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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명덕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악당이 아니다 빌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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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명덕
작품등록일 :
2022.01.27 18:14
최근연재일 :
2023.02.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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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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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외성의 문이 열리고 건축 자재들과 필요한 물품과 식사를 실은 마차들과 일꾼들이 요새가 올라가는 곳으로 플레이어들과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젠장, 마경에 들어가기 정말 싫은데-

불안한 듯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울부짖는 늑대 용병단 이스마일 부대장이 투덜거렸다.


-이 멍청한 새끼야. 티내지 마라. 호위하는 놈이 그렇게 불안해하면 일꾼들이 얼마나 불안해 하겠냐. 어째 깡촌에서 올라와서 멋모르고 길드 사무소에서 까불다 처 맞던 이십 년 전하고 변한 게 없냐-


이스마일을 타박하는 갈라스의 표정도 불안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경에 다가갈수록 잊고자 했지만 결코 잊혀 지지 않는 일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던 난 자신이 속한 용병단과 함께 귀족의 의뢰를 받고 마경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원정은 수월했다. 기사라 자신들을 무시하던 놈들이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할 때도 그들의 앞을 막아서고 몬스터와 마수들의 목을 쳐냈다. 마지막 몬스터의 정수리에 도끼를 쑤셔 박자 부서진 두개골 사이로 피가 솟구쳤다.


김이 피어나는 몬스터의 뜨거운 피를 뒤집어 쓴 채로 웃었을 때 기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서임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젋은 기사는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그 때부터였었다. 나는 특별했었다.


마경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몬스터와 마수들은 비례적으로 강해졌다. 죽거나 다치는 동료들이 늘어날수록 대장은 괴로워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특별했고 자신보다 강한 대장은 더욱 특별했기에 대장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애도하는 척 했다.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특별했었다.


특별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도망쳐어어!-

-허억 허억..-

깊게 배인 가슴에서 피가 솟구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망쳐어어.. 갈리안 이 개새끼야아아아-


마수를 막아선 대장이 소리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피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나는...

겁에 질려있었다. 한 떼의 몬스터를 죽이고 놈이 나타났다. 처음 보는 마수였다. 귀찮은 듯 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놈에게 다가가는 날 대장이 막았다.


처음 보는 놈이니 함부로 싸우면 안 된다며 막아서는 대장을 밀쳐내고 놈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배틀 엑스를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배틀 엑스를 내려치려는 순간


움찔..

놈의 눈과 마주친 난 그대로 굳어버렸다. 놈의 눈동자 속엔 거역할 수 없는 폭력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맞설 수 없는 격이 느껴졌다.


무심한 놈의 손이 그어졌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서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충격에 바닥을 굴렀다. 가슴에서 피가 튀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자신의 동료가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왜? 왜? 나를...


왜 자신을 밀치고 대신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장과 동료들이 자신을 지나쳐 놈을 향해 뛰어들었다. 비명이 이어지며 피가 튀고 살이 튀었다. 동료의 사선으로 잘린 머리 일부가 발치에 떨어져도 난 움직일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난... 겁에 질려 있었다.


-도망쳐어어.. 갈리안 이 개새끼야아아아-


소리치는 대장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뜯겨 나간 옆구리로 피 덩어리가 떨어지고 왼쪽 팔은 이미 잘려 나가고 없었다.


비틀거리며 물러난 대장이 힘없이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 눈동자 속엔 슬픔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도망가아아...제에바알...-

-툭, 도르르르..


힘없이 이어지던 목소리가 끊기고 슬픔과 미안함을 가득 머금은 대장의 머리가 힘없이 굴러와 자신의 발끝에 부딪치며 멈춰 섰다.


-콰작

대장의 머리가 놈의 발에 밟혀 뇌수가 터져 나왔다. 천천히 발끝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무심한 놈의 눈빛과 마주쳤다.


권태...

무심히 자신을 쳐다보던 놈이 방향을 돌려 다시 마경 깊숙한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의 겁에 질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윽.. 흐윽.. 끄으으윽..-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겁에 질려 울고 있는 건 나였다.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내가 무시하던 대장과 경멸하던 동료들이 놈과 싸우고 있을 때 겁에 질려 혼자 울고 있던 겁쟁이는 바로 나였다.

나는.. 나는.. 비겁한 개새끼였다.


어떻게 마경 밖으로 나왔는지 기억은 없다. 나를 발견하고 치료한 약초꾼의 이야기로는 살아있는 것이 용할 정도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원정의 실패는 용병단의 무모한 진행으로 이미 소문이 다 퍼져있었다. 동료들이 싸울 동안 도망쳐 살아나온 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원정의 실패 원인을 용병단에 돌린 것이었다.


그 중에 내 이름이 거론되었다. 무모한 싸움으로 동료들을 모두 희생시키고 겁에 질려 울고 있던 겁쟁이 개새끼...


반박하지 않았다. 기사들의 조롱과 멸시가 섞인 말과 눈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몇 년을 사람들을 피해 산에서 살다가 다시 나왔을 때 배틀 엑스가 아닌 두 자루의 작은 도끼를 사용했다.


그 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방어가 용이한 두 자루의 도끼를 사용하며 한 자루의 도끼는 철저히 방아로 사용하고 완전히 승기를 잡았을 때만 모두 공격에 사용했다.


위험한 일은 철저히 외면했다. 마경 근처로는 절대 가지 않았다. 절대로 안전한 일만 받아들이고 상대적으로 약한 용병들을 괴롭혔다.


겁에 질려 위축되는 다른 놈들을 보면 겁에 질려 울어대던 그 날의 자신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잇었기에...

나는 정말로 마지막까지 비겁하고 더러운 개자식이다.


욱씬..

마경에 다가갈수록 가슴에 길게 남아 있는 상처가 욱신거리며 숨이 가빠온다.


-대장...-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이스마일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마경에 뚫어 놓은 길을 따라 움직이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조금씩 요새가 가까워질수록 거칠게 뛰던 심장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전투 준비-

무리를 이끌던 플레이어가 소리치며 활을 꺼내들었다.


-허억.. 허어억..-

숨이 가빠온다. 부단장 이스마일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며 방패와 검을 꺼내들었다.


-빌어먹을 새끼. 용병 새끼가 호위 대상을 두고 왜 자신의 앞을 막아-

머릿속에서 맴돌 뿐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키에에에엑-

마물의 울음소리에 심장이 뜯겨 나가는 것은 공포가 엄습했다. 모습을 드러내는 놈들의 이마와 심장에 화살이 박히며 쓰러져 나간다. 하늘에서 떨어진 마법에 몬스터들이 비명과 함께 육편이 되어 사라진다.


사방을 막아선 호위 병력들이 소리를 치며 창과 칼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도르르륵.. 툭

바닥을 굴러온 트롤의 머리가 발끝에 부딪치며 멈춰 섰다.


-도망가아아.. 제에바아아알...-

-..대장...-


-전투 중지. 사상자를 확인하라-

선두에서 활을 날리던 사내가 소리쳤다. 모두가 빠르게 사상자를 확인하는 동안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대장...-

이스마일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참혹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씨이바알.. 그러게 술이나 처마시자니까..-


나는 또 울고 잇었다.

나는.. 정말 구제불능 비겁한 개새끼다.


요새를 짓는 곳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달려왔다. 부상을 당한 병사들이 제법 있었지만 플레이어들의 도움으로 죽음에까지 이른 병사는 없었다.


포션과 힐을 사용하며 병사들을 치료하고 다시 재정비에 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검은 갑옷을 입은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지 알고 있다. 케인과 같이 다니던 검은 갑옷의 사내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두근..

저 눈빛. 마경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놈과 같은 눈빛. 권태와 경멸이 담긴 저 눈빛.

가슴이 뛰었다.


-후우욱.. 후우욱..-

숨이 가빠오고 볼을 따라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른다.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둘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어 사내를 막아섰다.


-사정이.. 사정이.. 있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이를 악문 이스마일이 검은 갑옷의 사내에게 말하자 물끄러미 쳐다보던 사내가 말없이 돌아서 요새로 향했다. 마치 그 날의 그 놈처럼..


-대장. 갑시다. 이곳을 떠납시다-

이스마일의 목소리는 마치 그 날의 대장의 목소리처럼 애잔했기에 더 아팠다.


-나..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아아-


이스마일을 밀치고 두 자루의 도끼를 쥐고 검은 갑옷의 사내에게 달려갔다.


도망치라고? 또 도망치라고? 더 이상, 이제 더 이상은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내의 정수리로 도끼를 내리 찍었다. 세상이 숨을 멈춘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 나는..-

-무슨 일인지 나는 모른다-


검은 갑옷을 입은 사내의 시선이 자신의 정수리 앞에서 멈춰 선 도끼날을 향했다.


-하지만 거기 멈춰선 이유는 대충 알 것 같군. 쳐라. 거기서 멈추지 말고 내려 쳐. 언제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을 거냐? 언제까지 그렇게 질질 짜고 있을 거냐?-

-나는.. 나는...-


갈리안의 초점 없이 흔들리는 눈을 바라보던 사내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너는 너 같은 놈을 살리자고 자신들을 희생한 자들을 욕보이는 쓰레기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바라보던 세상이 붉어졌다. 피가 튀고 살이 튀며 동료들의 뜨거운 붉은 피가 자신의 몸을 적셨다.


-도르르륵.. 툭

바닥을 구른 대장의 머리가 부릅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힘없이 말한다.


-도망가...-

-.. 미안해. 대장.. 더는..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양손에 힘줄이 터질 정도로 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동료들을 모두 죽이고 마경 안으로 돌아가는 놈을 향해 뛰었다.


-주거어어어...!-

두 자루의 도끼가 놈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린다.


-콰아아아앙....

굉음이 터졌다.


-허어억.. 허어억..-

검을 들어 갈리안의 도끼를 막아선 칼라스만이 나지막이 말했다.


-조금은 네 동료들도 기뻐하겠군-

돌아선 사내가 멀어지도록 바라보던 갈리안이 힘없이 주저앉아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자앙...-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뿌옇게 변해갔다.


-대자앙.. 미안합니다.. 모두들.. 정말 미안합니다-


억눌리고 맺혔던 서러운 울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몬스터의 습격으로 잠시 멈췄던 공사가 다시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 바위 위에 앉은 크로우 앞에 갈리안이 서있었다.


-이스마일에게 이야기는 다 들었다-

-기회를 주신다면 과거 대장처럼 놈들을 잘 이끌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마친 그의 발걸음은 칼라스만에게 향했다.


-감사합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 했습니다-

-고마울 것 없다. 난 그저 네 도끼 한 번 받아준 것뿐이니까-

-그걸 받아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평생 그 자리에 머물렀을 겁니다. 그럼-


-어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서는 갈리안의 앞으로 쇠붙이가 날아와 잡았다.


-...배틀 엑스-

-지켜보지-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돌아서는 갈리안의 얼굴엔 더 이상의 머뭇거림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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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277 드레이크 라이더 23.02.02 50 1 16쪽
276 276 맞짱? 23.02.01 53 1 13쪽
275 275 사고뭉치 23.01.31 50 1 12쪽
274 274 욕심은 불만을 잠재운다 23.01.30 53 1 12쪽
273 273 로즈 아르폰 백작 23.01.27 52 1 13쪽
272 272 요새를 파세요 23.01.26 56 1 12쪽
271 271 영혼석 그리고 수월(水月) 23.01.25 58 1 12쪽
270 270 서로간의 사정(2) 23.01.24 59 1 11쪽
269 269 서로간의 사정 23.01.23 60 1 11쪽
268 268 인마족 23.01.20 60 1 11쪽
267 267 하층부의 주민들 23.01.19 59 1 11쪽
266 266 역마살 23.01.18 61 1 14쪽
265 265 다사다난(多事多難) 23.01.17 62 1 12쪽
264 264 몰려드는 사람들 23.01.16 68 1 12쪽
263 263 회상2 23.01.13 74 1 14쪽
262 262 요새 방어전 23.01.12 69 1 11쪽
» 261 회상 23.01.11 73 1 12쪽
260 260 광산 발굴 23.01.10 79 1 12쪽
259 259 어? 그리폰이다 23.01.09 7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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