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 맞짱?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케인이 돌아왔다. 대치하던 두 세력과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향했다.
“하하하. 뭐 대단한 사람 왔다고 다들 그렇게 쳐다보시나”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드는 모습에 로즈의 신경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와.. 황당하네. 어디 사라졌다 일주일이 넘어서 돌아오고선 그 딴 소리가 나와요? 그리고 싸움질은 오빠가 했지. 나야 이 새끼들이 시비 거는 거 초인적인 인내로 참고 있는 중이고-
그 때야 로즈의 시선이 크로우 일행이 타고 있는 것과 그 뒤를 따르는 것들에게 향했다.
-..그건 또 뭐에요?-
“응? 우리 벼락이? 말도 마라. 나 얘 길들이려다가 몇 번이고 죽을 뻔 했어”
일반적인 말보단 조금 크고 군마보다는 조금 작은 말과 매우 비슷하지만 온몸에 퍼진 근육과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이 인상적인 모습의 마수. 타오르는 불길과 같은 붉은색을 타고 있는 크로우 칠흑처럼 어두운 색을 타고 있는 칼라스만...
-아니 근데 칼 오빠는 또 검은색이야? 안 질려?-
-크..크흠..-
슬쩍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는 모습이 이제는 자신도 반박불가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근데 무슨 상황이냐?”
-이 새끼들이 말이에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린 후 무리들을 향해 물었다.
“책임자 나와”
-.....-
“그래 알았다”
아무도 반응이 없자 제이든에게 향한다.
-뭐..뭐야?-
“괜찮아. 괜찮아. 이해해. 사람이 야망이 있어야지”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을 두르고 대치중인 곳으로 이동하자 힘에 이끌려 끌려간다. 이를 막으려는 가드들을 돌아보곤 가볍게 웃는다.
“그냥 얘기 좀 하게. 괜찮지?”
-그..그래-
제이든의 대답에 가드들이 다시 뒤로 물러선다.
“망신주기지?”
-무슨 소리야?-
“말했잖아. 이해한다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을 때 싸움을 걸어서 이기고 망신을 주면 다른 사람들도 만만하게 보고 반항이 심해질 테고 그러면 더 괴롭혀서 요새를 뺏으려는 거잖아?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정확한 판단에 제이든의 동공이 흔들린다.
“그런데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지. 좁밥새끼들이 고수들한테 ”한 수 부탁드립니다아“ 하려면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해야지. 그냥 시비 걸고 싸우자 하면 되냐? 와.. 말하다 보니 화가 막 나려고 하네에?“
크로우의 살기 어린 눈이 제이든을 향하자 움찔거리지만 어깨가 잡혀 움직이지를 못한다.
-.....-
“나 계속 화나게 할 거야아아?”
슬슬 말의 끝이 올라가며 목을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간다.
-이봐. 멈춰라-
검을 쥔 가드가 크로우의 어깨를 쥐며 목소리를 높인다.
“니 주인하고 말하고 잇잖아. 사료 처먹는 새끼가 건방지게 어딜 끼어?”
-뭐? 이런 씨발..-
“왜? 뽑게?”
어깨를 풀고 사내와 코가 닿을 거리까지 다가가 묻는다.
“왜? 막상 뽑으려니 겁이 나? 그러면 짖지를 말아야지. 새끼야”
-이런 씨바아알...-
뽑히던 검이 크로우의 손에 막혀 멈추고 사내의 시선을 덮은 커다란 손에서 뇌전의 기운이 번쩍인다.
-자..잠깐..-
-콰르르르릉..
뇌전이 폭발하고 놀라 주저앉은 제이든의 눈에 시커멓게 변해버린 사내가 힘없이 흔들거린다.
“오우.. 사료 좋은 거 줬나 봐. 한 번에 안 죽네”
-꿀꺽-
“그런데 돈도 많은 거 같은데 좀 괜찮은 애를 써. 이마가 닿을 거리인데 나를 밀쳐 내거나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만들지도 않고 검부터 뽑으면 먹히겠냐? 안 그래 창을 든 총각?“
-..그만..하지..-
목에 핏대가 선 사내가 소리를 씹어 뱉으며 웃고 있는 크로우를 노려본다.
“싫은데?”
-콰콰콰콰광..
불꽃이 폭발하며 힘없이 흔들리던 사내가 움직임을 멈춘다.
“오.. 개꿀. 득템”
바닥에 떨어진 검을 들고는 함박웃음을 지은 채 창을 든 사내의 어깨를 두들기곤 다시 제이든에게 향한다.
“저 친구는 괜찮네. 가드가 열 좀 받는다고 경호대상을 두고 검부터 뽑으면 안 되지. 그런데 성의 표시를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은 좀 해봤어?“
-거..검..-
“검? 그거?”
크로우의 시선이 허리에 찬 빙무검을 향하자 허옇게 질린 제이든이 뒤로 물러선다.
“알았어. 겁먹기는. 그런데 유니크 주려는 거 아니지? 그럼 나 진짜 화낸다”
-..전설..-
“그리고 뭐 스킬 북 같은 건 없어? 설마 로즈 아르폰 백작의 이름값을 거는 싸움인데 그걸로 퉁 치려는 건 아니지?“
로즈의 어깨가 슬쩍 올라가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블러드 문 길드장이 나 케인인 건 알고 있지?”
-저 씨발 오빠새끼-
-유..유니크 스킬 북-
로즈가 투덜거리고 힘없는 제이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검과 스킬 북을 확인하고 소리 지른다.
“좋다. 괜찮다. 싸워라”
-길드장은?-
“당연히 난 빠지지. 애초에 시비 걸릴 때부터 우린 없었잖아. 아르폰 가의 기사들과 병사 그리고 레인저 부대는 모두 뒤로 물러서. 블러드 문만 싸운다“
병력들이 물러나자 다시 소리친다.
“1분 후에 시작한다. 참고로 여기서 죽는 놈들은 다 뒤질 줄 알아. 셋, 둘 ,하나. 파이트”
심판을 보는 듯한 파이트 선언에 양측에서 준비된 마법과 화살 등의 원거리 공격이 이어지고 창과 검을 든 근거리 딜러들이 방패를 앞세운 탱커 뒤에서 쏜살같이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폭음과 비명이 이어지는 전투를 바라보는 크로우 일행들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들 많이 강해졌네-
-그동안 구른 게 얼마인데 저 정도로 못하면 안 되지-
“진짜 다들 많이 강해졌네. 싸울 줄을 알아. 빠르게 제압하려고 하지 않고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차근차근 확실하게 제압해 나가네“
-케인 너하곤 많이 다르다-
마지막 노터리스의 말에 한껏 웃어재끼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노터리스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굴 걱정하면서 싸워? 너희를?”
-큼.. 그것도 그렇군-
크로우만큼 강한 동료들이다. 자신만 챙기면 된다.
한편 크로우 일행과는 달리 제이든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얼핏 비슷하게 진행되는 것 같던 전투가 시간이 흐를수록 밀리는 것이 확연해졌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황은 나쁘지 않은데 어째서 자신의 인원들만 그 수가 줄어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블러드 문은 강합니다. 압도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착실하게 우리쪽을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왜? 왜 그러는 건데?-
-블러드 문은 신생 길드가 아닙니다. 굳이 압도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히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안정적인지 그리고 승리 후 길드원들의 자부심까지 배려한 로즈의 최상의 선택입니다-
-그럼 왜 우리 애들도 밀리는 건데? 강하다며? 비공인 랭커라며?-
“그야 너희 애들 몬스터 때려잡을 때 우리는 플레이어 때려잡고 있었거든”
제이든의 악에 받친 고함을 받으며 크로우가 다가왔다.
“빙무검을 차고도 그저 구경만 하는 놈이 뭘 알겠어. 잘 들어 임마. 레벨이 높고 강자라면 몬스터든 플레이어든 잘 때려잡아. 그런데 비슷한 수준이면 몬스터를 잘 때려잡으면서 플레이어도 잘 잡는 거랑 플레이어를 잘 때려잡으면서 몬스터도 잘 잡는 거랑은 차이가 많이 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냐?“
-그게 무슨?-
“밥이 주식인데 라면도 잘 먹는 거랑 라면이 주식인데 밥도 잘 먹는 거랑 같냐고 이 멍청한 새끼야”
-아..-
“아는 시팔..”
-빡
제이단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지만 크로우가 눈을 부릅뜨자 조용히 시선을 돌리는 모습에 창을 든 사내가 작게 한숨 쉬며 창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싸움의 결과는 곧 나왔다. 살아남은 십여 명이 둥글게 방진을 짜고 그들을 둘러 싼 블러드 문과 대치하고 있었다.
싸움에서 죽은 블러드 문 길드원 몇 명이 요새에서 다시 전장으로 후다닥 달려가다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대가리 박아”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한 외국인 길드원들이 어리둥절하다 백두 출신이 머리를 박는 모습에 “아하“ 하며 따라한다. 얼굴들이 익숙지 않은 걸 보니 신규 길드원들이다.
-너 따라와-
알렉이 한 명을 지명하고 공터로 나가자 지명 당한 사내가 상황을 이해 못하고 인상을 쓴다.
-다구리는 취미 없다. 그래도 네가 제법 강한 것 같으니 일대일이다-
-너 따라와-
-야. 나는 너-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 찍었어-
-야 선택해. 나야 얘야-
이어지는 지목을 지켜보던 제이든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사내들의 얼굴도 일그러진다.
-이..이런 시팔.. 저게 지금..-
“매너가 좋아. 좁밥들 다구리치는 거만큼 쪽팔린 게 없지. 암”
-저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빡
제이든의 항의를 무시하고 또 다시 뒤통수를 후려쳤다.
-예의가 없는 건 좁밥새끼들이 주제도 모르고 싸우자고 덤빈 게 예의가 없는 거고 이대로 끝나면 니 애들 빼고 나머지가 허접이라서 졌다고 핑계 댈 것 아냐 새꺄. 맞아? 틀려?“
-마.. 맞는 것 같..-
-빡
일대일로 시작된 싸움을 바라보며 또 다시 뒤통수를 후려쳤다.
“맞으면 맞는 거지 맞는 것 같기는..”
일대일의 싸움이 시작됐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지목당한 유저들이 이를 악물고 싸움에 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창을 든 사내 칼슨의 마음은 그저 착잡하기만 했다.
얼핏 보기엔 대등한 아니 조금 우위에 선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블러드 문 길드원들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채 오직 무기 하나만 가지고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싸움을 지켜보는 케인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 남자의 영향인 것이 틀림없었다.
블러드 문의 일부는 자신이 전부터 알고 있는 자들이었고 그들의 과거 싸움은 여느 플레이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기에 제이든을 말렸었다. 투자를 하고 동맹을 구축하라고 지속적으로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동양의 상인 가문 따위와 협업을 하는 순간 자신은 비웃음거리가 된다고 역정을 내는 모습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싱긋..
어느새 자신을 돌아본 케인이 미소 지으며 윙크한다. 이 남자는 자신보다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조금 전 눈으로 확인했었다. 싸워보고 싶지만 자신의 역할은 가드일 뿐.
사내 칼슨이 다시 싸움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오오오-
-그렇지. 미르 잘 한다-
-아아아아...-
모든 싸움의 결과는 블러드 문의 승리로 돌아갔고 길드원 미르의 마지막 싸움이 이어지다 길드원들의 아쉬움에 찬 소리에 끝이 났다.
-헉 헉 허억.. 내가 이겼으니 이젠 끝이다-
미르와의 마지막 싸움을 승리로 거둔 사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온몸에 무수히 많은 자상을 입은 사내의 상태도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쯧. 마지막에 급했어. 어차피 서로 한 방인데 자기만 질까봐 마음이 급해졌나보네. 다음은 나다-
-무슨 개소리를.. 내가 이겼으면..-
-그 꼴로 겨우 막내 이겨놓고 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기뻐하는 건 아니지? 포션 줄 테니까 먹고 덤벼라-
발치에 포션이 떨어졌지만 사내의 허망한 눈길은 그저 눈앞의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요새에서 튀어나온 미르가 자신을 쓰러뜨린 사내를 향해 달려갔다.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웠기에 포션을 주고 회복이 되면 다시 한 번 싸우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던 몸이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덜컥 멈춰 섰다.
올가미처럼 자신을 얽매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케인이 손가락을 까닥 거린다.
-..씨발..-
후다닥 달려가자 손을 내민다.
“무기 줘 봐”
무기를 살펴보곤 짜증이 가득 한 눈으로 쳐다보자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린다.
“로즈가 무기 빼돌리냐? 왜 아직도 레어야?”
-그게.. 허접이 무기 좋은 거 쓰면 실력이 안 는다고..-
“킬킬. 잘 키우네. 조금 전에 어떤 놈이 까불다가 뒤지고 흘린 건데 쓸 만해. 이거 네가 써라”
눈이 번쩍 뜨였다. 유니크 등급에 옵션도 굉장히 좋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인사는 얘한테 해야지”
제이든의 등을 팡팡 두드리곤 말을 이었다.
“많이 늘었네. 네가 싸운 그놈 그래도 꽤 강해보이던데. 열심히 해라”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박아라”
-네. 네?-
“대가리 박으라고 새끼야. 일대일 나섰다가 졌으면 박는 거지. 뭘 물어”
-넵-
잽싸게 머리를 박자 옆에 있던 백두 출신의 동료가 킥킥거리며 웃는다.
-대장. 왜 깝치다 뒤져서 이러고 있냐?-
-..시끄러워. 새끼야-
-시팔. 대장아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하는 거다. 킬킬킬-
어차피 오우거에 맞아도 한 방에 안 죽는 놈들이다. 그저 작은 퍼포먼스일 뿐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