이래로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저 기계장치의 신이 탄생한 이래 인류는 다시 한 번 맞설 힘을 기를 수 있었지만 전황 그 자체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인류는 밀리고 있었다. 약속된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미티어 블루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바이니까. 애당초 승산 없는 전쟁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전한 것이었다.

저 열두 존자가 열두 수호 의지임을 알고 있음에도 역천을 각오하고 인간들의 편을 든 것이었다.

어째서,

왜,

무엇 때문에.

답은 필요치 않았다.

흑익 기사단과 하멜이 당도했다.

칠흑의 아지다하크가 랜스 차징을 시전했다. 하멜이 다시 한 번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찬란한 영광의 검이 다시 한 번 솟아올랐다. 존자 단탈리안이 두 자루 장검을 휘둘렀다. 자색의 섬광이 세상에 휘몰아쳤다.

아지다하크의 돌진은 저지당했다. 하멜의 검은 자색의 섬광 가운데 하나를 막기에도 벅찼다. 흑익 기사단이 몸을 날렸다. 자색 섬광에 몸이 산산조각 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몸을 날려 미티어 블루를 보호했다.

사리엘이 욕지거리와 함께 라플라스의 거울을 전개했다.

단탈리안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200장에 달하는 거울이 일시에 박살났다.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가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토했다. 사리엘은 낫을 세워 자색의 섬광을 가까스로 막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어마어마한 힘을 버티지 못하고 밀려났다.

“흑익 기사단, 옥쇄하라.”

칠흑의 아지다하크가 명령했다. 살아남은 흑익 기사단 전원이 거창을 높이 세웠다. 불꽃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방들처럼 공포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존자 단탈리안을 향해 돌진했다.

6사단이 후퇴하고 있었다.

9함대의 잔여 함대들 역시 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흑익 기사단은 죽어 가고 있었다.

전면부의 괴들을 막았던 용갑주 부대와 천사병들 역시 하나하나 추락하기 시작했다.

살리기 위해 죽는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다.

“으아아아아!”

인류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죽음의 대천사가 돌진했다. 단탈리안은 그런 사리엘의 돌진을 무시했다. 가까이 접근한 순간 발을 놀렸다. 사리엘의 흉갑과 갈비뼈/를/ 박살 냈다. 사리엘이 피를 토하며 추락하는 순간 재차 검을 휘둘렀다. 자색의 섬광이 마침내 하멜의 검을 양단했다. 연이어 몰아닥친 검풍 앞에 마그누스 더 블레이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양팔을 잃고 추락했다.

아지다하크는 독기를 품었다.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을 벌기 위해 죽은 자들의 수를 헤아리지 않았다. 적만을 보았다. 단탈리안은 그런 아지다하크를 가련히 여기지 않았다. 휘두른 장검 앞에 흑익 기사단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존자 단탈리안은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미티어 블루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항복을 권하고자 했던 단탈리안은 이내 그 생각을 버렸다. 푸른 기를 일으키며 가진 바 모든 힘을 다 쏟아 내고 있는 그것은 이미 푸른 유성 그 자체였다.

단탈리안은 두 팔을 벌렸다.

“오라.”

미티어 블루는 지면을 박찼다. 공간을 꿰뚫었다.

단탈리안의 자색 검광을 막아 낼 방도는 미티어 블루에게도 없었다. 그래서 미티어 블루는 그 모든 공격을 피해야만 했다. 쉽지 않았다. 거리를 좁혀 감에 따라 미티어 블루의 육신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돌진했다.

공격을 주고받았다.

일격이 교차할 때마다 세상의 시스템이 진동했다.

그것은 이미 인세의 싸움이 아니었다. 하나의 신화였다.

사리엘이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지다하크나 하멜과 달리 그녀는 대천사였다. 어떻게든 미티어 블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광익을 펼쳤다. 참전하기 위해 입술을 벌렸다. 라플라스의 거울을 불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라플라스의 거울을 부르는 명령어가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목격한 자의 비명이었다.

“안 돼에에에에―!”

퇴각한 6사단의 중심에서부터 거대한 빛의 입자가 내뿜어졌다. 하늘을 가르며 나아간 그것은 제네식 플렌트의 봉인을 해제함에 따라 인류가 손에 넣은 최강의 병기 축뢰포였다.

그 빛이 미티어 블루와 존자 단탈리안을 동시에 휩쓸었다. 그 너머에는 아직도 괴들에 맞서고 있는 용갑주 부대와 천사병들이 있었지만 축뢰포의 빛은 그 모두를 휩쓸었다.

인호 중장의 결단이었다.

이 너머에는 219지구가 있었다. 아멜리아 대륙 탈출 작전의 중요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곳에 존자 단탈리안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이 땅에서 막아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쏘았다. 그 범위 안에 미티어 블루를 비롯한 아군들이 존재함에도 축뢰포의 발사를 명령했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짓이었다.

자색의 섬광은 축뢰포의 빛을 갈랐다.


저것이 인간이다, 미티어 블루.

영웅이란 이름하에 희생을 강요하는 저것이 네가 지키고자 하는 인간이다.

저들은 너까지 한 번에 죽이고자 했다.

자신들을 위해 퇴로를 확보하고 있는 병사들까지 모조리 다 함께 쓸어버리고자 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이 나타났으니까. 대천사 카무이를 중심으로 한 12대천사가 나타났으니까.

너는 이제 필요 없다는 거다.

너를 대체할 자는 얼마든지 있다는 거다.

저들은 너를 잊을 거다, 미티어 블루.

네가 없었다면 진즉에 자신들이 멸망했을 것이란 사실을 잊어버릴 거다. 천연덕스런 얼굴로 방금과 같은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너는 저런 자들과 함께 죽을 셈이냐.

그저 필요할 때만 네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는 저런 자들과?

너희는 이길 수 없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다.


인호 중장은 멍한 얼굴로 두 갈래로 갈라진 끝에 소멸하는 축뢰포의 빛을 보았다.

허무하게 산화하는 천사병들과 용갑주 부대를 감히 바라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존자 단탈리안이 검을 들어 올렸다. 자색의 섬광으로 감싸인 그것은 직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빛의 기둥이 되었다.

저것을 휘두르면 모두가 죽는다.

인호 중장은 명확하게 인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어떤 명령도 내리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축뢰포를 쏘라는 말조차 토하지 못했다.

푸른 유성이 보라색 멸망의 앞을 가로막았다.

미티어 블루였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어째서 저들의 속내를 모두 본 지금에까지.


미티어 블루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는 단탈리안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앞을 가로막았다. 다시 한 번 인간들을 향해 그 등을 내보였다.


알고 있어요.

단탈리안 당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창조주인 그대에게 대항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류는 끝내 패배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인류는 언제고 저를 까맣게 잊어버리라는 것을.

저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저 그들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싸우겠어요.

그들을 위해 피를 흘리겠어요.


단탈리안이 자색의 섬광 대신 권능을 행사했다. 모든 것을 죽음으로 내모는 독기가 휘몰아쳤다. 단탈리안의 복부를 후려치던 미티어 블루의 왼팔이 독에 중독되었다. 언제나 밝게 빛나던 미티어 블루의 오른쪽 눈동자가 그 빛을 잃었다.


“어째서.”

소리 없는 대화에 단탈리안이 목소리를 더했다.

미티어 블루는 주먹을 내질렀다. 중독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옛날 단탈리안과 똑같은 물음을 던졌던 예언자에게 해 주었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나는 견신 미티어 블루, 인간을 지키는 강아지니까.”


인간의 히어로.

인간의 영웅.

세상 모두가 인간의 적이 된다 할지라도 끝끝내 인간의 편에 서 함께 싸울 자.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단탈리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견신 미티어 블루는 크게 포효했다.

기적은 일어나기 때문에 기적이라는 것을 증명코자 했다.

잿빛 하늘 아래,

신과 영웅은 격돌했다.


&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

존자 전쟁의 결과 인류는 99.9%가 목숨을 잃었고, 천만이 채 되지 못하는 숫자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열두 존자를 모두 쓰러트리고,

수백억에 달하는 괴를 모두 일소하고,

마침내,

끝내,

살아남았다.

태양의 왕이 죽었고, 달의 여왕이 죽었다.

대천사들과 천사들과 이름 모를 수많은 영웅들의 희생이 있었다.

견신 미티어 블루.

태양의 왕.

달의 여왕.

최초의 대천사 카무이.

대처할 수 없는 절망에 맞서 치열하게 살다 간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영웅들.

새로이 시작되는 철의 시대를 맞이하기에 앞서,

사람들은 그 시대를,

영웅의 시대라 불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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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강철의 기사들 SS 어느 화창한 오후 +4 13.09.21 4,342 49 8쪽
19 기상곡 SS 해후 +13 13.09.02 5,131 53 5쪽
18 폭뢰신창 SS 생生 +7 13.08.31 8,850 184 35쪽
17 SG SS 사자와 호랑이 +6 13.08.28 4,218 109 1쪽
16 강철의 기사들 SS 천생연분 +7 13.08.15 3,313 134 6쪽
15 소야곡 SS 단막 +6 13.08.14 3,700 96 5쪽
14 SG SS 눈물 +8 13.06.08 3,473 129 5쪽
13 나이트사가 SS 메데이아 +4 12.12.13 3,431 26 9쪽
12 나이트사가 SS 그 날 +3 12.12.11 3,211 30 10쪽
11 나이트 사가 SS 황제의 아이들 +2 12.12.10 3,865 56 9쪽
10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백일몽 +2 12.12.08 3,374 52 12쪽
9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우울 +3 12.12.05 3,255 52 19쪽
8 광시곡 SS 영생자들의 우울 +3 12.12.05 3,362 35 19쪽
7 소야곡 SS 퍼스트 블러드 +4 12.12.05 3,328 35 11쪽
6 강철의 기사들 SS 성인식 +5 12.12.05 3,466 35 22쪽
5 소야곡 SS 어떻게 +1 12.12.05 3,162 27 6쪽
4 소야곡 SS 밤이 온다 +2 12.12.05 3,306 61 5쪽
» 강철의 기사들 SS 영웅의 시대 +5 12.12.05 5,546 39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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