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연대기 SS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취룡
작품등록일 :
2012.12.05 12:57
최근연재일 :
2018.09.01 02:42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53,070
추천수 :
2,646
글자수 :
181,157

작성
12.12.05 13:07
조회
3,305
추천
61
글자
5쪽

소야곡 SS 밤이 온다

DUMMY

흐드러지게 많은 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추억은 얼마나 오랜 과거의 것일까.

살아온 나날을 헤아리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오랜 삶을 살아온 남자는 예배당 제일 앞자리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그는 오랜 삶 속에서 많은 ‘인간의 신’들을 보았고, 수많은 종교를 보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믿고 싶어 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원시적인 부락을 이루고 살 때부터 갖가지 자연현상을 숭배했다. 그들은 믿고 싶어 했다. 의지하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언제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수많은 종교를 지켜봐왔다. 그것들은 인간의 여느 발명품들이 그러하듯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조금 더 세련되게, 조금 더 현란하게 변모했다. 하지만 그 본질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예배당 문이 열렸다. 하지만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예배당은 신을 모시는 장소였다. 위대한 그분의 제 일 사도인 ‘왕’께서 등장하신 이래 많은 것들이 변하였다. 이제 모두는 알았다. 진정으로 믿어야 할 자가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기도를 바칠 자가 누구인지를.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하나였다. 언제나와 같이 둘이 아니었다. 남자 옆에 발소리의 주인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자를 보았다. 소리죽여 말했다.

“왕이시여.”

왕은 답하는 대신 예배당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 얼굴엔 감출 수 없는 피로가 묻어났다.

남자는 그런 왕을 이해했다. 그러했기에 왕이 먼저 입을 열기를 침묵 속에 기다렸다.

왕이 고개를 들었다. 나직이 말했다.

“밤이 오고 있다.”

밤이 온다.

황혼이 낮을 물들인다. 다가올 밤을 예고한다.

남자는 왕의 마음을 헤아렸다. 때문에 의미 없는 문답을 주고받았다.

“데바우 성인들은 어찌한답니까?”

“그 자들은 밤 앞에 순종하겠다더군.”

“그들답군요.”

저항하지 않는다. 밤의 도래는 순리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다시 새로운 해가 떠오르듯이- 이 모든 것은 순리이다. 애당초 저항이란 개념 자체가 우습다. 인류와 더불어 전 우주에 가장 널리 번성한 그 종족은 그리 결론을 내렸다.

“불사왕, 나의 기사여.”

“말씀하십시오, 나의 왕이여.”

왕은 남자를 보았다. 너무나 오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여인 하나를 잊지 못하는 바보에게 물었다.

“그대는 밤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우문이었다. 왕도 남자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남자는 성실히 답했다.

“그리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밤이 온다.

밤이 다가온다.

“왕이시여.”

“말하오, 나의 기사여.”

“공주께서는 어찌 하신답니까.”

왕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은 무언 나름의 답이 되었다. 남자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오는 것이 순리라면, 공주의 행동 또한 순리이리라. 그녀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왕과 남자는 나란히 고개를 들었다. 예배당 높은 곳에 자리한 우상을 보았다. 우상 아닌 우상. 상징을 만들지 않으면 믿음을 바칠 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애석한 인류를 위한 그것.

“기도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의 신께서는 우리에게 무관심하시지요.”

“우리의 기도는 닿지 않겠지.”

“설사 닿는다 할지라도 응답은 돌아오지 않겠죠.”

무관심한 신.

엡솔루트 원.

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아섰다. 남자는 그 뒷모습에 물었다.

“결심하신 겁니까.”

공주는 결코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가신들 가운데서도 반발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그것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왕인 당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인 당신이 그것을 용인할 수 있겠습니까.

왕은 즉답하지 않았다. 즉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왕은 끝내 입을 벌렸다. 쥐어짜낸 목소리를 낮게 토했다.

“그래, 그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이 마왕이 되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지.”

왕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예배당을 떠났다.

홀로 남은 남자는 눈을 감았다. 왕을 위해 닿지 않을 기도를 보냈다.

밤이 온다.

밤이 온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fin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연대기 SS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브레이커즈 SS #6 어떤 상견례 #3 +26 18.09.01 4,711 91 14쪽
31 브레이커즈 SS #5 어떤 상견례 #2 +26 18.08.20 3,645 92 9쪽
30 던전메이커 SS #5 유리아의 던전디펜스 #1 +26 18.08.17 4,388 89 12쪽
29 브레이커즈 SS #4 어떤 상견례 +24 18.08.08 4,260 104 14쪽
28 소야곡 SS 풍림화산암뢰 +22 18.08.07 2,938 55 19쪽
27 월드메이커 SS #4 하늘로 +39 17.09.06 6,079 131 17쪽
26 던전메이커/플레이어즈 SS #3 어떤 조우 #2 +45 17.07.31 7,361 175 11쪽
25 던전메이커/플레이어즈 SS #2 어떤 조우 #1 +49 17.06.29 7,489 167 14쪽
24 월드메이커 SS #3 바람이 불었다. +24 15.09.06 7,515 149 8쪽
23 월드메이커/플레이어즈 SS #2 왕의 별 +27 15.08.31 8,335 159 16쪽
22 강철의 기사들 SS 일지 +11 13.11.20 3,853 46 9쪽
21 강철의 기사들 SS 기도 +1 13.11.20 2,819 30 11쪽
20 강철의 기사들 SS 어느 화창한 오후 +4 13.09.21 4,342 49 8쪽
19 기상곡 SS 해후 +13 13.09.02 5,131 53 5쪽
18 폭뢰신창 SS 생生 +7 13.08.31 8,850 184 35쪽
17 SG SS 사자와 호랑이 +6 13.08.28 4,218 109 1쪽
16 강철의 기사들 SS 천생연분 +7 13.08.15 3,313 134 6쪽
15 소야곡 SS 단막 +6 13.08.14 3,700 96 5쪽
14 SG SS 눈물 +8 13.06.08 3,473 129 5쪽
13 나이트사가 SS 메데이아 +4 12.12.13 3,431 26 9쪽
12 나이트사가 SS 그 날 +3 12.12.11 3,210 30 10쪽
11 나이트 사가 SS 황제의 아이들 +2 12.12.10 3,865 56 9쪽
10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백일몽 +2 12.12.08 3,374 52 12쪽
9 소야곡 SS 사기꾼 모자 장수의 우울 +3 12.12.05 3,255 52 19쪽
8 광시곡 SS 영생자들의 우울 +3 12.12.05 3,362 35 19쪽
7 소야곡 SS 퍼스트 블러드 +4 12.12.05 3,328 35 11쪽
6 강철의 기사들 SS 성인식 +5 12.12.05 3,466 35 22쪽
5 소야곡 SS 어떻게 +1 12.12.05 3,162 27 6쪽
» 소야곡 SS 밤이 온다 +2 12.12.05 3,306 61 5쪽
3 강철의 기사들 SS 영웅의 시대 +5 12.12.05 5,545 39 4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