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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연대기 SS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취룡
작품등록일 :
2012.12.05 12:57
최근연재일 :
2018.09.01 02:42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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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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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57

작성
18.08.0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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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소야곡 SS 풍림화산암뢰

DUMMY

쓰기는 작년에 써둔 건데, 블로그에만 올렸던 거라 여기에도 올립니다.

============================================



소야곡 SS 풍림화산암뢰



언제나 그러했듯이, 모든 사건은 아무 생각 없이 흘린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커피를 마시던 미호는 문득 입술을 벌렸다.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어라?”


“응? 왜?”


옆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던 로드 카시리온이 바로 흥미를 보였다. 멍하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시는 커피는 여유 그 자체였지만, 은근히 지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로드 카시리온이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이자 미호는 어깨를 움츠렸다. 막연한 공포이기는 했지만, 뭔가 일이 커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니, 그··· 대단한 건 아니고······.”


“아니고?”


로드 카시리온이 미호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뺀 미호는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풍림화산암뢰··· 의외로 배운 사람이 꽤 되어서요.”


풍림화산암뢰.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여자라 불리는 이계의 무신 키네네의 거울이 창안한 무공.


키네네의 거울은 여러 세상의 날고 긴다는 천재들을 모아 만든 절대 기사단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력의 소유자였다. 사실상 모든 세상 걸쳐 최강의 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그녀의 무공인만큼 풍림화산암뢰의 위상은 높았다.


보통 저 정도 무공이 되면 익힌 사람의 숫자가 극히 제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흔히 말하는 일자전승 같은 방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풍림화산암뢰는 그렇지 않았다. 익힌 사람들 가운데는 권에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이들도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미호처럼 싸우는 일 자체와 영 거리가 먼 이도 있었다.


미호의 말을 들은 로드 카시리온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풍림화산암뢰의 사용자들의 이름을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이내 약간은 바보같은 미소를 지었다.


“진짜 그러네?”


“그쵸?”


일이 커지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던 것도 잊었는지, 미호는 바로 맞장구를 치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바로 직후, 자신의 맞장구를 후회했다. 로드 카시리온이 같은 여자도 반할 것 같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 한 번 다 모아볼까?”


“네?”


“모아보자고.”


틀렸다. 로드 카시리온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저 상태의 로드 카시리온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미안해요, 모두!’


미호는 마음속으로나마 풍림화산암뢰의 동문들에게 사과했고, 늘 그러했듯이 일은 커지기 시작했다.



&



“에, 그럼 지금부터 제1회 풍림화산암뢰 동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


짝짝짝.


미호가 어설프게 웃으며 시작한 개회식 인사에 손뼉 치며 환호성을 올리는 건 로드 카시리온 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쓴 웃음을 짓거나, 조금은 포기한 얼굴로 바보같은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풍림화산암뢰의 남녀노소를 약간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여인이 입술을 삐쭉였다. 바로 녹색 신 당아영이었다.


“잠깐, 저것들은 다 뭐야. 그리고 왜 여기서 저런 걸 하는데. 난 저런 동문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구!”


갑자기 우르르 몰려오더니 동문이란다. 스승님에게 다른 제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살짝 듣기는 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얼굴 한 번 보지 못 한 인물들이 대다수다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런 당아영의 반응에 옆에 서 있던 무지갯빛 머리칼의 여자는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말은 그러면서 얼굴은 웃고 있네? 즐거운 거지?”


“아, 아니거든? 그리고 대체 어떻게 이리 쉽게 여길 들어온 거야?”


지금 이 장소는 사대신의 신계였다. 사대신의 허락 없이는 다가서는 것조차 힘겨운 땅이었다. 그런데 저치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오듯 우르르 몰려왔다. 물론 문을 열어준 것 자체는 사대신이었지만, 세상의 시스템 사이에 숨겨져 있는 신계를 아무런 안내도 없이 찾아냈다는 사실 자체가 당혹스러웠다.


당아영의 말에 붉은 신 에드윙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석이 녀석이 말했던 로드 카시리온이 저 여자인가··· 예쁘네. 뭔가 분위기도 예뻐.”


뭔가 능력을 평가하는 듯 싶더니 얼굴 이야기가 되었다. 황색 신 테프네트가 눈매를 살짝 날카롭게 하더니 만들어 붙인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에드윙의 팔을 끌어안았다.


“할 말은 그것뿐이니?”


“물론 테프 누나가 더 예쁘지!”


에드윙이 재빨리 말했고, 테프네트의 미소가 더욱 차가워졌다. 하지만 에드윙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긴장하지 않았다. 저런 유치한 사랑싸움은 그야말로 일상이었으니까.


“아무튼, 재미있겠네.”


신들의 왕인 하얀 신 영민이 말했다. 그도 따지고 보면 풍림화산암뢰의 동문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너희들도 이쪽으로 와! 그렇게 구경만 할 거야?”


로드 카시리온이 손을 크게 흔들며 소리쳤다. 친한 친구- 아니, 약간은 손아래 동생들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에 에드윙은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저기, 우리 신 맞지?”


“과연, 저게 로드 카시리온인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씩 웃은 검신 크누트가 앞장서서 로드 카시리온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영민은 당아영을 한 번 돌아보았고, 당아영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영민의 손을 잡았다.



&



“자, 그럼 자기소개 시간부터 가질게요.”


사회를 맡은 미호는 마이크를 손에 쥔 채 좌중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도 있고, 익히 아는 얼굴도 있었지만, 다들 일단 한가닥 하는 인물들인 건 분명했다. 자기 소개는 필수였다.


“제 이름은 윤미호고요, 조직의 한국 지부장입니다. 어··· 그리고 구미호에요!”


미호가 부끄럽다는 듯 뺨을 붉히며 지르듯이 말하자 좌중에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귀엽네.”


“귀엽구나.”


“귀여워라.”


테프네트도 아까와는 달리 푸근한 얼굴이었다. 좌중의 반응을 확인한 로드 카시리온이 씩 웃으며 말을 보탰다.


“미호는 전직 별의 아이였어. 자기 세상에 닥친 위기를 멋지게 해결한 히어로야.”


“에헤헤.”


미호가 다시 부끄럽다는 듯 뺨을 긁적이며 몸을 움츠렸다. 뭔가 특별한 페로몬이라도 있는지 별 것 아닌 행동인데도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왕이여, 번뇌력이 불타오르고 있다.]


“아, 좀.”


이번 동문회에 게스트로 참가한 용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팔에 찬 아몬 쪽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몬은 거기서 말을 끊지 않았다.


[하지만 굉장하군.]


“응?”


[보통이 아니다. 저 작은 몸에 어마어마한 요력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아몬이 ‘어마어마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일 정도면 실로 엄청난 요력의 소유자인 모양이었다. 용호는 새삼 놀랐다는 얼굴로 미호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다시 미간을 좁혔다.


“진짜로?”


[그렇다. 요력을 굉장히 잘 숨기는 것 같지만··· 엄청난 요력이다. 아마 단순히 요력··· 그러니까 마력의 양만이라면 격노의 왕 이상일지도 모른다.]


“굉장하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용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까지만 해도 작고 귀여운 동물처럼 보이던 미호가 다르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한편, 용호가 아몬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자기소개는 계속 진행 되고 있었다. 미호 다음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은 금발 여인은 약간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어, 나는 도로시야. 미호랑은 풍림화산암뢰 외에도 같은 스승님을 모신 사제 관계야. 그리고··· 특기는 총?”


“권사가 아니야?”


당아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풍림화산암뢰를 배웠는데 권사가 아니라니. 도로시는 당아영의 작은 목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허공에서 커다란 장총을 꺼내더니 모두에게 보란듯이 자세를 잡아보았다. 확실히 숙달된 총사의 모습이었다.


“나는 스케어다.”


도로시 다음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은 회색머리 사내가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이쪽도 권사라기 보다는 다른 쪽이 전문인 것처럼 보였다.


다음으로 마이크를 넘겨 받은 건 눈처럼 하얀 머리칼의 여인이었다. 붉고 푸른 오드아이를 가진 그녀는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시안이에요. 스승님하고는 절대기사단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연이 닿아서 풍림화산암뢰를 배우게 되었어요. 풍림화산암뢰 외에도 청허류라는 무공을 익히고 있고요.”


“참고로 내 딸이야.”


바로 말을 이은 건 로드 카시리온이었다. 확실히 두 사람 모두 하얀 머리칼인 데다가 복장도 배색이 달라서 그렇지 비슷했던 터라 꽤나 닮은 느낌을 풍겼다. 물론 둘 모두 이십대 초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모녀라기 보다는 자매로 보였지만 말이다.


“양녀야.”


눈을 동그랗게 뜬 용호에게 살짝 속삭인 강석은 시안에게 마이크를 넘겨 받았다.


“흠흠. 최강석입니다. 아다마스 길드의 길드장을 맡고 있습니다. 절대기사단 소속이기도 하고요. 녹색 신 교단의 교황이신 에바노엘 님께 풍림화산암뢰를 사사받았습니다.”


이미 절대 기사단에서 꽤나 여러 인물들을 만나본 강석이었지만 그래도 이 자리가 썩 편하지는 않았다. 이야기로만 듣던 사대신이 총출동한데다가, 굳이 풍림화산암뢰 내에서 서열을 따진다면 윗선에 놓이는 이들이 잔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강석에게 풍림화산암뢰를 가르친 장본인이 다음 마이크를 받았다.


“녹색 신 교단의 교황직을 맡고 있는 에바노엘입니다.”


언제나 재기발랄한 그녀였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만은 참으로 얌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녹색 신의 면전이지 않은가.


평소와 완전히 다른 그녀의 모습에 강석이 감탄하는 사이, 녹색유성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녹색유성입니다. 녹색 신님께 풍림화산암뢰를 배웠습니다.”


녹색유성이 당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이 가득한 그 눈빛에 당아영이 당장 환호를 올리며 박수를 쳤다.


“와아! 와!”


어찌보면 좀 뜬금없는 환호성이었기에 모두의 시선이 당아영에게 모였다. 하지만 당아영은 귓불만 살짝 붉히더니 입술을 삐쭉였다.


“왜? 떫어?”


내용만 보면 전형적인 시비걸기였지만, 그 얼굴이 참으로 부끄러워 보였기에 좌중은 같이 성을 내기보다는 미소를 지었다.


녹색유성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건 영민이었다.


“하얀 신 조영민이다. 녹색 신이자 내 반려인 아영이에게 풍림화산암뢰를 배웠다.”


초면부터 반말을 툭툭 하는 건 영민의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이곳은 사대신의 신계였다. 더욱이 사대신의 신자라 할 수 있을 에바노엘까지 있으니 먼저 말을 높이는 건 무리였다.


“녹색 신 당아영. 사천당문의 후예고, 스승님께 직접 풍림화산암뢰를 배웠어.”


“칼리야. 나도 아영이와 같아.”


무지갯빛 머리칼의 여자가 당아영의 팔을 끌어안으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마이크가 한 바퀴 쭉 돌고나니 이제 마이크를 받지 않은 건 로드 카시리온과 용호 뿐이었다.


무지갯빛 머리칼의 여자가 용호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자 용호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왜?”


무지갯빛 머리칼의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용호는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말했다.


“그··· 난 풍림화산암뢰를 안 배웠는데.”


한 마디로 동문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 말에 당아영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럼 대체 여긴 왜 왔냐는 시선에 녹색유성이 얼른 나서며 말했다.


“녹색 신님, 제 친구에요.”


친구라는 말에 당아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녹색유성에게 친구라 할만한 존재가 새로이 생긴 것은 실로 수백년 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사람, 당아영과는 다른 의미로 반응하는 이가 있었다.


“호오, 남자인 친구라고?”


“아, 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용호를 노려보기 시작한 유더의 팔을 잡아끌며 녹색유성이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 다시 몇 분 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로드 카시리온이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난 로드 카시리온이야! 잘 부탁해!”


짧고 굵었다. 내력이나, 풍림화산암뢰를 배우게 된 계기 같은 것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모여 있던 모두는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사대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쩐지 모르게 그냥 막 호감이 가는 신비한 여자였다.


“이렇게 모이니까 정말 많네요.”


다시 마이크를 넘겨받은 미호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처음보는 사람들도 많은 터라 기분이 업된 탓이었다.


똑같이 업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당아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흠, 좋아! 그럼 가장 중요한 걸 하자.”


“가장 중요한 거?”


영민의 혹시 하는 물음에 당아영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동문이 모였잖아? 그럼 당연히 서열을 정해야지!”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당아영의 제안에 모두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



“일단 난 스승님께 직접 배웠어!”


당아영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스승님께 직접 배웠다는 건 1대 제자라는 소리였으니까. 서열상 가장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아영의 의기양양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나도.”


“저도요.”


“어, 저도 그런데요?”


이 자리에 모인 이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이 직접 배운 1대 제자들이었다.


당황한 당아영이 눈을 껌벅이자 칼리는 당아영의 팔을 끌어안으며 엄호사격을 시작했다.


“나랑 아영이는 천 년 전쯤에 배웠어. 세상간의 시간 차이가 있다지만··· 이 정도면 꽤 빨리 배운 축에 속하겠지?”


똑같이 1대 제자라도 입문 순서에 따라 서열이 갈리는 법이었으니까!


당아영의 눈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그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난 그보다 더 전에 배웠는데? 키네네의 거울이 아직 50대일 때 배웠으니까.”


도로시가 새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욱이 그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스케어는 키네네의 거울이 어릴··· 때라고 하긴 뭐하고 한창 십대일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야. 한 때는 애인이기도 했고.”


“도로시.”


스케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막았지만 도로시는 뭐 어때라는 얼굴이었다. 지금 이 순간 스케어는 도로시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과거에 키네네의 거울과 어떤 사이였던 관계 없었다. 중요한 건 현재와 미래였으니까.


도로시의 폭탄 발언에는 무지갯빛 머리칼의 여자조차도 무어라 응대할 수 없었다. 당아영과 나란히 눈을 껌벅이는 게 다였다.


“그럼 우리가 제일 윗줄인가?”


“우으······.”


도로시가 다시 새침하게 말하자 분한 얼굴로 끙끙거리던 당아영은 이내 다시 지르듯이 말했다.


“나랑 칼리는 신이야!”


이쯤되면 이미 억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


수호의지.


아무튼 세상에서 무척이나 높은 존재!


하지만 당아영의 기대와 달리 좌중의 반응은 참으로 뜨끈미지근했다. 특히나 처음보는 녀석들의 표정이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다.


“나도 신인데?”


“응?”


“요정신. 나도 우리 세상의 신이야.”


도로시가 생긋 웃으며 말했고, 당아영은 다시 눈을 껌벅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용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뭐지, 이 뭔가 스케일 큰 막장은.”


여기서 용호 자신도 나름 마신왕이라고 소리치면 어떨까.


용호가 홀로 시답잖은 고민을 하는 사이, 로드 카시리온은 옆자리에 앉아있던 시안의 옆구리를 자꾸만 찔러댔다.


“시안, 너도 자랑하렴.”


“네?”


“빨리!”


자기가 신이라고 자랑(?)하는 이들 앞에서 무슨 자랑을 해야 할까.


잠시 주저주저하던 시안은 헛기침을 몇 번 터트린 뒤 말했다.


“어··· 전 신을 죽였··· 아니, 소멸시켰어요.”


기계장치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철의 시대를 끝장낼 뻔한 인공신을 소멸시킨 것은 다름 아닌 그녀였으니까.


신들 사이에 나타난 신살자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로드 카시리온은 까르르 웃으며 말을 보탰다.


“난 친구 중에 신들이 많아.”


정말로 많았다. 그리고 그중 반수 이상은 로드 카시리온에게 반해 있었다.


“과연, 이게 바로 인플레라는 건가.”


용호가 다시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몇 분이나 지났을까. 당아영이 다시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나는 특별히 아영의 법이라는 내 전용 무공을 받았다고!”


그러니까 너희보다 특별해!


하지만 이번에도 의기양양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난 도로시의 법.”


“전 미호의 법이요.”


“저도 시안의 법을······.”


줄줄이 전용무공들이 이어졌다. 에바노엘과 녹색유성은 어설프게 웃을 수밖에 없었고, ‘강석의 법’을 새로이 전수받고 있는 강석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완성도는 우리가 제일 높아!”


당아영이 무지갯빛 머리칼의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머리칼이 무지갯빛이라는 사실부터가 그녀의 숙련도를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당아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풍림화산암뢰의 최고 오의라 할 수 있을 아수라를 펼쳤다. 실로 막강한 힘이었다.


하지만 그러자 도로시 역시 머리칼 색을 일곱 빛깔로 물들이며 아수라를 펼쳤다.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 아수라가 연속해서 펼쳐지자 신계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막장이 되어가네요.”


동문회장이라 쓰고 무공 경연대회라 불러야 말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풀밭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나무 아래.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진은 옆을 돌아보았다.


“슬슬 정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건 당신뿐이니까요.


속에 감춰진 뒷말을 이해한 여자는 엷은 미소를 머금더니 진을 돌아보았다.


“데려와 줘서 고마워.”


“별 말씀을. 어차피 로드 때문에 와야 했습니다.”


여자는 다시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뒤 동문회장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



풍림화산암뢰 아영의 법.

아수라.


풍림화산암뢰 도로시의 법.

아수라.


풍림화산암뢰 스케어의 법.

아수라.


풍림화산암뢰 시안의 법.

아수라.


풍림화산암뢰 강석의 법.

아수라.


전용 아수라가 줄줄이 이어지는 가운데 용호는 옆을 돌아보았다.


“그쪽은 아수라 못 써요?”


“아수라까지는 좀······.”


미호가 뺨을 긁적이며 에헤헤 웃었다. 참으로 귀여웠다.


[왕이여, 번뇌력이 들끓고 있다.]


“그보다, 저거 말려야 하지 않나?”


아몬의 말을 애써 무시한 용호가 말을 돌렸다. 아니, 사실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바로 그 순간이었다.


풍림화산암뢰.

아수라.


누구의 전용인지를 알리는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원형이었으니까. 모든 것의 시작이 된 진짜 아수라였으니까.


표표히 일어나는 진홍의 불꽃.


아수라를 펼치고 있던 이들이 돌연 한 곳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아영과 무지갯빛 머리칼의 여자가 눈시울을 붉혔다.


도로시와 스케어가 쓴웃음을 머금었고, 시안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미호와 강석은 긴장했다. 용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아몬은 오늘 중 최고조의 번뇌력이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을 마주한 자.


이계의 무신.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모든 세상 걸쳐 최고의 무재를 타고난 자.


풍림화산암뢰의 진정한 창시자.


“반갑다, 제자들아.”


키네네의 거울, 메르헨이 미소지었다.



<fin>


작가의말

다음 SS는 브레이커즈 SS#4(인공이 부모님과 왕녀들+카락이 만나는 SS)가 될 듯 합니다. 이번주 내로 올릴 예정입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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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이트사가 SS 그 날 +3 12.12.11 3,211 30 10쪽
11 나이트 사가 SS 황제의 아이들 +2 12.12.10 3,866 56 9쪽
10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백일몽 +2 12.12.08 3,375 52 12쪽
9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우울 +3 12.12.05 3,255 52 19쪽
8 광시곡 SS 영생자들의 우울 +3 12.12.05 3,362 35 19쪽
7 소야곡 SS 퍼스트 블러드 +4 12.12.05 3,328 35 11쪽
6 강철의 기사들 SS 성인식 +5 12.12.05 3,467 35 22쪽
5 소야곡 SS 어떻게 +1 12.12.05 3,163 27 6쪽
4 소야곡 SS 밤이 온다 +2 12.12.05 3,306 61 5쪽
3 강철의 기사들 SS 영웅의 시대 +5 12.12.05 5,546 39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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