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 SS 눈물
SS #15 눈물
섬에 노을이 졌다. 수평 너머에서 최후의 빛을 뿌리며 사그라들었다.
밤이 오기 전 마지막 불빛.
여인은 해변에 홀로 서서 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부는 바람에는 바다의 짠 내가 묻어 있었다. 여인은 살며시 돌아섰다.
“안녕하셨는지.”
여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해변에는 남자 하나가 웃으며 서 있었다. 화려한 하와이안 티셔츠와 하얀 반바지, 짧게 자른 반백의 머리칼 아래에는 붉은 색안경이 자리했다.
여인은 남자를 알았다. 남자와 마주했던 기억이 있었다. 너무나 오랜 옛날의 기억. 하지만 목소리는 이름 하나를 자아냈다.
“패잔병 기사.”
“기억력이 무척이나 좋구려.”
패잔병 기사, 불사왕 노스페라투는 색안경 너머에서 윙크했고, 여인- 클라우 솔라스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다시금 서로를 향해 예를 표했다.
태양은 사라졌다. 밤이 찾아와 세상을 뒤덮었다. 별의 바다가 하늘로부터 쏟아졌다.
패잔병 기사와 별의 아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함께 별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저 너머에는 절망의 안개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패잔병 기사는 하늘을 우러르던 두 눈을 돌려 별의 아이를 보았다. 여전히 별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제 만족하오?”
현재가 아닌 과거를 겨냥하는 물음이었다. 천 년 전 그날. 처음 패잔병 기사와 마주했던 그날. 절망의 안개에 맞섰던 그날.
“…발버둥.”
클라우 솔라스는 노스페라투를 보았다. 그의 눈에서 현재를 읽었다.
절망의 안개에 맞섰던 날, 클라우 솔라스는 자신이 절망의 안개를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끝내 소멸하고 말 것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발버둥 쳤다.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죽음뿐임을 알고 있음에도 우주로 나가 절망의 안개에 맞섰다.
그 결과 인류는 유예를 얻었다.
무지개 방벽을 펼쳐 절망의 안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발버둥.
절망 앞에 굴하지 않고, 목숨을 내던져가며 맞선 결과.
인류는 절망했다.
100억에 달하던 생명은 1억 3천만 밖에 남지 않았다.
시련 앞에서도 언제나 웃어 보이던 어거스트는 자살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 지었다.
클라우 솔라스의 희생이 만들어낸 천 년의 시간.
별에는 여덟 검 외엔 없었다.
전화한 생명체들과 스스로를 봉인한 인류의 영혼이 전부였다.
천 년.
정지한 시간.
그나마도 모두 무너졌다. 다른 세상을 탐하던 인류는 전멸했다. 전화했다하나 별의 근간을 두었던 생명들 역시 거의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별은,
사라졌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절망에 맞서 얻어낸 공허한 천 년.
끝내 잃어버린 모든 것들.
클라우 솔라스는 생각했다. 자신에게 만족하느냐 묻는 패잔병 기사를 보며 입술을 벌렸다.
“패잔병 기사.”
잔인한 이여,
또한 다정한 이여.
“말씀하시오, 별의 아이여.”
클라우 솔라스는 미소 지었다. 천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똑같은 이유로 자신 앞에 선 이에게 물었다.
“당신 앞에서는 울어도 될까요?”
눈물은 이미 클라우 솔라스의 뺨을 타고 흘렀다.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났다.
패잔병 기사는 부드럽게 웃었다. 클라우 솔라스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가슴을 벌렸다. 이미 때늦은 대답을 해주었다.
“얼마든지.”
클라우 솔라스는 울었다. 결국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별의 아이는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는 울지 못했다. 울 수 없었다.
클라우 솔라스는 오열했다.
발버둥.
그래, 발버둥.
절망 앞에 무력한, 아무 소용도 없는- 발버둥.
패잔병 기사는 별의 아이를 보듬었다. 서럽게 우는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별의 아이.
세상의 수호자.
패잔병 기사는 클라우 솔라스가 우는 이유를 알았다. 때문에 그녀를 위로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낼 수 있도록 가슴을 빌려주었다.
“이 세상에는… ‘아직’ 절망이 없다오.”
패잔병 기사는 밤하늘을 우러렀다.
소리 죽여 속삭였다.
“살아가시오, 별의 아이여.”
그대가 잃어버린 세상을 대신하여.
별의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밤이 깊도록,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어둔 밤 아래 흐느낌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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