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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연대기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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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작품등록일 :
2012.12.05 12:57
최근연재일 :
2018.09.01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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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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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157

작성
18.08.2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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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글자
9쪽

브레이커즈 SS #5 어떤 상견례 #2

DUMMY

3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 문어다리 난봉꾼- 아니, 마왕이 되었다.


오랜 침묵 끝이 이 사실을 받아들인 주영진 씨는 숨을 크게 삼킨 뒤 정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작은 시선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아리따운 세 여인들을 똑바로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흠흠, 아가.”

“네, 아버님.”

“네, 아버님.”

“네, 아버님!”


아름답기 짝이 없는 삼중창에 주영진씨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무도 주영진씨를 비난할 수 없었다. 주책 떨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이상아씨조차 바로 연이어 들려온 삼중창에 말 그대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공주님 그 자체인 우아한 첫째 며느리.

섹시함 그 자체인 요염한 둘째 며느리.

활발함 그 자체인 귀여운 셋째 며느리.


주영진씨와 이상아씨는 순간 서로를 돌아보았고, 동시에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 세월 함께한 부부답게 눈빛으로 의사소통을 나누었다.


‘역시 내 새끼야.’

‘내가 낳아서 그래.’


그리고 그런 부부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던 카락은 언제나처럼 정확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왕자, 왕자 아버지가 사나이의 미소를 짓고 있소. 세상을 다 가진 남자의 눈이요.”


정곡을 찌르는 카락의 말에 주영진씨는 얼굴을 붉혔지만 미소까지 잃지는 않았다. 바라만 봐도 행복한 세 며느리 앞에서 표정관리란 불가능했다.


“흠흠.”


그래도 애써 헛기침이나마 터트린 주영진씨는 이내 다시 헤벌쭉 웃으며 세 며느리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물었다.


“그래서, 우리 인공이 어디가 좋니?”


이렇게 예쁜 애들이 뭐가 좋아서 아들놈에게 단체로 시집을 온 걸까- 하는 의문과 세 며느리들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검은 욕망과- 부모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삼박자가 하나되어 만들어진 결과였다.


주영진씨의 물음에 이상아씨는 이번에야말로 주책 떨지 말라며 주영진씨의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지만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이상아씨도 듣고 싶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우리 아들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니?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그 질문에 아나스타샤는 마왕궁의 제1왕비답게 현명한 대처를 선보였다. 그야말로 우아하게 숙고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왕궁의 둘째 왕비와 셋째 왕비는 그다지 요령이 좋지 못 했다. 제2왕비 펠리시아는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빨갛게 물들이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하지만 열심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 그러니까··· 이, 일단 자상하고··· 상냥하고······.”


주영진씨와 이상아씨는 만족했다.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저토록 부끄러워하며 아들의 장점을 나열하는 며느리라니. 좋지 아니한가.


“왕자 부모들이 2왕비의 수치플레이를 즐기고 있수.”


카락이 작게 말한 그때였다.


“슈트라- 아니, 인공이는 맛있어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셋째 왕비 케이틀린이 소리쳤고, 그녀의 외침은 언제나와 같이 폭탄이 되어 모두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응?”

“마, 맛있어?”


주영진씨와 이상아씨가 동시에 당황했지만 케이틀린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정말로, 진짜.”


아들이 맛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주영진씨와 이상아씨가 전지구적 혼란에 빠져든 그때, 케이틀린은 동의를 구하듯 옆에 앉아있던 펠리시아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치, 언니? 슈트라 맛있지? 굉장하지?”

“케, 케이틀린!”


펠리시아는 이제 다크엘프가 아니라 레드엘프라 해도 믿을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주영진씨와 이상아씨 이상으로 당황한 그녀의 옆에서 아나스타샤는 언제나와 같이 우아한 자태를 유지했다. 조금의 당황도 없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케이틀린의 말에 동의했다.


“부정은 못 하겠군요. 정말로 맛있으니.”

“응응, 맛있어요.”


맛있다. 정말로 맛있다. 아들놈이 맛있다.

어떤 의미일까. 대체 뭐가 어떻게 맛있다는 것일까.


주영진씨와 이상아씨가 다시 전지구적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한 그때, 카락이 결정타를 날렸다.


“왕자는 정말 맛있다우.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지.”


며느리들뿐만 아니라 오크까지 맛있다고 하니 이제는 전지구적 혼란을 넘어 우주적 혼란에 빠져들 것 같은 주영진씨와 이상아씨였다.


“아들아?”

“아, 아니. 그러니까.”


인공도 당황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그, 그러니까. 내 피··· 피가 맛있거든? 그 내 피가 간다르바 신의 피 같은 거라······.”

“피, 피를 마셔?”


이상아씨가 경악했고, 인공은 속으로 아뿔사를 외쳤다. 그나마 가장 무난한 것(?)을 이야기한다고 한 거였는데, 아무래도 실수였던 모양이다.

더욱이 왕비가 된 이후 더 해맑아진 듯한 케이틀린이 추가타를 날렸다.


“피만이 아니에요. 슈트라 몸에서 나는 건 다 맛있어요. 굉장해요!”


몸에서 나는 건 다 맛있다.

피말고도 맛있다.

피말고 뭐가 또 있는데?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셋째 왕녀의 굉장함이라우.”


카락 홀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주영진씨와 이상아씨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되어 인공을 돌아보았다.


“아들아?”

“아, 아니. 그러니까. 이상하게 아니라. 누, 누나! 좀 도와줘!”


당황한 인공은 언제 어디서나 힘이 되어주었던 펠리시아의 손을 붙잡으며 도움을 청했지만 이번에도 번지수가 잘못되었다.


“어··· 그, 그러니까. 키, 키스 같은 거 하게 되면······ 아, 몰라! 나보고 어떡하라고!”


완전히 레드 엘프로 거듭난 펠리시아가 울상을 지으며- 아니, 진짜로 울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공의 부모님들을 앞에 둔 상태로 대체 무슨 말을 하란 말인가.


“흠, 흠, 흠. 그, 그래. 피···는 그렇고, 그··· 부부생활을 하다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가엾은 둘째 며느리를 구하고자 주영진씨가 어렵사리 칼을 뽑았다. 민망함이 가득한 얼굴과 목소리였지만 말이다.


“여러모로 참담하구랴.”


카락이 다시 홀로 고개를 끄덕였고, 인공은 울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주인은 다른 것도 맛있다.]


녹색바람.

그녀의 발언에 다시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것이라니.

다른 게 또 뭐가 있는데!


“뭐, 그렇긴 하지.”


시선을 옆으로 슥 돌리며 아나스타샤가 말했고, 그 우아하면서도 기묘한 말에 펠리시아가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언니?”


펠리이사의 물음에 아나스타샤는 그저 우아하게 웃을 뿐이었다. 너무 우아해서 대체 왜 웃냐고 물을 수가 없는, 그런 우아함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아함조차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혼돈을 불러올 따름이었다.


“카락! 도와줘!”


결국 인공이 외친 것은 카락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카락은 언제나처럼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흠, 내가 그래서 한 병 챙겨왔다우.”


씩 웃으며 말한 카락은 품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왕자의 피를 다섯 방울 사용해 만든 술이우. 한 잔 드셔보면 이 막장 상황이 이해가 갈 거유.”


그리 말하며 손수 잔을 채워주니 주영진씨와 이상아씨로는 거부할 길이 없었다. 사실 술병을 딴 순간부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향기에 반쯤 넋이 나간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식.

인공은 깨달았다.

부모님도 아미타와 똑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이건 대체······?”


아예 넋이 나가버린 이상아씨 옆에서 주영진씨가 겨우겨우 말문을 이었다. 술이 목구멍을 지나간 그 순간 정말로 극락을 맛보았으니까. 몸 안의 소우주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정신을 못 차리는 두 사람 앞에서 카락은 껄껄 웃더니 슬쩍 윙크하며 말했다.


“원액은 더 쩐다우.”

“더 맛있어요.”


케이틀린도 돕고 나섰다.

그리고 주영진씨는 생각했다.

이보다 더 맛있다니. 그럴 수가 있을까? 여기서 더 맛있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 그렇구나. 이해했다.”


이렇게 꽃처럼 아름다룬 세 며느리가 왜 아들놈이랑 결혼했는지, 왜 아들놈을 좋아하는지.


“자, 잠깐만요, 아버님. 부, 분명 맛도 있는데. 단순히 맛있어서 슈트라를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 그러니까.”


펠리시아가 급히 입을 열어 말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우아하게 고개를 가로젓더니 인공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슈트라, 돌아가기 전에 부모님께 선물로 피를 남기는 게 어떻겠니.”

“그, 그럴까? 한 컵 정도?”


어쨌든 화제가 전환된 것 같았으니까. 부모님도 좋아하시니 까짓 피 한 컵 정도는 못 드릴 것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들아.”

“네?”

“머그컵으로 부탁한다.”


주영진씨의 진지한 눈빛에 인공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꼐속!


작가의말

어떤 상견례는 다음 편에 마무리가 될 듯 합니다.


조만간에 뵙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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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던전메이커/플레이어즈 SS #2 어떤 조우 #1 +49 17.06.29 7,485 167 14쪽
24 월드메이커 SS #3 바람이 불었다. +24 15.09.06 7,513 149 8쪽
23 월드메이커/플레이어즈 SS #2 왕의 별 +27 15.08.31 8,333 159 16쪽
22 강철의 기사들 SS 일지 +11 13.11.20 3,852 46 9쪽
21 강철의 기사들 SS 기도 +1 13.11.20 2,817 30 11쪽
20 강철의 기사들 SS 어느 화창한 오후 +4 13.09.21 4,337 49 8쪽
19 기상곡 SS 해후 +13 13.09.02 5,129 53 5쪽
18 폭뢰신창 SS 생生 +7 13.08.31 8,848 184 35쪽
17 SG SS 사자와 호랑이 +6 13.08.28 4,214 109 1쪽
16 강철의 기사들 SS 천생연분 +7 13.08.15 3,311 134 6쪽
15 소야곡 SS 단막 +6 13.08.14 3,699 96 5쪽
14 SG SS 눈물 +8 13.06.08 3,471 129 5쪽
13 나이트사가 SS 메데이아 +4 12.12.13 3,428 26 9쪽
12 나이트사가 SS 그 날 +3 12.12.11 3,209 30 10쪽
11 나이트 사가 SS 황제의 아이들 +2 12.12.10 3,862 56 9쪽
10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백일몽 +2 12.12.08 3,372 52 12쪽
9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우울 +3 12.12.05 3,253 52 19쪽
8 광시곡 SS 영생자들의 우울 +3 12.12.05 3,359 35 19쪽
7 소야곡 SS 퍼스트 블러드 +4 12.12.05 3,324 35 11쪽
6 강철의 기사들 SS 성인식 +5 12.12.05 3,464 35 22쪽
5 소야곡 SS 어떻게 +1 12.12.05 3,160 27 6쪽
4 소야곡 SS 밤이 온다 +2 12.12.05 3,304 61 5쪽
3 강철의 기사들 SS 영웅의 시대 +5 12.12.05 5,538 39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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