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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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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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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
추천수 :
45
글자수 :
403,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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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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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24화 - 탁란공녀 창세기

DUMMY

나스챠에게 보고를 들은 직후 룬은 직접 세이튼의 흔적을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룬이 직접 나섰음에도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확실해. 이건 누가 훔쳐간 거야.”


기사단을 심문해보아도 나오는 결론은 하나다.


세이튼의 실종에는 마법사가 관여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는...


“야, 창박이.”


“후우···제발 그 창박이란 말 좀···"


“어, 이제 지가 창박인줄 아네. 그럼 인정한 거다?”


어느새 우울함을 털어내고 렌스의 옆에서 시종일관 깐족대고 있는 나스챠밖에 없었다.


전투에서 공로를 인정받은 렌스는 스피어라는 성을 하사받게 되었다.


당연히 렌스는 동물 이름에나 붙일 법한 이름을 붙여준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그 반발은 룬의 태연스러운 말 한마디로 쉽게 무산되었다.


“왜? 스피어 간단하고 좋잖아. 뭔가 쌔보이고.”


그 말에 결국 렌스는 스피어라는 이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나스챠는 렌스를 놀리기 좋은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왕 창도 생긴 거 렌스도 하나 들어서 이름대로 살아. 이름대로 사는 거 쉬운 거 아니다?”


“하하, 한 대만 패도 되겠나, 나스챠?”


그러자 나스챠가 얄밉게 렌스의 말을 따라 했다.


“한 뒈만 패둬 되겠남?”


참지 못한 렌스가 나스챠를 붙잡으려 하자, 이번에도 나스챠는 얄밉게 혀를 내밀고는 텔레포트를 사용해 사라져버렸다.


룬은 가늘게 눈을 뜨며 렌스와 나스챠가 티격태격 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게 첩자라고?’


머리 속에 남을 골릴 생각만 가득해 보이는 이 철없는 마법사가 첩자라면, 이 세상에 첩자를 하지 못할 인물은 없으리라


-저게 연기라면 우린 악마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


메피스토텔레스의 말에 룬은 다시 한 번 나스챠의 행적을 되새겨 보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나스챠가 범인이라는 정황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하아.’


그러던 중 불연 듯 룬에게 의문이 밀려왔다.


‘근데 너 원래 나한테 말 걸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때는 네 카르마가 너무 부족해서 그런 거였고, 이제 말 거는 것 정도는 괜찮아.


‘정말 자기 마음대로네’

-뭐 그렇지, 저기 재도 그래 보이는데?


그 말과 동시에 한스가 씩씩거리는 걸음걸이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거슬리게.’


룬은 속내를 감추며 한스를 되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한스?”


“허, 반말이라니. 이제 아주 대놓고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그렇게 말한 한스는 책상 위에 서류 하나를 던지며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사인해.”


그 말에 룬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싫은걸.”


“일리야 룬!”


룬의 짧은 거절에 목구멍까지 화가 차오른 한스가 그를 억지로 참듯이,

고개를 숙이고 책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가주님과 세이튼이 모두 없는 지금을 틈 타 기사들이 너를 핑계로 가문을 떠나려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대로라면 네가 원하는 킨케이드 자체가 사라질 판국이란 말이다!”


“잘 알지”


그 말에 한스가 고개를 들어 룬을 향해 소리쳤다.


“그걸 안다면!”


그 순간,

한스는 룬의 두 눈동자가 조용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선의 깊이는 한스가 살아온 안락한 세월을 가지고서는 가늠할 수 없어,

한스는 화를 내는 것도 잊고 그저 멍하니 룬을 바라보았다.


“너무 잘 알지.”


룬의 말과 동시에 한스에게 불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점이 우리 관계의 문제점이야. 나는 다 알았거든. 세이튼이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지. 왜 오빠가 나한테 잘해줬는지. 그리고 한스 당신이 엄마의 정보를 세이튼에게 주었다는 것도 말이야”


세상에는 불리한 입장에서 되레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안락한 삶을 살아온 한스 또한 여기에 포함되었다.


“지난 일을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 지금은 그것보다!”


그러나 한스가 가진 감정은 그 무게조차도 부족했다.

룬은 그 가벼운 분노를 찍어누르듯 선언했다.


“당신과 내 사이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레기오르스와 미리엄을 몰락시킨 지금,

룬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을 향한 갈파고스의 굴종


그리고 지금 그 사실을 증명해줄 사람은 눈앞에 있는 한스밖에 없었다.


“이해했다면, 꿇어.”

“...뭐라고?”

“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구나.”


의자에 앉아 있던 룬이 다리를 꼬며 한스를 내려다본다.


“지금이라면 세이튼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의 네 처우를 고민해볼 거야. 그러니...”


그리고 선언한다.


“꿇어라. 킨케이드 한스.”


한스는 그 말을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한 듯 이번에도 멍하니 룬을 바라보다가,

그 말을 이해한 순간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룬을 향해 손찌검하려는 찰나, 자신의 뒤에 선 한 기사가 검을 뽑아드는 소리를 듣고는 우뚝 멈춰서 침을 꿀꺽 삼켰다.


눈동자만을 굴려 한스의 손을 바라보던 룬이 중얼거렸다.


“아쉬워라.”


그렇게 잠깐 눈치를 보던 한스는 곧바로 자신이 공포에 질린 것에 화가 난 듯이 말했다.


“...네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한스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떠나가는 그를 한 기사가 막아섰지만,

룬이 고갯짓하자 기사가 자리를 비켰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스는 제 분을 참지 못하고 집무실의 문을 쾅 닫으며,

임시로 마련된 룬의 집무실을 떠나갔다.


그를 막아선 기사가 잠시간 떠나가는 한스를 노려보더니 룬을 향해 말했다.


“이대로 보내셔도 괜찮은 겁니까?”

“뭐가.”


기사가 한스가 나간 방향을 턱짓한다.


“저 배신자 놈이 뒤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아니. 알아. 뻔하지 뭐.”


그 말에 룬의 말을 되새기던 기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대기자세로 돌아갔다.


양 손을 뒤로 교차시킨 그 모습에 룬이 인상을 찌푸리며 기사를 향해 말했다.


“편하게 좀 있지?”

“저는 이게 편합니다.”


그 말에 룬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닌 거 같던데.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앞에서 세상 편했잖아?”

“그때와 지금은 다르죠.”


그 말에 룬 또한 한스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다르구나.”


***


낙영도의 일을 마무리한 룬은 곧바로 갈파고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레기오르스와 세이튼의 실종사실을 발표했다.


한스는 세이튼의 시체를 훔쳐간 것이 룬이라고 주장하며 계속해서 룬을 심문하려 들었지만, 킨케이드 기사단 전원이 룬을 가주로서 추대한다는 의사를 밝혔기에 더는 킨케이드 저택에서 힘을 잃은 한스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갈파고스 내의 유력가문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일리야 룬이 킨케이드의 진짜 실세로 떠올랐다는 것.


그로 인해 한동안 갈파고스에서 대부분의 대화 주제는 새로운 킨케이드의 주인에 대한 것이었고, 한 선술집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질센과 건배를 나눈 한센은 그대로 맥주를 들이킨 후 크아 하는 소리와 함께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안에서 감도는 알코울의 쌉쌀한 향이 피로에 절은 몸을 노곤하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게 없으면 안 된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질센은 한센을 향해 말했다.


"정말 대단한 계집이야. 설마하니 킨케이드 전체를 잡아먹을 줄이야."


한센 또한 맥주 잔을 내려놓더니 질센의 말에 대답했다.


"대단하긴 대단하지. 갈파고스에서 그런 인물이 또 나올 줄 몰랐는데 말이야.”

"인물은 무슨. 제 약혼자도 잡아먹은 년인데."


그 말에 한센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 살자고 한 짓이겠지. 넌 갈파고스 사람이 아니니까 모르겠지만, 킨케이드 놈들이 그 아가씨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아? 모르는 내가 봐도 불쌍한 아가씨였다고.”


한센는 그렇게 말하고는 남은 맥주를 그대로 들이켜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킨케이드가 갈파고스를 부강하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레기오르스가 개차반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잖아?"

“그래도 그렇지, 한스 그 사람 병신 만들어 놓은 거 보면 나쁜 년인 건 틀림없어.”


한센은 그 말을 들으며 얼큰한 취기가 머리까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 대화를 나눌 때만 하더라도 질센이 그저 다른 생각이 있다고만 생각했지만,

취기가 올라오자 눈앞의 어리석은 동료에게 짜증이 밀려왔다.


"그러니까 네가 안된다는 거야. 너 뻐꾸기가 살기 위해 무슨 짓을 하는지 아냐?”


“갑자기 뭔 새 타령이야. 여기 닭이나 처먹어.”


“뻐꾸기는 말이야. 어미가 자식을 다른 둥지로 밀어 넣어 버리거든, 근데 신기하게도 이놈들이 자기 새끼를 키워줄 새를 알아본단 말이야."

"그래서 그 새들은 그게 뻐꾸긴 줄도 모르고 키워. ."

"근데 이 뻐꾸기가 원체 커야 말이지, 보통 크면서 다른 새끼들을 다 밀어 죽여버린단 말이야."

"한낱 짐승조차 살려고 그러는데 인간이 오죽하겠어?”


그러자 질센이 비웃음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언제부터 철학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뻐꾸기 공녀라, 어울리기는 하는구먼."

“자네 그러다가 정말 불경죄로 잡혀갈지도 모른다네."

"그럼 바꿔주지 뭐.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질센이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말한다.


"탁란공녀 어떄. 이 정도면 멋들어진 이름 아닌가?"


한센은 능글거리며 갈파고스의 실세를 놀려대는 눈앞의 동료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웠다.


그 순간,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던 여자와 남자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맥주잔에 주스를 따라 마시던 소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렌스, 나스챠, 진정하고 앉아."


나스챠와 렌스라 불린 남자와 여자는 술을 마시던 자신과 질센을 노려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렌스? 어디서 들어본...’


그 순간, 남자는 몰려들었던 취기가 한 번에 싹 가시는 공포를 느꼈다.


창박이 렌스와 미치광이 나스챠.

저 둘을 호위로 둔 인물은 갈파고스에 하나밖에 없었다.


"허, 야! 니네가 뭔대 진정하고 말고야? 너네 내가 누군지 알아?"


'질센 씨발놈아. 닥쳐.'


한센은 동료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목구멍이 열리질 않았다.


미리엄과 레기오르스를 실각시킨 후 룬은 탁란공녀 이외에도 피투성이라는 이명을 얻었고, 한센은 피투성이 룬의 면전에서 망발을 짓거리는 질센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뱉어진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고, 질센는 갈파고스의 주인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과 동료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병신 때문에 여기서 죽는구나.'


룬은 술에 취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말을 이어가는 질센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잘 알지, 발트라 마을의 질센이 아닌가? 옆에 있는 자네는 보아하니 그 동료 한센이구만, 발트라의 두 죽마고우가 갈파고스에서 가장 용감한 병사라더니,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야."


한센은 곧 마스터에 오른 소녀의 검이 자신의 목을 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룬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주인장! 여기 나도 맥주하나 주게, 내 기사들은 주인에게 맥주 한잔 주는 법을 모르더구만!"

"으하하! 그렇지, 주인장 여기 예쁜 아가씨한테 맥주 한잔 주게나!"


질센은 기분 좋은 듯이 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한센은 팔이 올라가는 순간 룬의 안색이 차가워지는 것을 보고는, 안색이 새파래진 채 질센을 잡아끌며 룬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공녀님!"


그러자 룬은 호탕하게 웃으며 한센을 거의 질식시키려고 하는 질센을 말렸다.


"되었네. 안보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하는데."


소란이 일었던 탓일까,

어느새 선술집 안의 모든 시선은 룬과 일행을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조용히 그 시선을 받아넘기던 룬이 돌연 선술집의 주인이 건네진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맥주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선술집을 울리는 것과 동시에 룬이 소리쳤다.


"갈파고스의 영웅들이여!"


마력이 깃든 목소리가 공명을 만들며 거리로 울려 퍼진다.


"갈파고스에는 지금 유례없는 위험이 찾아왔다. 가주와 내 약혼자가 실종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와 기사단은 혼신의 힘을 다해 수색했고, 지금도 수색은 진행되고 있다."


룬은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한번씩 눈을 맞춰주었다.

그리자 선술집에서 기묘한 흥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생환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갈파고스인들이여!"


룬의 목소리에 깃든 마나는 한층 거대해져 선술집 너머로 공명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나는 생각한다. 과연 그들이 좋은 주인이었는가?"


파격적인 선언에 선술집이 술렁인다.


"레기오르스와 미리엄은 분명히 갈파고스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대들의 삶은 나아졌는가? 아니다. 여전히 갈파고스에는 배를 곪는 아이들이 널려있으며, 과부들은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가고 어부들은 삶을 위해 죽어간다. 그렇다면 갈파고스에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룬은 레기오르스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내용을 되새기면서,

탁자를 부술 듯이 세게 내려치며 외쳤다.


쾅!


"오직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킨케이드 가문의 금고 사정이다! 킨케이드는 갈파고스의 부를 착취했다. 그것도 모자라 의미 없는 전쟁을 벌여 그대들의 생명까지 착취하려 했다. 질센은 나를 가리켜 뻐꾸기 공녀라 하더구나. 좋은 이름이다. 난 이 이름이 마음에 든다!"


어느새 광장의 시민들은 선술집의 너머로 퍼져가는 룬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광장에 있는 압력이 선술집을 향해, 아니 룬을 향해 몰려든 듯 것만 같았다.


"나는 힘없는 그대들을 위해서 얼마든지 뻐꾸기가 되겠다. 앞으로도 나는 그대들의 영원한 하인일지언저."


낮게 깔리는 룬의 목소리가 시민들의 심장을 두드리는 순간,

룬이 소리쳤다.


"갈파고스에 영광을!"


룬이 힘차게 소리치자 곧바로 선술집의 시민들이 화답했다.


"갈파고스에 영광을!"


그 함성은 선술집을 넘어 광장으로, 갈파고스 전체로 퍼져 나갔다.


"킨케이드에, 아니 일리야에 영광을!"

"뻐꾸기 공녀에게 영광을!"


렌스는 함성이 울려 퍼져가는 갈파고스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나스챠는 그런 렌스를 보며 깔깔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갈파고스에 굶는 아이가 있는지.

어떤 과부가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지.

어떤 어부가 삶을 위해 죽어가는지 시민들은 몰랐다.


그들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일상을 망각시킬 뜨거운 열기와 열기를 식혀줄 맥주 한 잔이면 충분했다.


연설을 마친 그날 밤,

룬은 밤이 새도록 시민들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갈파고스에서는 한스가 전쟁을 두려워해 도망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을 접한 한스는 곧바로 주동자를 찾아내, 본보기로서 모든 시민이 바라보는 광장에서 처형했다.

그리고 그날 한스는 시민들이 던진 계란과 오물들로 온몸을 적셨다.


한스는 시민들의 공포를 원했지만, 시민들은 더 이상 킨케이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탁란공녀 일리야 룬의 이름뿐이었다.


그리고 한스가 주동자를 처형한 바로 다음날,

킨케이드 기사단이 룬에게 충성서약을 맺었음이 밝혀졌다.


갈파고스의 시민들은 한스와 그의 사람들이 기사들을 바쁘게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한스에게 충성 서약을 맺어주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한스가 킨케이드 가문의 계승자였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한스가 킨케이드 가문을 이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그것을 떠나서 킨케이드 가문이 존속될지에 대한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룬은 킨케이드 이기도 했지만, 일리야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파고스의 사람들은 자신의 주인이 일리야건 킨케이드건 상관이 없었다.

그저 배를 채울 식량과 따뜻한 집, 그리고 맥주 한잔과 머릿속을 태울 열기면 충분했다.


그것이 민중의 오랜 생리였다.


갈파고스 섬 위로 태양이 강렬하게 빛을 내리쬐었다.

늘어진 그림자는 그들의 착각과도 닮아있었다.


***


"제발 부탁한다. 이대로라면 정말 킨케이드는 사라지고 말아!"


룬의 집무실을 그녀를 향해 무릎 꿇은 한스의 처절한 외침이 가득 채운다.

그에 반면 룬은 그런 한스를 곁눈질하며 태연스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비슷한 구도네.’


"좀 뜬금없는데 말이야.”


룬의 목소리에 한스의 간절한 눈빛이 룬을 향했다.


“창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그게 무슨 소리야. 창문을 본다고 해서 무슨...”


룬은 한스를 돌아보지도 않으며 다시 말했다.

지금 룬은 언젠가 보았던 킨케이드 아카데미에서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뜬금없다고 말했잖아."


그리고 당연히 한스는 그런 룬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재롱이라도 떨어 보라는 건가.'


"하긴 뭐 생각을 강요할 필요는 없지."


룬은 쓰게 웃으며 한스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한스는 곧바로 그 서류를 빼앗듯이 들어 급하게 읽어보았다.

시선이 내려가면 갈수록 그의 안색도 점차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이건 말도 안 된다. 영지전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그 말은 국왕전하의 뜻을 무시한다는 뜻인가?”


한스가 받은 서류에는 일리야 가문이 킨케이드 가문에 영지전을 신청하는 내용과,

그를 승인하는 내용, 그리고 서류 맨 밑에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하는 국왕의 사인과 직인이 찍혀 있었다.


"너희에겐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 않나. 발헴도 이렇게 멸망했잖아?”


그 말에 한스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룬이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일을 처리할 생각은 없어 한스. 내게도 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룬의 말에 한스의 눈빛의 희망으로 빛났다.


한스는 마치 기름과 같은 사람이다.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진다.


이어진 룬의 말에 한스의 희망은 곧바로 휘발되어 사라졌다.


"살려는 드릴게."


그 말은 한스를 지탱하던 다리에 힘을 풀리게 만들었다.


자리에서 넘어진 한스는 체면도 잃은 채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트렸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광경에 룬은 찝찝한 기분이 밀려왔다.


'미리엄.'


절망하고 있는 한스의 모습은 룬의 암살에 실패했을 때의 미리엄과도 닮아있었다.


'자식이란 건 정말 닮는구나. 어쩌면...'


머지않아 룬과 파헬은 재회하게 된다.

룬은 그 때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다만 룬과 파헬은 미리엄과 한스와 같은 결말은 맞이하지 않았으면 했다.


처연한 한스의 울음소리가 킨케이드 저택을 울렸다.

저택의 사용인들은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분위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소녀에게 무릎을 꿇은 과거의 후계자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한달 뒤,

갈파고스는 공식적으로 일리야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한스는 실성한 채 미리엄이 기거하고 있는 저택에 강제로 유폐되었다.

말이 저택이지 높은 벽으로 가로막히고 그 너머로는 호위에 의해 감시당하는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룬이 모든 일을 마무리 짓자 일리야 가문에서는 임시 보호라는 명목으로 룬을 불러들였다.


"그럼 갈까?"

"가시지요"


그리고 룬은 두 동료와 함께 일리야 가문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응"


일리야 가문을 향하며 룬은 마지막으로 킨케이드의 저택을 되돌아보았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룬에게 있던 것은 모두 잃어버렸다.

그것은 아마도 일리야 룬을 막고 있던 껍질일 것이리라.


이제 룬을 막고 있던 껍질은 땅에 떨어진 이름과 함께 겨울 바다로 흩뿌려졌다.


그렇게 겁질을 깨고 양 날개를 얻은 뻐꾸기는, 이제 비상을 시작한다.


앞으로 그녀가 살아가게 될 삶을, 무어라 해야할까.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한 소녀는 이름없는 사내를 만들어냈고, 소녀와 사내는 각각 탁란공녀와 마누스 벨라토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렇다면, 그건···그래.


그 삶은 필시 창세기다.


있던 것을 죽이고,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그녀만의 창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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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5 39 0 21쪽
23 22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4 45 0 22쪽
22 2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3 19 0 15쪽
21 20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1 0 19쪽
20 1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3 0 15쪽
19 18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21 34 0 15쪽
18 17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20 28 1 14쪽
17 16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9 29 0 18쪽
16 15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18 64 1 15쪽
15 14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7 44 0 21쪽
14 13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8 0 20쪽
13 12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9 0 16쪽
12 1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5 45 0 14쪽
11 10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1 0 24쪽
10 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7 0 16쪽
9 8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7 1 18쪽
8 7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4 2 16쪽
7 6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59 2 13쪽
6 5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2 1 14쪽
5 4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1 74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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